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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7월 18일 13시 17분 등록
내 안의 그분들을 만나다.

#1.

네 분과의 인터뷰라… 사부님께선 마음껏 놀아보라고 하셨는데, 내겐 주어진 주제가 쉽지 않았다. 마음을 가볍게 하려 했으나, 무엇을 물어야 할지 영 떠오르지 않았다. 무거운 마음으로 이 책, 저 책을 뒤적이다 사부님의 책 '사람에게서 구하라'의 에필로그에서 이런 글을 만났다.

"과거에 나는 얼마나 완벽한 훌륭함인가에 관심이 있었다. 흠 없이 아름다운 사람을 동경했다. 이제는 훌륭함 속에 존재하는 불완전한 것들의 고통을 보게 되었다. 불완전하다는 것,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스스로 '어제보다 아름다운 나'를 만들어 갈 수 있는 변화의 동력이었다." (P. 270)

"그들은 모두 우리의 편린들이다. 우리가 그들이다. … 그들은 죽고 난 뒤 책 속에 묻힌 미라들이 아니다. 그들은 지금 우리들 속에 우리들의 편린으로 살아 있다. 그들이 우리였다. 그리고 우리가 바로 그들이었다."(P. 270)

또 이렇게 말씀하신다.

"나는 그들을 이곳으로 데려오고 싶었다. 마음에 마음을 싣고 가면 어느 한적한 곳, 혹은 저잣거리의 선술집에서, 혹은 꽃이 만발한 초당에서, 혹은 아름다운 정원에서 그들을 만나 한담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들은 나를 비추는 거울이다. 사람을 비추는 거울이 사람일 수 밖에 없다는 것은 희망이다. 그들에 의해 내 인생은 얼마나 많은 훌륭한 이야기들로 가득 차게 되었는가!" (P. 271)

그리고 나는 '떠남과 만남'이란 남도 여행기에서 사부님도 우리들처럼 그 분들의 향기를 찾아 서성였음을 알게 되었다. 사부님께선 오후 5시가 조금 넘은 시간에, 고금도 덕동 충무사의 이끼 낀 돌계단에 앉아 계셨다. 녹나무를 흔들며 지나가는 바람 소리를 들으며 생각에 잠겨 계셨다. 이런 말씀을 들려주셨다.

"오후에 이 섬을 지나게 되면 잠시 덕동에 들려 충무사를 찾을 일이다. 이곳에 와서 무엇을 보겠다는 기대하고 찾지는 말아라. 아무것도 볼 게 없다. 이 곳에 와서 무엇을 들으려고도 생각하지 말아라. 그저 바람이 녹나무를 흔들며 지나는 소리 밖에는 없다. 그렇다고 해도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그대는 보이지 않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이다. 한 사람의 마음과 그가 칼을 차고 언덕에 서서 그 둥그런 섬들을 그물처럼 세심하게 보고 있는 모습을 느끼게 될 것이다. 그냥 그렇게 되돌아갈 수는 없으리라. 오후 5시에 이 곳에 오면 충무공의 정기를 느낄 수 있으리라. 그리고 그대가 그의 후예임을 깨닫게 될 것이다." (p. 107)

그렇다. 단지 책 속의 그들에게 묻는 것이 아니었다. 내 안의 그들에게 묻는 것이었다. 사부님은 그들 속에 우리를, 우리 속에 그들을 찾기를 원하시는 듯 하다. 스쳐가는 바람 속에 담겨 있는 그 시대의 향기를, 깊은 책 속에 묻혀 있는 그들의 넋을, 그들의 아픔을, 그들의 위대함을 다시 한번 우리 속에 되살리려 하시는 듯 하다. 그렇게 마음 속으로 불러와서, 우리의 대화를 통해 그들을 다시 한번 일으키고, 오늘 이 자리에서 우리와 그들과 함께, 마음껏 이야기를 나누고 싶으신 가보다. 그렇게 마음껏 놀아 보고 싶은 신가보다.


#2.

6월에 나는 이순신, 김구, 정약용, 칭기스 칸. 이 네 명의 위인들을 만났다. 이 네 사람은 내 안에서 어떤 모습으로 자리잡고 있는가? 그들에게 무엇을 물을 것인가? 아니, 내 안의 그들에게 무엇을 물을 것인가?

그들은 모두 어려운 시대를 이겨낸 영웅들이다. 험난한 시대를 넘어서서 역사 속의 큰 울림으로 자리잡고 계신 분들이다. 험난한 시대는 자기 자신을 살지 못하는 시대이다. 자신이 누구인지 알지 못하는 시대이다. 썩어빠진 시대이다. 짐승처럼 사는 시대이다.

그러나 영웅들은 그 역사의 깊은 수렁에 빠져 좌절하지 않고, 자신을 일으켜 세웠다. 칼로 이겨냈다. 맨 주먹으로 이겨냈다. 붓으로, 말과 화살로 이겨냈다. 온전한 자기 자신을 살았다. 그리고 그 시대를 넘어섰다.

나는 충무공 이순신의 서슬 퍼런 장검에 내 삶을 비춰보았다. 청년 김창수의 불끈 쥔 두 주먹에 나의 가슴을 담아보기도 했다. 다산 정약용의 구강포 갯바람에 실려오는 깊은 학문의 묵향에 잠시 취하기도 했고, 칭기스칸의 거친 말발굽과 함께 유라시아 대룩을 바람처럼 내달리기도 했다. 삶은 외롭고, 뜨거운 것이었다. 쓸쓸하고 장쾌한 것이었다.

