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연구원

칼럼

연구원들이

2017년 6월 26일 10시 54분 등록

우리 아이는 까막눈

 

엄마, 아무개는 인도라던가, 인도넷이라던가..거기에서 수학을 공부했다는데?”

? 인도에서 수학 공부했대? 아빠가 인도에서 일하셨나 보네?”

 

큰 애가 7살 때였다. 어느 날부터인가 친구들 이야기를 하면서 수학을 언급하기 시작했다. 초등학교 산수수학으로 바뀌었다는 것을 나는 그 때만 해도 모르고 있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아이들이 인터넷에서 선행학습으로 수학을 공부하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사는 곳은 삼성 다니는 부모들이 많은 관계로 나는 그저 그 아이가 아빠 따라 인도에서 살면서 수학을 접했다 왔나 보다 생각한 것이다.

 

작은 애는 7살 여름부터 한글을 시작했다. 4-5살에 한글은 물론이고 영어를 시작하는 경우도 많기에 이렇게 늦은 시작은 주위의 우려 섞인 시선을 받아야만 했다. 당장 친정엄마부터 한글을 가르치지 않는다고 잔소리가 대단하였다. 어떤 부모는 내가 대단한 의식이나 신념이 있어서 한글을 가르치지 않는갑다 생각하면서 스칸디나비아식 교육을 하시나봐요?’라고 묻기도 했다. 헛웃음이 나왔다. 디자인이건 교육이건 언제부터인가 북유럽 스타일도 유행인가보다.

 

조기교육을 포함한 아이들 교육에 대해 온갖 이론도 많고 각자의 생각도 다양하겠지만, 도대체 한글을 빨리 떼려고 하는 이유를 모르겠다. 한글이 얼마나 익히기 쉬운 언어인가. 마음만 먹으면 금방 익히는 한글을 왜 굳이 일찍부터 시작해야 할까. 4살에 한글을 뗐다는 둥, 5살에 한글을 뗐다는 둥, 그게 의미 있나? 아이의 한 평생을 생각할 때 문맹의 시기는 얼마 되지 않는다. 그 짧고도 귀한 문맹의 시기를 굳이 단축시킬 필요가 있을까. 아이들에게 까막눈의 시기는 많은 것을 더듬을 수 있는 귀한 시간이다.

 

어릴 때 책을 많이 읽기 위해서는 한글을 일찍 깨치는 것이 유익하다고 생각하는 경우도 있는 모양이지만, 책보다는 자연을 많이 읽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어릴 때 내 나름의 언어를 만든 적이 있는데, 나 혼자 읽고 쓸 수 있는 암호였기에 혼자 뿌듯해하며 나만의 일기장에 일기를 쓴 적이 있다. 지금 생각하면 조악한 그 언어를 아주 친한 친구와 공유하며 서로 어설픈 쪽지를 주고 받았다. 어른들이 봤다면 추상적인 그림으로 보일 그러나 우리 나름의 어엿한 언어였다.

 

이렇게 표현하고 싶은 욕구, 소통하고 싶은 욕구가 인간에게 있기에 그 욕구가 흘러나올 수 있도록 그 소통수단을 스스로 개발할 수 있는 기회를 아이에게 주는 것도 좋다. 그 소통수단은 그림일수도 음악일수도 춤일 수도 있다. 그런 면에서 개인적으로는 한글이건 외국어이건 언어를 일찍 가르치는 것은 아이 스스로의 표현수단과 소통수단을 개발할 기회를 뺏는 거라 생각된다. 대개의 아이들은 자신만의 언어를 개발하는 수준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그림으로라도 표현을 한다.

 

아이들은 모두가 그림을 그리지만 어른이 되면서 그림을 그리게 되는 이는 드물다. 언어에 앞선 그림이 원초적이면서 진실에 더 잘 다가갈 수 있는 소통수단이라 할 수 있다. 그 시기에는 충분히 까막눈 덕에 풍부해진 다양한 감각과 기술을 활용하는 것이 좋은 것 같다. 그렇게 수백 장의 그림을 그리며 까막눈의 시기를 다채롭게 보내던 큰 아이는 한자에 눈을 뜨게 되었다. 아마도 상형문자인 관계로 그림과 글자의 중간단계로서의 한자가 익숙했던 모양이다.

