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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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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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5월 14일 00시 28분 등록
1. 조셉 캠벨, 나는 누구인가?

안녕하세요. 저는 조셉 캠벨입니다. 미국에서 왔어요. 사실 국적이야 미국인이긴 하지만 저는 사실 제가 어떤 특정한 나라의 사람이라고는 생각하지는 않아요. 그도 그럴 것이 태어나기야 미국인으로 태어났지만, 우리 부모님은 아일랜드 사람들 이었고, 나중에 커서는 프랑스, 독일에서 공부를 한데다가, 더 나중에 힌두교, 불교 등을 공부할 때는 제가 동양인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했었으니까. 그냥 저를 세계인이라고 해 주셨음 좋겠네요.

마찬가지로 저는 사람들이 저한테 ‘신화학자’라는 말을 쓸 때도 같은 기분이 들곤해요. 물론 제가 각 문화의 다양한 신화에 대해서 일생 동안 가장 많은 이야기를 많이 하긴 했지만, 돌이켜 생각해 보면, 제가 읽고 싶었던 텍스트는 ‘신화’라기 보다는 ‘인간’, 그리고 ‘ 그 인간에 대한 이야기’였어요. 아주 어렸을 때부터 ‘인간이 가진 이야기’가 매우 재미 있었거든요.

인간들이 가진 이야기가 좋아서 영문학, 비교 문학을 공부를 시작했고, 어떻게 하면 더 많은 이야기를 접할 수 있을까 생각하다가 더 많은 언어를 배우게 되면 그렇게 될 것 같아서 로망스어, 중세 프랑스어, 프로방스어, 라틴어, 산스크리스트어를 배우게 되었고 그러다가 괴테와 토마스만의 문학이 좋아졌고, 나중에는 문학에서 혹은 신화에서 이야기하는 이야기들이 인간의 근본적인 무의식과 맞닿아 있다고 생각해서 프로이트, 융의 사상을 공부하게 된 거죠. 어찌 보면 신화학자라는 말보다 ‘인간학자’라는 말을 써 주시는 것이 더 나을 것 같기도 하네요.

벌써 아셨겠지만, 저는 못 말리는 호기심을 가진 사람입니다.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그 호기심과 함께 살았어요. 한 번도, 정말 단 한 번도 호기심이라는 밑천이 떨어진 적이 없었죠. 그것이 아마 제가 우리 부모님께 물려 받은 가장 좋은 재산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문학, 언어, 종교, 무의식 등 이 모든 것들이 제 호기심의 대상이었죠. 게다가 이 호기심을 끝까지 해결해 보려고 하는 끈기와 용기도 있었던 것 같아요. 다 아시다시피, 제가 유럽에서 미국으로 돌아왔을 때는 ‘대공황’의 시기였어요. 당장 먹고 살 것이 걱정이 되어서 수십통의 이력서를 썼는데요 정말 단 한곳에서도 연락이 안 오더군요. 할 수 없이 제 동생 앨리스랑 우드 스톡으로 들어갔어요. 거기 숲 속에다 집을 이어 놓고선 공부를 했어요. 색소폰 연주를 해 주고 받은 돈으로 책을 사서 공부를 하고 생계를 유지하고 그랬죠. 어떤 때는 책 사 볼 돈조차 없어서 서점 주인에게 편지를 써서 나중에 갚는 조건으로 책을 사서 보기도 하고 그랬죠. 당시에는 가끔 힘들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참 잘 한 일이라는 생각도 들고 제 인생에서 가장 좋은 시절이었다는 생각도 들어요. 아마 그 시절이 없었다면 저는 제 학문에 깊이를 부여할 기회를 갖지 못했을 거에요. 그 시절에는 이렇게 강의를 많이 안 해도 됐었고, 결혼도 안 했을 때라서 시간이 많이 있었어요. 고요히 침잠할 시간이 많이 있었으니까. 이전에 산만하게 퍼져있던 내 생각을 많이 정리할 기회를 갖게 되었었지요.