삶이 무엇이든, 결국 내가 살아내는 것이었다. 그러나 혼자 사는 게 아니었다. 내 안에는 그들이 있었고, 먼저 산 사람들이 있었고, 나중에 올 사람들이 있었다. 나를 낳아주고 길러주신 부모님이 있었고, 살을 맞대고 살아가는 가족이 있었고, 나를 이끌어주는 사부님과 선배님이 있었고, 같은 시대를 헤쳐나가는 친구들이 있었다.


#3.

질문에 앞서 내 안으로 들어온 그들을 한 번 되돌아보았다.

충무공 이순신

가장 마음이 많이 가는 분이다. 왠지 그 분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착각이 들기도 한다. 늦가을, 밤바다에 비치는 달빛의 서늘함과 밤새 뒤척이며 이불을 적시는 식은 땀의 끈적임을 알기 때문일까. 그 외로움과 고독, 어머니와 아이들을 그리는 그 절절한 마음을 알 수 있을 듯 하다. 찬 바람이 스치는 검은 바다에 내리는 한줄기 뽀얀 달빛에 순간, 맻히는 한방울 뜨거운 눈물을 느낄 수 있을 것도 같다.

힘든 나날이었다. 사방이 적이었다. 보이는 적과 보이지 않는 적들이 그를 둘러싸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분은 쉬지 않고 자신의 싸움, 조선의 싸움을 준비했다. 결코 꺾이지 않았다. 준비도 하지 못한 채, 그냥 멍하니 당하는 것만큼 치욕스러운 일은 없으니까. 그것만은 도저히 참을 수 없었으니까.

일휘소탕 혈염산하 一揮掃蕩 血染山河 _ 한번 휘둘러 쓸어버리니, 피가 강산을 물들이도다.

그는 그렇게 흔들리는 마음 속에 시퍼런 칼날을 세웠다. 전투에 임해서는 죽음을 각오하고 자신의 모든 것을 걸었다.

필사즉생 필생즉사 必死卽生 必生卽死 _죽으려 하면 살것이요. 살려고 하면 죽을 것이다.

승리의 비결은 그기에 있었다. 변화무쌍한 조수의 흐름을 읽어내는 예민함과 300여척의 적선 앞에 12척으로 일자진을 펼치는 대담함으로 적의 허를 찔렀다. 그리고 죽음을 삶으로 바꿔내고, 절망을 승리로 일으켜 세우셨다. 그분은 말씀한다.

"도윤아, 너만의 칼날을 세워라. 늘 갈고 닦아라, 언제나 한 칼에 사방을 둘러싼 보이지 않는 적들을 벨 수 있도록 한 발 먼저 마음을 준비해라. 한발 앞 선 마음이 승리의 비결이다. 세상은 승리 만으로 해결되지 않는 것이다만, 그렇게 한 걸음씩 헤쳐 나가야 하는 것이다."

백범 김구

백범일지를 펼쳐들면 뉴저지의 외로운 밤이 생각난다. 참 이상한 밤이었다. 나는 일행과 헤어져 먼저 호텔로 들어왔다. 외딴 교외에 있는 홀리데이 인이었다. 오래된 건물이었고, 방에는 나 혼자였다. 나는 욕조에 따뜻한 물을 받은 뒤, 몸을 푹 담그고 선생님의 책을 펼쳐 들었다. 아들들에게 담담한 말투로 당부하는 말씀과 그 분의 파란만장한 인생 이야기가 낯선 공간이 주는 묘한 이질감과 함께 내 몸으로 스며들어왔다.

나와는 참 다른 분이셨다. 몸도 건강하셨고, 말보다는 몸으로 행동하는 분이셨다. 어린 나이부터 이것, 저것 많은 일을 벌이셨고, 책과 가르침을 통해 마음 속에 들어온 것은 행동으로 실천함으로써 깨달아 나가셨다. 그 분의 핵심 화두는 이것이었다.

가지 잡고 나무를 오르는 것은 대단한 일이 아니지만,
벼랑에 매달려 잡은 손을 놓는 것이 가히 장부라 할 수 있다.

그분께선 자신이 좋아하셨던 서산대사의 짧은 시구처럼 사셨다.

눈 오는 벌판을 가로질러 걸어갈 때 / 발걸음 함부로 하지 말지어다. / 오늘 내가 남긴 자국은 / 드디어 뒷사람의 길이 되느니.

그는 그렇게 곧은 길을 걸어갔다. '지행합일(知行合一)'의 삶을 살고자 하셨던 그 분은 결국 자신이 그리던 ‘아름다운 나라’를 보지 못하신 채 어지러운 정국 속에서 피살당하셨다. 늘 주저하고 망설이는 나는, 선택의 기로에 설 때마다 그 분을 기억하리라. 내 안에서 그 분의 음성을 되살리리라.

"도윤아, 사는 데는 결단의 수난이 있기 마련이다. 손을 놓아야 할 때 나뭇가지를 꼭 잡은 그 손을 놓을 수 있어야 대장부다. 네가 전부라고 믿었던 그것을 버릴 줄 아는 것이 진정한 용기이다.”