 

화첩을 가지고 그림을 그리던 아이는 이제 그림책 보듯 한자사전을 뒤적인다. 한자를 쓴다기 보다는 그리기 시작한 아이는 천자문을 매일같이 노래 부르듯 읽고 그린다’. 한자가 이렇게 즐겁게 접근될 수 있는 것을! 한자가 노래가사가 될 수 있고 그림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아이들에게 어차피 배움은 놀이이고 아이들은 언제든 놀 준비, 즉 배울 준비가 되어 있기에 굳이 교육에 안달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굳이 아이들 성장과 관련되어 개인적으로 바라보는 나라가 있다면 북유럽이 아니라 몽골이다. 외국어를 통한 소통도 중요하겠지만 아이들이 제일 잘 익혔으면 하는 언어는 자연과의 소통능력이다. 전진은 악셀, 멈춤은 브레이크 등과 같은 기계와의 소통기술을 익히기 전에 말의 옆구리를 툭 쳐서 앞으로 가고  워워하는 소리와 함께 고삐를 당기며 말로 하여금 멈추게 할 수 있는 그런 소통능력을 갖출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시장'에서 이윤을 얻는 기쁨, '전장'에서 경쟁하여 승리하는 것에서 기쁨을 찾는 어른이 될 것이 아니라 '목장'에서 자연과 교감하며 얻는 기쁨에서 삶을 누릴 줄 아는 어른이 되면 좋겠다. 앞으로는 스칸디나비아식 교육을 하시나봐요?’라고 묻는 분들께 이렇게 답할 수 있겠다. ‘저는 몽골식 방목 교육을 합니다’ ()



IP *.18.218.234

프로필 이미지
2017.06.27 19:55:26 *.202.71.228
저도 동의해요. 둘째가 한글을 모르지만 아직 가르쳐야할 필요성은 못느낍니다. 벌써부터 정형화된 글로 가두고 싶지는 않아요.
덧글 입력박스
유동형 덧글모듈

VR Left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5212 [33] 시련(11) 자장면 한 그릇의 기억 secret [2] 2009.01.12 205
5211 [36] 시련12. 잘못 꿴 인연 secret [6] 지희 2009.01.20 209
5210 [38] 시련 14. 당신이 사랑을 고백하는 그 사람. secret 지희 2009.02.10 258
5209 [32] 시련 10. 용맹한 투사 같은 당신 secret [2] 2008.12.29 283
5208 [37] 시련. 13. 다시 만날 이름 아빠 secret [3] 2009.01.27 283
5207 [28] 시련(7) 우리가 정말 사랑했을까 secret [8] 지희 2008.11.17 330
5206 #25. 군 문제 개선을 위한 제언 [1] ggumdream 2017.11.13 919
5205 칼럼 #18 약속_윤정욱 [3] 윤정욱 2017.09.11 923
5204 #5 나의 이름은..._이수정 [5] 알로하 2017.05.15 924
5203 <뚱냥이칼럼 #24> 뚱냥이 에세이-'담다' 등 2편 [1] 뚱냥이 2017.11.13 924
5202 #19 - 소원을 말해봐(이정학) [5] 모닝 2017.09.18 925
5201 칼럼 #23 또다시 학교폭력위원회 [1] 정승훈 2017.10.29 925
5200 「신화와 인생」을 읽은 후, 이직에 관한 세가지 조언 [4] 송의섭 2017.05.15 926
5199 #10 엄마와 딸 2–출생의 비밀_이수정 [5] 알로하 2017.07.03 926
5198 희망에서 출발해야 합니다 [1] 송의섭 2017.10.02 926
5197 #4 시지프스의 손_이수정 [8] 알로하 2017.05.08 927
5196 어떤 오버랩 [4] 박혜홍 2018.04.29 927
5195 [칼럼3] 편지, 그 아련한 기억들(정승훈) [1] 오늘 후회없이 2017.04.29 928
5194 이유없이 떠나야 겠습니다 file [1] 송의섭 2017.11.13 928
5193 [칼럼#5] 아빠의 망토(이정학) [3] 모닝 2017.05.15 9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