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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4월 14일 03시 05분 등록

10기 데카상스 첫 수업 : 장례식 후기

 

12일의 면접여행 후 첫 10기 모임을 가졌다. 잠언록 발췌와 10기 선발 후 첫 만남이었다. 평소 낮술과 건달의 풍취를 느끼고 싶었던 나는 살롱9에서 점심 시간부터 동기들과 와인을 마시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분위기를 돋우는 술이었으나 과했던 모양이었다. 만취하여 집에 귀가하였는데 낮술의 위험함을 제대로 느꼈다. 그렇지 않아도 지난 선발과정과 면접 여행 등 범상치 않은 연구원 과정에서 보여주는 특별한 일정들로 인해 당황하고 있던 아내에게 좋은 모습은 아니었던 것 같다.

 

첫 모임 후 1주일 안으로 다가온 총회, 첫 모임의 과음과 12일이라는 일정 때문에 아내는 걱정을 늘어 놓았고 총회 참석에 대해 강력하게 반대를 하고 나섰다. 책을 쓴다는 사람이 왜 맨날 놀러만 다니냐며 불만을 토로 했다. 그리고 집안은 안 돌볼 것이냐며 성화다. 그리고 바로 한 수를 날린다. 총회 가지 마라, 그리고 웨버 하지 마라. 당장에 내가 어찌 할 수 없는 것을 어찌 할 수 있는 대상으로 만들어 버리는 저 능력은 어디서 오는가? 아내의 일관된 이야기는 집안일을 돌보지 않는다는 것과 변경연에 가서 무슨 짓을 하고 다니는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지난 3개월을 평가해 보니 도저히 용납하기 힘든 수준이라는 것이다. 책이고 뭐고 이건 생활이 안 된다며 다소 과격하게 나를 몰아 붙인다.

 

이 순간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무수히 많은 말들이 오간 후에 떠오른 말이다. 이해를 넘어 있는 상황에 이해를 바랄 수 없는 지경에서 무엇을 이야기 할 수 있을까? 결국, 나의 선택의 의미를 이야기 하게 되었다. 내가 왜 이렇게 해야만 하는지를.

 

"나는 지금 다니는 회사에서 나름 잘하고는 있지만 끝이 보인다."

"중요한 것은 회사가 바쁘면 집에 소홀해지고, 그러면 집에서도 냉랭해진다."

"집에서 따뜻한 말한마디 못듣고 회사를 다니다 보면 일에 빠져든다."

"일은 나름 정직해서 열심히 하면 결과가 좋으니 반응이 온다는 것이다"

"결국 회사일에 몰두하느라 가정이 소홀해진다."

"이 굴레를 벗어날 수가 없다. 지금 상태로는 이 굴레를 벗어 던질 수가 없다."

"그래서 나는 그 구렁텅이에 나를 던진 것이다. 그 굴레를 벗어나게 해줄 나의 유일한 희망이다."

"지난 3개월간은 나도 겪어보지 못한 일들의 연속이었고 하나 하나 의미 있는 순간이었다."

"겪어보지 못한 일들을 하다보니 여유가 없었고 몰두하게 되어 다시 가정에 소홀한 면이 있었다."

"앞으로는 해봤으니 좀 났지 않겠나"

"난 말이다. 지금 하고 있는 이 일들이 당신과 지연이와 나를 위해 더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하고 있다."

"약속 하나 할께. 평일은 9시 전에 귀가하고 10시 전에는 나의 일을 하지 않을께"

"지연이 공부를 봐주든 필요한 집안일을 돌보든 이야기를 나누든 맛있는 것을 같이 먹든 내 개인적인 일은 절대 하지 않을께"

"그리고 일요일은 가족과 보낼 수 있도록 절대 어떠한 개인 약속도 만들지 않을께"

그렇게 이야기를 하고 나니 아내도 한번 믿어보는 심정이었는지 늦었으니 자라고 한다. 하지만, 연구원 과제인 잠언록 검토 때문에 잠은 3시까지 자지 못하였다. 총회 참석을 어렵게 합의하게 되었다.

 

"어쩌겠어 죽어도 하겠다는데 어떻게 말려 저러다 죽지나 말라는 거지 어디 가서 술 마시다 객사할까 걱정이다." 아마도 아내는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다. 나는 마음으로 다시 다짐하였다. “나는 바꾸어 줄 것이다. 하도록 내버려둔 것을 잘한 결정이라는 것을. 1년 뒤에 그녀 마음에 더 가까이 가 있는 나를 보게 될 것이다.”

