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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8월 12일 17시 32분 등록
코딩교육의 본질

어느날 초등학교 5학년 아들이 물었다.

"아빠, 아빠는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니까 게임 만들줄 알지?"
"스마트폰 게임 같은거? 만들려고 하면 만들수는 있지"
"그래? 그럼 나 좀 가르쳐줘, 게임 좀 만들어 보게"

 나도 그랬다. 그리 살림이 넉넉하진 못했지만 신문물(?)에 관심이 많으셨던 아버지 덕분에 어릴적 처음으로 8비트 컴퓨터를 접하고, 독학으로 GW-BASIC이란 초급용 프로그래밍 언어를 배웠던 것은 그 당시 신세계로만 느껴졌던 컴퓨터 게임이라는 창작물을 내 손으로 만들어보고자 하는 야심찬 포부 때문이었다. 내게 있어 그것은 공부라기보다는 하나의 놀이였다. 손재주가 없어서 뭘 만드는 것이 서툴렀던 나는 키보드에 입력한 내용만으로 창조되는 나만의 세계에 빠져 살았다. 비록 그 시간이 길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이후 프로그래밍보다는 온갖 오락 게임에 빠져 사느라 다시 코딩이라는 것을 해보게 된 것은 십수년이 흐른 뒤 공대에 진학하면서였지만, 까까머리 중학생 시절 늦은 밤 조잡하기 이를데 없는 프로그램을 완성하고 그것이 컴퓨터 화면에서 작동하는 것을 보며 느꼈던 환희의 감정은 여전히 생생하다. 30년전 고급 단어로 취급되었던 '소프트웨어'는 이제 일상의 언어가 된지 오래다. 

 바로 내년인 2019년도부터 초등학교 5,6학년 교과과정에 소프트웨어 코딩 과목이 정식으로 개설된다고 한다. 바야흐로 선진국처럼 코딩 교육이 대세가 되려는 상황인데, 학부모나 일선 학교에서조차 제대로 된 개념을 못 잡고 있는 경우는 비일비재하다. 영어 수학이면 그래도 알 것 같은데, 소프트웨어가 어떻고 코딩이 어떻고 용어부터 들어본적 없는 남의 나라 언어다. 불안한 학부모들 눈먼 돈 갈취하려는 사기꾼들이 넘쳐난다. 남들이 한다고 뭐라도 해보려고 아둥바둥거리기 전에 정확히 무엇을 해야 하고 어떤 식으로 접근해야 하는지부터 생각해봐야 할 문제다.

 흔히 하는 얘기가 코딩 교욕은 프로그래밍언어를 배우는 것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문제해결능력을 양성하고 창의력, 창조력을 증진시키기 위해서라고들 한다. 맞는 얘기다. 그런데 딱 반만 맞는 얘기다. 초등학교 고학년 정도 되면, 스크래치(Scratch)같은 유아용 코딩 트레이닝 도구가 아닌 실제 프로그래밍언어로 코딩교육을 진행해야 하는데 전문가들조차 A를 넣으면 B가 나오는 식의 주입식 코딩 교육이 되어서는 안 되고, 다양한 문제 해결능력을 기를 수 있는 코딩교육이 되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그렇게 떠드는 행태를 한마디로 탁상공론이라고 한다. 코딩은 새로운 분야이니, 이전의 고루한 학습방법으로 가르치면 안된다는 출처 불분명한 편견이 사람들의 머릿속에 가득 차 있다.

 코딩은 프로그래밍 언어를 가지고 한다. 프로그래밍 언어는 코딩의 도구일 뿐이다. 그런데 이 도구를 제대로 익혀놓지 않으면 제대로 된 코딩이 불가능하다. 비유를 하자면, 한글(언어)을 배워야 시도 쓰고 소설도 쓰고 논문도 쓸 수 있다. 프로그래밍언어를 어느 정도 익혀야지 그것을 활용한 여러가지 문제해결을 시도해볼 수 있다. 코딩교육에 있어 문제해결과정의 레퍼런스로 배우는 것이 바로 알고리즘이다. 좋은 알고리즘은 좋은 책과도 같다. 학습자는 기존의 알고리즘들을 배우며 그 사고의 범위와 깊이를 확장할 수 있다.

