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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4월 8일 12시 23분 등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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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원 입학 여행지는 탁 트인 바다와 송림에 둘러싸인 강릉 여성 수련원이라고 했다. 소풍 가는 아이마냥 들뜬 기분으로 이른 아침에 집을 나왔다.

 

출발인사로 카톡을 하다가 대곡역에서 엘리스님을 만나 동행했다. 30분이나 일찍 버스가 기다리는 압구정역 주차장에 도착한 탓에 아무도 없고 버스는 문이 닿쳐 있었다. 빨갛고 멋진 리더스여행사의 변경연 버스는 내가 두드리자 신기하게도 삐삐 소리를 내며 문이 저절로 열렸다. 아마도우리를 배려한 기사님이 자동 설정해 둔 것 같았다.

 

조금 기다리려니 고려해운에 근무한다는 9기 김대수님이 김밥을 한아름 안고 걸어온다. 이번 여행을 책임지고 기획한 사람이다. 훤칠한 키에 잘생긴 호남형이다. 그는 생수를 사러 가고, 나는 김밥을 먹고 나니 커피생각이 간절하여 커피점을 찾아 길을 나섰다. 커피를 꾸러미로 주문하여 오던 중 오병곤님과 문요한님을 만났다. 다들 커피를 한 잔식 손에 들고 있었다. 모두 밥보다 커피를 더 좋아하는 듯하다. 쌀쌀한 주차장에서 커피를 마시며 웃고 떠드는 사이 연구원들이 속속 도착한다. 처음 뵙는 분과는 악수하며 통성명하고 다시 보는 반가운 얼굴과는 포옹하며 연구원식 인사를 주고받았다.

 

죽전에서 나머지 몇 명의 연구원이 마저 승차하자 바로 자기소개와 근황을 이야기한다. 한 분 한 분 사진을 찍고 프로필을 메모했다. 연구원들의 면면을 익히는 장소로서는 이런 버스 안이 최적이었다. 뒷자리부터 자기 소개를 해오는데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생각하다가 10기 소개 자료에 올린 짧은 멘트를 하기로 했다. 이런 류의 자기소개는 짧을수록 좋다. 자기에 대한 너무 많은 이야기를 하려다 보면 임펙트가 약해져 자기를 선명하게 전달하는데 오히려 실패하기 십상이다.

 

반면에 유머나 노래 같은 청중에게 즐거움을 선사하는 것은 필수적일 듯…… 그런 면에서 해언님의 프로를 방불케 하는 노래로 포문을 연 것은 시의적절한 공헌이었다. 뒤이어 녕~, 찰나, 종종걸음님들의 노래도 수준급이었으니 데카상스의 노는 수준을 청중들은 한눈에 알아보았을 것이다.

 

특히, 양재우(저서: 불황을 이기는 월급의 경제학), 박중환(저서: 보험인을 위한 VIP마케팅의 필살기), 4기 선배님들의 책 출간 후 소감은 최고의 멘토링이 되었다. 책을 출간해도 뭐 달라진 게 없더라. 인세랄 것도 없고, 강연의뢰 전무하더라. 하지만 단 하나, 자신이 변했다.” , 첫술부터 배부르겠는가, 그리고 우리가 목표로 한 것은 바로 자신의 변화 아니던가?  책 쓰기를 통한 자기혁명” 젯밥보다 본연의 제사에 치중하자는 게 우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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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태산 자연휴양림에서의 산책은 탁월한 선택이었다. 불과 얼마 전에 폭설이 있은 듯 숲길이 환상의 눈꽃 핀 겨울풍경을 연출하고 있었다. 덕분에 나는 나를 사모하는(?) 여성들의 눈 테러 표적이 되고 말았다. 갑자기 내 목덜미 속으로 차가운 눈덩이가 밀고 들어왔다. 앨리스의 1차 테러였다. 그녀와 3호선 대곡역부터 동행한 터라 다소 정이 들었던 터라 이해가 갔다. 그런데 1차테러의 뒷수습을 하기도 전에 써니의 2차테러의 도발이 감행되었다. 핵탄두 미사일급의 막대한 눈폭탄이 속옷을 파고 들었다. 근데 써니가 누군가? 버스에서 우연히 통로를 사이에 두고 나란히 앉아서 두어 시간 함께 온 사이(?), 처음 보는 선배라 아부한다고 과자까지 한 봉지 선물했는데…… 은혜를 원수로 갚다니! 다행히 나의 호프, 왕참치님이 뒤수습을 해 주셨다. 님의 잽싼 도움으로 몸으로 들어온 눈이 온 등판을 눈물로 적시는 것은 막을 수 있었다. 병 주고 약준 사람들이 모두 여인들이니 내 어찌 이 여인들을 미워할 수 있을 것인가!

 

진부에 있는 부일식당 산채비빔밥집(335-7232)은 점심을 먹기에 최적의 장소였다. 해언님이 그랬다. 이 집은 아버지와 자주 들렀던 곳이라고. 그러니 선생님의 까다로운 미식테스트를 거친 집이란 것만으로도 변경연의 맛집으로 등록할 가치가 충분하다고 생각된다. 더욱이 산길을 충분히 걸린 뒤 늦은 1시 반에 점심을 먹이는 여행 기획자의 전략도 탁월했다. 모름지기 최고의 찬은 시장기 이니 뭘 아는 사람임에 분명하다. 가는 비 흩날리는 음습한 날에 가마솥 장작불 내음은 벌써 침샘을 자극한다. 함께 제공된 메밀막걸리는 각종 오대산 산나물 꾸러미의 산채나물과 절묘한 궁합을 연출했다.

