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연구원

칼럼

연구원들이

  • 모닝
  • 조회 수 952
  • 댓글 수 4
  • 추천 수 0
2017년 12월 31일 17시 13분 등록

크리스마스의 진실

 

크리스마스날 아침 잠결에 아이들의 환호 소리가 들린다. “이야~~!! 공룡메카드다!! 베이블레이드 좌회전 팽이닷!!” 침대에서 일어나서 아는 척을 할까 하다가 이내 이불을 끌어 당기고 침대 속으로 다시 파고 들어갔다. 아빠로서 올해도 미션을 완수한 뿌듯한 순간이었다. 아이들을 위해 뭔가 큰 일을 해낸 것 같다. 내 할 일을 다 했으니 이제 잠이나 더 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포장을 뜯는 부스럭거리는 소리와 함께 두 아이가 속삭이는 소리가 들린다.

 

형아 근데 산타크로스 할아버지 오늘 온 거 봤어?”

아니 나가는 뒷 모습밖에 못 봤어

. 그냥 가셨구나

 

순간 웃음이 나오면서 저런 뻥쟁이첫째의 어처구니 없는 거짓말이 우습기도 하고 창의적이란 생각이 든다. 그러면서 든 생각은 첫째가 아직도 산타크로스 할아버지를 믿고 있을까? 였다. 솔직하게 물어본 적은 없으니 정확히는 모르겠다. 초등학교 2학년이니까 아마도 없는 것을 대충은 알고 있지 않을까? 싶다. 많은 아이들이 어렴풋이 산타크로스 할아버지에 대해서 의심하기 시작하면서 어느 순간 자연스럽게 허구라는 진실을 알게 된다. 산타크로스 할아버지에 대한 진실은 어쩌면 아이가 살아가게 되면서 이 사회가 만들어 놓은 허구적 이미지, 상징체계에 첫 발을 들여 놓은 순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흡사 영화 메트릭스의 주인공 네오가 망설이다가 빨간약을 집어 들고 진실의 세계를 보았을 때와 같은 충격을 받는다고 생각한다.

 

내가 산타크로스 할아버지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7살 때였다. 당시 유치원을 다니던 나는 산타크로스 할어버지에게 받고 싶은 선물을 적어내라는 선생님의 말씀에 당시 유행하던 마징가젯트 로보트를 받고 싶다고 적어냈다. 그런데 부푼 기대감 속에 크리스마스 아침에 내가 받아 든 선물은 로보트 중간에 이상한 소리가 나면서 불빛이 나오는 근본을 알 수 없는 로보트였다. 크게 실망한 나는 울음을 터트렸고 다음날 아침 유치원에 가자 마자 선생님에게 산타크로스 할아버지가 착각을 하신 것 같다고 선물이 잘 못 왔다고 말씀드렸다. 그러자 선생님께서는 너무나도 건조하면서 사무적인 표정으로 약간 짜증을 내시면서 

 

그건 엄마한테 가서 이야기해야지~! 왜 선생님한테 이야기하니? 어머니께서 해결해 주실꺼야

 

그 순간 나는 큰 충격을 받았다. 그러면서 머리 속에서 그 동안 품었던 의심의 순간들이 조각난 퍼즐 조각들이 맞춰지면서 하나의 그림이 되듯   비로소 이해가 되기 시작하였다. “그래 그때 그래서 엄마가 혼자 나가셨구나. 그때 사 오신 후 만지지도 못하게 했던 이상한 포장 속 물건이 내 선물이었구나! 산타크로스 할아버지는 안 계신 거였어!!! 맙소사~! 엄마가 산타크로스 할아버지라니!”

 

내 어린 동심이 깨지는 순간이었고 무엇인가 믿었던 것에 대한 깊은 배신감을 느꼈던 순간이었다. 하지만 역으로 내 스스로 이제 난 아이가 아니고 곧 초등학생이 될 학생이라는 자부심을 스스로 느끼면서 어른들 세계의 비밀을 엿 본 듯 약간은 뿌듯한 마음까지 들었던 기억도 난다. 어찌되었건 나는 이제는 내가 어렴풋이 느끼고 만 있었던 새로운 세계로 처음 발을 내 딛는 듯한 기분이었다.

우리 사회는 많은 신화와 동화로 이루어져 있다. 그 동화와 신화가 때론 긍정적인 측면으로 작용을 할 때도 있고 사람들을 속이는 나쁜 역할을 하는 것도 있을 것이다. 그 중 현실 속에서 우리의 꿈과 소망을 담아낸 것이 이미지화 되어 모두가 믿고 싶은 또는 상업적으로 이용하기 좋은 것들이 우리 삶 속에서 아름다운 동화로 남아서 작용을 한다. 모두가 거짓인 줄 알지만 그 이야기 속으로 기꺼이 빠져든다. 아마도 산타크로스 할아버지는 그 중 하나이면서 대표적인 것일 것이다. 특히나 그 대상이 어린아이들이나 보니 이 동화에 대해서 처음부터 이건 거짓말인데 일단 들어보렴. 그리고 믿으면 내가 크리스마스때 선물줄께!” 이렇게 이야기하는 부모는 아무도 없다.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동화 속에 빠져들게 하고 또 시나브로 어느 순간 빠져 나와서 어른들의 세계로 들어오도록 해 준다.