다산 정약용

그는 총명하고 지혜로운 분이셨다. 한없이 뻗어나갈 수 있는 역량과 백성을 어질게 다스릴 수 있는 지혜를 갖추셨던 그 분은 불행히도 시대를 잘못 만났다. 얼마나 답답하셨을까? '심서(心書)'라고 이름 붙일 수 밖에 없었던 안타까움이 내 마음 깊숙이 들어와 박혔다. 그러나 그 분은 그 답답함과 분함, 억울함과 외로움을 깊은 학문으로 풀어내셨다.

그분에게는 깊은 묵향이 났다. 깨달은 자의 향기와 나날이 깊어가는 그윽함이 담겨 있었다. 학문하는 기쁨과 수신의 엄격함이 있었다. 격格하기 위해서는 용勇해야 한다고 말씀하시며 스스로 그 길을 묵묵히 걸어 가셨다. 그는 주어진 자신의 현실 안에서 최선을 다했다. 실제 행할 수 없음의 아쉬움을 누구도 감히 대적할 수 없는 학문적 높이로 물리치셨다. 그분은 말씀한다.

"도윤아, 우리는 누구나 그 시대의 산물이다. 그러나 그 시대를 그대로 따를 것인가, 깨치고 일어나 그 시대를 뛰어넘을 것인가, 그 최후의 선택은 너의 몫이다. 누구도 네 마음을 네 허락 없이 마음대로 흔들지는 못한다."

칭기스 칸

그는 야생의 삶을 살았다. 광활한 평원을 거침없이 내달렸다. 그를 생각하면 몽골의 넘실거리는 영원한 푸른 하늘, 초록 빛깔과 누런 빛깔의 드넓은 초원, 건조하고 상쾌한 대기가 떠오른다. 그는 몽골이라는 거친 “대지의 자식”이었고 “환경의 산물”이었다. 그는 한 마리 사나운 늑대였다. 그러나 누구보다 광대한 꿈을 품은 거대한 늑대였다.

그는 길 위의 삶, 변화의 삶을 살았다. 자신 안의 야성을 따랐다. 자신의 결핍을 강점으로 바꾸어냈다. 타고난 것 중 좋고 나쁜 것이란 없었다. 주어진 것을 쓰고(用), 못 쓰는 게 있을 뿐이었다. 한탄하고 있기에 인생은 한 숨 낮잠처럼 너무나 짧았다.

바람 같은 속도를 이용해 멈춰있는 것들, 썩어가고 있는 것들을 거침없이 무너뜨렸다. 사냥을 하듯, 풀숲처럼 전진하고, 호수처럼 전개해서, 송곳처럼 돌격해 나갔다. 그리고 한 마리 큰 고래처럼 다른 것들을 받아들여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고, “사라지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움직였다. 그는 바로 자기 자신, 그 자체였다. 그리고 변화와 노마드의 상징이다. 그는 말한다.

"도윤아, 넌 대체 누구냐? 난 대로 살아라!"


#4.

2007년 7월 14일 아침, 큰 숨을 내쉬고, 마음을 가다듬었다. 네 분을 한 자리에 불러 모았다. 되도록 모두에게 물을 수 있는 질문을 하고 싶었다. 이미 시간을 많이 허비했으므로 짧은 질문으로 인터뷰를 진행했다.

1. 당신이 살았던 시대는 어떠했습니까?

이순신 : 혼란하고 혼탁한 시기였다. “하늘의 해도 검은” 시절이었다. “견딜 수 없는 것들”을 견뎌야 하는 나날들이 계속되었다. 나라가 망하게 되었는데도, 백성들은 부부가 서로를 잡아먹고, 한 사람이 쓰러지면 서로 달려들어 살을 뜯어먹을 정도로 굶주렸는데도, 윗것들은 정신을 못차리고 자신의 배를 불릴 생각만 했다. 뇌물이 서울 길을 연이었고, 돈으로 벼슬 자리를 사고 팔고, 틈만 나면 서로를 헐뜯었다. “안으로는 정책을 결정할만한 인재가 없고, 밖으로는 나라를 바로잡을 주춧돌 같은 인물이 없”는 어지로운 시대였다. 사빙이 바다였고, 사방이 벽이었다.

김구 : 그 누구도 자신이 누구인지 알지 못하는 시대였다. . 우리가 왜 나라를 잃었는가? 우리가 누구인지 몰랐기 때문이다. 자신이 누구인지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삼천리 금수강산이 “민족이 무엇인지, 국가가 무엇인지 터럭만큼의 각성도 없는 밥벌레”들로 가득 찼기 때문이다. 컴컴한 방 안에 갇혀 세상과 단절된 탓이다. 내가 사는 좁은 이 곳이 세상의 전부인지 알았기 때문이다. 나를 깨우지 않고 사는 것은 살아도 사는 것이 아니다. 서서히 죽어가는 것이다. “양반도 깨어라! 상놈도 깨어라!” 아무리 외쳐봐도 모두 잠에 취해 눈만 껌벅거리고 있었다.

정약용 : ‘애절양(哀絶陽)’이란 시로 대신한다.

