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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6월 9일 04시 07분 등록
새벽 1시에 선물 받은 책

이번 주는 이래저래 생각도 많았고, 그 동안 지쳐있던 몸과 마음을 달래주느라 운동하러 가는 것 이외에는 집 밖에 거의 나가지를 않았다. 솔직히 고백하건대, 책 읽는 것도 쉬어주자는 ‘자체 휴식’을 주장하느냐 아마 이번 주에도 과제를 제대로 하지 못할 것이다. 사실, 무리를 좀 했다면 과제를 마무리할 수 있었을 테지만 선택의 기로에 선 바로 그 순간에 나는 어머니와 시간을 보내는 것에 시간을 할애하기로 마음 먹었다.

그러면서 평소에는 그냥 지나쳤을 설거지도 도와드리고, 어제는 어머니와 어머니 친구분을 모시고 여주로 나들이를 다녀왔다. 장시간 운전을 해서 피곤했던지 나는 평소와는 다르게 12시 이전에 잠이 들어 세상 모르고 자고 있었다. 그러다 새벽 1시가 되었을 무렵, 갑자기 확! 하고 열렸다 닫히는 방문소리에 그만 잠이 깨고 말았다. 동생이었다. 나는 한 번 잠이 깨면 다시 잠들기가 힘든 편이라 뒤척이다 동생한테 무슨 일이었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글쎄, 누나 읽으라고 책 한 권 사왔다는 것이 아닌가.

나와 내 남동생은 만 7년 터울이 진다. 나이 차가 많이 나는 터라, 어렸을 적에는 내가 키우다시피 했고 겉으로 표현은 안 해도 참 많이 아끼고 자랑스러워하는 나의 하나밖에 없는 동생이다. 동생한테만큼은 항상 좋은 누나이고 싶었고, 이미 해준 것보다 더 못해줘서 언제나 미안한 마음이 드는 그런 존재였다. 서로 떨어져서 산 세월이 많아 ‘필요할 때 옆에 있어주는’ 누나가 되어 주지 못해 속상할 때도 참 많았다. 그래서였을까, 이것 저것 필요하다는 것이 있으면 아낌없이 사주었고, 내가 해줄 수 있는 한도 내에서는 최상의 것들만 주려고 노력했었다. 아마 자식 키우는 부모 마음이 이런 게 아닐까 싶은 마음을 조금이라도 알게 해준 존재가 바로 동생이었다.

언제나 보호해야 하는 대상이자, 베풀어야만 하는 나이 어린 동생으로만 봤는데 어느덧 이렇게 세월이 흘러 그는 대학생이 되었고, 남동생이기보다는 오빠 노릇을 하려고 드는 그가 이제는 대견스럽기까지 하다. 아니, 의젓하다 못해 의지가 된다고 해야 더 정확할 것이다. 여름 방학을 맞이해 잠시 귀국한 동생이 이번에 나를 보자마자 했던 첫 마디, “누나, 예전에는 누나가 참 예쁘다고 생각했는데 누나도 나이를 먹는구나” 그냥 건성으로 들으면 누나에게 버릇없는 말을 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나는 알고 있다. 동생의 그 안타까워하는 마음을. 내가 그러하듯이, 동생도 아마 나를 이 세상에 존재하는 최고의 누나로 여겨왔을 텐데 세월 속에 변해가는 것들이 조금은 얄미운 그런 기분.

이렇게 내가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내 동생 또한 나이를 먹어간다는 것임을 이 새벽 시간에 다시금 깨닫는다. 내 손에 쥐어진 책 한 권과 함께. 아키히로 나카타니의 “30대, 변화를 먹고 살아라”, 원제ㅡ 50 ways to study to get a lead in your thirties. 얇은 책이라 잠 못 이루는 이 새벽, 한 시간 만에 다 읽어 내려갔다. 사실, 책 내용에 매료되어서 라기보다도 동생이 나에게 준 선물이라는 생각에 더 열심히 정독했다. 왜냐하면, 그 책을 누나에게 사줘야겠다는 생각을 하기까지의 그의 마음이 보였고, 생각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의 선물에 대한 정성 어린 보답으로써 말이다.

간단하면서도 도움이 될 법한 이야기들이 많이 있지만, 그 중 책 머리에 나오는 첫 이야기를 간략하게 소개해본다. 세상에는 두 가지 종류의 사람이 있다고 한다. 피곤하니까 책을 읽는 사람과, 피곤하니까 책을 읽지 않는 사람. 우리는 책 읽는 것을 부담으로 여길 때가 종종 있다. 어쩌면 연구원 생활을 하고 있는 우리들에게 책 읽기는 더더욱 즐거움보다는 ‘과제’라는 테두리 안에서 생겨진 일종의 압박감일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저자는 말한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마치 목욕을 하는 것과 같다고. 책에서 솟아나는 에너지로 하루의 피로를 충전하라는 단순하지만 뼈있는 충고가 이번 주 책 읽기를 쉬었던 나에게 제대로 한 방 날려준 셈이다. 그러면서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목욕하고 난 후에 오는 시원함과 개운함, 그것을 책 속에서 찾는 기쁨을 만끽하는 6월 한 달이 될 듯싶다. 이렇게 해서 오늘은 내가 동생에게 한 수 배운 날이다.

비록 난중일기와 관련된 칼럼은 아니지만, 분명 이순신 장군은 나를 이해해주리라 믿는다……
IP *.6.5.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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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니
2007.06.09 05:53:13 *.70.72.121
이순신 장군의 어머니와 가족 사랑을 윤이와 아우의 사랑으로 그렸네.
우리 막내는 왜 이렇게 이쁜지 몰라. 언니는 칼럼도 안쓰고 들떠있단다. 이순신 장군(?)은 이런 내마음 알라나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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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윤
2007.06.15 00:57:03 *.6.5.232
언니... 나는 언니 마음 알아 ^^ 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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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운
2007.06.17 09:41:11 *.134.133.173
오윤을 이해해주는 사람이 오직 충무공 뿐일쏘냐! 여기도 있다.

나도 책선물해 주는 동생이 있었음 좋겠다. 내 동생은 1988년 생인데, 어찌 한 번 슬쩍 찔러나 볼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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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윤
2007.06.18 05:23:25 *.6.5.228
오호라, 이해해준다니 고맙구료! 내 동생도 88년생인데 오늘은
친구들이랑 술마셨는지 늦게 들어와 사람 걱정 시키네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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