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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노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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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10월 3일 10시 48분 등록
자본과 노동 2

이 내용은 [쾌도난마 한국경제]의 정승일님과 장하준님의 토론 내용을 발췌한 것이다.

일본 경제의 힘이 주로 노동 시장의 기능적 유연성, 즉 고용 안정과 숙련 노동에 기반하고 있다고 볼 수 있는데 다른 나라의 경우는 어떤가?

일본 이외의 기능적 유연성이 잘 작동되는 나라로는 스웨덴과 핀란드를 들 수 있다. 이 나라들의 경우 노동자가 회사에서 잘려도 국가가 사회보장 시스템을 통해 생계를 보장해 주면서 다른 기업에 취업할 수 있도록 기술 교육 훈련을 시켜 주는 제도가 잘 정착되어 있다. 이에 더해 대학 교육까지 무료로 제공된다. 사양 산업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이 국가의 자원으로 재교육을 받은 뒤 다른 부문의 성장 산업으로 옮겨 가는 과정이 아주 순조롭게 진행될 수 있다. 노동과 자본과 국가의 윈-윈 게임이다. 국가의 지원하는 몫이 상당히 크기 때문에 한국에서는 좌파니 반시장이니 하겠지만, ‘국가 경쟁력 순위’ 같은 걸 내면 이 나라들은 거의 언제나 최상위권이다. 사회보장 제도가 노동 시장의 기능적 유연성과 그에 바탕한 국민 경제의 경쟁력을 떠받쳐 주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미국에서도 국제 경쟁력이 필요한 주요 산업에서는 종업원을 함부로 자르지 않는다. 방위 산업 부문의 보잉사가 주주 자본주의식으로 경영하면서 R&D투자 줄이고 노동자들 함부로 자르고 하다 보면 지금의 사세를 유지하기 어려워진다. 그에 비례해 미국의 군사력까지 약화될 가능성도 커진다. 따라서 미국에서도 국가적으로 주요한 업체들에 대해서는 사실상 주주 자본주의적 경영이 면제되고 있다고 봐야 한다. 이런 조건을 기반으로 이러한 회사들은 주주 자본주의 원리와 반대되는 장기적 투자와 기술 혁신 투자를 과감하게 추진할 수 있다. 미국 정부는 이런 기업에 대해서는 전체 R&D 투자의 50~60% 정도를 지원한다. 한국은 20% 전후를 넘어가지 실정이다. 실제 보잉사 같은 기업에서 일하는 노동자는 사실상 종신 고용으로 볼 수 있다. 물론 보잉사는 조금 극단적인 사례이기는 하지만, 고부가가치 기업으로 갈수록 이렇게 수량적 유연성은 줄이고 기능적 유연성은 높여야 유지할 수 있다.

노동 시장 유연성의 천국으로 알려진 미국에서도 숙련 노동자가 필요한 자동차 산업 등에서는 노조가 굉장히 강하다. 해고하기도 힘들고, 설사 해고를 한다 해도 2~3년치 상당의 봉급과 함께 얼마 동안 의료보험료까지 회사에서 내줘야 한다. 세계화가 진행될수록 숙련 노동자는 점점 더 중요해진다. 경영자나 단순노동자는 다른 나라에서 쉽게 불러올 수 있지만 숙련 노동자들은 그들이 익힌 숙련 기술 자체가 그 나라의 언어, 산업 및 지역 환경, 제도 등에 뿌리박고 있는 대단히 특수한 것이기 때문에 다른 나라로 이동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숙련 노동자의 질에 따라 그 나라의 국가 경쟁력이 결정된다고도 말할 수 있다. 산업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겠지만 어떻게 보면 선진국과 후진국의 가장 큰 차이는 노동자의 질質이다. 이론적으로만 본다면 우리나라에서 왜 벤츠 같은 자동차를 못 만들겠나? 다 기계로 하는 건데···. 그 이유가 바로 벤츠를 만드는 기계에 체화될 수 없는 종업원들의 ‘암묵적 지식’ 때문이다. 이게 하루아침에 되는 것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암묵적 지식을 가진 숙련 노동자들이 제일 무서운 경쟁의 무기이다.