 

총회에서는 첫 수업인 장례식이 예정되어 있었다. 아내와의 평화 협정 후 시간은 무참히 흘러 금요일이 되었다. 장례식을 위한 유언장을 작성해야 했다. 일주일간 계속 준비했지만 잘 정리가 되지 않는다. 2012 12 28일 갑상선 암 수술 후 1년을 죽음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다고 그리고 많이 처연해 했고 스스로를 위로도 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막상 유언장을 작성하고 장례식을 치른다는 것은 다소 생소하였다. 4 16 2차 방사선 치료를 위한 저요오드식이와 그 동안 먹던 갑상선 호르몬제를 중단한 탓인지 하루 종일 기력이 없고 힘든 날들의 연속이었기에 일주일 회사 근무를 마친 금요일 밤을 무척 힘든 시간이었다. 장례식, 매일이 장례식인데 매일 죽어 하루를 사는데 새삼스럽게 왜. 컴퓨터 앞에서 물끄러미 바라보던 나는 지쳐서 잠이 들었다.

 

45일 아침 5시 문득 잠에서 깨어났다. 유언장이 준비되지 않았다. 오늘이 그 장례식이다. 덤덤한 마음으로 다시 컴퓨터 앞에 앉는다. 죽음을 앞두고 10분전 유언이다. 감사하다. 죽음을 직면하고 유언을 하려니 아버님이 떠오른다. 35년 전 돌아가신 아버님 막상 죽는다고 생각하니 가장 먼저 만날 사람이다. 어머님, 아내, 딸 그리고 나에게 할 말들을 쏟아내니 한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10분 발표할 것을 쓰는데 1시간이 걸리는구나. 작성된 유언장은 다시 읽기를 하지 않았다. 교정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바로 프린트를 해서 가방에 넣어 두었다.

 

이제 장례식장으로 출발하는 버스를 타기 위해 죽전 고속도로 정류장으로 가려고 준비하는데 아내가 차를 태워주겠다고 한다. 피울님이 보내온 컵과 면접여행에서 남은 몇 가지 물품들을 옮겨야 했기에 도와준다는 말이 정말 고마웠다. 무엇보다 나의 연구원 첫 출발을 도와주다니 더없이 고마웠다. 죽전에 도착하여 여러 선배님들과 녕이님과 같이 버스에 탑승하고 청태산 자연휴양림으로 출발하였다. 목적지는 옥계 한국 여성 수련원이었지만 중간에 들러 마음을 쉬고 맛있는 점심을 먹고 가기 위함이었다.

 

청태산에 도착한 우리는 숲속 산책길을 따라 걷기를 하였다. 뭐랄까? 사귐의 시간 서로에게 얼굴을 보여주는 시간이라고 할까? 약간은 멋쩍은 시간이었다. 버스에서 자기소개를 하였지만 그래도 선배님들과는 아직 많은 교감이 부족한 상태이다. 말로만 듣던 선배들도 있고 이미 알고 있던 분들도 있었다. 내가 이 정도인데 다른 10기 분들은 어땠을까? 하지만 모두들 금방 친해지고 가까워진 듯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산책을 하였다. 청태산 입구에서 본 눈이 이곳에서는 쌓여 있었다. 4월 초에 보는 눈이라 겨울의 추운 날씨에 보는 눈과는 그 느낌이 달랐다. 포근함 속에 나무에 쌓여 있는 눈은 촉촉했고 그리고 아름다웠다. 겨울의 그 차가움 보다는 청량감을 더해주며 녹고 있는 것이 따스함을 품었다고 할까? 우리는 만남들이 서로에게 서서히 녹아들 듯 눈은 아름다운 풍경을 보여주고 있었다. 나는 그 풍경이 너무 아름다워 계속해서 사진을 찍고 있었다. 피울님, 종종걸음, 에움길 님은 멀리서 따로 올라오느라 함께하지 못해 아쉬웠다.

