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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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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6월 12일 00시 33분 등록
이 번 주 칼럼쓰기는 참 힘듭니다.
반 쯤 써 내려가다가 지우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 것만 벌써 다섯 번 채인가 봅니다.
시간으로 계산해 보자면 10시간 이상은 족히 되겠네요. 그러나 중요한 것은 다섯 번 채니 여섯 번 채니 하는 것이 아닙니다. 아직까지 칼럼의 글감으로 딱히 정해진 것이 없다는 것이 더 답답하다는 것이죠. 오늘 오후만 해도 그렇습니다. 교육실습생 예비교사의 눈치를 흘깃흘깃 보아가면서 ‘칼럼쓰기’를 시도했습니다. 35년 만에 만난 초등학교 동창 현철이에 대한 이야기 였지요. 처음얼마 동안은 꽤나 그럴듯하게 진행되었습니다. 글자크기 10포인트 A4용지 한 장을 넘어섰습니다. 잘되나 싶었지요. 가벼운 마음으로 처음부터 쓴 글을 읽어내려갔습니다. 영 신통찮습니다.
새글 - 빈문서1을 저장할까요 아니요.
제 심정 이해 되지요?

지금시각이 17시50분. 서울 지하철 2호선 안입니다. 대학원 수업이 18시 30분에 시작되니까 10분 정도는 지각이겠네요. 출발역은 인천계산역이었습니다. 그 다음은 부평역 환승-신도림역에서 또 환승. 참 복잡도 하네요.

손에 들고 있는 공책을 잠시 넘겨봅니다. 복잡한 것은 내가 지나온 지하철역 뿐만아닙니다. 지하철을 타고나서부터 쓰고 긋고 한 것이 공책 2장입니다. 그러나 뭐가 뭔지 내가 읽어도 감이 오지 않습니다. 물론 쓴 글에 두 줄을 그어버린 부분이 더 많은 이유도 있겠지만 흔들거리는 지하철 속에서 선자세로 쓴 글이니 오죽하겠습니까?
. 지하철 봉천역을 지나고 있군요. 잠시 고개를 들고 차창밖을 쳐다봅니다. 아까부터 잘 차려입은 신사분이 저를 힐긋거리며 쳐다보는 시선이 조금 불편했던 거지요. 하기야 잠시 생각해보니 궁금하기도 하겠네요. 저가 지하철을 탈 때부터 한손에 공책을 들고 쉬지 않고 써 내려갔지요. 그러다 갑자기 줄을 직직 긋기도 하고 때론 혼자 중얼거리기도 했으니까요.

‘드르륵’
문자 메세지 소리입니다.
‘숙제 화요일까지 연기되었습니다. 옹박 6/10 5:54 PM
어제 확인된 내용입니다. 그런데 왜 ‘드르륵’하고 다시 신호가 왔을까요?
잠시 후 다른 문자 메세지를 확인합니다.
‘동창모임. 6/13 오후7시 경복궁역 3번 출구에서 만나요. 오늘도 행복하시길. 광길 6/11 6:26PM'
난 지금 전혀 행복하지가 않습니다. 광길씨.
손이 떨리고 가슴도 약간 떨리네요. 벌서 서초역이랍니다. 어떡하죠.

순간 몸이 기우뚱하더니 중심을 놓칩니다. 두 다리에 있는 힘을 다하고 서 있던 나의 몸이 보기좋게 앞쪽으로 쏠려버리네요. 순간, 빈곳 하나 없이 꽉찬 좌석이 눈에 들어옵니다.
맞습니다. 앉을 공간이 없어서 내가 서 있었군요. 그래서 휘청거리기 까지 했구요.

칼럼쓰기가 함들었던 연유도 바로 여기에 있었습니다.
새로운 칼럼의 글감이 앉을 자리가 없었다는 것을 지금에야 깨닫은 것이지요.
‘난중일기’ 칼럼의 폴더에는 한치의 여유도 없습니다. 내가 이미 정해놓은 칼럼의 소재들이 빼곡히 자리를 잡고 있고 그 어느 것 하나 자리를 양보할 생각이 없어보입니다.

1.〔336〕이날 밤, 달빛은 비단결 같고 바람한 점 없는데, 혼자 뱃전에 앉아 있으려니 심회를 달랠길 없다. 뒤척이다가 밤새도록 잠을 이루지 못한채 하늘을 우러러 탄식할 따름이다.

2. ‘내 유년시절의 놀이마당은 주로 밤에 펼쳐졌다.(중략) 달밤은 밤이면 놀이는 거칠줄을 모른다. 새벽녁이다 되어서야 각각 달을 하나씩 뒤에 달고 집으로 돌아간다.’

3. 마음에 슬픔이 있는 사람은 모름지기 정신없이 취하도록 마셔야 한다. 봄에는 집뜰에서 마시고, 여름철에는 교외에서, 가을철에는 배위에서, 겨울철에는 집안에서 마실 것이며 밤술은 달을 벗삼아 마셔야 한다. - 임어당-

4.‘초등학교 동창 현철이를 만났다. 35년만의 만남인데 그를 보자말자 왜 ’달밤‘이 먼저 떠 오를까?

5. ‘술상을 사이에 두고 이순신과 임어당이 마주 앉았다. 상현달이 담겨있는 술잔을 임어당이 단번에 들이킨다. 이번에는 이순신 차례다. 두잔을 연달아 목안으로 털어넣듯이 한다. 원균으로부터 받은 심정 고통도 함께 삼켜버리고 달도 벌써 몇 개째다. . 내일 아침쯤이면 한결 나아지리라. 가슴을 짓누르는 듯한 고통과 울분 그리고 시도 때도 없이 흐르던 눈물. .
.다시 이순신의 잔은 넘치고 임어당도 덩달이 취한다.