아주 재미있는 사례가 있다. 수웨덴이 의외로 외국 기업들에게 인기가 있다. 스웨덴은 한국의 보수층 논리를 빌면, 기업하기 어렵게 만드는 ‘빨갱이 나라’라고 불릴 정도로 임금 높지, 노동조합 강하지, 누진세가 소득의 60%가지 긁어 갈 정도로 부자들을 괴롭힌다. 이런 나라니 외국 자본이 안 들어갈 것 같은데 외국 자본들은 악착같이 들어온다고 한다. 왜 그런걸까? 인구가 남한의 1/4 정도여서 시장이 탐나는 것도 아닌데. 외국 자본이 노리는 것은 스웨덴의 기술 하부 구조이다. 스웨덴의 우수한 사회보장 제도와 무료로 제공되는 기술 훈련 시스템, 그에 따라 숙련된 현장 노동자들과 대학 교육을 받은 엔지니어들, 그리고 노동조합 전국 조직과 경영자 전국 조직 간에 유지되는 산업 평화 등이 외국 자본이 탐내는 것이라고 한다. 이런 사람들과 환경이 스웨덴에만 존재하는데, 그런 환경에서 그런 사람들을 고용해야만 생산할 수 있는 제품들이 있다. 심지어 영국 기업들 중에서도 IT 부문에 투자하려 할 때는 저임금의 영국이 아니라 일부러 스웨덴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을 정도이다. 우리나라도 국내 시장이 큰 것도 아니고, 가진 것은 인적 자원밖에 없는 나라니까 우리가 갖고 있는 인적 자원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는 방향으로 미래를 설계해야 되지 않겠는가.

옛날에 영국병이란 것이 있어서 노조들이 수백 일씩 파업을 해서 영국 경제가 망했다는 것은 사실 너무 피상적이다. 기본적으로 노동자들에 대한 사회적 안전망이 없기 때문에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는 노동자들이 필사적으로 저항한 면이 도외시되어 있다. 게다가 보다 큰 차원에서 보면 금융 중심의 경제 시스템으로 인해 기업들이 생산성을 높이기 위한 지속적인 투자에 실패하면서 장기적인 경쟁력을 확보하지 못했기 때문에 생존을 위해서는 저임금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는 데에 영국 경제의 비극이 있는 것이다. 경제를 임금 수준에만 의존 시키다 보니 노사 관계가 턱없이 중요하게 되고 노동자들이 말을 잘 듣지 않으면, 그래서 임금 수준이 높아지면 세계 시장에서 경쟁할 수 있는 다른 수단이 없어지는 것이다. 그러니 기업입장에서는 저임금으로 노동자들을 쥐어짜지 않으면 안 되고, 노동자들 입장에서는 기업의 미래 전망이 보이지 않으니 큰일 나기 전에 받을 만큼 받자는 생각을 하게 되고 이런 상반된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하게 된 것이다. 이런 전체적인 구도에서 영국병을 바라봐야 하는데 단순히 ‘노조가 강하면 나라가 망한다.’는 이야기만 한다면 노동조합 조직율이 80~90%이 이르는 스웨덴, 핀란드는 진작 망했어야 하는 것 아닌가. 일본도 1950년대부터 고도성장을 시작했는데 그때 일본의 노조는 엄청나게 강성이었다. 그런데도 일본 경제는 엄청나게 성장했다. 무슨 말인가 하면 강성 노조가 있다고 반드시 경제 성장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노조가 강성이냐 아니냐.’가 아니라 어떻게 노사관계를 조절하면 노사 평화를 정착시키고, 사회적인 화합을 이루어내며, 그것을 통해 우리 경제의 생산성을 장기적으로 향상시키면서 업그레이드시킬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조건에서는 어떤 식으로 노동자들의 에너지를 끌어내야 우리가 다 같이 골고루 잘 사는 나라가 될 수 있는지 모색해야 한다는 뜻이다.