갈밭마을 젊은 아낙 울음 소리 길기도 해 / 군청의 문 향해 울다 하늘에다 부르짖네.
수자리 살러 간 지아비 못돌아옴 있었으나 / 옛날 이래 사내가 남근 자른다는 건 못들었네.
시아버지 상복에 갓난애 배냇물도 마르지 않았는데 / 조, 부, 자 3대의 이름이 군적에 올랐네.
가서 호소하고 싶지만 관청 문지기 호랑이 같고 / 이정이 으르릉대며 진즉에 소 끌어갔네.
칼 갈아 방에 드니 흘린 피 자리에 흥건하고 / 혼자 한탄하기 애 낳은 죄로 군색한 액운당했다네..
누에 치던 방에서 불알 까던 형벌도 억울한데 / 백성의 거세풍습은 참으로 비통했네.
자식 낳고 살아가는 이치, 하늘이 주시는 일 / 천도는 아들 주고 곤도는 딸을 주지
말이나 돼지 거세도 가엾다 말하거늘 / 하물며 우리 백성 자손 잇는 길임에랴.
부호들은 1년 내내 풍악 올려 즐기지만 / 쌀 한 톨 비단 한 치 바치는 일 없더구나.
너나 나나 한 백성인데 어찌하여 후하고 박한 거냐 / 나그네 방에서 거듭거듭 시구편을 외우네.

“이 시는 내가 계해년(1803) 가을에 강진에서 지은 것이다. 그 때 갈대밭 마을에 사는 백성이 아이를 낳은 지 사흘 만에 군보에 편입되고 이정이 못 바친 군포 대신 소를 빼앗아가니 그 백성이 칼을 뽑아 자기 양경을 스스로 베면서 말하기를 ‘내가 이 물건 때문에 곤핵을 당한다’고 했다. 그 아내가 잘린 양경을 가지고 군청의 문으로 나아가니 피가 아직 뚝뚝 떨어졌다. 울며 호소했으나 문지기가 막아버렸다. 내가 그 이 이야기를 듣고 시를 지었다.”

삼정이 문란하고, 백성들은 날이 갈수록 굶주렸고, 목민관 자리에 앉은 큰 도적들은 자신의 배를 불리기 바빴다. 저 위에서는 “아웅다웅 싸움질”로 자기 고집만 내세우고 있었으니 옹색한 3천리 산하가 병들어가고 있었다. 잘못을 알고 있으나 나서서 고칠 수 없으니, 나날이 마음만 병들어 갔다.,

칭기스칸 : 서로가 서로를 약탈하고, 서로를 죽이고, 또 다시 복수했다. 매복, 배반, 유괴, 살인 등이 일상이었고, 사람도 동물처럼 사냥의 대상이 되는 가혹한 그 곳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더욱 강해질 수 밖에 없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나는 “개와 쥐의 가죽으로 만든” 옷을 입고 죽은 짐승과 쥐 고기로 연명했으며, 배다른 형제를 화살로 쏘아 죽였다. 나는 그 야생의 초원에서 어쨌던 살아남아야 했고, 어쨌던 그 죽고 죽이는 피의 소용돌이를 벗어나고 싶었지만, 돌이켜 보면 그 시절이 나를 ‘강철’처럼 단련시켰다.

김도윤 : 그 분들에 비하면 나는 참 행복한 시대에 태어났다. 나의 일상은 그 분들의 뜨거운 희생 위에 세워져 있었다. 생각해본다. 나는 “터럭만큼의 각성도 없는 밥벌레”는 아닌가? 혹 나날이 썩어가고 있는 줄 모르는, 나약하고 잃을 것 많은 정주민은 아닌가? 혹 “한 차례 배가 부르면 살찔 듯이 여기고 한 차례 주리면 마른 듯이 여기는” 천한 짐승이나, “자신의 뜻과 같지 않은 일이 있으면 당장에 눈물을 줄줄 흘리고, 다음날에 뜻이 맞는 일이 있으면 방긋거리며 낯빛을 펴곤 하는” 시야가 짧은 사람은 아닌가? 준비해야 산다. 변해야 산다. 깨어야 산다. 지금은 우리는 눈에 보이지 않는 소용돌이가 사방에서 휘몰아치고 있는 태풍의 중심에 서있다.

2. 어떻게 ‘견딜 수 없는’ 나날들을 이겨냈습니까? 어둠 속에서 자신을 일으켜 세웠습니까?

이순신 : 견딜 수 없는 것을 견디기 위해서는, 그 속에 빠져 허우적거리지 않기 위해서는 나날이 자신을 되돌아 봐야 한다. 일상을 묵묵히 기록하고, 칼날을 갈아야 한다. 엄한 군법으로 다스리고, 허물어진 성벽을 쌓고, 부서진 배를 수리하고, 공격과 수비의 진을 연습하고 또 연습해야 한다. 삶은 무너짐과 다시 세움 그 사이에 있다. 집중과 분산의 “전환 속에” 삶이 있다. 바다에선 삶과 죽음의 경계가 늘 불분명했다 나는 늘 “살아서 기진맥진했”지만 그럼에도 나는 살아있었고, 살아서는 죽음을 생각할 수 없었다.