 통념과는 달리 창조는 수많은 모방을 통해 이루어진다.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창조는 어불성설이다. 한글을 알아야지 글을 쓸 수 있고, 어느정도 글을 잘 쓰려면 어휘력을 길러야 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따라서 창조적 문제해결과정이든지 나발이든지는 나중 문제고 일단 프로그래밍 언어와 그 문법을 익혀야 한다. 코딩실력의 발전을 위해서는 프로그래밍 언어를 단계적으로 습득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다만 이 과정과 이후 활용 학습과정에 있어 주입식 교육이 아닌 창의적 요소를 개입시키면 된다. 하지만 이는 비단 코딩 뿐만 아닌 수학, 국어, 영어 등 모든 교육과목에 공통적으로 해당되는 이야기이다. 코딩만 가지고 프로그래밍 언어를 주입식으로 가르치면 안되느니 운운하는 것은 현실을 모르는 호랑이 풀 뜯어먹는 소리일 뿐이다.

<생각의 탄생>에서 루트번스타인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오늘날의 교육시스템은 문학, 수학, 과학, 역사, 음악, 미술 등 과목을 철저하게 분리시켜 학생들에게 가르친다. 수학자들은 오로지 '수식 안에서', 작가들은 '단어 안에서', 음악가들은 '음표 안에서'만 생각하도록 강요받고 있다."

 우리의 교육행태를 그대로 묘사하는 듯한 이 진술은 코딩교육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프로그래머들을 컴퓨터 화면안에서만 생각하도록 강요해서는 그저그런 소프트웨어만 국화빵 찍어내듯 만들 수밖에 없듯이, 코딩을 배우는 우리 아이들에게도 코딩이라는 행위 밖의 본질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중요하다. 그것은 오늘날 스티브 잡스로 시작되어 이공계에게까지 불어닥친 창의성, 창조성 열풍의 이유이기도 하다. 보다 큰 것, 그리고 보다 본질적인 것들을 볼 수 있고 생각할 수있는 소양을 길러줘야 한다. 코딩이나 프로그래밍 언어는 일상의 언어와 마찬가지로 표현과 창조의 도구일뿐이지만, 동시에 창의력을 길러주는 수단이 될 수 있다. 어린이 코딩 교육을 주관하는 사람들이 이런 몇 가지 사실들만이라도 제대로 알고 우리 아이들에게 진정 필요한 코딩 교육 커리큘럼을 만들어주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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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8.12 21:06:12 *.48.44.227

세상이 하두 빨리 변하니 도무지 따라가지 못하겠네요. 용어조차 모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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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8.12 21:26:56 *.124.22.184

경종씨에게 코딩 교육, 매체 교육에 대한 조언을 들어봐야겠네요. 일본은 메이커 교육으로 자연에서 놀기를 강추하고 있대요. 게다가 오타구들이 환영받는 분위기라고 하던대요.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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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8.14 17:24:48 *.103.3.17

사실 제가 별 관심이 없어서 잘 모릅니다 ㅎㅎ 오래전 FM 라디오 조립하던 공돌이들이 이제 3D 프린터의 대중화를 비롯한 고성능 하드웨어에 대한 접근성(가격 & How to)이 좋아지면서 새로운 놀이감이 생긴거죠. 소프트웨어는 그 핵심이구요. 우뇌가 발달한 공돌이들 세상이 도래한 거죠 ㅋ 메이커 교육은 코딩 교육으로부터 자연스럽게 연결이 되고, 아이디어가 중요하니 우리나라도 이제 학교에서 가르치겠죠. 세상이 디지탈화되니, 이제 교육이나 실습도 다 디지탈화되는 거겠죠. 어디서 새로운 게 뿅 하고 나타난 건 아니고, 자연스러운 추세라고 봅니다. 저희야 새로운 것인것마냥 호들갑을 떨지만, 태어날때부터 스마트폰과 함께 해온 우리 아이들에게는 태생적으로 익숙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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