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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2월 2일 13시 25분 등록

치유의 포대기를 만드는 쌍둥이 아빠, 여울돌 박봉진 대표

 

가난해 봤고 아파 봤기 때문에 가난하고 아픈 사람들을 도와야 한다는 생각은 늘 마음 한 구석에 존재해왔다. 마음 속 여유에 경제적 여유가 보태지자 후원이라는 행동으로 즉각 움직일 수 있었던 것은 이런 마음 속 여유가 먼저 자리잡은 까닭이었다. 큰 조직을 통한 자동이체후원도 의미 있지만 이왕이면 후원대상자와 직접 교류하며 후원금 이외의 것도 함께 살뜰하게 챙기고 싶었다. 하지만 그런 관계맺음은 불필요한 오해를 낳기도 했고, 불편한 진실과 마주하게 하기도 했다. 가난함=선함이 아니라는 것도 알게 되었고 측은지심을 이용하는 마음들을 보는 것도 싫은 마음이 들었다. 의도치 않은 상처를 받게 되기도 하고 내가 무슨 봉이야?라는 생각을 하게 되어 '내년에는  모든 후원을 끊고 쓸데없는 오지랖 부리지 않겠다고 다짐하던 차였다. 공교롭게도 그 다짐을 한 날 여울돌 박봉진 대표와 연락이 닿았고, 나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더한 갈등상황을 마주했을 그를 만나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희귀난치질환 아동 후원단체인 <여울돌> 박봉진 대표와의 인연은 201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방송을 통해 이영양성 수포성 표피박리증이라는 희귀난치질환을 겪고 있는 현아의 사연을 알게 되었고, 현아 엄마 연락처를 알기 위해 여울돌에 문의를 한 것이다. 그 후로 5년간 여울돌과 인연을 맺으며 현아를 포함한 희귀난치질환 아이들의 후원자로 활동하였음에도 지난 주에야 박봉진 대표를 처음으로 만나게 되었다. 5년간 문자와 통화, SNS를 통해 소통을 한 덕인지 첫 만남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친숙하고 편안했다. 그는 나와 동갑인 1974년으로 44, 아직 어린 쌍둥이 남매의 아빠였다.

 

4천명 중 1명꼴로 진단된다는 망막색소변성증’ - 점점 실명하는 유전성 질환으로 개그맨 이동우가 앓고 있는 질환 - 이라는 희귀질환을 갖고 삼형제 중 둘째로 태어난 그는 어려운 가정형편으로 서울공고에 진학한다. 희귀질환이라는 신체적 제한과 공부를 좋아하고 잘함에도 공고에 진학해야 하는 상황은 성장기의 그에게 방황의 그림자를 드리웠을 법하다. 그러나 그는 크리스찬이 됨으로써 마음의 그림자 속에서 빛을 찾고, 더 나아가 세상에 빛이 되는 삶을 살게 되었다. 

 

여울돌의 씨앗은 2002 29살 무렵 <병원 24>에서 원경이의 사연을 접하고 난 후였다. 당시 고등학교 2학년 학생이 만든 <힘내라 원경아> 카페의 운영을 도왔던 것을 인연으로 현재의 여울돌이 만들어진다. 여울돌을 만든 이유는 원경이처럼 예쁘지 않아도사랑 받고 후원 받을 수 있는 아이들을 품기 위함이었다고 한다. 

 

매년 3-4명의 희귀난치질환 아이들을 후원아동으로 선정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목표죠."

 

기업은 전년대비 매출증대를 꾀한다면 여울돌은 매년 3-5명의 아이들을 품는 것을 목표로 한다는 것이 색다르게 다가왔다. 후원아동으로 선정되면 아이가 (무사히) 어른이 될 때까지 지속적인 후원을 하고, 만 18세가 되는 해 '어른으로서' 여울돌을 졸업’하게 된다. 

 

이렇게 여울돌을 졸업한 아이들이 5명이 되요.”

 

실례지만 하늘 나라로 간 아이들은 몇 명 정도 되나요?”

 

“…8명입니다.”

 

여울돌 아이들은 하늘나라로 가서 천사가 되거나 졸업을 하여 어른이 된다. 여울돌은 아이가 어른이 될 때까지 머무를 수 있는 물질적면서도 정신적인 따듯한 둥지가 되는 셈이다.  

