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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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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2월 20일 07시 57분 등록

칼럼. 겁쟁이가 아니야~

“ 어느날 빌리는 할머니 댁에서 자게 되었어요. 하지만 잠을 이룰 수가 없었지요. 걱정이 너무 많았거든요. 빌리는 다른 집에서 자게 될 때면 걱정이 더 많아지곤 했어요. 결국 침대에서 일어나 할머니께 말씀드리러 갈 수밖에 없었지요. 좀 바보 같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말이에요.

할머니께서 말씀하셨죠. ‘참 재미있는 상상이로구나. 그건 네가 바보같아서 그런게 아니란다. 아가야 나도 너만 했을 때는 너처럼 걱정을 많이 했지. 마침 네게 줄 것이 있구나.’

할머니는 방으로 들어가서 뭔가를 들고 나오셨어요. 할머니가 설명해주셨죠. ‘이 애들은 걱정인형이란다. 잠들기전, 이 인형들에게 너의 걱정을 한 가지씩 이야기하고 베개 밑에 넣두렴. 네가 자는 동안 이 인형들이 대신 걱정을 해 줄꺼야.’

빌리는 걱정 인형들에게 온갖 걱정을 다 얘기했어요. 그리고 곤히 잠들었죠.”

<겁쟁이 빌리 - 앤터니 브라운 지음> 중

 

학기초 우리반 상원이를 생각하면 지금의 밝은 모습이 대견하기만 하다. 올해 교직생활 10년만에 처음 중학교 1학년 담임을 맡은 나에게 상원이의 출현은 복병이었다. 첫학교에서 고등학생과 생활했고, 중학교에서도 중3과 중2 아이들만 담임을 했었던 터라 나조차도 많이 긴장되는 새학기였다. 사실 중학교 1학년의 담임은 절대 하지 않기를 바랬다. 수업으로 중학교 1학년 아이들을 가르친 적이 있는데 아이들이 너무 어리다보니 코드를 맞추기가 힘들었다. 일주일에 1-2번 들어가는 수업도 버거웠는데 그 아이들과 1년 동안 생활해야 한다는 것이 겁이 났다. 중1은 초등학생티를 못 벗은 아기들이라 아직 순수하고 착해서 정말 귀엽기는 한데, 학교의 기본적인 규칙을 몰라 하나하나 가르쳐주어야 하고 기본 생활습관이 완전히 형성되지 않아 그것을 바로잡아주는 것이 필요했다. 내가 지금 지식적으로 공부를 가르치는 것보다 앞으로 아이들의 살아가는데 필요한 질서와 예절, 공부하는 방법 등의 기본 생활습관을 익혀주어야 한다는 책임감에 부담스러웠다.

새학기가 시작되고 이틀째 되던 날 아침 조회가 끝나고 상원이가 불안한 눈빛으로 나를 따라 나왔다. 작고 떨리는 목소리로 나를 부른다. “선생님~” 나를 부르는 상원이의 목소리를 들으니 겁이 덜컥났다. ‘무슨일일까?’“선생님 저 이상해요. 목이 자꾸 돌아가요. 사람들이 이런 걸 틱장애라고 하던데 저도 그거라고 의사선생님이 말씀하시는 걸 들었어요.” 그 말을 하는 상원이 눈에 눈물이 갑자기 가득 고인다. “엄마랑 전화하면 안 돼요? 엄마랑 전화하고 싶어요.” 우리학교에서는 휴대폰을 아이들이 소지 할 수는 있으나 수업에 방해가 된다고 하여 매일 아침 교실에서 휴대폰을 걷어 보관을 했다가 종례할 때 돌려준다. 그 말을 하는 상원이가 갑자기 목이 살짝 돌아가면서 틱하는 소리를 냈다. 갑자기 겁이 덜컥 났다. 들고 있던 전화기 수거통에서 상원이의 전화를 꺼내서 얼른 주면서 엄마에게 전화를 걸도록 했다.

상원이가 엄마와 통화를 하는 내내 곁에서 서있는데, 또 왕방울만한 큰 상원이의 눈에 눈물이 이내 그렁그렁해진다. 상원이는 엄마에게 “나 지금 목이 자꾸 돌아가고 힘들어서 집에 가고 싶어요.”라고 말을 하기 시작했다. 엄마의 응답을 한참 듣고 있던 상원이가 전화를 끊고 나를 본다. “엄마가 뭐라고 하시니?”라고 물으니, 상원이는 실망한 듯 “그냥 학교에서 수업 다 듣고 오래요.” “그런데 저 휴대폰 갖고 있으면 안 돼요? 제가 너무 불안해서 엄마랑 자주 통화하고 싶어요.” 나는 휴대폰을 수업시간에 갖고 있는 건 규칙에 어긋나니 들어줄 수 없다고 했다. 상원이는 여전히 불안하고 기운 없는 목소리로 알겠다고 대답하고 교실로 들어갔다.

