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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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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재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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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1월 9일 23시 26분 등록

언젠가는 안동에 꼭 가보고 싶었다.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이 방문했다는 하회마을도 돌아보고, 안동소주에 안동찜닭도 곁들여 먹어보고, 이제는 하늘나라에 계신 정팀장님의 고향이란 그 곳을 내 발로 걸어보고 싶었다. 그 기회는 연구원 오프수업과 함께 왔다. 지난 달 22일과 23, 안동 하회마을을 돌아보고 임청각 군자정에서 하루 밤 묵었으며 달밤에 월령교를 건너고 도산서원을 둘러 보았다. 안동은 과연 君子가 사는 곳이었다. 소란스럽지 않고 유난스럽지 않으며 온유하고 진중했다. 소박하지만 가볍지 않고 오래되었지만 남루하지 않았다.

 

새벽 일찍 길을 재촉했음에도 불구하고 궂은 날씨로 도착 시간은 계속 지연되고 있었다. 훈 오라버니와 내가 드라이버로 나서 안동으로 향했는데 웬일인지 사부님이 탑승한 오라버니의 차는 교통상황을 핑계로 끝도 없는 국도 일주를 하고 있었다. 거기다 사부님의 강권(?)으로 중간에 비 내리는 삼강주막에서 막걸리에 부침개를 기어코 걸치고 말았다. ‘삼강주막나는 그런 곳이 있는 줄도 몰랐다. 비 오는 오후 후다닥 막걸리 두 주전자를 비우고 떠나온 곳이라 집에 돌아가 그 곳에 대해서 알아보았다.

 

삼강주막의 공식 주소는 경북 예천군 풍양면 삼강리 166-1이다. 조선 말기의 전통주막인 삼강주막은 낙동강 1300리 물길에 유일하게 남아있는 주막이라고 한다. 삼강은 태백산의 황지연못에서 발원한 낙동강과 봉화 소백산에서 발원하여 회룡포를 돌아 나오는 내성천, 그리고 문경에서 흘러나오는 금천이 합류하는 곳이라서 그리 불리게 되었다. 오래 전 사람들은 문경새재를 가기 전에는 이곳 삼강 나루터는 꼭 거쳐 갔는데 나들이객에게는 허기를 면하게 해주고 보부상들에게는 숙식을, 시인묵객에는 영감을 제공해주었다. 이 주막에는 지난 2005년까지 유옥연이라는 주모 할머니가 있었다고 한다. 그녀는 1932년 이 곳에 시집와 이 집을 인수하여 2대 주모로 살다가 89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이후 방치되다가 2007년도에 복원되었는데 우리가 잠시 머문 방의 외벽에는 시인 고두영의 삼강 나루터 주막이란 시가 붙어 있어 삼각주막의 역사의 한 자락을 엿볼 수 있었다. 우리는 남은 막걸리를 플라스틱 병에 담아 경수를 주겠노라며 챙겨왔다. 하지만 그것은 임청각 군자정의 따뜻한 방바닥 위에서 더욱 발효되어 명을 다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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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 하회마을 향해 국도를 향해 달리는데 분홍빛 사과가 나무에 보석처럼 달려있다. 어찌 가느다란 줄기에 그리 탐스러운 과실이 달릴 수 있는지 기이했다. 그 색깔이 어찌나 고운지 새색시의 바알간 볼 같기도 하고 새신랑의 마고자에 달린 분홍 보화 같기도 했다. 차를 세워 사진기로 그 자태를 담고 싶었으나 시각이 늦어 길을 재촉할 수 밖에 없어 아쉬웠다. 하회마을에서 얻은 안동시 지도를 살펴보니 안동사과는 안동 특산물 중 하나로 실려 있었다. 안동사과는 색상이 선명하고 당도가 높으며 육질이 연한 품종인데 안동은 전국 최대의 사과 산지라 한다. (그런데 돌아오는 길에 정작 사과는 영주에서 샀다!)

