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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3월 25일 23시 59분 등록

스며들어 물들여지는 힘 풍천소축(風天小畜)


메추리알 장조림.jpg  


오늘은 아이들이 좋아하는 메추리알 장조림을 해줬다. 요리를 좋아하는 큰 애는 맛있는 반찬이 나오면 만드는 방법을 꼭 물어본다.

 

엄마, 이거 메추리알에 간장만 부으면 되요? 그러면 색깔이 이렇게 되요?”

 

간장 넣고 한참 졸여야 돼. 그래야 색이 스며들지. 간장만 붓는다고 간장색이 되는 게 아냐.”

 

문득 간장게장을 소재로 한 안도현의 시 <스며든다는 것>이 생각났다. 간장게장이건 메추리알 장조림이건, 또 다른 빛깔로 변화를 일으키는 것은 바로 시간을 두고 진행되는 스며듦에 있다. 스며들고 물들여지다 끝내 이뤄지는 변화. 그래, 스며든다는 것! 그게 변화의 핵심이지!’

 

모든 위대한 작품은 매일의 습관이 스며든결과이다. 갑자기 영감이 떠올라 단박에 글을 쓸 수도, 그림을 그릴 수도, 작곡을 하는 천재들도 물론 있지만, 그런 갑작스러운 영감 역시 매일의 꾸준함 속에서 나오는 것이다. 평범한 사람들은 영감이 올 때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영감을 마중 나가야하며 그러한 영감 마중은 간장게장에 간장을 부어 스며들게 하는 작업에 다름 아니다. 급기야 물들어 또 다른 변화의 빛이 빛날 수 있는 것의 열쇠는 바로 스며듦이다.

 

하지만 스며들어 물들인다는 것은 말이 쉽지 참으로 감질 맛 나는 일이다. 나처럼 성질 급하고 빨리 결과를 보고 싶어하는 사람은 노력이니, 습관이니 하는 것보다는 재능, 천재성, 한 순간의 번뜩이는 영감이라는 파랑새를 찾는다. 이러한 마음가짐과 욕심이 재물에 적용될 때에는 일확천금의 꿈을 좇는 어리석음에 빠지기도 한다. 천리 길도 한 걸음에서 시작되고 태산은 티끌이 모아 되는 것인데 말이다.

 

풍천소축(風天小畜)은 주역의 9번째 괘이다. 괘상을 보면 하늘() 위에 바람()이 있다. ()은 ‘기르다’, ‘저축하다’라는 뜻을 갖고 있다. 하늘 위에서 바람이 불며 구름을 띄우는 모습은 비가 내리기 전의 모습이기도 하다. 비 내리게 할 구름을 묵직하게 하니 저축한다는 의미로 축()을 괘의 이름으로 한 것 아닐까. 이제 풍천소축의 괘사로 들어가보자.

 

小畜(소축)은 亨()하니 密雲不雨(밀운불우)는 自我西郊(자아서교)일세라

 

대축(大畜)이 아닌 소축(小畜)임에 주목하자. 작은 습관, 쌓여지는 습관, 즉 '소축'은 형통하다고 한다. 다만 구름이 빽빽함에도 아직 비가 오지 않음(밀운불우, 密雲不雨)은 내가 서쪽 교외에서 서성거리고(자아서교, 自我西郊) 있기 때문이다. 하얀 구름이 먹구름으로 물들었으나 아직 비는 내리지 않는 상황이다.

 

당장 비가 내리지 않는다고 낙담할 것인가? ‘소축이 쌓이다 결국 넘칠 때 머지 않아 하나의 빗방울을 시작으로 비는 쏟아져 내릴 것이다. 다만 그 때가 언제인지 모르는 우리는 조급해 하며 포기를 하거나 지금까지 쌓아온 노력을 쓸어버리는 우를 범하곤 한다. 自我西郊(자아서교)는 비가 오지 않는다고 조급해 하며 서쪽 교외에서 서성거리는 모습을 빗댄 것이 아닐까. 비를 내리게 하는 小畜(소축)에 대한 믿음을 잃지 말아야 한다.  

 

復自道(복자도)어니 何其咎(하기구)리오. ()하니라

 

자기의 길로 돌아가니(復自道, 복자도) 어디에 그 허물이 있겠는가(何其咎, 하기구). () 하다는 뜻이다. 앞서 언급된 '자아서교'는 서쪽 교외에서 서성거리는 모습이라면 '복자도'는 묵묵히 자신의 길을 가는 것을 말한다.

 

<풍천소축>을 내게 적용한다면 1년간 매주 읽기와 쓰기를 해온 것은 빽빽한 먹구름(密雲, 밀운)을 만드는 과정이었다. 그러나 아직 책이라는 비는 내리지 않았다. 밀운불우(密雲不雨), 즉, '구름은 무거운데 비가 내리지 않는' 바로 지금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때다. 이러한 때 서쪽에서 서성이지 말고, 다시 나의 길을 가야 한다(復自道). 1년 간의 과정도, 강제성도 끝났다. 이제부터가 진짜다. 소축의 밀도를 빽빽하게 할 때, 매일의 습관을 더욱 촘촘하게 할 때 미래는 길할 수밖에 없다고 주역은 말한다.

 

이에, 4월부터는 주말을 제외한 1 1편의 글쓰기를 100일간 하기로 하였다. 그간 함께 걸어온 동기들 역시 각자의 길로 돌아가(復自道) 이미 무거워진 구름에 비를 내리게 할 것이다. 그렇게 '매일의 습관'은 '매일의 기우제'가 될 것이다. 모두의 비가 내린 후, 소축(매일의 습관)이 스며들어 물들인 찬란한 변화의 일곱 빛깔 무지개를 보게 될 그 날을 기대해 본다. 






그간 함께 할 수 있어서 감사했습니다. Special thanks to song & sang. (끝)


*  혹시나 '매일의 기우제'에 관심 있으실 분이 계실까 싶어 링크 겁니다. 

https://m.facebook.com/story.php?story_fbid=921770307984270&id=312723848888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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