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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7월 15일 23시 51분 등록
방황하는 젊은이 따뜻한 영웅을 만나다.
다산 정약용, 충무공 이순신, 백범 김구, 칭기즈칸 그리고 나

2007.7.13~14 작성 7.15 수정


질문1) 이 자리에 모이신 분들 모두 한 가지 길만을 가신 분들 같은데, 어느 시점부터 이 일을 나의 일이다라는 생각이 드셨나요?

김구 : 내가 독립운동에 평생을 바칠 각오를 한 것은 안명근과 연루된 줄 알고 체포되었을 당시, 신문실에서 밤을 새고 나온 사건때문이었네. 왜놈들은 밤을 새워 온 힘을 다해 사무에 충실한 것을 보고서는 날이 훤히 밝아오는 빛에 내 모습이 무척 초라하게 느껴지더군. 빛과 함께 밀려드는 회한이라니. 그때 다짐했지 독립된 조국을 만들자고.

이순신 : 그것이 언제부터였다 말하기가 곤란하네만, 꼭 찾으라 한다면 임진년 한해 전인 신묘년에 전라좌수사로 부임하면서부터이지. 유대감이 내가 적임자라고 천거를 해주시지 않았나. 여럿의 반대를 무릅쓰고 그 일을 맡을 땐 각오가 있어야 하겠지. 유대감과의 교류로 그전에 왜구의 침입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고, 성이나 해자를 준비하면서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왜구를 막는 것이 내 일임을 실감했다네.

다산 : 글쎄. 내 경우엔 그냥 내가 좋아하는 학문을 계속 하였을 뿐이어서 그때가 언제인지 잘 모르겠네. 아마 약전 형님과 동림사에서 겨울동안 공부했을 때였던 것 같은데. 중이 중노릇하는 이유를 자넨 아나?

김구: 자네는 그런 일 하나를 품었나? 그것이 언제 부터인지 기억하나?

한 : 저는 13살인가, 14살인가 밤에 TV에 나온 써머힐이란 학교를 보고 거기에 반해 버려서요. 그때부터 아이들이 자유롭게 뛰놀고 배울 수 있는 학교를 꿈꾸었는 데, 언제부터인가 그것을 빼고는 제 인생을 생각하고 싶지가 않아졌습니다. 그리고 오래동안 가슴에 품다보니, 마치 일부인양 떼어놓지 못 하겠습니다. 2002년 봄으로 기억합니다만, 맞선을 볼 때 제가 학교를 1순위로 생각하고 있어서, 여러차례 선이 깨졌습니다. 그때 결혼을 앞에 두고도 그것 하나만은 양보할 수 없겠다하는 제 속마음을 보고 말았습니다. 그때 제가 미쳤구나 했었습니다. 그때부터였던 것 같습니다.

질문2) 힘들고 긴 세월을 과연 어떤 생각으로, 무엇 때문에 버텨나갈 수 있었는가?

다산 : 유배 생활에서나 임금님 벼슬을 하는 동안이나 하는 일이 같았기 때문이라네. 내겐 자신을 자신답게 만드는 일이 있지 않았나. 바로 책을 읽고 연구하고 쓰는 것이었지. 아, 그리고, 내겐 약전 형님이 계셨기 때문이지. 연구해서 형님게 보여드리면 형님은 그것에 답해주셨지. 형님의 비평은 장소가 구애됨이 없었네. 자네들도 모여서 공부한다고 하니, 서로에게 적절한 시점에 날카롭게 파고드는 상생의 학우(學友)가 되길 바라네.

한 : 이 장군님께선 2번의 백의종군을 하셨습니다. 특히, 2번째는 선조의 의심도 있고 해서 큰 시련이라고 생각 됩니다만.