 

10기 연구원 첫 수업, 장례식은 완벽한 세팅이었다. 촛불로 원을 그리고, 향을 피우고, 하얀 국화 꽃다발도 함께 놓였다. 이 가운데서 불을 끄고 각자 준비한 유언장을 낭독한다. 단번에 완벽하게 죽이기 위하여 우리 웨버와 총무가 무진 고생을 했음을 단박에 알 수 있었다. 아니나 다르랴, 7인의 데카상스 귀부인들은 한결같이 흐느끼며 죽음을 실감하는 것 같았다. 참으로 감정이입의 귀재들이었다. 유일하게 구달 만이 관동별곡 읊듯이 유장하게 놀자판을 연출하여 아직도 죽음이 뭔지 모르는 하룻강아지의 순진함을 만천하에 드러냈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천성이 그리 생겨먹은 것을!

 

첫 수업을 자기 장례식으로 시작하는 것은 심오한 뜻이 있었다. 죽음을 경험함으로써 새 삶을 살자는 것이다. 죽었다가 살아났으니 어제와는 결별하고 완전 다른 존재로서의 삶을 다시 시작한다는 깊은 상징성이 있는 의례인 것이다. 하여튼 천우신조로 다시 살아났으니 이제 나는 삶의 주인이 되어 살아야 한다. 덤으로 얻은 지금 이 순간을 감사하고, 기뻐하며, 치열하게 다 쓰고 가야 할 것이다. 그리고 나에게 주어진 사람들을 더욱 사랑할지니.

 

횟집에서의 저녁 만찬은 그야말로 시작은 있으나 끝이 없는 만찬이었다. 내가 새벽 한시까지 버틴 것이 기적이었다. 평상시 저녁 10시 이전에 잠들어 새벽 4시에 일어나는 것이 습관이 된 나로서는 새벽 동이 틀 때까지 이어지는 변경연의 놀자 문화에 적응하기가 참으로 힘들었다. 기억나는 것이라곤 부산에서 올라오느라고 너무나 피곤해서 앉은 채로 머리를 파묻고 자는 종종걸음님을 한 구석 비교적 조용한 곳에 방석을 깔고 눕힌 것(술 취해도 하는 짓을 보니 천성은 착한 것 같더라는 앨리스님의 후문). 오달자님의 개구진 폼으로 열창하던 모습(틀림없이 김광석의 노래를 불렀을 것이다), 앨리스님의 광란의 무대와 취중 포스. 뭐 이런 것들이 오버랩 되어 흘러갔다. 술자리에서 절제를 배우는 것이 내가 변경연에서 풀어야할 또 하나의 과제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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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해의 해변에 밀려오는 파도는 족히 파도타기 해도 좋을 만큼 웅장했다. 한쪽 끝까지 2~3킬로는 족히 되어 봄직한 백사장을 걷기로 했다. 오죽헌을 가는 대신 바닷가에서 놀도록 한 시간이 주어진 덕분이었다. 산길에서 제대로 못한 점프샷을 위해 또 한번의 유격훈련이 치러졌다. 열 명이 똑같이 보조를 맞추기가 어디 쉬운 일인가. 어제 마신 술을 깨우기 위해서 해변걷기를 제안했는데 동기들이 순순히 따라온다.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었던 탓이다. 그런데 걷는 양태가 1010색이다.  역시 네트워크가 강력한 여자들은 두셋씩 짝을 지어 끊임없이 재잘거리며 잘도 간다. 여자들에 반해 남자들은 모두 고독한 늑대로 각개 약진했다. 데카상스의 사진작가로 변신한 희동이님, 대구서 먼길을 헤쳐오느라 상처뿐인 외로운 예술가 피울님, 물 만난 고기 마냥 홀로 걷기를 즐기는 구달.

 

저만치 가다 보니 유인창 선배님이 모래사장에 오두마니 홀로 앉아 있다. 가까이 근무하고 있어 시내에서 함께 식사도 같이하고 해서 남달리 친근감이 가는 선배님이다. 바쁜 직장생활의 와중에 애써 시간을 할애하여 교육팀을 맡아주시니 고마울 따름이다. 이름 그대로 창같이 날카로운 정문일침에 능하신 분이다. 곁에 앉아 나르는 갈매기를 바라보며 비로소 정착의 평화를 맛본다

 

점심식사 장소로 낙점된 오죽헌 두부집 또한 변경연의 저력을 보여준 명소였다. 오달자님이 강릉에서 몇 달 일할 때 꼬불쳐 두었던 비장의 맛집 카드였다. 난생 처음 맛보는 각종나물과 색깔도 아름다운 두부전골, 거기에 오죽헌막걸리가 찹쌀궁합이었다. 여행에 먹는 재미가 반인데 여행의 멋을 아는 자의 선택이었다.

 

회자정리(會者定離). 우리가 헤어질 때가 왔다. 부산의 종종걸음님과 대구의 피울님을 여기 강릉에서 작별해야 했다. 이에 앞서 행해진 변경연의 인사법, 포옹의 대행진은 내가 여기 와서 체험한 가장 마음에 드는 것 중의 하나다. 단 남자끼리 인사할 땐 좀 느끼한 게 탈이지만. 우리의 웨버 희동이님은 나를 어찌나 세게 끌어 안든지 허리가 부러질 뻔했다. 그의 동기 사랑이 전해지는 대목이다.

 

이 여행을 기획하고 준비하신 김대수님을 비롯한 9 선배님들, 교육팀, 연대 패키지 또 참여하신 여러 선배님들 모두에게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IP *.196.5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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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4.10 08:59:09 *.104.9.186
역시 내공있는 묵직하지만 유쾌한 죽음이었습니다. ^^

& 뵙고 싶었어요.
프로필 이미지
2014.04.10 13:48:24 *.14.90.161

시간이 지날수록 구달의 의미를 알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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