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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4월 10일 11시 57분 등록

D-N: 시도 때도 없이 눈물이 난다. 장례식만 생각하면.

D-3: 초와 초홀더를 사왔다. 장례식에 꼭 필요한 것들이라고 해서. 장례식은 3시간을 한다는데 이 초가 버텨줄지 몰라 나의 유언장을 쓸 겸 테스트해보기로 했다. 오늘따라 술을 마시고 온 남편은 주저리주저리 말이 늘어지게 많다. 모두 다 잠들고 혼자 앉은 시간 01 15. 분위기 잡고 그 동안 마음 속으로 읊조렸던 글을 써내려 간다. 혼자 울고 불고, 한밤중에 청승도 이만하면 풍년이다. 반 페이지를 겨우 넘어갔을 때, 어디선가 정적을 깨는 청아한 소리. “꼬르륵….” 그리고 내려오는 눈꺼풀. 역시 내 삶은 강하다.

D-1: 처음으로 아이의 학교를 갔다. 비전선포식을 한다기에. 돌아오는 길에 기분이 이상했다. 아들이 선포한 것들을 다 볼 수 있는 날까지 살아야 하는데, 그 안에 죽으면? 오늘이 정말 마지막이면? 강릉에서의 장례식이 정말 장례식이 되지 말라는 법도 없지 않은가? 막상 시간이 다가오니 상상의 날개가 펴졌다. 다음날 치러야 하는 장례식 때문에 말과 웃음이 점점 없어졌다.

D-Day: 아무리 상상해도 말문을 막히게 했던 나의 장례식이 가까워오면서 마음이 무거워지기 시작했다. 유언장을 다 써놓고도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혹시라도 마지막일지 모른다는 생각 때문인지 집안의 가구들이 새롭게 보였다. 눈도장을 찍어놓고 싶다는 생각에 늦게까지 앉아 있었다. 마지막을 알 수 있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인사를 하고 갈 수 있기에. 2시쯤 겨우 자리에 누웠는데 자다깨다를 반복하다 새벽녘에야 겨우 잠이 들었다. 분명히 구달님의 카톡소리를 들었건만 좀처럼 눈이 떠지질 않았다. 그러다가 부랴부랴 일어나 준비하고 출발. 전철에서 뛰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겨우 제 시간에 도착했건만 우리의 버스는 보이지 않아 현대백화점을 한 바뀌 돌고 구달님과 통화를 한 후에야 겨우 찾을 수 있었다. 그래서 10분 지각. 10기가 빠졌다는 선배님들의 말씀에 웃음으로 때웠지만 죽으러 가는 날까지 허둥대는 나의 꼴이 영 맘에 들지 않는다.

8:30분에 떠나기로 한 버스는 나보다 늦게 도착하신 선배님들 때문에 9시가 다 되어서야 출발할 수 있었다. 서로 웃고 있었지만 기분이 묘했다. 배가 고파 김밥을 한 가득 밀어 넣으면서도 장례식이 머리에서 떠나질 않는다. 해언은 뒷자리에서 원고를 읽으며 눈물을 훔쳐낸다. 며칠 동안 한껏 올라와 있는 마음 때문에 나도 톡하고 건드리기만 해도 눈물이 쏟아질 것만 같았다. 버스에서 나의 옆자리는 구달님이 채워주셨다. 공식적인 두 번째 만남이지만 참 반가웠다. 배낭 한 가득 먹을 것을 잔뜩 매고 오신 모습 또한 감사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결국은 아들 이야기에서 눈물이 터졌다.

