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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2월 24일 21시 53분 등록

가장 에로틱한, 택산함괘(澤山咸卦)


백록담.jpg   택산함괘.jpg


공자가 하도 읽어 가죽으로 맨 책 끈이 3번이나 끊어졌다는 위편삼절(韋編三絶)’ 고사의 주인공 주역(周易). 수명이 허락한다면 더 공부할 수 있었을 터라며 만년의 공자가 아쉬워 마지 않았던 주역. 도대체 주역이 뭐길래 공자는 주역에 매달렸을까.

 

공자의 탄생에서 흥미를 끄는 대목은 공자가 야합(野合)’*에 의해 태어났다는 사기(史記)의 기록이다. 공자의 아버지 숙량흘은 은나라의 무인이었다. 그는 시씨(施氏) 딸과 결혼하여 딸만 아홉을 두었기에 첩을 들여 아들 맹피(孟皮) 낳았으나 다리가 성치 않았다 한다. 하여 당시 16세였던 안징재와 야합(野合)하여 공자를 낳았다. 무인과 무녀** 사이에서 태어난 공자는 ()’으로 천하를 다스리는 인물이 된다.

(* 야합: 부부가 아닌 남녀가 서로 정을 통함/ ** 일설에 의하면 공자의 어머니는 무녀였다고 함) 


이러한 탄생비화를 가진 공자에게 주역의 31번째 괘, <택산함괘(澤山咸卦)>는 어떻게 다가왔을까? <택산함괘>의 아래에는 을 상징하는 간괘(艮卦, )’, 위에는 연못을 상징하는 태괘(兌卦, )’가 있다. 아래는 산과 같은 젊은 남자, 위는 연못 같은 젊은 여자로 보아도 좋다. 아니 그렇게 보는 게 이 괘를 육감적으로 파악하기 더 좋다.

 

백록담이 연상되는 산 위의 연못 형상을 가진 <택산함괘>는 남녀상열지사를 표현한다. 옛 사고방식으로 남자는 하늘이니 위에, 여자는 땅이니 아래에 위치해 있던 것과는 달리 <택산함괘>에서는 남녀의 자리가 뒤바뀌어 있다. 남자가 저자세로 몸을 낮춰 여자를 받들고 있다. 마치 연애시절에는 무엇이든 다 줄 거 같이 공을 들이는 남자의 모습이 보이는 것도 같다.

 

이러한 上澤下艮(산택하건)’의 이미지()는 ‘감응하다’, ‘교감하다’, ‘느끼다’ 등의 뜻을 가진 咸()을 이끌어 낸다. 산 위에 연못이 있으니 교감하고 느낄 지어다. 천지가 교감하여 만물을 낳듯, 남녀의 교감은 인물을 낳는다. 공자 역시 이러한 교감 끝에 나온 인물 아닌가.

 

咸 亨 利貞 取女 吉 함 형 리정 취녀

 

<택산함괘>의 첫 구절이다. 기본 동사는 ()’이다. 따지지 말고 느끼는 것의 미덕을 생각해보자. 남녀 사이에 소위 필이 온다는 것을 주역에서는 ()’으로 표현하였다. ‘은 형통하며(咸 亨) 여자를 취하면 길하다고(取女 吉) 되어 있다.

 

원문에 나와 있는 함기무(咸其拇), 함기비(咸其肥), 함기고(咸其股), 함기매(咸其股)를 보면 무()는 엄지발가락, ()는 장딴지, ()는 넓적다리, ()는 등살로 발가락에서 등살까지 느낌의 대상이 되는 신체적 부위가 점차적으로 올라가고 있다.

 

貞吉悔亡 憧憧往來 朋從爾思 (정길회망 동동왕래 붕종이사)

 

느껴봐()’ 구조가 넓적다리에 왔을 즈음 등장하는 동동왕래 붕종이사(憧憧往來, 朋從爾思)’를 보자. 憧憧은 그리움()으로 동동(動動) 거리는 움직임이 느껴진다. 실제로 그리워할 동이기도 하다. 설레이면 심장이 뛰고 자꾸 찾아가고 싶은 마음이 든다. 서로 필이 동한 두 남녀는 그리움에 오고 가고, 상대방은 나의 뜻(爾思)을 따르게 된다. 서로 마음이 통하는 단계에 이른 것이다.

 

咸其, 無悔 함기매 무회 (그 등살을 느끼니 후회가 없다)

咸其輔頰舌 함기보협설 (그 뺨과 혀를 느낀다)

 

말초적 감각인 발가락에서 시작된 느낌의 대상은 이렇게 혀 끝에서 마무리 된다. 마지막 구절인 함기보협설(咸其輔頰舌)’은 직역하면 그 뺨과 혀를 느낀다는 뜻으로 표현 그대로 육감적으로 받아들여도 되겠지만, 말이 통하는 사이, 대화가 되는 사이, 마음이 통하는 사이로 해석해도 좋다. 이심전심(以心傳心), 염화미소(拈花微笑)의 단계라 하겠다.

 

필이 온다며 꼼지락 대던 발가락은 우린 코드가 맞아하며 뺨을 비비고 마음을 주고 받는 대화로 마무리 된다. 남녀 사이의 사랑은 이렇게 몸과 마음이 함께 반응하고 교감하는 것이며, 이러한 교감에서 또 다른 창조적 에너지가 발생할 여지가 생긴다 


이렇게 <택산함괘>는 젊은 남녀의 육체적 정신적 사랑을 실감나게 표현한 괘로 그저 느끼라는 것, 교감하고 감응하는 것의 미덕을 말하고 있다. ()을 외치는 <택산함괘>는 따지지 말고 오직 느낄 수 있을 때에야 형통하고 그렇게 배우자를 취할 때에 길()할 수 있다고 말한다. 충분히 느끼고 사랑한 추억은 부부로서의 인연을 오래 이어가게 하는 힘이 된다. 조건부 사랑을 찾는 젊은 남녀들이 새기면 좋을 괘라 하겠다. 사랑하는 연인을 눈 앞에 두고 있다면 마음 속에 딱 한 자만 새길 일이다. ()!


<택산함괘 주역 원문>

 

咸 亨 利貞 取女 吉 함 형리정 취녀 길

咸其拇 함기무

咸其肥 凶 居吉 함기비 흉 거 길  

咸其股 執其隨 往吝 함기고 집기수 왕린

貞吉悔亡 憧憧往來 朋從爾思 정길회망 동동왕래 붕종이사

咸其 無悔 함기매 무회

咸其輔頰舌 함기보협설


* 둘이 하나 되는 인생 2막을 시작한 정욱에게 ^^ 2층에 있는 신부를 위해 1층에서 세레나데를 불렀던 그 마음 유지하시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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