 

생각해보니 전날 큰 애 역시 산타크로스 할아버지가 우리 집 비밀번호를 아느냐고 물어봤던 기억이 난다. 그 질문은 과연 어떤 의미였을까? 큰 애는 이미 비밀을 알아버린 것일까? 그래서 나를 혹시 떠 본 것은 아닐까? 아니면 아직도 그 세계 속에 있는 것일까?


IMG_0398.JPG






IP *.162.99.11

프로필 이미지
2018.01.01 23:17:09 *.18.218.234

으아~ 그 선생님 정말 너무했다! 동심이 쨍그랑 깨지는 소리가 들리는 거 같아요 ㅡㅜ 

글 재미 & 의미있게 읽었어요. 


모닝은 <사랑꾼 아빠의 육아일기>같은 글을 써도 어울릴 거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예전 슈퍼맨도 그랬고, 제주 한달살이 글도 그랬고, 유언장에서 부인 이야기를 할 때도 그랬고. 잔잔하니 좋더만요.


가족이 되었건 일(미디어 기업)이 되었건 모닝 특유의 문체와 메시지가 담긴 글 기대합니다. 

2018년도 사랑으로 넘치시길~~ *^^* 

 

프로필 이미지
2018.01.04 18:27:29 *.129.240.30

사실 내 주위에서 보이는 그리고 느끼는 거에 대해서 글을 쓰다보니 가족에 대한 내용이 많이 담기게 되는거 같네요 ^^; 다른 시기였다면 아마도 다른 글을 썼을 듯..

그러고보면 다 때가 있는 듯 싶네요 ^^

프로필 이미지
2018.01.03 06:45:38 *.106.204.231

형님의  가족사랑을 옆에서 지켜 보면서 나는 아직 멀었다는 걸 절실히 느낍니다. 글을 쓰고 싶어도 고민하는 형의 내면의 모습이 떠올라

가슴이 아립니다. 차라리 다음 오프수업때는 형님의 고민을 털어놓으세요. 정답은 아니지만 뭔가 실마리가 나올수도 있을테니까요.

2018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프로필 이미지
2018.01.04 18:28:44 *.129.240.30

음.. 내가 쓰고 싶은 글을 아직은 능력이 안되어서 못 쓰는거? ㅋ

뭐 내면을 더 채워야 쓸 수 있지 않을까 싶음.


하고 싶은 말은 많으나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할지 모르는 ^^

덧글 입력박스
유동형 덧글모듈

VR Left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4872 어떤 사장이 될 것인가 [3] 송의섭 2018.01.01 937
» 크리스마스의 진실 file [4] 모닝 2017.12.31 952
4870 칼럼 #30 피해자 부모가 해야 할 일과 해서는 안 되는 일(정승훈) [3] 정승훈 2017.12.30 948
4869 (리아의 주역 에세이) 때를 보는 도사림, 지택림(地澤臨) file [7] 보따리아 2017.12.28 2177
4868 #29 크리스마스와 고백_이수정 알로하 2017.12.25 949
4867 <뚱냥이칼럼 #28> 다시 시작 [1] 뚱냥이 2017.12.25 986
4866 우리의 삶이 길을 걷는 여정과 많이 닮아 있습니다 file 송의섭 2017.12.25 932
4865 결혼도 계약이다 (이정학) file [2] 모닝 2017.12.25 934
4864 #29. 입대의 두려움 [1] ggumdream 2017.12.25 939
4863 (리아의 주역 에세이) 가장 에로틱한, 택산함괘(澤山咸卦) file 보따리아 2017.12.24 2162
4862 칼럼 #29 부모라 힘들어요 (정승훈) 정승훈 2017.12.23 934
4861 #28. 군(軍)과 두려움 [1] ggumdream 2017.12.18 940
4860 #28. 월요일 아침의 희망_이수정 [1] 알로하 2017.12.18 943
4859 #28 아름다운 금문교의 유혹(이정학) file [2] 모닝 2017.12.18 940
4858 <뚱냥이칼럼 #27> 내가 하는 모든 일은 밥이다 [1] 뚱냥이 2017.12.18 951
4857 경험과 일과 자유가 사랑이 되시길... file [1] 송의섭 2017.12.18 933
4856 칼럼 #28) 하고 싶은 이야기가 생각나지 않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 (윤정욱) [1] 윤정욱 2017.12.18 976
4855 (리아의 주역 에세이) 한국인 팔자엔 주역이 있다. file [2] 보따리아 2017.12.17 949
4854 [칼럼#28] 이게 성폭력이래요 (정승훈) file [2] 정승훈 2017.12.16 1001
4853 12월 오프수업 후기 ggumdream 2017.12.12 9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