김구 : 사람의 태생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마음이 중요한 것이다. 나는 상놈의 자식으로 태어났다. 어지러운 그 시대에 상놈의 자식이 할 수 없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그러나 나는 한탄하지 않았다. “나는 매일 밥구럭을 메고 험한 고갯길을 쏜살같이 넘나들며 학문을 배웠”고, “마음에 고통을 가지기 보다는 행하기에 힘”쓰라는 훌륭한 스승님의 가르침을 따르려 노력했고, 실제 행함으로써 깨쳐나갔다. 자신을 끊임없이 갈고 닦았다. 마음을 세우고, 끊임없이 반성하고, 다시 행동했다. 끊임없는 자기 성찰과 지행합일을 위한 노력, 그것이 내가 살아가는 방법이었다.

정약용 : 산다는 것은 주어진 현실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내게 주어진 삶을 힘껏 다 살아내는 것이다. 불의의 시대에 태어나, 한참 나라를 위해 일해야 할 시기에 유배를 와서 낯선 땅에 버려졌다. 그러나 개인적 슬픔에 빠져 있기에는 해야 할 일들이 너무 많았다. 어두운 시대 속에 고통 받는 민초들의 삶이 너무 가슴 아팠다. 나는 평생을 유교라는 수직적인 틀 안에서 살아야 했지만, 나를 가둔 그 틀을 넘어서고 싶었다. 그 안에 백성의 실생활을 해결할 수 있는 상생의 철학과 수평적인 삶을 담아내고 싶었다.

학문을 하기 위해서는 먼저 근기를 세워야 한다. 경학으로 근기를 세우고, 실용적인 학문을 통해 만백성을 윤택하게 하는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 모르는 것이 있으면 끝까지 연구해서 도달해야 하고, 물고기를 잡는 그물에 기러기가 걸렸으면, 다시 그 기러기를 연구해야 한다. 이러면 언제 쉴 틈이 있겠는가. 또한 학문과 삶의 조화를 시키는 일만으로도 하루가 간다. 한 달이 간다. 일 년이 가고 평생이 간다.

칭기스칸 : 나는 그런 어려운 질문은 잘 모른다. 나는 다만 살기 위해 살았을 뿐이다. 연명하기 위해 쥐새끼를 잡았고, 올라서기 위해 형제를 베었고, 그저 사라지지 않기 위해 다른 사람들을 쓰러뜨렸다. 그런데 그렇게 피를 흘리며 싸우다 보니, 가슴 속에 무언가 뜨거운 것이 차 올랐다. 내가 누구인지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저 영원한 푸른 하늘과 부르칸 칼둔의 웅장한 목소리를 들었다. 나를 살게 한 것은 거친 일상이었다. 저 넓은 하늘과 푸른 초원이었다. 그렇게 주어진 대로 힘껏, 내달리다 보니 내 주위에는 어느새, 나를 따르는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김도윤 : 주저하기만 했다. 가고 싶은 길이 있음에도 가지 못했다. 그것은 자신에 대한 믿음이 부족했기 때문이었다.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었다. 이제 그 초라하고 보잘것없는, 어리석은 고민의 늪을 벗어나려 한다. 더 이상 실패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진정한 나를 피하며 살지는 않겠다. 삶은 그리 긴 것이 아니다. 나를 살아내기에도 짧은 시간이다. 셀 수 있는 날들만이 남았다. 끊임없이 배우고, 깨우치고, 행동해야 한다. 그렇게 최선을 다해 주어진 일상을 살아내어야 한다. 아름다운 나날들로 채워 나가야 한다.

3. 당신의 삶에서 가장 아름다운 ‘인생의 한 장면’이 있다면? 혹은 가장 기억에 남는 일생일대의 사건이 있다면?

이순신 : 명량이었다. 내가 가진 것은 열 두척의 배 뿐이었다. 다른 방책이 없었다. 거센 물살을 타고 진격해오는 적들 앞에 열 두 척으로 일자진을 펼쳤다. 나는 이렇게 수령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적의 선두를 부수면서, 물살이 바뀌기를 기다려라. 지휘 체계가 무너지면 적은 삼백척이 아니라, 다만 삼백 개의 한 척일 뿐이다.”

그러나 전쟁이 시작되자 나 홀로 적진 속에 있었다. ‘일자진을 펼쳐라!’ 명령했으나 김억추의 배도, 김응함의 배도, 안위의 배도 저 멀리 떨어져 있었다. 김응함의 목을 베어 효시하고자 했으나, 내가 뱃머리를 돌리면 사세가 낭패가 될 것이다. 북을 울리고, 초요기를 세웠다. 뒤에 물러섰던 배들이 점차 나의 곁으로 다가왔다. 크게 호통을 쳤다. , “네가 억지부리다 군법에 죽고 싶으냐?”, “물러나 도망가면 살 것 같으냐?”

적의 선두를 물리치며 때를 기다렸다. 화살이 빗발처럼 쏟아졌다. 시퍼런 명량은 우우우 큰 소리로 울며 흰 거품을 일으켰다. 적들의 함성과 우리의 함성이 맞부딪혀 명량의 동쪽 어귀와 서쪽 어귀를 가득 채웠다. 때가 왔다. 물살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거꾸로 돌아서는 썰물이 대낮의 햇빛 속에 은빛 비늘처럼 반짝거렸다. 물살을 타고 전진해 들어오던 적선은 이제 역류에 휩쓸려 허우적거렸다. 노가 부서지고, 배와 배가 맞부딪혔다. 적은 서로 뒤엉켰다. “적의 뒤가 나의 앞이었다.” 명량의 물살과 함께 우리는 앞으로 나아갔다. 일자진으로 밀어붙였다. 화살을 멀리 쏘았다. 적선의 깨어진 뒷편이 그들의 무덤이 될 것이다. 죽은 적들의 시체가 물살에 휩쓸려 다녔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적들이었다.

