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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2월 2일 23시 55분 등록

 

석봉씨, 언제 석봉토스트 만들었어? 투잡하는 거야?”

 

2002년 전후였던 것 같다. 같이 일하는 동료 중 배석봉이라는 이름을 가진 이가 있었다. 어디에선가 <석봉토스트>를 보고 농담조로 그에게 말을 건넸다. 다소 촌스럽지만 입에 붙는 브랜드였다. 석봉토스트를 먹은 적은 없지만 브랜드는 기억에 남았다. 십 수년이 지나 석봉토스트의 김석봉 대표를 만나 그가 직접 건네준 토스트를 먹을 줄은 생각도 못했다. 그렇게 인연의 실은 시간을 두고 천천히 짜여졌다.

 

2월의 첫 날, 그를 만났다. 시간이 부족하니 차량 인터뷰를 하기로 했다. 차에 타니 여러 재료 냄새가 가득하다. 그에게는 현장의 냄새, 생활의 냄새가 배어 있다. 머리카락에도 주름에도 토스트 냄새가 배어 있는 것만 같다. 주차장을 나서는데 경비 보시는 분이 진심을 담아 인사를 한다.

 

대표님, 토스트 잘 먹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솔잎을 먹고 살아야지"

 

인생에서 가장 빛나야 할 청춘 시절. 하지만 그에게는 막막한 미래와 출구가 보이지 않는 어두움만 있었다. 가난해서 배우지 못했던 그에게 꿈을 꾼다는 것은 사치였다. ‘그래, 솔잎을 먹고 살아야지라는 말이 그의 주문일 뿐이었다. 그러던 그가 이렇게 살 수는 없다. 솔잎이 아니라 나도 꿈을 먹고 살자는 마음을 품고 거리에 나온다. 1997, 그의 나이 40. 수중의 돈 230만원으로 폐차 직전의 중고 스낵카를 사서 토스트 가게를 연다. 3년만에 1억 매출을 올리는 토스트맨으로 사람들에게 회자 된다. 소위 뜬 것이다.

 

그 날 팔고 남은 토스트는 근처 공원으로 찾아가 노숙인들에게 제공했다. 그의 미소와 말투, 공손한 태도를 볼 때 비록 남은 토스트일지라도 받는 이는 선물을 받는 느낌이었을 것이다. 매출은 1억일지라도 기본 생활비를 제한 모든 것은 어려운 이웃을 위해 쓴 까닭에 그의 통장 잔액은 언제나 아슬아슬했다. 언젠가 아빠, 1억 번다면서 우리는 왜 새 신발을 살 수 없어요?”라는 아들의 말이 그의 마음에 남았다.


"신이여, 나에게 시간을 선물해주신다면"

 

그러던 어느 날, 느닷없이 위암 진단을 받는다. 병원과 집 사이가 가까웠음에도 5시간을 거리에서 배회하던 그. 토스트맨의 1억 신화가 신문지상에 도배되다시피 할 때였다. 본인의 기사가 낯설게 느껴졌으리라. 위암 진단을 받은 1억 신화의 주인공. 위암 진단을 받은 당시, 3형제는 각각 초등학교 6학년, 5학년, 7살이었고 아내는 임신 8개월이었다.

 

아내에게 말을 꺼내야 하는데 아내의 부른 배를 보며 도저히 입을 뗄 수가 없었다고 한다. 통장 잔고는 얼마 남아 있지 않았다.

 

“5년간 벌었는데 통장 잔고가 그렇게 없을 수가 있어요?” 내가 물었다.

생활비를 제하고는 다 기부했으니까요.”

 

대박신화의 주인공은 그렇게 무너지는 것 같았다.

 

14년이 흘렀다. 혹시 가발인가 싶어 조심스레 여쭤보니 놀랍게도 본인의 머리카락이라 한다. 풍성한 머리카락, 기분 좋아지는 표정, 힘 있는 악수. 정신적으로도 신체적으로도 매우 건강한 모습이다. 암 진단 받았을 당시 아직 엄마의 뱃속에 있었던 아이는 고등학생이 되었다. 석봉토스트는 200여개의 가맹점을 가지고 있다. 대박에서 쪽박의 문턱으로, 다시 대박으로 이어진 이 변화와 기적의 비밀은 뭘까. 나는 그를 보며 주역의 산지박괘(山地剝卦)’가 떠올랐다.