죽전에서 사람들이 타고 어느 정도 요기를 할 수 있는 시간이 지나자 드디어 공포의 마이크 시간이 돌아왔다. 가뜩이나 못하는 노래를 이런 기분으로? 하지만 우리의 해언은 정말 멋졌다. 짧고 간단한 자기 소개와 멋들어진 노래 한가락이 우리 10기의 singer임을 알렸다. 선배님들의 자기소개는 간단하지가 않았다. 인생의 한 부분을 들을 수 있었고, 어찌나 다들 말씀을 잘하시는지 글발에 이어 말발까지 두루두루 갖추신 능력자임을 알 수 있었다. 정말 얌전해 보이시는 선배님도 마이크만 잡으면 그분이 오신 것처럼 청산유수였다. 드디어 내 차례. 나는 언제나 알리고 싶었다. 나의 이야기를. 그래야 진실된 소통이 가능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으므로. 어차피 함께 죽거나 나의 장례식을 보러 오신 분들이 아니던가. 사전 정보를 주어야 나의 죽음을 더 애도하실 것이 아닌가. 이런저런 이야기를 쭉~~~ 늘어놓고 들어와 생각해보니, 나가기 전에 준비한 대부분의 것이 생략되었음을 알게 되었다. 어차피 죽을 건데 치매면 어떠랴!

중간에 내려 맛있는 한식으로 점심을 먹고 산책을 했다. 구달님의 통나무집을 보고 싶었으나 1시간안에 왕복이 무리라 그냥 산길을 걸었다. 4월에 보는 눈은 처음이지만 그런대로 운치 있었다. 여기저기서 연신 카메라 셔터 누르는 소리가 들렸다. 돌아갈 시간쯤 되었을 때, 10기들 점프를 하란다. 하나, , 셋 점프! 몇 번을 뛰었는데 그 동안 무거워진 몸을 느낄 수 있었다.

다시 출발하여 50분쯤 가니 드디어 도착이었다. 아무것도 준비되어 있지 않은 방에 세팅을 하기 시작했다. 피울님과 에움길님은 긴 시간을 오시고도 우리보다 먼저 도착했는데 누구보다도 솔선 수범해서 배치를 하고 토마토를 씻기 시작했다. 이 방에서 잠시 후에 죽겠구나! 곧 사람들이 도착했고 세팅이 완료되자 장례식이 거행되었다.

첫 번째는 역시 해언. 아버지와 만나는 장면이 너무나도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차례대로 나와 유언장을 낭독하는데 어찌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면서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있으랴. 저 마다의 인생은 나름의 무게와 인연으로 얽혀있는데 이것을 단박에 끊어내는 일이 어찌 고통스럽지 않을 수 있으랴. 눈물과 흐느낌의 범벅이 된 장례식은 드디어 내 차례가 되었다. 어제 집에서 몇 번을 읽어 본 것이 얼마나 다행이던가. 읽을 때마다 울음의 포인트가 달랐고, 처음에는 소리 내어 읽는 것 조차도 힘들었다. 하지만 눈물에 내 목소리를 묻고 싶지는 않았다. 이 짧은 시간을 귀하게 써야지. 고맙다는 말과 미안하다는 말과 당부의 말을 큰 소리로 전달했다.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10분은 아주 짧았지만 감사한 시간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한날에 죽은 동기가 되어 저녁을 먹으러 갔다. 부활했는데 어찌 술이 빠질 수 있겠는가. 나는 이 장례식 이야기를 들은 뒤 오늘에 이르기까지 정확히 4년 반이 소요되었다. 그 안에 죽음은 나의 삶 속을 수없이 들락거리며 밀도를 높여주었다. 드디어 온 이날! 나에게는 여러 의미가 있었나 보다. 선배님들께서 주시는 술을 나의 주량을 무시한테 홀짝홀짝 받아 마셨다. 그것도 소주로. 취중에 아이와 남편에게 사랑한다는 문자를 보냈다. 남편은 빨리 집으로 오란다. 아들은 왜지?’ 멋없는 녀석이다. ‘내 아들이니까로 응수했다. 사실 아들에게는 처음으로 한 말이었는데 아들도 당황했을지도 모르겠다. 식당 안의 술을 다 마신 것 같이 붉게 변해버린 나의 얼굴. 점점 힘들어지는 몸이 보이차를 원했다. 그래서 피울님께 이야기했더니 즉시 장비를 꺼내어 끓여주신다. 흥이 나는 시간들을 함께 한 후 우리는 숙소로 갔다.