“명량에서는 순류와 역류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었다. “명량에서는 순류 속에 역류가 있었고, 그 반대도 있었다. 적에게도 나에게도 그 곳은 사지였다. … 사지에서, 죽음은 명료했고, 그림자가 없었다. 사지에서, 삶과 죽음은 뒤엉켜 부딪혔다.” 나는 그 곳에서 죽음을 각오했으나, 다시 살아남았다.

김구 : 가지 잡고 나무를 오르는 것은 기이한 일이 아니나 / 벼랑에 매달려 잡은 손을 놓는 것은 가히 장부로다.

나는 곧 자문자답해 보았다.
“네가 보기에 저 왜인을 죽여 설욕하는 것이 옳다고 확신하는가?”
“그렇다.”
“네가 어릴 때부터 ‘마음 좋은 사람’되기가 소원이 아니었더냐?”
“그렇다. 그러나 지금은 원수 왜놈을 죽이려다가 성공하지 못하고 도리어 죽임을 당하면 한낱 도적의 시체로 남겨질까 미리 걱정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때까지 ‘마음 좋은 사람’이 되고자 했던 것은 다 거짓이고, 사실은 ‘몸에 이롭고 이름 내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 되려는 소원만 가졌던 것이 아닌가.”

자문자답 끝에 비로소 죽을 작정을 하고 나니, 가슴 속에서 일렁이던 파도는 어느덧 잔잔해지고 백 가지 계책이 줄지어 떠오르기 시작했다.

나는 서서히 몸을 일으켜 크게 호령하며 그 왜놈을 발길로 차서 거의 한길이나 되는 계단 밑으로 떨어뜨렸다. 그리고 바로 쫒아 내려가서 놈의 목을 힘껏 밟았다. “누구든지 이 왜놈을 위해 내게 달려드는 자는 모두 죽이고 말리라.” 한마디로 선언했다. 왜놈이 새벽 달빛에 칼빛을 번쩍이며 달려들었다. 얼굴로 떨어지는 칼을 피하면서 발길로 왜놈의 옆구리를 차서 꺼꾸러뜨리고 칼 잡은 손목을 힘껏 밟으니 칼이 저절로 땅바닥에 떨어졌다.

나는 그 왜놈을 머리로부터 발끝까지 점점이 난도질했다. 아직 2월 날씨라 마당은 빙판이었는데, 피가 샘솟듯 넘쳐서 마당으로 흘렀다. 나는 손으로 왜놈의 피를 움켜 미시고, 그 피를 얼굴에 바르고, 피가 떨어지는 칼을 들고 방안으로 들어가 호통을 쳤다. “아까 왜놈을 위해 내게 달려들려고 하던 놈이 누구냐?”

밥 일곱 그릇을 큰 양푼 한 개에 반찬과 함께 쏟아넣고, 쓱쓱 비벼 밥 한덩이가 사발통만큼 되게 떠먹었다. 밥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 지 알 수 없었다. 가슴이 두근거렸지만 기개 있게 한마디 내뱉었다. “오늘은 먹고 싶던 원수의 피를 많이 먹었더니 밥이 들어가지를 않는다.”

정약용 : 감옥에서 다시 만난 형과 함께 귀양지를 향해 떠났다. 전라도 나주읍 부근의 밤남정에 도착해 형과의 마지막 밤을 같이 보냈다. 이른 아침에 우리는 헤어져야 헸다. 그때는 그것이 생의 마지막 이별이 될 줄 미처 몰랐다. 헤어지는 순간, 목이 메여 말을 잇지 못했다. 하염없이 눈물만 흘렸다. 형은 무안을 지나 바다를 건너 흑산도로 갔고, 나는 영산강을 건너, 월출산을 넘어 강진읍으로 향했다.

「율정별」(栗亭別)

초가 주막 새벽 등불 푸르스름 꺼지려는데
일어나 샛별 보니 이별할 일 참담해라.
두 눈만 말똥말똥 둘이 다 할말 잃어
애써 목청 다듬으나 오열이 터지네.
흑산도 아득한 곳 바다와 하늘 뿐인데
그대는 어찌하여 그 속으로 가시나요.

칭기스칸 : 초원의 전쟁은 끝이 없었다. 많은 것을 이루었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내가 가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쫓기고 쫓겨, 먹을 것도 없이 지친 몸을 이끌고 발주나 호숫가에 이르렀다. 호수라기 보다는 못에 가까웠다. 그나마 비가 내리지 않아 흙탕물이었다. 주위를 돌아보니 채 20명이 되지 않는 부하들만이 남아 있었다.

순간, 만신창이가 된 몸에서 불끈 용기가 솟아났다. 왠지 모를 자신감이 생겼다. 이 사람들은 내 사람들이었다. 이렇게 패해서 도망치는데도 끝까지 나를 따라와준 고마운 사람들이다. 이들이 있기에 나는 다시 일어설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영원한 푸른 하늘’과 ‘부르칸 칼둔’을 두고 맹세했다. 발주나 못의 흙탕물을 나누어 마시며 다짐했다. 우리는 서로 피를 나누지는 않았으나, 하나의 몸이나 다름없었다. 나는 다시 일어섰다. 번개처럼 내달릴 힘을 얻었다.