이순신 : 임금의 의심(?)이 있었던가? 속으로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그 마음 또한 불충이라고 생각하네. 시대가 많이 변했군. 그런 일이 입 밖으로 내 놓아지다니. 허허허. 정유년 그때는 정말 가슴 아픈 일이 많았지. 특히 어머님께서 돌아가신 것은 일기에도 적었듯이 뒹굴며 울어도 가시지 않는 캄캄한 어둠같은 슬픔이었네. 모진 세상 죽기를 기다릴 따름이었지만 그러나 권율장군 휘하로 백의종군하러 가는 길에 왜에 짓밟힌 조선땅과 백성들을 보니 울고만 있을 수는 없더군. 다시 설 수 밖에 없었네. 죽지 않는 한 해야 할 일이 남아있을 거란 생각 뿐이었지.


질문3) 배움에 대해서 어쭙고 싶습니다.

김구 : 내 경우는 다양하게 배울 수 있어서 좋았네. 그렇게 배우지 않았다면 나는 촌구석의 무지랭이 였을 걸세. 동학도 접했고, 고능선 선생님께선 한학에 대장부가 가야할 길을 일러주셨고, 또, 불교와 예수교도 접했으니 나는 두루두루 배운 것 같네. 그것들이 나중에 얽혀들어 다른 것을 배우는 데 좋았지. 심지어는 감옥 안에서 도적의 우두머리에게서 배운 것이 임정시절 유용하게 쓰이질 않았겠나. 허허허. 뒤돌아 보니 참으로 묘하군.

한 : 칸 께서도 스승을 가까이 두고 배우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한말씀 해주시죠.

칭기즈칸 : 우리에겐 문자가 없는 안타까움이 있었지. 그래서 구전되는 것으만으로는 너무나 부족했네. 전쟁 중에 나는 이기기 위해서 포로로 잡은 사람들 틈에 낀 학자들을 데려다가 기술을 익혔지. 배우지 않고는 전진할 수가 없었네. 북경성을 함락할 때가 제일 크게 배웠다고 보네. 싸우는 방식의 전환이 승리를 가져왔다고 보거든. 정복하는 지역마다 거기엔 배워야 할 것들이 너무나 많았네. 내 백성들이 풍성이 먹길 바랬기 때문에 그것들이 눈에 들어왔을지도 모르겠네 그려.

칸 : 그럼 자네는 왜 그렇게 배움에 관심이 있는지 궁금하군.

한 : 저는 뭔가를 배우는 것 자체를 좋아합니다. 새로운 것을 접하는 것은 늘 흥분됩니다. 김구 선생님이나 칸께서 하신 것처럼 배운 것을 써먹어서도 좋고, 또 그것들이 다른 것들과 연결되어서 세상을 보는 눈이 트이는 게 좋아요. 배울 때마다 제가 이전보다 더 좋은 사람이 된 듯한 기분이 드는 것도 좋구요. 그러고보니 저는 다산 선생님처럼 진득하게 파는 공부는 한번도 안해봤네요. 선생님께선 지혜와 삶을 화해시킨 분 같아요.

다산 : 허허허.

질문4) 자신의 인생을 과정과 결과 중 어느 쪽으로 평가되는 것이 더 낫다고 보시나요?

한: 이 장군님께서는 모든 해전에서 승리하는 ‘불패의 리더’라는 수식어를 가질 만큼 그 결과가 좋은 데요. 이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순신: 허허허, 그러한가. 아무래도 내 경우에는 전쟁 중이었느니, 결과 쪽을 치중했다고 해야 할 것 같네만. 전쟁을 하지 않았다면 모를까 싸움에 임해서는 반드시 승리해야하지 않은가. 그러나 반드시 승리하려면 준비를 철저히 해야하지. 임진년 왜구가 쳐들어 오기 전에 거북선을 만들어서 시험까지 모두 마친 상태였으니 과정 또한 중요하다 할 수 밖에. 왜구 침입의 소식을 들었으나 서둘러 전장으로 나서지 않는 것은 반드시 이겨야만 했기 때문에 준비를 철저히 하기 위함이었네. 첫 번째 싸움에선 반드시 이겨야 하네. 그래야 그 뒤에도 가능성이 커지지. 이겨본 자만이 이기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

한: 그럼 이장군님께서는 전쟁이란 혼란의 시기를 사셨기 때문에 결과 쪽에 더 비중을 두셨을 거다라고 해도 좋을까요? 다산 선생님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다산 : 자신이 산 시대와 연결해서 이야기 해야 하나? 그렇다면 난 화평의 시기쯤 되는 것 같네만. 내 경우는 결과와 과정이 일치했네. 어쨌든 나는 학문을 하는 사람이고, 그 결과 책이 하나씩 나왔지. 책 하나가 나올 때마다 성과가 눈에 띄는 것이었으니까.