 

후원사업을 오래 하다 보면 실망스러운 모습도 보지 않아요? 저는 요새 관두고 싶은 마음이 들어서요

 

실망스럽고 서운한 일도 물론 겪게 되죠. 돈이 사람을 변하게 하는 과정을 봐왔고, 감사함을 잃는 순간 사람은 변하게 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저희는 후원가정 선정 시 마인드를 먼저 봅니다. 경제사정이 좋다고 후원대상에서 제외하는 것이 아니예요. 아픈 아이를 잘 키우겠다는 후원가정의 자생력과 자립의지가 중요합니다. 저는 그 점에 언제나 유의하려고 해요. 후원이 자생력을 망치지 않게요.”

 

후원단체를 운영하면서 명예욕이 생기거나 그러진 않으세요? 저는 왼손이 하는 걸 오른손이 알았으면 좋겠던데요. 좋은 일 하는 걸 드러내고 싶진 않으세요?”

 

저는 말씀 드렸듯이 크리스찬이고 여울돌 활동은 저에게는 봉사라기보다는 일종의 사역이라서요. 사람들과 교감하며 느끼는 만족감이 저에게는 행복의 원천이 됩니다. 충분히 보상 받고 있습니다.”

 

가장으로서 생계도 중요할 터인데 밥벌이는 어찌 하시는지 궁금했다. 박봉진 대표는 일자리를 구함에 있어서 여울돌 활동 병행을 배려해 줄 수 있는 회사를 우선순위로 했다고 한다. 그렇게 유아용품 회사인 <도담아이>와 인연이 되었다. <여울돌>은 사역과 봉사의 일환으로, <도담아이>는 밥벌이로서의 일자리인데 교집합으로 '아이'가 있다. 실제 쌍둥이 아빠이기도 한 박대표님은 '봉사로서의 여울돌'과 '밥벌이로서의 도담아이'가 또 다른 의미에서의 쌍둥이 자녀들처럼 여겨졌다.

 

양해를 구하고 대표님의 사진을 찍으려니 그의 등 뒤 마네킹에 걸린 포대기가 새삼 시선 안에 훅 들어온다. 마치 '밥벌이로서의 도담아이'와 '봉사로서의 여울돌'을 사랑과 공감의 끈으로 단단하게 묶고 있는 그의 삶을 상징하는 것 같다. 건강한 아이도 아픈 아이도 함께 끌어안는 그는 봉사와 밥벌이라는 투잡을 능히 해내고 있으니 오지랖도 이런 오지랖이 없다. 그의 삶 앞에서 다소 무안해 하는 나에게 그가 한마디를 던진다. 

 

물론 리아씨의 고민도 충분히 이해갑니다. 가끔 내가 뭐하고 있나하며 덧없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겠지만 어차피 인생은 덧없는 건데요. 다만 한 사람이라도 가치 있게 봐주는 사람이 있다면 의미가 드러나는 거구요. 혼자가 아니기에 의미 있는 것이 삶이고, 리아씨는 이미 누군가에게 그 의미를 주고 있쟎아요. 물론 회의가 들 때엔 잠시 후원활동을 접는 것도 좋습니다.”

 

오지랖은 옷의 앞자락을 말한다. 내 몸 하나 잘 덮으면 되었지, 넓은 앞자락으로 다른 사람까지 덮을 필요가 있을까 고민했다. 하지만 포대기를 만들어 남의 아이를 덮는 것도 부족해 끌어 안기까지 하는 남자 앞에서 구겨 접은 내 오지랖에 자꾸만 손이 간다. 펼칠락 말락. 언젠가 또 후회하고 인생무상을 외치는 날이 올지라도 서운함은 잊고 나눔의 의미만 새기는 것이 오지랖 팔자의 미덕이렸다. 힘든 이웃에게는 몸도 마음도 춥고 서러운 12월이다. 마음의 오지랖을 한껏 펄럭이며 이웃들의 추운 마음을 덮어주자. ()


여울돌2.jpg 여울돌.jpg


* 사진 속 제품은 '힙시트'라고 합니다만 편의상 포대기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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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04 13:31:13 *.106.204.231

웃는 모습이 정말 아름답네요. 이런게 진정한 사회적 공헌이네요.

이렇게 어려운 일을 실행에 옮기는 대표님이나 후원하는 누나나 대단하시네요. 복 많이 받으실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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