김도윤 : 나는 쉴새 없이 흔들린다. 나는 끊임없이 쓰러지고, 다시 몸과 마음을 일으켜 세운다. 나를 다시 세우는 것은 책이다. 사람이다. 일상의 풍경들이다. 얼마 전의 일이다. 세상이 쏟아져 내리는 듯 물을 들이 붓는 나이아가라 폭포 옆에서 아침 산책을 하고 있었다. 청설모가 여기 저기에서 먹이를 찾고 있었고, 희부윰한 아침 햇살이 안개를 가르고 있었다. 신기한 무지개 빛 새들이 도망가지도 않고 내 주변에서 종종거렸고, 나는 여기 저기를 사진기에 담아내며 걸어가고 있었다.

그 때, 내 눈 앞에 무지개가 펼쳐졌다. 무지개가 생겼다 사라졌다. 잔디밭에 물을 뿌리는 스프링쿨러 때문이었다. 눈부신 햇살에 스프링쿨러의 물방울들이 뿌려지는 그 순간 무지개가 나타났다, 저만치 방향을 틀면 사라졌다. 어린 시절의 재발견이었다. 무지개는 그 자리에 있는 것이 아니었다. 물방울들이 그려내는 것이었다. 새파란 하늘에 깨끗한 물방울들이 그려내는 영롱한 무지개를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참 좋은 아침이었다.

4.. 당신은 무엇을 위해 살았습니까? 혹은 무엇을 위해 싸웠습니까? 당신이 꿈꾸는 아름다운 나라는 무엇입니까?

이순신 : 소설가 김훈이 나의 삶을 그의 글 속에 담아내었다. 그 글에 내가 죽던 해, 봄날의 이야기가 나온다. 그 이야기가 마음에 들어 대답을 대신한다. 1598년, 무술년 초봄, 내가 영산강 상류로 정찰을 나갔을 때의 일이다.

"아낙이 쌀을 씻어 밥을 짓는 동안 나는 장터 바닥에 주저앉아 있었다. 송여종이 멍석을 구해와서 깔아주었다. 나는 멍석에 누웠다. 백성들은 다투고 웃고 욕지거리를 하며 하루의 거래를 마무리 짓고 있었다. 밥이 익는 향기 속에 시장기가 솟아났다. 그리고 노곤한 졸음이 몰려왔다. 나는 장터 멍석 위에서 잠들었다. 봄볕이 이불처럼 따스했다. 송여종이 잠든 나를 흔들어 깨웠다.

- 간이 어떠하실는지…

아낙이 멍석 위에 밥상을 차렸다. 나는 그 장터에서 송여종, 안위와 함께 점심을 먹었다. 아낙이 국밥 열 그릇을 말아서 나룻배 편으로 격군들에게 보냈다. 말린 토란대와 고사리에 선지를 넣고 끓인 국이었다. 두부도 몇 점 떠 있었다. 거기에 조밥을 말았다. 백성의 국물은 깊고 따뜻했다. 그 국물은 사람의 몸에서 흘러나온 진액처럼 사람의 몸 속으로 스몄다. 무짠지와 미나리 무침이 반찬으로 나왔다. 좁쌀의 알들이 잇새에서 뭉개지면서 향기가 입 안으로 퍼졌다. 조의 향기는 안쓰러웠다. 아낙이 뜨거운 국물을 새로 부어주었다. 나는 짠지를 씹었다. 봄의 짠지 속에 소금의 간은 가볍고 싱싱했다. 안위는 세 번째 밥그릇을 내밀었다. 국에 만 밥을 넘길 때 창자 속에서 먹이를 부르는 손짓을 나는 느꼈다. 나는 포식했다."

나는 무엇을 위해 싸웠나? 조국을 위해 싸운다고 했으나, 내가 위해야 할 조국은 이미 썩어 있었다. 나는 보이는 눈 앞의 적들과 싸우고 싶었으나, 보이지 않는 적들이 나를 쉴 새 없이 무너뜨렸다. 그래서 때로 나의 전쟁은 무의미해 보였다. 나와 나를 따르는 장졸들의 싸움이 한낱 거짓놀음의 손에 놀아난다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싸워야 했다. 바로 이 한 그릇의 따뜻한 밥상을 위해 싸워야 했다. 백성들의 보잘것없는 일상의 위해 싸워야 했다. 나른한 봄날 오후의 낮잠을 위해 싸워야 했다.. 그 깊고 따뜻한 국물 한 그릇을 위해 싸워야 했다.

김구 : “나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 가장 부강한 나라가 되기를 원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남의 침략에 가슴이 아팠으니 내 나라가 남을 침략하는 것을 원치 아니한다. 우리의 부력은 우리의 생활을 풍족히 할만 하고 우리의 강력은 남의 침략을 막을 만하면 족하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 되게 하고 나아가서 남에게 행복을 주겠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을 알아야 한다. 자신에게 맞는 생각을 하고, 자신에게 맞는 사상을 가져야 한다. 몸에 맞지 않는 남의 것이 아닌, 자신에게 맞는 옷을 입어야 한다. 자신은 그 누구도 아닌 자신의 손으로 일으켜 세워야 한다. 우리의 손으로 이뤄내지 못한 독립은 독립이 아니다. 나의 소원은 우리도 어느 때 독립 정부를 건설하게 된다면 그 집의 뜰도 쓸고, 창호를 닦다 죽는 일이었다. 우리가 진정으로 독립을 했다면, 나는 아무리 천한 일을 해도 여한이 없을 것 같다.