 

하회마을에 도착하니 정오가 훨씬 지나 있었다. 경수는 마을을 둘러보고 있다 해서 잠깐 있다 나갈 요량으로 입구에서 차만 돌려 나오겠다 하고 주차비도 내지 않고 들어갔다. 오후에 개인다는 일기예보가 무색하게 비는 추적추적 내리는데 우산 하나에 둘 셋이 기대어 걷자니 어깨와 소매가 눅눅히 젖어 든다. 어찌 어찌하여 하회마을까지 오솔길을 걸어 비를 맞으며 걸어갔다. 비와 구름, 안개를 품은 마을의 정취가 그윽했다. 비에 젖은 손이 조금 시렵기는 했지만 루카의 성곽을 닮은 벚꽃나무 길을 걷는 운치가 있어 좋았다. 비에 젖은 은행나무는 노오란 잎을 바닥에 떨구어 그 푹신한 카펫을 밟으며 걷는 맛도 흥미로웠다. 마을을 둘러싼 산에는 비구름이 가득 차 마치 신선이 사는 곳 같았고 단풍으로 물든 부용대는 늠름한 자태를 뽐내며 당당히 서 있었다. 나는 마을 입구에서 하회마을에 관한 브로셔를 하나 얻어 읽어 보았다. 河回란 이름은 낙동강이 S자 모양으로 마을을 감싸 안고 흐르는 데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이 곳은 풍수지리형으로 태극형, 연화부수형, 행주형에 해당하는데 조선시대부터 사람이 살기에 가장 좋은 곳으로 유명하였다. 이 마을은 풍산류씨가 600년 간 대대로 살아온 대표적인 동성마을로 조선시대 대유학자인 류운룡 선생과 임진왜란 때 영의정을 지낸 류성룡 형제가 자라난 곳이다. 나는 문화유씨다. 풍산류씨와 문화유씨는 하나의 줄기에서 나온 지류라 할 수 있고 류성룡은 내가 흠모하는 이순신 장군의 멘토가 아니었던가?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던가? 마치 내가 하회마을에 꼭 올 운명이었던 것 같이 느껴졌다.


크기변환_IMG_2362.JPG크기변환_IMG_2371.JPG크기변환_IMG_2379.JPG크기변환_IMG_2380.JPG


마을에서 부용대에 가려면 배를 타고 강을 건너야 했다. 예전에는 배를 탄 사람들이 줄을 잡아 당겼다고 하는데 지금은 모터가 그 역할을 대신한다. 비 오는 오후, 우리는 우산을 받고 그 배에 몸을 실었다. 빗방울이 바람에 몸을 싣고 우리의 얼굴을 때렸지만 성스러운 기운이 감도는 부용대를 넋을 놓고 바라보았다. 배에서 내리면 옥연정사가 우리를 기다린다. 옥연정사는 서애 류성룡 선생이 1586년에 지은 것으로 선생이 관직에서 물러난 뒤 임진왜란에 대해 기록한 징비록을 쓴 장소이다. 마을을 휘감아 흐르는 강물이 이곳에 이르러 깊어지는데 깨끗하고 맑은 물빛이 옥과 같아서 정사의 이름도