다음날 1교시가 끝나고 상원이가 교무실로 나를 찾아왔다. 그리고는 휴대폰으로 엄마와 통화를 하고 싶다고 한다. 휴대폰을 건내주니 이내 교무실 구석으로가서 엄마와 한참을 이야기했다. 그리고는 다시 돌아와서 실망하는 듯한 눈빛으로 나에게 휴대폰을 돌려주면서 어제처럼 “휴대폰 갖고 있으면서 엄마랑 전화하고 싶은데 안 돼요?”라고 묻는다. 나는 또 아이들도 모두 휴대폰을 갖고 싶어하는데 너에게만 허락하면 형평성에 어긋나서 안 된다고 돌려보냈다. 상원이가 교무실밖으로 나가자 상원이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머니에게 상원이의 태도에 대해 이야기를 해주는데 말을 하는 나만 심각하다. 어머니는 별로 걱정을 하는 눈치가 아니고 그러다가 좋아질 것이라는 말만 하신다. 초등학교 때도 새학기가 되면 이런 증상이 나타났다가 사라졌다고 틱현상은 가끔 일어나는 것이고 만성이 아니라고 도리어 나를 안심시키신다. 어머니가 아이의 증상이 특별한 것이 아니라니 다행이긴 하나 아이가 저토록 불안해하는 데 이런 어머니의 대응은 나에게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었다.

상원이는 그 뒤에 매일 같이 하루에 1-2번 휴대폰으로 엄마와 통화를 했다. 어느 날은 엄마와 통화가 안 된다면서 나보고 집에 무슨 일이 일어난 게 아닌지 불안하다면서 알아봐 달라고 했다. 그 말을 듣는데 이거 정말 심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상원이 어머니는 괜찮다고 하시지만 뭔가 전문가의 손길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어 상담선생님께 상원이의 상담을 요청했다. 상담이 끝난 후 결과가 어떤 지 궁금해서 상담실에 가서 이야기를 들었다. 상담선생님은 상원이가 해준 이야기들을 전해주시면서 내가 상원이를 어떻게 대응해야 되는지에 대한 팁을 제공해주셨다. 상원이가 말하는 틱장애라는 것이 지금은 만성이 아니라 스스로 제어할 수 있는데 관심을 끌기 위해 더 자주 그걸 하게 되는 것 같다며 나에게 상원이의 행동에 무심할 필요가 있다고 말씀하신다. 생각해보니 나와 눈이 마주치기 전에는 아무런 증상이 없다가 나와 눈을 마주치는 순간 보란 듯이 목이 돌아가며‘틱’거리고 나를 커다란 눈망울로 쳐다보았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방과후 생활에 대해 물어보니 집에서 5살짜리 여동생과 주로 논다고 하는데 중학교 1학년 남학생은 그 때 한창 또래 아이들과 어울려 노는 것이 좋을 때인데 그럴 친구가 없다는 것이 문제라고 하신다. 이건 상원이 스스로가 자기의 틀을 깨고 나와야지 우리는 옆에서 지켜봐주고 상원이가 필요할 때 상원이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이 지금으로서는 최선인 것 같다고 하셨다.

교무실로 돌아와 상원이 어머니께 전화로 상담한 내용을 알려드렸다. 상원이 어머니와 이야기 중에 상원이가 나를 찾아왔는데 통화중이라 돌려보냈다. 갑자기 다음 쉬는 시간에 상담선생님이 다급하게 나를 부른다. 상담실로 갔더니 상원이가 앉아있다. 상담선생님은 나와 상원이를 앉혀놓고 나에게 제가 상원이의 이런 이런 점을 말씀드렸죠라며 동의를 구하신다. 상원이에게 담임선생님이 상원이에 대해 아는 것은 당연한 것이라며 설명해주신다. 상담선생님과 상원이를 남겨주고 나는 다시 교무실로 왔는데, 도대체 무슨 일일까 궁금하기만하다. 다음 수업 종이 울리니 상원이가 복도쪽에서 상담실을 나와 교실로 가는 것이 보인다. 상원이가 교실로 사라지자 상담선생님을 찾아가 자초지종을 들었다. 내가 자기 엄마와 통화하는 것을 안 상원이가 상담선생님을 찾아와 도대체 담임선생님이 나에 대해서 엄마에게 무엇이라고 말하는지 알아야겠으니 상담선생님께 엄마와 담임선생님께 물어봐서 알아내 달라며 부탁을 했다는 것이다. 완전 헉!이다. 담임이 학부모와 전화통화를 하는 것도 학생 눈치를 보면서 해야하나하는 생각이 들면서 참 이 녀석도 피곤하게 산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도 엄마에게 잘 보이고 싶은 마음이 큰 모양이었다. 내가 엄마에게 자신에 대해 나쁘게 말할까봐 겁이 났던 게다.