 

 산지박.jpg

산지박은 위에는 산(, ), 아래는 땅(, )을 상징하는 괘로 이루어져 있다. ()은 벗기다, 깎다, 허물다의 뜻이 있다. 풍상을 맞으며 서서히 산이 깎여 경사를 타고 흘러 흙이 되는 모습을 그려보자. 커다란 재앙은 단 하나의 커다란 사건으로 유발되는 것이 아니다. 작은 사건들의 연속이 산을 무너지게 한다.

 

산지박은 절망의 괘이다. 괘의 이미지를 보면 맨 위를 제외하고는 음의 기운으로 가득 차 있다. 하지만 이 절망의 괘를 희망으로 바꿔주는 것이 바로 꼭대기에 놓인 양의 기운임에 주목하자. 우리는 그것을 희망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도저히 일이 풀리지 않을 때 모든 것을 놓아버리고 싶을 때조차 놓지 말아야 할 그 무엇.

 

"절망을 희망으로 만드는 주문 석과불식, 씨과실은 먹지 말라"

 

산지박괘에는 다음과 같은 말이 있다.

 

碩果不食 君子得輿 小人剝廬 석과불식 군자득여 소인박려


석과(碩果)’는 종자 또는 씨과실을 말한다. 복숭아처럼 중심에 단단하게 박혀 있는 씨앗을 품고 있는 과일을 씨과실이라 한다. 씨과실을 먹지 않으면군자는 수레를 얻고, (씨과실을 먹는) 소인은 오두막마저 잃는다로 해석할 수 있다. 씨과실은 음으로 가득한 진퇴양난의 시기에 앞으로 나아갈 빛이 되는 희망의 씨앗이다.

 

다시 김석봉 대표의 이야기로 돌아온다. 암 진단을 받은 아빠와 곧 태어날 뱃속의 아이. 괘상에서 볼 수 있듯이 5개의 음과 1개의 양으로 표현되는 상황이다. 이미 3형제의 엄마였기에 아내는 임신을 알게 되었을 때 출산을 망설였다고 한다. 낳기로 어렵게 결정하고 출산을 얼마 남겨두지 않았을 때 들은 남편의 암 진단 앞에 얼마나 막막했을까.

 

하나님, 저에게 조금만 더 시간을 주십시오.’ 간절히 기도하며 긍정적으로 투병의 시기를 보낸 김석봉 대표는 지금은 건강을 되찾았다. 현재 200여개 가맹점을 거느린 <석봉토스트>의 대표인 동시에 청소년들에게 시간관리의 중요성을 강의하는 명강사로도 활동 중이다.

  

석봉 플래너.jpg  


돈도 학력도 배경도 없던 그에게 유일하게 공평하게 배분된 신의 선물은 바로 시간이었다. 시간은 가진 것 없는 그가 유일하게 기댈 수 있는 씨과실이었다. 지금의 청소년들만큼은 자신처럼 솔잎을 먹어야지라는 절망적 주문을 하지 않기를, 씨과실마저 갉아먹지 않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을 그는 갖고 있다.

 

청소년에게는 시간관리의 중요성을 이야기 하며 희망을 전도하는 그는 가맹점 점주에게는 또 다른 희망을 이야기 한다. 200여개의 가맹점이 있으나 그는 점주들에게 가맹비를 받지 않는다. 40세에 230만원을 털어 트럭을 샀던 그에게 230만원은 그의 씨과실이었다. 토스트 가게를 시작하는 것이 마지막 희망일 수 있는 예비점주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서다. 그는 그들의 마지막 희망, 그들의 씨과실을 먹지 않기로 한다.  

 

석과불식.jpg


석과불식(碩果不食) – 씨과실은 먹지 말라는 절망의 시기 마지막 남은 희망의 씨앗을 사수해야 한다는 의미만 갖고 있는 것이 아니다. 넉넉하고 풍요로운 시기에도 까치밥처럼 타인을 위해 희망의 씨앗을 남겨놔야 한다.

 

노점을 하던 시절 노숙인들에게 토스트를 나눠주던 김석봉 대표, 성공한 기업인이 되어서도 빌딩 내 수고하는 분들에게 토스트를 일일이 나눠주는 김석봉 대표, 시간관리의 중요성을 청소년들에게 전도하는 김석봉 대표. 가히 석과불식 하는 이 시대의 사업가 군자라 할 수 있겠다.

 

'절망의 괘'를 '희망의 괘'로 바꾼 김석봉 대표, 산지박 괘의 극적인 변화를 삶으로 보여준 그를 보며 앞뒤가 꽉 막힌 어두운 시절이 오게 되더라도 마지막 남은 양의 기운이 있음을 잊지 말고자 한다. (끝) 


석봉토스트.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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