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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6월 17일 23시 17분 등록
가끔 골똘히 생각하는 것은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죽어가는 것이다.
어떻게 품위 있고 그럴 듯하게 죽음을 향해 갈 수 있을까 하는 것을 테마로 마지막 순간을 상상하곤 한다. 누구나 예외 없이 가는 것임에도 이런 생각에 가끔 잠 못 이루기까지 하는 이유는 어쩌면 내가 독신이기에 그 부분이 유난히 신경 쓰여 미리 준비해 두려는 이유도 있다. 그래서 늘 동생들에게 하는 부탁이 내가 조금이라도 이상(?)해지면 그 때는 이 나라에서 가장 품위 있게 죽을 수 있는 곳에 나를 넣어달라고 부탁을 했다. 딱 부러지는 타입의 동생들은 그건 걱정 말라고 자신 있어 한다. 그 아이들은 무거운 이야기는 늘 그렇게 씩씩하게 깔깔 웃으며 대답한다.

품위 있는 죽음은 무엇이며 그럼 반대로 품위 있는 삶은 무엇인가?
우선 죽기 위해선 살아야만 한다는 명제가 있을 것이다. 삶이 끝나야 죽음이 오지 않겠는가?
사람들의 삶 속에서 희로애락의 정수(精粹)를 느끼는 순간이 혼자만의 것처럼 죽음 또한 절체절명의 혼자만의 것이다. 우리는 때로 너와 내가 동시에 절정에 다다른다고 착각하곤 한다. 그러나 감정이란 자로 잰 듯 정확하게 내 속에서 느끼는 것에게만 충실함을 알 수 있다. 인간의 속성이 이기적이듯 우리의 감정도 이기적이다. 현실에서 타인과의 공유는 바램에 불과할 뿐 그렇게 되어지지 않는 것이 삶이다. 쓸쓸한가? 그렇지 않을 수도 있는가? 그대와 내가 동시에 아플 수 있을까?

불혹이 넘어가면서 그것을 받아 들이기로 결심했던 어떤 밤, 그 다음 날 눈 화장 걱정마저 잊어버리고 곰곰이 장례절차를 생각해 본 날도 있었다. 그리고 잊어버리고 살다가 감기라도 호되게 걸려 꼼짝없이 침대에 누워 있거나, 가끔 오는 우울증이 한꺼번에 밀려 닥치거나 하면 못된 습관처럼 슬금슬금 일어나는 상념들 때문에 손님 오면 대접한다고 사 놓은 애꿎은 와인들만 속살을 내보이게 하곤 했다.

태어나서 시간이 좀 지나게 되면 여기저기 육체의 통증을 동반하는 삶을 가지게 되는 것 같다. 오래된 기계가 잔 고장을 치르듯 아무리 갈고 닦아도 역사가 시작되어 누구에게나 다가오던 그 신비의 그림자를 피할 길이 없다. 어떻게 생각해보면 정말 눈 깜짝할 사이에 시간이 많이 지나버렸다. 철이 들고부터는 훨씬 더 빨리 간다는 데 정말 그렇다. 자신이 나이가 들어가니 이제서야 변방으로 몰아두었던 나보다 오래 산 이들의 말이 무서울 만큼 바로 코 앞에 와 있다. 이제서야 앞서간 이들의 말이 사무치니 참 철 없이 산 인생이다.

한 번 그럴듯하게 살아보겠다고 죽자고 살은 날이 있는가 하면 이젠 한 번 제대로 죽어보겠노라고 열심히 살아야 한다는 명제가 남았다. 수명의 변곡점을 넘은 시기가 되니 관점이 바뀌면서 삶을 맞이하는 마음이 달라진다는 것이 특이하다. 요즘 생각은 이왕 죽는 거, 하고 싶은 거나 열심히 하자. 어차피 누구나 겪는 일을 저 혼자서 남에게 폐를 끼치느니 마느니 하는 상념도 다 부질없다는 쪽으로 갔다. 죽을 때 죽더라도 살아 있을 때 열심히 살아 최소한 스스로에게라도 만족감을 줄 수 있다면 그것이 최선일 것이다.