꽉차있다. 새 칼럼이 어디에 자리를 잡겠는가? 1번 옆에 기웃거려도 일어설 생각이 없다. 2번도,3번도 마찬가지다. 뒤로 갈수록 더 하다. 좌석이 5석인데 그 어디다가 컬럼을 앉힐 수 있단말인가. 한 녀석이라도 일어서지 않으면 마지막엔 모두 일으켜 세워야 한다.

글쓰기를 시작하려면 초대하지 않은 것들이 수시로 찾아든다. 모두가 귀해 보이고 어딘가 쓰일것만 같다. 그래서 그들 모두에게 잠시 기다려보라는 신호를 보내고 나는 분주해 지기 시작한다. 모두에게 적당한 역할을 주자니 ‘난감’이라는 것이 찾아와 훼방을 놓는다. 머리는 점점 무거워지고 내 다리는 휘청거린다.

‘멀리서 찾아왔다고 해서 온정으로 다 맞아 들이지 말라. 명심할진대 처음 초대하기로 한 것들만 맞아들이라.’

그러나 난 아직도 매정하게 다 뿌리칠 자신은 없다. 멀리서 찾아온 것들을 어찌 물리친단말인가!
- 칼럼쓰기를 시작하면 머릿속에 찾아드는 ‘꺼리’들이 웬 그리도 많은지요?-




IP *.86.5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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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니
2007.06.12 01:09:09 *.70.72.121
하하하. 모두들 우제언니와 같은 마음이랍니다. 저는 아직도 못쓰고도 돌아다니다가 왔답니다. 이순신 이순신 사부님 사부님 왜 이리 안넘어가고 자꾸 판을 튕기며 제자리 걸음을 하는지요. 대가 센분들인가 봅니다.^^ 워쩐다냐, 허벌나게 징해부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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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승완
2007.06.12 01:41:41 *.147.17.178
술 마시고 싶다. 이순신 장군이랑 사부님이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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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로
2007.06.12 12:05:58 *.145.231.168
미소를 짓게 만드는군요.
매정하게도 글감과 글이 같이 있지 못하는 느낌을 가진 것 같네요.
달밤에 술 한잔 하면서 다시 글감과 글이 악수하게 만들어 보세요.
선생님을 한 번 만나보고 싶어하는 교사분이 한 분 있습니다.
조만간 연락할 것 같네요.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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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정희
2007.06.12 12:50:11 *.114.56.245
감사합니다. 머리속이 꽉차니 그 무엇도 매끄럽게 나가는 것이 없더군요. 옹이가 많이 생겻습니다. 그러나 옹이 조차도 껴안고 제것으로 만들어보렵니다. 감사드리며.
써니님 웃음소리 가슴이 후련해요. 오호, 우리글쓰기 팀 언제 한잔 합시다. 그리고 참여 원하시는 분 모두 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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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라
2007.06.12 13:48:56 *.231.50.64
정희언니. 크크크.. 정말 쏙쏙.. 마음으로 들어오는 글이네요.
그 고민과 갈등 조차도 이렇게 글로 멋지내 표현해 내시네요.
언니글 읽고나니 마음의 짐이 덜어지는거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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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정희
2007.06.12 15:45:32 *.114.56.245
좋다. 소라도 초대다. 멋들어지게 한잔하자. 오늘 대학원 종강이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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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훈
2007.06.12 18:24:17 *.99.241.60
저는 꺼리가 없어서 탈인디요..
설마 저 빼놓고 한잔하시는 건 아니시겠죠..
제 별명이 날짜잡기 입니다. 언제 하실거죠
날 잡읍시다....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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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정
2007.06.12 22:36:48 *.142.242.201
... 저도 글감찾기부터 난관이곤 하죠.
정말.. 언제 보실 거죠?
저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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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정희
2007.06.13 08:25:36 *.114.56.245
금요일 잡으면 소전의 가정사의 영향을 미칠거고 언제가 좋을 까요?
전 금요일이 좋은디, 차라리 날짜는 '날짜잡기' 에게 부탁합시다.
부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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옹박
2007.06.13 11:57:03 *.218.205.7
정희누나,
한명석님처럼 정말 좋은 눈을 가졌군요. 아 글 참 편안하고 좋네요..
연구원들이 '끙'하고 낳기 전의 산통이 다 똑같나봐요..
번개는 다음주 월,화중에 한날로 한번 잡아보겠습니다. 영훈이형 도와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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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니
2007.06.13 13:47:30 *.75.15.205
실수 했다니깐, 무슨 수를 써서라도 꿈 벗 모임에는 참석을 했어야 해요. 아마 밤새울만한 일이 여럿 있었걸랑. 내가 얼마나 아쉬워했는지... 고3 엄마에 대학원 논문에 바쁠 것 뻔히 알면서도 자꾸만 마음에 걸리더이다. 다음 번에는 같이 가요. 물건(?) 들이 실하답니다.
예를 들면 살살 살인미소를 날리는 남자모델이 없나, 스티븐 시걸이 꽁지머릴하고 호수를 바라보며 칼을 휘두르지를 않나, 무보수에 제로섬 게임으로 일상을 살겠다는 도깨비방망이가 있질 않나, 자연으로 내쳐뻔지자 외치는 자가 있질 않나, ?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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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운
2007.06.17 09:49:08 *.134.133.173
저는 아이들 가르치느라 하루를 열심을 살았을 누님이 지하철에 서서 글을 쓰는 장면이 무척 안쓰럽게 느껴지네요. 피곤하셨을까봐요. ㅠㅠ 오늘은 누님의 건강을 위해 기도하겠습니다.

글고, 날짜잡기형님. 어째 날짜는 잡혔당가요? (궁금한 희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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