 

청태산 산책을 마치고 이윽고 모두 배가 고파졌다. 다행히 근처 평창의 부일 식당으로 이동하여 점심을 먹게 되었다. 맛있는 손두부하며 각종 나물 반찬과 막걸리가 푸짐하게 차려졌다. 어쩌나 방사선 치료 준비인 저요오드식으로 먹을 수 있는 것이 밥밖에 없다. 모두들 정말 맛있게 먹는다. 반찬도 없이 공기밥만 두 그릇을 먹고 나니 밥이 달다. 하지만 눈은 쓰다. 이 맛있는 것들을 하나도 못먹다니 말이다. 부일 식장을 시작으로 난 정말 맛없는 여행을 떠나게 되었다는 것을 실감하게 되었다.

 

이윽고 최종 목적지인 옥계 한국 여성 수련원에 도착했다. 도착하자 마자 빌린 강의실을 정돈하고 장례식 준비를 하였다. 먼저 도착하여 총무인 왕참치님이 주문한 물품들을 받은 피울님과 에움길님과 같이 우리의 죽을 자리를 정돈하였다. 국화 한 다발, , 의자 그리고 우리의 유언장을 들어줄 선배님들의 자리, 약간의 술과 먹을 것들 그것들이 우리의 장례식 준비의 모든 것이었다. 하지만 준비해 온 것들 중 가장 중요한 것은 모두들 뜨거운 가슴에서 나온 유언장이었다. 커튼이 드리워지고 불이 꺼졌다.

 

구본형 선생님과의 재회를 중심으로 유언장을 쓴 어니언님의 시작으로 유언장 발표가 이어졌다. 누군들 마음이 그러하지 않을까 모두들 남겨진 사람에 대한 애틋한 마음이 한결같다. 그리고, 일찍 떠나게 되어 미안하다고 말이다. 나의 차례, 유언장을 읽을 시간이 주어져 고맙고 감사한 일이라 시작을 했건만, 아버님이라는 부름 한마디에 그만 말이 막혀버렸다. 오전에 한번에 써서 들고온 유언장이기에 중간에 펼쳐서 다시 읽어보지 않고 들고 온 유언장이기에 소리 내어 읽는 나의 감정은 날 것이었다. 다듬어지지 않은 감정은 나의 숨을 막고서는 죽음의 앞으로 끌고 가는 듯 말을 막고 섰다. 아버님 35년 만에 소리 내어 불러본 아버님, 8살에 돌아가셨던 아버님. 죽을 길을 생각하니 가장 먼저 만날 사람이 아버님이었고, 그 동안 제대로 찾아보지 않은 나의 마음은 한 순간에 와락 쏟아져버렸다. 난 그 때 처음으로 나의 아버지에 대한 감정을 보게 되었다. 어머니, 아내, 지연이, 그리고 나에 대해 차례로 발표를 하는데 참 많은 것이 내 안에 쌓여 있다는 것을 발견한 잠깐의 시간이었다. 이로서 나는 지난 43년간의 생을 마무리하고 다시 태어날 준비를 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는 것일까? 모든 유언장 발표가 있은 뒤, 그 느낌은 정말 맑아지는 기분이었다. 남겨진 사람들에 대한 애틋함을 확인하게 되어 슬프고도 기쁜 유언장 발표시간은 그렇게 끝이 났다.

 

저녁은 근처 횟집에 먹었다. 역시나 저요오드식으로 회고 뭐고 하나도 먹지 못했다. 주는 공기밥에 아내가 싸준 쌈채소와 쌈장으로 저녁을 때우고 술도 한잔 못하고 장례식 후 살아있음을 노래하는 동기들과 선배님들의 흥겨움을 그저 바라보고 있을 수 밖에 없었다. 아프다는 것은 슬픈 것이다. 술이 오르는 새 나는 바다구경을 몇몇과 같이 나갔다. 파도는 높았으나 바람은 좋았다. 다 날려버린 듯 홀가분했고 새로운 날이 열린듯하였다. 무엇인가? 이 기분은 이 사람들은 누구인가? 나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이런 저런 기분을 속으로 느끼며 돌아 왔다. 나의 유언장 발표가 감동적이었다는 몇 분의 말씀을 들었다. 좀 머쓱하다. 창작품도 아니고 단지 나의 유언장이었을 뿐인데 공감해주고 같이 슬퍼해주었다니 말이다. 나의 가슴속에 숨겨놓았던 것들이 풀어 놓았을 뿐인데 그들은 나의 가슴을 사랑해 주었다. 내 떨리는 목소리를 같이 느껴주었고 나를 응원해 주었다. 이제 혼자가 아닌 것이다. 이 분들이 나를 지켜줄 것이다. 나 또한 이 분들께로 다가가야 하겠다. 파도는 계속해서 밀려들고 저녁을 다 먹은 후 숙소로 돌아왔다.

