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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0월 25일 18시 43분 등록
"궁즉변 변즉통 통즉구(궁하면 변하고 변하면 통하고 통하면 오래간다)" - 주역

"수석님은 종신재직 아니였어요?"

퇴사서류를 건네자 인사과 박차장이 큰눈을 껌뻑이며 물었습니다. 종신재직이라... 젊은 피 펄펄 끓던 30대 초반의 경력사원으로 지금 회사의 준 창립멤버로 입사한게 12년 전입니다. 회사에서는 누구도 제가 퇴사할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직장 내 자리 잡은 위치, 중견그룹으로부터 인수된 이후 점점 안정화 되어가고 있는 회사, 그리고 무엇보다도 적지 않은 나이 - 표면적으로 조건이 월등하게 좋지 않은 한 다른 곳으로 이직할 이유는 없어 보였습니다. 모르는 사람들은 제가 안정된 대기업이나 처우 좋은 외국계 회사로 옮기는 것으로 짐작했지만, 실제 제가 이직하기로 한 곳은 지금의 회사보다 규모도 작고 체계도 없는 작은 회사입니다. 모두가 얘기합니다. 이제 안정을 찾아야 할 때라고. 하지만 10여년간 저는 안정이라는 얇은 막 속에 숨어 있는 진흙탕속으로 점점 빠져들어가고 있는 것만 같았습니다.

퇴사를 고민한 것은 한참 오래전부터 이야기입니다. 물론 직장인치고 퇴사를 생각해 본 적 없는 사람은 없겠지요. 지금의 직장으로 옮기고 1년도 안되어 잘못된 곳으로 옮겼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너무 좋아서 떠나지 못했고, 그 결과 12년째 같은 직장을 다니고 있습니다. 이제 나이도 있고, 다른 회사로 옮기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이 아닙니다. 실제 이직을 알아보다 보니 옮기려면 진작 옮겼여야 했다는 후회가 들더군요. 저는 점점 말라 비틀어져가고 있었습니다. 독일의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는 오직 타락의 초기에만 타락을 참을 수 없다고 느낀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타락이 몸에 베면 익숙해지고 결국 무뎌진다는 얘기죠. 타락을 참을 수 없을 때 변화와 개혁이 더 쉽게 가능합니다. 니체는 이에 대한 예로 독일에서 종교개혁이 일어났음을 지적합니다. 16세기 교회의 타락이 가장 덜한 곳이 독일이였기 때문입니다. 타락뿐만이 아닙니다. 모든 것이 그렇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익숙해지고 습관이 되고 관성이 됩니다. 쇠사슬로 온몸을 칭칭 동여맨듯한 하루는 영원히 반복됩니다. 그 반복이 만든 것은 결국 지금 자기 자신의 모습입니다. 저도 더 이상 제가 타락하는 꼴(?)을 보기 어려웠나 봅니다.

제겐 변화가 절박했습니다. 직업적으로 변화하지 못하고 정체된 10여년의 사간이 저를 망가뜨려 놓았기 때문입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심장은 너무 평온합니다. 규칙적으로 뛰고 있습니다. 근래에 제대로 뛰어본 적이 없기 때문이죠. 심장이 나대본지가 언제인지도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카이스트 정재승 교수의 글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심장이 항상성을 유지하려고 노력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정재승 교수는 그것이 결코 정적인 평형상태가 아니며 끊임없이 요동치고 변화하는 과정이라고 말합니다. 나이가 들어 노쇠할수록 심장의 불규칙성은 떨어집니다. 이러한 특성은 몸의 다른 곳에서도 나타납니다. 건강한 사람의 뇌파는 규칙적이지 않지만, 혼수상태에 빠지면 단순하고 주기적인 모양으로 바뀝니다. 건강한 사람의 백혈구의 농도는 불규칙하고 예측 불가능하지만 백혈병에 걸리면 그 수치가 일정하고 규칙적으로 변한다고 합니다. 결국 심장이 나대지 않는 것은 죽어가고 있다는 증거에 다름 없습니다.  

다시 시작해야만 한다는 내 안의 명령은 절대적이었습니다. <처음처럼>에서 고 신영복 선생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어제가 불행한 사람은 십중팔구 오늘도 불행하고, 오늘이 불행한 사람은 십중팔구 내일도 불행합니다. 어제 저녁에 덮고 잔 이불 속에서 오늘 아침을 맞이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마치 니체의 무한회귀나 시지포스의 끊임없는 돌 굴리기를 보는 것 같습니다. 고리를 끊어야 하는 것은 자기 자신이지만, 너무도 불어버린 강의 물줄기를 거슬러가는 것은 생각보다 더 어려운 일입니다. 이럴때는 악다구니를 쓰며 물줄기를 거스르려 발버둥을 칠 것이 아니라, 잠시 물 밖으로 나오는 것이 맞습니다. 결국 다시 강물속으로 뛰어들어 이전과 다름없는 무한회귀의 반복속에 빠질지라도 잠시 멈춰서 보이지 않던 것들을 볼 시간은 필요합니다. 발버둥을 치고 있는 강물 속에서 보지 못하던 것들을 물 밖에서는 볼 수 있는 것입니다.  

퇴사와 이직을 결심한 이후 여러 곳의 회사를 알아보았습니다. 지인들은 안정적인 곳을 얘기했고 저의 이성도 그게 합리적이라고 생각합니다만, 저의 마음은 어쩔수 없나봅니다. 결국 또한번 밑바닥에서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곳을 선택했습니다. 기성세력은 어디나 존재하겠지만, 가장 제약이 적어 보이는 곳, 하나의 톱니바퀴가 아닌 축이 될 수 있는 곳을 택했습니다.  현실이라는 이름으로 모두가 부정하는 것을 가능성이라는 이름으로 저에게 허락한 셈입니다. 다시 도전입니다. 분명 힘들 것이라는 두려움이 있습니다. 전혀 경험해보지 못 했던 비지니스 분야이고,  나이만큼이나 긴 경력덕에 새로운 회사에서 보여주는 기대감도 자못 부담스럽습니다.  허나 저는 확실히 알고 있습니다. 변화에 대한 두려움보다는 안정이라는 허상 속에 썩어가는 하루를 견디는 것이 훨씬 더  끔찍하다는 것을 말입니다.  누군가 말했죠. 하기로 마음먹으면 그 다음 방법은 어떻게든 찾아진다구요.

그까짓 직장 하나 옮기는 것 가지고 변화와 도전을 운운한다고 할지 모르겠습니다만, 저에게는 엄청난 변화이며 도전입니다. 절박함을 인식한지 오래 되었지만 조금은 늦은 결정이기도 하구요. 구본형 선생님이 그랬죠. 변화는 절박함을 인식할 수 있는 능력이라구요. 그 절박함을 스스로에게 설득시킬수 있으면 변화의 반은 성공이라고 말입니다. 이는 시작이 반이라는 흔하고 위대한 우리네 격언과 같은 말입니다. 태어나기를 원하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파괴하지 않으면 안된다 - 헤르만 헤세의 말입니다. 이제 구세계를 뒤로 하고, 신세계를 향해 두렵지만 옹골찬 한걸음을 내딛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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