玉淵이라 하였다고 한다. 옥연정사에는 놀랍게도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자질구레한 살림살이를 보고 있자니 정신이 어지럽기는 하지만 그래도 사람의 온기가 있어 따뜻하단 생각이 든다. 마루에 걸터앉아 마당에 심어진 소나무와 돌기와를 이고 있는 토담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방에 불을 넣었는지 굴뚝에서는 새하얀 연기가 자금자금 새어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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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배를 타고 나와 마을을 돌아보았다. 중요민속자료로 지정되어 보호되고 있는 집도 있었지만 지금도 사람들이 살고 있는 기와집, 초가집도 많았다. 60년대 풍의 구멍가게도 보여 사람의 냄새를 더 한다. 서애 류성룡 선생의 종택인 충효당에 들렀다. 서애 선생은 귀향한 후 풍산현에 있던 작은 초가집에서 죽음을 맞이한 것으로 전해지는데, 이 집은 그의 제자와 후손들이 그의 학덕을 추모하기 위해 지은 것이라 한다. ‘충효당이란 당호는 선생이 평소에 나라에 충성하고 부모에 효도하라는 말을 강조한 데서 유래하였다. 비가 많이 내리고 있는대도 충효당은 관람객들로 붐볐다. 문화재 해설사로 보이는 여성이 확성기에 대고 열심히 설명을 하는데 오래 머물 수 없어 아쉬웠다. 그러다 고택 한 군데에서 점심을 먹었다. 늙은 부부가 관광객들에게 조촐한 식사와 민박을 제공하는 곳이었는데 추위와 배고픔에 굶주린 우리는 안동 간고등어와 안동찜닭, 그리고 맛깔스런 밑반찬으로 차려진 점심상을 그야말로 깨끗이 비웠다. 인심 좋은 주인은 공기밥 값도 받지 않고 삼삼한 된장찌개까지 내어 주었다. 나와보니 그 집은 작천고택이란 이름을 가진 중요민속자료였다. 이 집은 처음에는 두 채였는데 1934년 대홍수로 문간채가 쓸려나가고 지금은 일자형의 안채만 남아 있다. 한 건물인데도 사랑방과 안방 사이에 작은 토담을 세워 사랑 손님과 안채의 부녀자가 서로 마주치지 않도록 한 점이 특징이라 한다. 그 옛날 남녀가 매우 유별하던 그 시기에 이 곳에 살았던 사람들의 모습을 상상해 보았다.

크기변환_IMG_2393.JPG크기변환_IMG_2397.JPG크기변환_IMG_2400.JPG크기변환_IMG_2403.JPG

 

부른 배를 두드리며 마을을 돌아 나오는데 영화에서 본 듯한 솔숲이 눈길을 붙든다. 일지매가 나무 사이를 날아 오르던 곳 같기도 하고, 어느 새벽엔 산신령이 나타나 소원을 물을 것 같기도 하다. 이곳의 이름은 만송정 솔숲. 겸암 류운몽 선생이 젊은 시절에 조성한 것으로 풍수지리적으로 마을 서쪽의 지기가 약해서 이를 보완하기 위해 심은 비보림이다. (풍수지리설에 따라 지세의 허한 곳에 나무를 심어 보완, 길복을 가꾸는 것을 비보림(裨補林) 혹은 보허림(補虛林)이라고도 한다) 마을 입구에 가까워오자 머리를 금발로 물들인 은행나무와 노랗게 익은 논이 서로 어울려 장관을 이룬다. 이렇게 아름다운 장면을 보고 감탄하지 않을 자가 누가 있을까? 황홀한 기분에 젖어 아쉬운 마음을 달래며 하회마을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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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 우리의 숙박지인 임청각에 도착했다. 임청각은 그야말로 배산임수(영남산을 등지고 낙동강을 바라보는)의 자리에 있었다. 그 옛날에 이곳에 왔더라면 반하지 않을 자가 없었을 것 같다. 하지만 지금은 문명의 이기인 철도와 댐이 들어서 기차 소음에 시달리고 회색빛 콘크리트 댐 벽을 눈 앞에서 참아주어야 하니 안타깝기 그지 없었다. 그래도 비교적 잘 관리되고 있었고 고택체험을 할 수 있도록 수세식 화장실과 욕실도 구비되어 있어 하루 밤 묵기에는 불편이 없었다. 다만 외관은 양반집인데 내부는 나 어릴 적 가서 놀던 외갓집 사랑방 같아 살짝 실망스러웠다. 집 안의 소품들도 외관도 어울리게 꾸며 놓으면 고택체험자들에게 더욱 인기가 있을 듯싶었다. 집을 원래 잘 지은 것인지 보수를 그리한 것인지 전기보일러를 틀어 놓으니 방은 따끈따끈했고 웃풍이 세지 않아 생각보다 춥지 않았다. 나중에 아이들을 데리고 한 번 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임청각은 중종 14(1519)에 형조좌랑을 지냈던 고성이씨 이명이 지은 집으로 원래는 99칸의 집이었다고 하나 지금은 70여 칸만 남아 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민가 중 하나인 이 집은 독립운동가이며 대한민국 임시정부 초대 국무령을 지낸 석주 이상룡(1858-1932)의 생가이며, 그의 아들과 손자 삼대에 걸쳐 독립유공자를 배출한 유서 깊은 고소이다. 별당 형식의 정자인 군자정은 임청각의 사랑채로 자를 옆으로 누인 형태이다. 임청각이란 당호는 퇴계 이황의 친필로 도연명의 귀거래사 중 동쪽 언덕에 올라 길게 휘파람 불고, 맑은 시냇가에서 시를 짓기도 하노라에서 따온 것이다. 정자 내부에는 퇴계 선생이 쓰신 당호를 비롯해 선조들의 사진과 훈장들이 액자에 담겨 즐비하게 걸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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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업을 마친 늦은 저녁, 저녁을 먹으러 숙소를 나섰다. 한적한 길을 걷다 보니 거대한 돌탑이 눈에 들어온다. 밤이라 잘 보이지 않는데 몇 층인지 세다 보니 7층이나 되었다. 이 탑의 이름은 신세동 7층 석탑. 국내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통일신라의 전탑(벽돌탑)으로 기단부에 팔부중상과 사천왕상, 12지신이 양각되어 있다. 통일신라시대에는 이 근방이 절이 있지 않았을까 생각해보았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큰 탑이 있을 이유가 있겠는가? 그 옆에는 탑동종책이 있었다. 그 앞에 외제차 한 대가 서 있는 것을 보니 누군가 살고 있는 것 같았다. 밖에서 보아도 그 규모가 꽤 큰 것으로 보인다. 조선시대에는 이 근방에 내로라 하는 양반가들이 많이 살았었나 보다.