한 : 백범선생님, 어찌보면 임시정부는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었지요. 그때의 다른 조직들과 비교해 본다면 그렇지 않은가요?

김구 : 내가 보기엔 그 평가도 결과를 중심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보는 데 그렇지 않은가?

한 : 예 그렇습니다. 조직이라는 게, 어떤 결과를 내기에 적합한 형태로 짜여져야 하는 데, 상해 임시정부는 그 틀이 먼저였고, 결과는 나중이었던 것 같아서 여쭈어 본 것입니다.

김구 : 군관학교나 인재양성, 애국단 같은 경우는 단일목적으로 결성되고, 활동 결과가 숫자로 뚜렷이 나타났기 때문에 그렇게 보일 수 있다네. 임시정부의 활동 중 많은 부분이 그렇게 숫자라 문서로 나타나는 것은 아니었지. 과정과 결과가 결합된 형태로 볼 수 있겠지. 나중에 한인애국단의 활약을 하면서부터, 그 존재가 드러났다고 보네. 결과를 낸 셈이지. 그러나, 결과가 눈에 띄지 않는다고 과정이 중요하지 않다고 할 수 있겠나? 자네는 자네 일생에서 결과가 타인의 눈에 띄지 않는다고 과정을 무시할 수 있겠나?

한 : 그건 그렇군요. 저는 지금까지 일 할 때는 결과를 앞세우는 사람이었습니다. 아무래도 그것으로 평가되는 세상에 살고 있으니까요. 그러나, 여기에 모이신 여러분들의 삶을 보면서 과정이 없는 결과는 없었다는 것을 알았죠.
과정과 결과가 절묘하게 결합하니까.... 그래서, 결과에서 출발해서 앞으로 과정을 더듬어가는 시각을 가져보려구요. 저희 구본형 사부님께서는 그것이 이루어진 미래의 모습으로부터 출발해서 현재까지 징검다리를 놓는 것이라고 하시더군요.

김구 : 허허, 그거 내게도 적용되는 것 같군. 대한조국의 독립된 모습을 마음 속에 그려볼 수 없었다면 길고 험한 과정을 이겨내기가 힘들었겠지.

질문5) 자신의 죽음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혹시 다른 형태의 죽음을 맞고 싶은가 입니다.

한 : 백범 선생님께서는 갑작스럽게 총을 맞고 쓰러지셨는데, 무척 안타까웠습니다.

김구: 나의 죽음은 일전에 이운환에게 총을 맞았을 때, 어머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되었네. 조선인이 쏜 총에 맞은 것, 그것 하나 안까따울 뿐. 다른 죽음에 대해서는 생각해 보지 않았네. 나는 늘 상해에서도 쫒기는 몸이었네. 죽음이 바로 모퉁이를 돌면 보일만큼 가까이 서서 기다리고 있었던 것 아니었겠나. 자네도 알다시피 내 목에 달린 현상금이 좀 많았어야지. 상해시절에는 어느 정도 예상도 했었네. 물론 해방 후에도 별반 다르지 않았네. 그때도 혼란스런 때 아니었나. 그리고 다른 죽음에 대해서는 생각해 보지 않았네.

이순신: 백범 선생 말대로 죽고 사는 것은 하늘에 달렸지.
내 경우는 전쟁도 마무리 되어가고 있었으니 세간에는 내가 달리 다른 죽음을 택할 수 없었다고들 말하지만, 그들이 말하는 바대로 안타깝다거나 하는 것은 아닌 거 같네 그려.

한 : 그에 비하면 다산 선생님께선 앞선 두 분과 다른 것 같은데요?