여러분들이 저한테 가장 궁금해 하시는 것 하나를 마지막으로 말씀 드리고 마쳐야 할 것 같네요. 많은 분들은 제가 어떤 종교를 가지고 있는지 궁금해 하시더라구요. 사실, 벌써 공공연하게 말씀 드렸지만 저는 더 이상 기독교인이 아닙니다. 그런데, 기독교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쪽은 아닙니다. 이 부분에서 많은 오해가 있으시더라구요. 다만, 저한테는 이제 불교나 기독교나 이슬람교나 힌두교 등 세상의 모든 종교가 같은 의미를 지닙니다. 그러니까 인류가 오랫동안 지켜 온 그 다양한 종교도 그들의 근본은 단 하나 같은 곳에서 출발을 한다는 것이지요. 저는 ‘진리가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그냥 서로 다른 상징을 이용해서 이야기 할 뿐이에요.

다만 제가 말년에 달마대사의 그림을 집에 붙여 두고 불교 쪽에 가깝다는 이야기를 했었던 것은 이런 이유에서지요. 제가 생각하기엔 그 어느 종교 보다도 불교가 가장 그 원형의 진리를 아직까지 간직하고 있는 종교라는 생각이 들어요. 게다가 다른 종교에도 가장 많이 열려있는 종교죠. 그래서 불교를 더욱 가깝게 느끼게 되었어요. 그러나, 불교만을 내 종교로 받아 들였던 적은 없어요. 그렇게 이해해 주시길 바래요.