 

길을 따라 한참을 걸으니 음식점들이 즐비하다. 간고등어, 헛제사밥, 양반밥상, 고깃집에 바다장어집도 보인다. 사부님이 사주신 바다장어는 민물장어만큼 기름지지 않았다. 장어를 안주 삼아 술 한잔을 비웠다. 식당을 나오니 낙동강을 가로지르는 월영교가 보인다. 만들어진 지 얼마 되지 않은 듯 한데 야경이 꽤나 근사하다. 月暎橋라는 이름은 주민이 참여하여 출품한 응모작 322점 중에서 선정되었는데 유난히 달과 연관이 많은 이 지역의 유래에서 착안하였다 한다. 이 곳 안동댐 유역은 예로부터 달골(月谷)이었으며 다리를 건너면 바로 엄달골 마을과 연결되고 강 건너 산중턱에는 옛선비가 시를 읊었던 월영대가 옮겨져 있다. 일행은 다리 위에서 담배를 피워 물었다. 달 빛이 비추는 밤이면 그 풍광이 어떠했을까 생각해보았다. 임청각으로 돌아오니 주인에게 받은 열쇠가 자물쇠에 맞지 않아 한참을 기다려야 했다. 군자정 오른편에는 작은 연못이 있고 모과나무가 한 그루 심어져 있었는데 어두운 밤이라 그런지 모과가 눈송이처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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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은 오라버니와 사부님이 동네 구멍가게에서 사온 사과로 때우고 못다한 수업을 했다. 수업을 마치고 짐을 챙겨 군자정을 나오며 우리는 가파른 돌계단에 앉아 기념사진을 찍었다. 그리곤 안동호 어딘가에서 차를 세워 폴라로이드 사진을 찍었다. 독사진 한 장, 사부님과의 기념 사진 한 장. 이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폴라로이드 사진이 의미와 운치를 더해주어 참 좋았다. 근처에서 점심을 먹을 거라는 기대와는 달리 우리는 차를 몰아 도선서원에 들렀다. 12시가 넘은 시각이라 입구 가게 가판대에 줄줄이 서서 어묵 두 세 개로 배고픔을 달랬다. 도산서원 입구에서는 붉은 단풍을 떨군 나무가 우리를 반갑게 맞아 주었다. 도선서원은 조선 선조 7(1574)에 건립된 것으로 퇴계 이황(1501-1570)이 유생들을 교육하며 학문을 쌓던 곳이다. 영지산을 뒤로 하고 동취병, 서취병에 싸인 아늑한 골짜기 안에 안동호를 바라보며 자리잡고 있다.