다산 : 회갑을 지내고, 할만큼 하고 회혼식날에 죽음을 맞았다는 것은 축복 아닌가. 젊은 자네에게 죽음을 물어 좀 이상하네만, 자네는 어떤 것을 맞고 싶나?

한 : 젊은 날에 죽음을 이야기하는 게 좀 우습게 들리실 지도 모르지만, 지난 3월에 있은 연구원 수업 중에 장례식 연설문이 있어서 좀 생각해 보았죠.그때 연설문에서 ‘안 죽고 싶다’고 했었지요. 헤헤헤. 이루겠다고 한 것 이루고, 사랑하는 가족과 애뜻한 정도 나누고, 그렇게 다 해보고 싶습니다. 만약 죽음을 선택할 수 있다면, 저도 선생님처럼 노년의 편안한 눈물 없는 죽음을 맞고 싶습니다. 젊은 날을 허비하고 하고 싶은 것과 멀어져서 살다가 갑자기 죽음이 닥치면 무척 후회되고, 또 서러울 것 같습니다. 가상의 장례식에서 그랬던 것처럼. 무엇보다도 학교의 꿈이 이루어지지지 않는다는 것을 상상할 수가 없는 것이라서 그것을 이룰 때까지는 건강하고 싶습니다.

질문6) 끝으로 젊은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씀은? 제게 해주고 싶은 말씀은?

김구 : ‘나는 살려고 산 것이 아니고, 살아져서 산 것이며, 죽으려도 죽지 못한 이 몸이 끝내는 죽어져서 죽게 되었다’고 밝혔는데도 자네는 나를 자신이 선 위치에서 무엇을 할 수 있나 생각하며 거기서 얻는 답대로 힘껏 살았다고 좋게 평가해 주었더군. 기분이 좋더구만. 허허허. 자네가 내게 해준 평가를 그대로 자네에게 가져가면 어떻겠나. 내가 쓴 일지를 보고 흥분했다고 내 들었지. 그리고, 자넨 고민을 했다고 그러더군. 어떻나? 자네도 자신이 선 위치를 보게 되면 그것대로 힘껏 살아봄이.

한: 예? 전 선생님께서는 문화가 으뜸이 나라를 만들어 달라고 당부하실 거라고 속으로 예상하고 있었는데.

김구: 허허허, 자네 생긴대로 살아지는 대로 힘껏 살면 그것을 따로 당부하지 않아도 될 것같은 생각이 드네만. 어때 그래 볼텐가?

한: 예? 예.(수줍게 웃는다.)

이순신 : 자신에게 불어닥치는 고뇌의 바람 앞에 마주 서라고 당부하고 싶네. 주저앉고 싶을 때 달아나고 싶을 때가 없는 어디 사람이 있겠나. 술 한잔에 털어버리고 다음날이 되면 아무일 없었다는 듯이 다시 자신의 일과 마주 서시게. 내가 겪어보니 바람이 매일 부는 것은 아니더구만. 자신의 두 다리로 당당히 버티고 서길 당부하고 싶네.

칭기즈칸: 자네 몽고에 한번 와보지 않겠나. 내가 초원을 달릴 때, 왜 자꾸 달리냐구 옆에서 어찌나 물어대던지 내 귀찮았네. 초원을 달리면서 자네가 직접 한번 찾아보게. 같이 한번 달려보세. 그러면 왜 달리는지 알 걸세. 그게 내가 자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라네.

한 : 예. 그럴려구요. 이번 8월에 찾아 뵙겠습니다.

한 : 이런 당부의 말씀 때문에 돌아가는 발걸음이 무거울 것 같은데요.
한달 반 동안 여러 어르신들의 일에 제가 함부로 끼어 들어 비판하고 흥분하고, 또 옆에서 징징대고 했던 것 사과 드립니다. 그리고 같이 해주셔서 너무나 감사하단 말씀 다시 한번 전하고 싶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지금 제게 이렇게 따뜻하게 말씀해 주신 것도 너무나 감사드립니다. 가끔 술병들고 불쑥 찾아가도 괜찮으시죠? (씨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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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업에서 발표한 내용 일부를 수정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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