2.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신화 이야기 한가지

웨일 라이더 (Whale Rider)
제 이름은 파이키아입니다. 사람들은 저를 ‘파이’라고도 부릅니다. 저는 뉴질랜드 바닷가 조그만 마을에서 할아버지, 할머니와 함께 살고 있지요.
수학 공식에나 나온다고 다들 제 이름을 가지고 놀려 대지만, 이래 뵈도 제 이름엔 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답니다. 수천 년 전에 우리 부족의 최초의 선조가 고래 등을 타고 먼 곳에서 이곳으로 오셨다고 했습니다. 그 분 이름도 ‘파이키아’였답니다. 그러니까, 제가 그 분의 피를 물려 받은 마지막 후손이지요. 그러나, 지금의 상태로는 저는 그 분의 후계자가 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여자로 태어났거든요.
그러니까 10년 전쯤 우리 아빠는 같은 마오리 족의 아름다운 여자와 사랑에 빠졌습니다. 그 분이 제 엄마겠죠? 엄마는 쌍둥이를 임신을 했습니다. 그러니까 원래 저는 혼자서 태어날 운명은 아니었어요. 그런데, 제가 배 속에서 나올 때 우리 엄마를 너무 괴롭혔나 봐요. 엄마가 너무 힘들어 하셨거든요. 저와 ‘오빠’라고 불리 우는 우리 둘은 힘들게 이 세상에 나왔습니다. 그리고 세상에 나오자 마자 엄마를 잃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에 저는 ‘오빠’도 잃었습니다. 저는 기억이 잘 안 나지만 우리 아빠는 사랑하는 우리 엄마를 잃은 것을 너무 슬퍼 하셨답니다. 이 세상을 모두 잃은 것 같았다고 하시더군요. 그런데, 소식을 듣고 오신 할아버지는 아빠한테 “얘야, 아들은 다시 낳으면 된다.” 라는 말만을 하셨답니다. 세상에 엄마를 잃은 우리 아빠한테 말입니다.
우리 할아버지는 우리 부족의 후계자입니다. 그래서인지 우리 엄마가 아들을 낳아서
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리셨답니다. 그래서 우리 엄마가 그렇게 힘들게 돌아가셨다는 것에도 마음을 쓰지 않으셨고 제가 이 세상이 태어났다는 것도 별로 기뻐하지 않으셨습니다. 다만, 제 ‘오빠’라는 아이가 이 세상에 태어났다가 죽었다는 사실에만 너무 안타까워 하셨답니다. 우리 할머니가 저를 보여 주시며 “이 아이 좀 봐요. 아주 예뻐요.” 하시자 “저리 치워, 하나도 쓸데없는 아이를 가지고.” 하셨다는 군요.
어쨌든 여러 모로 봐서 저는 그리 환영을 받으며 태어나진 않았습니다. 그래도 따뜻한 할머니 덕분에 사랑은 많이 받으며 자랐던 것 같아요. 제가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우리 아빠는 먼 곳으로 떠나셨습니다. 할아버지에 대한 상처가 너무 커서 아빠는 부족의 후계자 자리를 지키고 싶어 하시지 않았어요. 엄마가 아닌 다른 사람과 결혼을 해서 또 다른 후계자를 낳는 것을 거부하셨던 거죠. 가족들은 우리 아버지가 어디에 계시는 지 잘 모릅니다. 가끔씩 아빠는 저한테 엽서를 보내서 지금 어디에 계시는 지를 알려주실 뿐이었어요.
그러던 어느 날 아빠가 제 학예회에 참석을 하셨답니다. 저는 그 날 아빠를 오랜만에 볼 수 있어서 너무 좋았어요. 아빠는 독일에서 훌륭한 미술 작가가 되어 있었어요. 벌써 전시회도 몇 번을 열었다고 했거든요. 아빠는 독일에서 어떤 예쁜 아줌마를 만나서 다시 사랑에 빠졌나봐요. 그래서 그 아줌마가 제 동생을 임신하고 있데요. 여기 작은 해변가에서 후계자의 이름을 가지고 살아가실 때보다 훨씬 많이 웃고 계신 것 같아서 저는 너무 기뻤어요.
그런데 우리 할아버지는 그게 아니셨나봐요. 제 담임 선생님이신 분을 우리 집에 데려와 초대를 하시고는 아빠에게 소개를 시키려는 자리에서 아빠가 여자 친구가 있다고 밝히자 그 때부터 매우 화를 내셨어요. 그래서 아빠한테 저도 같이 데려가 버리라고 하셨어요. 아빠랑 할아버지는 심하게 다투셨고 아빠는 저를 독일로 데려가기로 했어요.