대처 이후 영국에는 소득 분배가 매우 악화되었다. 영국의 소득 분포 최상위층 1%가 차지하는 비율이 1975년엔 5.37%였는데 1998년엔 9.57%로 상승하였다. 물론 수시로 100만 달러, 200만 달러씩 버는 영국의 최상층들에게는 세상이 정말 좋아진 것이나, 이렇게 불평등이 심화되는 과정에서 무수한 제조업이 황폐해졌다. 영국에는 기업 도시, 즉 기업 하나가 전 지역을 먹여 살리는 도시가 많은데 이런 곳들이 슬림화되어 버렸다. 대표적으로 맨체스터 같은 지역은 정말 심각하다. 한국에서 영어 교사를 하는 공대 출신 영국인들이 많다. 영국에는 일자리가 없을뿐더러 공대를 나와 엔지니어로 늙어 봤자 별로 희망이 없다는 것이 그들의 대답이다. 한국에서도 얼마 전부터 공대의 인기가 시들어지고 있는데, 우리 경제시스템이 영국 식으로 가고 있다는 징후를 보여 걱정될 때가 많다. 또 하나 재미있는 사실은 1980년 중반 이후 영국에서 제약업과 생명공학이 급속히 발전했다. 그 성과 중의 하나가 복제양 둘리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영국 경제시스템의 발전된 모습으로 보는 견해도 있지만 실상은 영국 제약업 및 생명공학의 발전은 신자유주의적 기조로 ‘생명 윤리’와 관계된 규제들을 모두 풀어버렸다는데 문제가 있다. 대표적으로 ‘광우병’은 축산업 규제가 약화되면서 동물의 뼈를 초식 동물인 소에게 먹이는 것이 허용되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최근 한국에서의 만두파동도 같은 맥락에서 볼 수 있다. 외환위기 이전까지만 해도 식품안전법 관련 규정이 상당히 엄격했는데 IMF의 구제 금융 조건에 따른 개혁이 진행되면서 상당수의 환경 및 먹거리 관련 규제들이 풀렸다. 기업들이 알아서 해야 한다는 맥락에서 그런 건데, 그 때문에 사고가 발생하는 것 같다.

그게 신자유주의의 기본 정신과 통하는 것이다. 단기주의! 그냥 우선은 쉬운 것을 한다. 축산업 규제를 풀면 고기를 싸게 먹을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이후엔 결국 광우병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영국에서 공기업인 철도 산업을 민영화한 뒤에 투자를 안하고 수익률 높인것 좋았는데, 10년쯤 지나니까 열차 사고가 빈번해져 버렸다. 이렇게 단기수익 올리려고 노조 탄압하고 해외에서 저임금 노동자 수입하다 보면 당장은 기업이 살아날 것 같은데, 장기적으로는 업그레이드 못하게 된다. 결국 망한다.

요즘 어느 정도 안정된 고용 조건을 누리고 있는 대공장 노동자들 간에도 갈등이 심하다고 한다. ‘잘리기 전에 한 푼이라도 더 챙겨야 한다.’는 노동자판 ‘단기 실리주의’가 판치고. 동료들 사이에서도 자기 부서로 물량을 더 가져가려는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고 한다. 한국의 자본이 단기 수익주의에 눈 먼 결과가 저투자 현상이라면, 노동자들의 단기 실리주의는 하나의 거대한 이익 집단이랄 수 있는 노동자계급을 해체하는 중이라고나 할까. 아무튼 그런 현상이 재벌들이 경영하는 대공장에서 발생하고 있다.

외환 위기 이후 노동 시장 유연화가 진행되면서 노사 대립이 더욱 격렬해지고, 그 때문에 국가적인 손실까지도 발생하고 있다. 노동자들 입장에서는 사회보장 제도도 변변찮은 상황에서 해고란 죽으란 이야기나 마찬가지다. 그러니까 목숨걸고 저항할 수 밖에 없다. 궁극적인 책임은 자본 측에 있다. 그래서 재벌에게 공격이 집중되고 있지만 노동 운동은 전체적인 방향을 보고 투쟁 노선을 결정해야 한다. 이런 상황은 우리 경제가 시장 근본주의에 물들어 주주 자본주의 쪽으로 가고 있어서 발생하는 것이다.

한국 노동 운동의 가장 큰 착각 중 하나는 반재벌 투쟁과 반신자유주의 투쟁이 함께 갈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한다는 것이다. 둘 다 ‘노동자의 적’이라고 생각하니까 재벌과 자유주의를 같은 편으로 간주하는 것 같다. 그러나 재벌을 타도한다고 노동시장 유연화가 극복되고 신자유주의를 극복할 수 있을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민영화된 포스코를 예를 들어 보자. 포스코는 재벌의 지배하에 있지도 않은데 아직 제대로 된 노조가 없다. 포스코 노동자는 제대로 된 대우를 받지만 하청업체들과 그 노동자들은 하청 단가를 대폭 내리는 바람에 엄청난 고생을 하고 있다. 재벌이 아닌데도 노동 문제가 광범위하게 나타나고 있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포스코가 ‘주주 가치에 따른 경영’, 즉 주주 자본주의적인 경영을 슬로건으로 내걸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는 ‘노동시장 유연화는 반재벌투쟁을 통해 극복될 수 없는 문제’라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로 볼 수 있다.