508호실에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데 나의 눈이 자꾸만 감긴다. 속에서 뭔가 요동을 치려는 조짐이 느껴진다. 주당이라고 소문난 앨리스가 옆에서 자다시피 하니 나도 맘놓고 졸 수 있었다. 누가 나를 깨웠기에 일어났겠지. 장례식 소감을 말하란다. 선배님들께 감사하단 이야기를 하고 앉았다. 기억은 나지만 취한 것이 분명하다. 나의 감격스런 오늘을 그렇게 간단하게 마무리 한 것이 생각할수록 창피하고 아쉬웠다. 그러다가 화장실로 달려가 저녁 내내 먹은 것을 확인하는 작업을 했다. 아까워라. 누군가의 따뜻한 손이 등을 두드려 주니 좋다. 이번에도 해언이었다.

부활+1: 죽는 것도 힘들었는데 부활하기도 힘들다. 머리가 깨질 것처럼 아프고 몸이 몹시 무거웠다. 교감선생님 말씀으로는 밤새 코도 곯았단다. 다시 환생하는 길이 고단하긴 했나 보다. 아침해장을 하고 눈꺼풀과의 전쟁을 치르며 총회를 하고 바닷가를 거닐었다. 시원한 바람과 파랗고 높은 하늘과 오늘따라 유난히 크게 들리는 파도소리를 기억하고 싶었다.

점심을 먹은 후 우리는 1차 안녕을 했다. 그리고는 곯아 떨어졌다. 차가 막혔다는데 나는 눈을 뜨니 서울이었다. 2차 안녕을 하고 에움길님과도 헤어지고 전철로 집으로 갔다. ! 아름다운 것들. 차창 밖의 꽃들이 오늘따라 미모자랑 질이 심하다. 이렇게 아름다운 세상에 살고 있었구나. 집과 가까워지자 가족들을 볼 생각에 마음이 두근거린다.

피곤했지만 나의 장례식 테이프가 자꾸만 재생된다. 그리고 무언가 아쉬운 한 가지. 가족들과는 오늘이 마지막 날인 것처럼을 실천하며 살고 있는데, 그 밖의 내 일상에서는 잉여 되어 버려지는 것들이 많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것을 찾는 것이 장례식의 진정한 의미였구나! 사랑하는 사람들을 더 사랑하고 내 일상도 사랑하는 일, 그래서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진정한 이별을 고할 때 웃으며 떠날 준비를 하는 일, 나의 모든 것을 다 쓰고 가는 일이 내 부활의 이유이며 소명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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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4.10 12:28:18 *.104.9.186

일상으로 돌아오면 어제는 포맷되는 것이 인지 상정아닙니까! ^^

강의장 문을 나서면서 감동의 강연을 다 잊어먹듯이...

그러나 그 느낌은 지울 수 없는 것이지요.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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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4.11 12:58:00 *.94.164.18

저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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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4.10 22:09:56 *.113.77.122

내 유언장 눈물도 추수리기 힘들었는데, 왕참치 사연듣고 다시한번 흑흑....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진정한 이별을 고할 때 웃으며 떠날 준비를 하는 일나의 모든 것을 다 쓰고 가는 일이 내 부활의 이유이며 소명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얘기했듯이 자신의 소명을 다 쓰고 함께 가는 10기가 되자고~~ 화이팅! 

마지막에 눈물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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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4.11 12:57:36 *.94.164.18

언니의 씩씩함이 있어 더 힘이 나요. 항상 같이 화이팅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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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4.11 07:36:01 *.65.152.244

참지 언니~ 죽기 직전에 정말 아름다웠어요~~ 나 포옹 못하는 사람인데... 막 포옹하고 싶어질 정도로....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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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4.11 09:12:21 *.94.164.18

그랬구나! 그래서 그렇게 따뜻하고 좋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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