저는 독일로 가는 것이 그리 즐겁지는 않았지만 그냥 아빠를 따라 집을 나섰지요. 아빠 차
를 타고 해변 도로를 따라 공항으로 가고 있는 중이었어요. 갑자기 바다에서 저를 부르는
무언가가 있었어요. 고래였어요. 고래가 저를 부르고 있었어요. 저더러 가지 말라고 했어요.
그래서 아빠한테 저를 다시 내려달라고 했어요. 그리고 저는 그냥 다시 할아버지 할머니가 살고 있는 집으로 돌아와 버렸지요.
아빠가 그렇게 떠난 후에 할아버지는 입버릇처럼 “우리 부족을 암흑에서 이끌어 내고 바르게 만들어 줄 새로운 지도자가 필요하다.”고 말씀하셨어요. 그 때부터 할아버지는 아빠를 후계자로 세우는 것을 포기 하셨나봐요. 그리고는 마을의 장남들을 모아서 후계자가 배워야 할 ‘창 쓰기’를 가르치셨죠. 저도 그걸 배우고 싶었는데 할아버지는 화난 얼굴을 하시면서 저한테는 오지 말라고 이르셨어요. 여자애는 배울 게 안 된다고 하시면서. 사실 거기 있는 쪼다 같은 남자아이들보다 제가 훨씬 잘 할 자신이 있었는데 너무 억울하게 됐지 뭐예요?
저는 우리 삼촌을 꼬셔서 ‘창 쓰기’를 배웠어요. 그리고는 몰래 그 중 한 남자아이와 대결을 해 봤어요. 그런데 어땠게요? 그 잘 난 척하던 쪼다 같은 남자아이를 제가 이기고 말았어요. 그런데 할아버지는 제가 그 자식을 이기는 모습을 보셨죠. 그 장면을 보시고 부정탄다고 할아버지는 저한테 무척 역정을 내셨어요.
마지막으로 후계자를 선정하는 통과의례로 할아버지는 아이들을 모두 데리고 바다로 나가셨고 후계자로서 할아버지가 지니고 계셨던 고래 이빨로 된 목걸이를 바다에 던졌어요. 그 목걸이를 바다 속에서 찾아내 오는 아이가 후계자가 되는 거였죠. 그런데 그 날 아무도 그 목걸이를 건져내 오지 못했답니다.
할아버지는 매우 상심하셔서 자리에 누우셨고 저는 할아버지가 걱정이 되기 시작했습니다.
어느 날, 우리 삼촌이랑 바다에 나갔을 때였어요. 갑자기 할아버지의 고래 이빨 목걸이를
찾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는 바다로 들어갔구요. 거기서 그 목걸이를 찾
을 수 있었어요. 할아버지가 저를 아무리 미워하셔도 저는 할아버지가 밉지 않았어요. 할아
버지는 단지 할아버지의 의무를 다하시고 계시는 거라고 할머니가 그러셨거든요. 저는 다만
우리가 좀 더 남자, 여자, 우리 부족, 남의 부족 이런 차별 없이 배울 수 있게만 된다면 우리가 더 강해진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웅변대회에 나가서 그 이야길 하고 상을 받았답니다.
그런데 그러던 어느 날, 우리 마을에 큰 일이 하나 났어요. 고래들이 모두 해안으로 밀려왔는데 그들이 모두 아팠습니다. 고래들은 우리 마을에서 신성시되는 동물이라서 족장
격인 우리 할아버지는 어쩔 줄 모르셨죠. 마을 사람들은 밤을 세워 고래들을 간호를 했지만
모두 허사였습니다. 나중에 할아버지는 대장 고래를 억지로 끌어다가 바다로 돌려주지만
그래도 고래들은 꿈쩍도 하지 않았어요.
마을 사람들이 모두 실망을 해서 돌아간 후 저는 대장 고래에게 가서 가만히 그를 쓰다듬었습니다. 대장 고래는 내가 쓰다듬자 숨을 쉬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그의 등을 타고 멀고 먼 바다로 나가게 되었고 갑자기 용기가 솟아 올랐습니다. 어디선지 모르게 죽음이 두렵지 않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러고는 깨어나 보니 우리 할아버지가 저를 걱정스런 눈으로 내려다 보고 계셨어요. 그 날로 할아버지는 제가 여자로 태어난 것을 용서 하셨고 고래 이빨로 된 목걸이를 제 목에 걸어 주셨어요. 저는 이제 제대로 된 파이키아가 되었어요.
제가 정식으로 후계자의 계를 승인을 받던 날 마을 사람들이 모두 와서 축하를 해 주었고 멀리 독일에서 우리 새 엄마와 아빠도 우리 마을에 와서 나의 후계자 등극을 축하해 주었답니다.