재벌들이 노동자들을 많이 자르지 못하는 이유는 그들이 착해서가 아니라, 그들이 한국의 정서와 관행에 익숙해 있고, 나름대로의 정치적 입지를 가지고 있으며, 신분도 상세히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참고로 기업을 매각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이 노동자를 얼마나 자를 수 있느냐이다. 최근 SK 그룹에 대한 공격에 소버린을 필두로 시민 사회 단체와 노동 운동, 심지어 민주노동당까지 가세한 것과 론스타가 외환은행 대주주가 되어 한 일을 살펴 보자. 론스타가 한 일은 외환카드 노동자들을 마구 해고하고 현금 서비스를 중단시키며 전체 금융 시장을 교란하였다. SK 그룹을 노렸던 소버린도 크게 다르지 않다. 소버린이 SK 그룹을 장악했더라면 자사의 이익을 위해 계열사들을 하나씩 팔아먹는 것으로 귀결되었을 것이고, 이것이 SK 노동자들의 경영권 장악일 수는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산하 기업들에서 노동의 수량적 유연성을 줄일 수 있었을까? 소버린 관계자들이 SK 주식회사 노조 간부들을 만나 노동자를 안 자르겠다는 약속을 했다는데 글쎄 과연 믿을 수 있을까?

그렇다면 노동 운동이 적을 잘못 설정해 왔다는 것인가?

재벌을 적으로 삼지 말라는 것은 아니지만, 현재의 상황에서 재벌이 주적은 아니라는 이야기이다. 재벌 해체를 주장하는 노동 운동가들이 마치 재벌을 해체하고 계열사들을 독립 기업화시키면 그 독립 기업의 전문 경영자들이 노사 관계를 더욱 민주화시킬 거라고 은연중에 가정하고 있는데 단언하건데 절대로 그렇지 않다. 전문 경영진이 등장했다는 것은 기업에 대한 주주의 압력이 훨씬 강해진다는 이야기이고, 또 이 주주들은 재벌 기업이든 독립 기업이든 상관없이 정리 해고를 하고, 비정규직을 채용하면 박수치며 기뻐할 수밖에 없는 이해관계를 가진 사람들이다. 이 사람들이 인간적으로 악하다는 그런 이야기가 아니라 자본주의 사회 자체가 결국은 이익을 따라 흘러가게 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한국 기업과 외국 자본은 인원 배치에 대한 개념 자체에서부터 다르다. 백화점 주차장 입구에 발권기가 있는데 그 옆에 젊은 여성이 서서 뽑아 준다. 사실 발권기는 그 젊은 여성을 해고하려고 만든 기계인데 그 기계와 젊은 여성이 함께 서 있다. 이건 우리나라에서만 볼 수 있다. 후진국은 사람만 서서 주차권을 나눠 주고, 선진국은 기계만 설치해 둔다. 기계와 사람이 함께 서 있는 모습은 후진국과 선진국 사이의 중간 단계에 와 있다는 것을 상징한다. 소버린같은 외국 자본의 입장에서 이 젊은 여성의 인건비는 낭비이다. 이런 외국 자본들이 들어와서 서비스 업계 같은 곳의 인원 정리에 들어가면 실업률이 삽시간에 10~15%를 넘을 수도 있다.

전통적으로 개혁·진보 세력들이 기존의 한국 자본주의를 천민자본주의라고 부르면서 ‘합리적 자본주의’를 요구하는데 만약 이후 외국 자본이 재벌 계열사까지 진출해서 자기들의 합리성을 들이대며 ‘ 이 회사 노동자들의 수와 임금이 적절한 것인가?’고 ‘합리적’으로 따졌을 때 이를 방어할 논리가 우리나라 노동조합에 존재하는지 되물어 보지 않을 수 없다.

노동 운동이 국민 경제 전체를 보는 시각이 약하다. 노조 조직율이 상당히 낮고 그나마 재벌계 대기업 노조 중심이어서 그런지 노동 문제를 바라보는 시각도 정작 신자유주의 개혁의 가장 큰 피해자인 미조직 노동자들의 이해까지 반영하고 있지는 못한것 같다. 지금까지의 노동조합은 당면 문제에만 너무 매몰되어 있다고 생각된다. 아직까지는 노동조합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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