상담선생님께서는 나에게 상원이에 대해서 신경을 쓰지 말라고 하셨다. 상원이는 관심받기 위해 여러 가지 생활을 하는데 관심을 보이면 그 행동이 더욱 두드러질 것이고, 엄마에게 내가 말을 전할까 두려워하니 먼저 관심을 보이기보다는 상원이가 필요해서 손을 내밀 때 응하는 것이 낫다고 하셨다. 고맙게도 상담선생님은 나대신 그런 상원이의 말을 다 들어주시고 학교생활을 조언해주셨다. 그 뒤로 몇 달을 상원이는 점심시간 마다 상담실에 가서 상담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학기 초라 친구가 없는데 자신이 먼저 다가가서 친구를 만들기에는 자신이 없으니 자기 속내를 이야기할 공간이 필요했던 모양이다.

그렇게 상담선생님께 상원이를 맡겨놓고 몇 달이 흘렀다. 상원이가 오해를 할까봐 먼저 이것저것 물어보지도 못하고 조회시간에 점심을 먹을 때 수업시간에 상원이의 기분을 살펴볼 수밖에 없었다. 어느새 상원이의 틱하는 행동은 사라져갔고 휴대폰으로 엄마와 통화를 하겠다는 일도 거의 없어졌다. 사실 그 뒤로 몇 번 상원이가 엄마와 통화하겠다고 휴대폰을 달라고 했는데 전화를 해도 일부러 어머니는 받지 않으시는 것 같았다. 상원이도 엄마가 바쁘신데 네가 계속 전화를 하면 일을 못하시니 가급적이면 전화를 자제하는 것이 좋겠다고 말했더니 그것을 이해한 모양이었다. 특히 가을에 수련회를 가서는 상원이가 참 많이 좋아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친구들과 이야기하면서 잘 웃고 떠드는 모습이 정말 대견스러웠다. 그 뒤로도 교실이나 복도에서 단짝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뛰어노는 모습을 볼 때면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이렇게 잘 놀고 적응할 것을 학기초에 괜시리 마음 조렸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문득 떠올려보니 상원이는 어린시절의 내 모습과 다를 바가 없었다. 나는 유치원에 가는 것이 두려워 유치원 버스가 올 때쯤이면 엄마에게 화장실을 가고 싶다며 사라져 버리고 가기 싫다고 울었다. 그럴 때면 엄마는 나를 달래서 유치원버스에 간신히 태웠다. 그렇게 거의 매일 엄마와 떨어지기 싫어하는 나를 유치원에 무사히 보내는 것이 엄마의 하루 일과였다. 엄마는 불평없이 내가 유치원 버스가 오기 직전에 화장실 가는 버릇을 고쳐주려고 노력했고 나는 1년이 되어갈 무렵 화장실을 가지 않고도 유치원 버스를 탈 수 있게 되었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것을 두려워하는 증상이 있어서인지 공부에 집중을 못해 상원이는 기초학력이 많이 부족하다. 하지만 성악가인 아빠를 참 자랑스럽게 여기는 상원이는 커서 아빠 같은 음악가가 되고 싶다고 피아노를 배운다. 요즘엔 그림을 그리는 것도 재미있다며 화가가 되고 싶다고도 한다. 아마도 감성적으로 풍부해 예술가가 상원이에게 딱 맞는 옷일지도 모르겠다. 상원이가 무엇을 하든 겪어보기도 전에 세상을 겁낼 필요는 없다고 무엇이든 경험하고 자신이 원하는 삶을 디자인해 나아가라고 말해주고 싶다.

잠시 학교를 떠나는 나에게 엊그제 상원이가 미리 보내준 크리스마스 기념 편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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