정약용 : 나는 목민관이 백성을 위하여 있고, 백성들이 목민관이 누구인지도 모르고 편안하게 사는 그런 나라를 꿈꾸었다. 실제 행하지 못해 마음에만 품어두었으니 안타깝기 그지없으나 학문으로 이 길을 밝히려 최선을 다했다. 나는 비록 유배당하였으나, 비루하게 살고 싶지는 않았다. 닭 한마리를 기를 때에도 품위있고 저속하고 깨끗하고 더러운 등의 차이가 있다. 실용은 중요한 것이지만 경학 또한 중요한 일이다. 세속적인 일에서 맑은 운치를 간직할 수 있다면 그 또한 좋은 삶이 아닌가?

나는 현실과 이상의 조화를 꿈꾸었다. 철학과 실용의 조화를 연구했다. 아들들에게 이런 편지를 쓴 적이 있다. 내가 바라는 아름다운 삶이었다.

내가 몇 년 안에 유배에서 풀려나 너희들로 하여금 몸을 닦고 행동을 가다듬어 효도와 공경을 숭상하고 화목을 일으키며, 경사를 연구하고 시와 예를 담론하며, 서가에 3, 4천 권의 책을 꽂아놓고 1년을 지탱할 만한 양식이 있으며, 뒤란에 뽕나무, 삼, 채소, 과일, 꽃, 약초들이 질서정연하게 심어져 있어 그 그늘을 즐길 만하며, 마루에 오르고 방에 들어가면 거문고 하나와 투호 일 구와 붓, 벼루, 책상에 볼 만한 도서가 있어서 그 청아하고 깨끗함이 기뻐할 만하며, 때때로 손님이 찾아오면 닭을 잡고 회를 만들어서 탁주와 좋은 나물 안주에 흔연히 한번 배불리 먹고 서로 더불어 고금의 대략을 평론할 수 있다면, 비록 폐족이라 할지라도 장차 안목이 있는 사람들이 흠모할 것이니, 이렇게 세월이 점점 흘러간다면 다시 일어서지 못하는 경우가 있겠느냐?

칭기스 칸 : 언젠가 보울추와 ‘남자의 최고의 즐거움’에 대하여 이야기 나눈 적이 있다. 고지식한 보올추는 이렇게 답했다.

"그것은 봄날의 사냥입니다. 아름다운 말에 올라타고 주먹 위에 매를 앉힌 다음, 짐승이 날뛰는 것을 보는 일입니다."

나는 대답했다.

"아닐세, 그게 아냐. 남자로 태어나서 최고의 즐거움은 적의 무리를 무찌르고 그 뒤를 쫓아 그들의 재물을 탈취하는 것일세. 그리고 그들과 가까운 자들이 눈물로 얼굴을 적시는 것을 보는 일과 그들의 말에 올라타고 그들의 딸이나 아내를 품에 안는 일일세."

나는 그렇게 남을 무너뜨리는 즐거움으로 일생을 살았다. 그런데 어느날, 내가 이제 그런 나라를 만들었음을 알았다. 내가 만든 나라에는 사방에 적이라곤 없었고, 평화로웠다. 사슴과 노루를 위한 훌륭한 목장이 있었고, 백성들을 위한 안식의 땅 위에 내가 서 있었다. 나는 이 나라가 언젠가 무너질 줄 안다. 그러나 내가 살아있는 한, 나는 사라지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달렸다. 내 자식들은 그 피의 소용돌이가 없는, 푸른 하늘과 초록빛 대지에서 평화롭게 살기를 바랬다. 그것이 인생의 모순이다.

김도윤 : 나는 “꿈과 현실의 격차가 지금처럼 줄어들었던 적은 없었다”는 게리 해멀의 말을 좋아한다. 모두가 그 누구도 아닌, 자신의 꿈을 향해 나아가는 그런 나라를 꿈꾼다. 모두가 자신의 행성을 창조하고, 서로의 우주를 공유하며, 하늘의 별이 되어가는 그런 아름다운 풍경. 나는 그들의 멋진 여행을 도와주고 싶다. 그러기 위해선 우선 나의 행성을 찾아내야 한다. 반짝이는 별이 되어야 한다.

… 아직 많은 질문이 남아있으나, 내가 게으른 탓에 시간이 부족하다. 아쉽지만 오늘이 지난 뒤, 보충하기로 한다. 마지막 질문이다.

5. 여기 모여 있는 사람들은 자신의 현실을 바꾸고자 하는 사람들입니다. 오늘보다 더 나은 내일을 살고자 하는 사람들입니다. 마지막으로 깊이 간직해야 할 한마디를 던져주신다면?

이순신 : 늘 준비해라!

김구 : 자신 안에 갇혀 고민만 하지 말고, 행동하라!

다산 : 책을 읽어라, 공부해라. 격格하기 위해선 용勇해야 한다.

칭기스칸 : 그 누구도 아닌 자신을 살아라! 마음껏 내달려라!

도윤 : 예,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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