 

숙소에 돌아와 다시 모였다. 선후배간 인사가 있었고 한마디씩 나누었다. 술이 돌고 이야기가 돌았다. 못 마시는 술을 분위기와 정에 취해 마시다 보니 얼마간 취한 동기분들이 잠이 들고 나도 모임을 마친 뒤 잠들었다.

 

4 6일은 공식적으로 변화경영 연구소 총회가 치뤄졌다. 신임 대표가 정해지고 총회준비 애써주신 9기의 마지막 영상물이 오르고 10기의 소개 영상도 같이 올라갔다. 내년에는 어떻게 될까? 11기는 있을까? 이런 저런 생각을 하였다. 10기 소개 자리가 만들어지고 앞으로 나가 10기 한 분씩 자기 소개가 이어졌다. 소개가 끝나고 나는 마이크를 잡고 10기 내의 역할을 한 분씩 소개하였다. 매우 서툴렀다. ! 아직 내가 이분들을 제대로 소개하지 못하는구나. 마이크를 잡는 순간 나는 10기의 웨버가 되었는데, 아직 준비는 덜 되었구나. 앞으로 더 잘해야겠구나. 그런 생각에 사로 잡혔다.

 

총회를 마치고 바닷가에서 1시간여 산책과 이야기를 나누고 강릉 오죽헌 근처의 두부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모두 귀가하였다. 역시나 맨밥만 먹는데 참 맛있어 보이는 반찬들이 즐비하다. 먹는다는 것, 이것은 산다는 것이다. 매일 먹지만 매일 알고 먹어야 하는데 그러질 못하였다. 이번 여행에서 매일 제대로 못 먹어보니 그 먹는 다는 것이 새롭다. 당분간 계속 저요오드식이를 해야 하지만 더 감사히 먹을 것 같다.

 

총회에서 돌아와 첫 출근을 하였다. 장례식 후 첫 하루를 지나고 보니 회사에서 일을 참 열심히 한 하루였다. 출근하자 마자 부서장이 기다렸다는 듯이 오늘 하고 싶은 일을 쏟아내시고 오전에 두 건의 회의와 오후 세 건의 회의를 하고 틈틈히 보고서를 정리하며 하루를 보냈다. 끝으로는 부서원들 1년 업무 계획을 다시 돌아보고 늦게 일하는 사람들 애로사항을 듣고 풀어주었다. 다시 태어나는 것은 연구원 만인 것은 아닌가 봅니다. 참 바빴던 것 같은데 마음은 바쁘지 않았다. 조급해질 것 같았는데 조급하지 않았다. 이런 기분이 무엇일까 궁금해진다. 이 기분도 조금씩 알아가면 좋을 것 같다.

 

총회 가기 전에 아내에게 이야기한 바대로 1주일을 지내었다. 조금 더 일찍 퇴근하려고 노력을 했고, 퇴근해서는 아이와 같이 공부도 하고 놀기도 하였다. 1주일을 보내고 보니 아내와의 약속은 나에게 또 다른 세상을 만들어 주고 있었다. 10시 전에는 개인 작업을 하지 않게 되었고 그래서 아내와 아이에게 집중할 수 있었다. 그래서 이야기를 더 잘 들을 수 있었고 더 가까워질 수 있었다. 장례식은 나에게 또 하나의 선물을 주었다. 그 동안 시간이 나는 대로 내가 가능한 시간에 선물 주듯이 하던 행동들이 얼마나 잘못되었는지 다시 깨닫게 되었고 앞으로도 이 시간을 소중히 해 나가야겠다는 결심을 다시 해본다. 장례식은 나에게 참 소중한 것들을 일깨워준 선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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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4.15 19:04:22 *.252.144.139

희동님, 여행 내내 맛있는 음식을 함께하지 못해 아쉬웠어요.

주변 사람들을 지키려면 내 몸이 건강해야 하겠지요.

또한 연구원 과정은 장거리 경주랍니다.

끝까지 건강한 모습으로 함께할 수 있도록 몸을 잘 돌봐주세요.

제가 응원할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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