2011 가을 안동 임청각 군자정.png크기변환_사부재경.JPG


도산서원에 들어서니 우물이 하나 보인다. 우물 이름이 참 멋있다. 열정(冽井). 식수로 사용하던 우물로 역경의 정괘 정렬한천식(井冽寒泉食)에서 의미를 취하였다 한다. 안내문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우물은 마을을 떠나도 옮겨가지도 못하고 퍼내어도 줄지 않는다. 이처럼 무궁한 지식의 샘물을 두레박으로 하나하나 퍼내어 마시듯 자신의 부단한 노력으로 심신을 수양한다는 교훈을 주고 있다冽井에서 熱情을 부지런히 퍼내었을 그 옛날 도산서원의 유생들을 떠올려 보았다. 정우당이라는 건물도 하나 보인다. 그 앞에 작은 연못이 있는데 연꽃이 심겨져 있다. 퇴계선생이 꽃 중의 군자라는 연꽃을 심어 정우당이라 하였다고 한다. 안내문에는 다음과 같은 주옥 같은 말이 쓰여 있다. ‘연꽃은 진흙탕에 살면서도 몸을 더럽히지 아니하고, 속은 비고 줄기는 곧아 남을 의지하지 않으며, 향기는 멀수록 맑다.’ 나도 연꽃처럼 살고 싶다. 책은 보관하는 서고의 이름이 광명실이다. 광명은 많은 책이 서광을 비추어 준다는 뜻이라 한다. 도산서원을 나오니 안동호 가운데 섬이 하나 보이고 그 위에 정자 하나가 늠름하게 앉아있다. 이 곳의 이름은 시사단. 평소 퇴계 선생의 학덕을 흠모하던 정조가 선생의 학덕을 기리고 지방 유림들의 사기를 높여주기 위해 어명으로 특별과거인 도산별과를 보인 장소라고 한다. 퇴계를 흠모하던 정조임금의 마음이 보이는 듯 하다.

크기변환_IMG_2433.JPG크기변환_IMG_2427.JPG크기변환_IMG_2430.JPG크기변환_IMG_2432.JPG 

 

이렇게 우리는 안동을 떠나왔다. 군자가 살던 곳, 안동. 우리는 군자정에서 묵었고 꽃 중의 군자라는 연꽃이 심겨진 연못을 보았다. 군자의 뜻을 찾아보았더니 여럿이다. 나는 군자를 덕과 학식이 높은 사람, 또는 덕이 재주보다 나은 사람이란 정의가 마음에 든다. 안동을 떠나며 나도 연꽃처럼 은은한 향기를 풍기는 군자가 되고 싶어 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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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경
2011.11.09 23:28:04 *.143.156.74
그냥 두면 다 날아가버릴 것 같아 아이폰에 들어있는 사진과 제 머릿속에 들어있는 기억을 꺼내 안동 여행기를 엮어 보았습니다. 다시 안동에 가고 싶어지네요. 비오는 날의 여행도 운치가 있는 것 같습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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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훈
2011.11.14 18:04:21 *.71.222.103
재경,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여인아!!
우리의 그날을 잊지 않도록 이렇게 올려주다니.
감사, 감사!!
나는 슬슬끓는방에서 사부님과 경수랑
코골면서 자고...눈 뜬 아침을 잊을 수 없구나.
참으로 많은 느낌과 배움이 있는 시절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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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나
2011.11.19 13:44:21 *.38.222.35
좋아요~!!! * 백만개..(페이스북 중동현상임..)ㅋㅋㅋ.. 언니 글 덕에 안동에 대한 기억이 다시 솔솔~~ 사진도 좋고.
감사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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