백범선생의 일지를 읽다 보면 참 많은 이들의 죽음을 만나게 되는 데 그 중에서도 윤봉길의사나 이봉창 같은 젊은 남자들의 죽음이 안타깝게 와 닿는다. 마치 요즘의 자살 특공대처럼 그들은 그렇게 나라를 위한다는 의리(義理)에 자신의 목숨을 버렸다. 살아 있는 사람들은 그것을 가치 있는 죽음이라 칭송하고 후세에 그의 이름 또한 길이 남겠지만 나는 젊은 그들이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고 걸어갔던 모습에서 말할 수 없는 인간적인 비애가 느껴진다.

나라를 위해 자신의 목숨을 버릴 수 있는 용기란 어떤 것이며, 또한 무엇이 그들을 그렇게 하게 했던가 하는 사실들이 안타깝기만 하다. 다른 시대를 살고 있으니 그저 사치스런 추측에 불과할 뿐이지만 오늘을 사는 우리들에게 그런 것들이 가능하겠는가?
현대사의 혼란 속에서 그렇게 많은 이들이 무언가를 위해서 죽어갔고 나는 그 후손으로 태어나 오늘날까지 그들의 희생을 남의 일 인양 잊고 살았는데 홀연 오늘 밤에는 그들이 생생하게 떠 오른다. 편안한 잠자리와 쓸데 없는 망상의 여유 또한 그런 분들의 덕이었다.

난생처음 나의 선조들에게 개인적인 애정이 느껴진다.
가끔 기분전환으로 피우던 향을 진지하게 하나 꽂고 그렇게 죽어간 젊은 영혼들을, 그 시대를 험하게 살았을 이름 없는 여인과 어린 아이들을, 얼굴도 보지 못했던 나의 조부모를, 아침 밥상 물리고 기분 내키면 그 시대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던 아버지를, 그리고 백범 김구선생을 그리며 어떻게 나의 죽음을 맞이할 것인가에 대해 오늘 밤 다시 한 번 생각해보련다.



IP *.48.3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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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훈
2007.06.18 09:54:43 *.99.241.60
백범선생님과 이봉창 열사와 윤봉길 의사와 헤어지는 장면이
제게도 긴 여운이 남더군요.
두 젊은이를 사지로 보내면서 백범 선생님의 심경은 어떠했을까?
멋있고 아름다운 이 땅의 젊은이들이 나라를 위하여 열심히 일을
해도 부족한데, 조국의 독립을 위해서 목숨을 버리러 가는 뒷 모습을..
지하에서 만납시다. 하고 남긴 마지막 말이 깊게 다가왔습니다.

잘 읽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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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정
2007.06.18 13:50:08 *.244.218.10
네.. 보통 '독립운동으로 의거'라는 명목아래서 한 인간으로서의 죽음으로는 잘 드러나지지 않죠...
저도 책 읽을 때 문득 느꼈어요. 의거라는 대사 전에 한 젊은이로서 목숨을 잃는 비애... 남겨진 자의 슬픔.

그런데 전 이런 감정들을 수면 위로 끌어내지 못했네요.
이래서 글감 잡기가 어렵나봐...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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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애
2007.06.19 16:03:11 *.92.200.65
은남연구원님 함께 백범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는데 개인적으로 입덧이 심해 [휴업]상태라 제가 도움을 못드려서 아른거렸어요. 어디로 사라져 버린 서포터즈라 여기지 않을까해서요.

경험상 7월말까지 계속될듯하여 힘있게 나타날려면 시간이 좀 필요하오니 서운해 하지 마세요. 일하는 것도 간신히 한답니다.

그 여운을 함께 못느껴서 많이 서운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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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인
2007.06.21 12:24:21 *.48.34.49
장마가 시작되었네요.비오니까 조타!
인애님. 입덧 조심하시고 순산바랍니다.*^*
호정, 글감잡기..그거 참 그래.이 생각 저 생각이 맴돌다 결국 자기가 쓰고자 하는데서 시작하긴 하는데 결론은 삼천포쪽으로 가기도 하고 말야..ㅎㅎ
영훈씨. 나 보다 더 비장하게 느낀사람, 그대인듯하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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