주연 : Keisha Castle Hughes
감독 : Niki Caro
원작작가: 위티 이히마에라(Witi Ihimaera)'

3. 내가 좋아하는 그 이야기는 내게 무엇이며, 나는 왜 이 이야기를 좋아할까 ?

내가 이 이야기를 좋아하는 가장 큰 이유는 주인공 ‘파이키아’가 가지고 있는 양성성의 조화 때문이다. 파이키아는 여자아이지만 양성의 장점을 모두 가진 아이이다. 용기와 행동력이라는 남성적인 면이 있는 반면에 돌봄과 사랑이라는 여성적인 면도 함께 가졌다. 그래서 그녀는 가부장적인 세상의 눈으로는 간과하기쉬운 새로운 면을 읽어 낼 수 있다. 그로 인해 그녀의 문제해결 방식은 조금 색다르고 창의적이다. 이것이 그녀를 좀 더 발전적인 미래로 이끌어 간다.
예를 들어, 파이키아의 할아버지가 마을의 장남들한테만 창 쓰기 수업을 하고 파이키아를 끼워주지 않았을 때, 파아키아는 그것을 배우기 위해 삼촌을 찾아간다 – 여기서 삼촌은 별로 하는 일 없이 인생을 보내고 있던 한량으로 나온다- 파이키아는 삼촌이 창 다루기 대회에서 우승을 한 적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내고 집 안에 있던 트로피를 꺼내와서 삼촌의 기억에서 영광의 순간을 보여준다. 그리하여 삼촌에게는 잃었던 영광의 순간을 되찾아주고 자신은 창 다루는 법을 배울 수 있었다. 아마 보통의 가부장적인 질서의 생각으로는 할아버지의 권위에 저항을 하거나 그에 복종을 하게 되는 두 가지 정도의 간단한 결과만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가 해결하는 방식은 좀 색다르다. 그녀가 이루고자 하는 목적인 ‘창 쓰기’를 위해 삼촌이라는 조금 색다른 사람을 통한다. 삼촌은 삶에 별로 희망이 없어 보이는 한량이지만 아마 그것은 삼촌이 ‘장남이 아닌 차남이라는’ 좌절을 겪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녀는 자신이 여자라서 겪을 수 밖에 없는 좌절이 삼촌이 겪는 차남 이라는 좌절과 동질적인 것임을 보여준다. 그리고 삼촌을 차남이라는 좌절에서 꺼내주는 대가로 자신이 여자라서 배울 수 없는 창 다루는 법을 배운다. 이런 식의 그녀만의 따뜻하고 색다른 방식의 문제 해결법. 이것이 나를 이 이야기에 빠지게 했던 것 같다.
‘파이키아’는 할아버지로부터도 거부를 당한다. 태어난 순간부터 할아버지의 축복을 받지 못한 그녀는, 할아버지가 자신을 후계자로서 생각을 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지만 할아버지를 미워하지 않는다. 오히려 할아버지를 사랑으로 감싼다. 그녀의 할아버지에 대한 사랑은 할아버지가 다른 가족들의 장남들을 불러다 놓고 후계자를 구하는 과정 중에 잃어버린 고래 이빨 목걸이를 찾아내는 대목에서 절정에 이른다. 할아버지의 생명과 같은 고래 이빨 목걸이를 찾아내어 주는 과정에서 그녀는 할아버지 식탁에 올릴 ‘가재’를 생각해 낸다. 할아버지가 자신이 여자라고 후계자에서 제외시키고 자신을 소외시키고 있는데도 말이다. 마침내 그녀는 자신의 아픔을 오히려 사랑으로 변화시키고 만다.
마지막에 그녀는 이 모든 시련을 이겨내고 유유하고 자연스럽게 가슴이 따뜻하고 멋진 리더가 된다. 내가 아는 그녀는 강하고도 유연하며, 똑똑하면서도 따뜻하다. 아픔과 시련을 한으로 남기지 않고 그것을 품어서 더 큰 사랑으로 만들 줄 안다.
아마 나는 ‘파이키아’처럼 여성이나 남성이 아닌, 여성이기도 하고 남성이기도 한 인간이 되고 싶은 것 같다. 때로는 강력하고 차갑게 결단을 내리고 때로는 부드럽고 따뜻하게 사람을 품을 수 있는 사람. 두려움도 없고 의심도 없이 우리의 한계의 한 부분 깨 주는 사람. 전통을 새롭게 이 시대에 맞게 해석해 낼 수 있는 사람. 그런 사람이 되고 싶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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