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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8월 31일 11시 56분 등록

자꾸만 사람들이 책을 읽으라, 책을 읽으라 하잖아요. 그게 틀린 말은 아닌데……저는 이렇게 생각해요.
<근사록>이라는 책을 보면 ‘공자의 논어를 읽어서, 읽기 전과 읽은 후나 그 인간이 똑같다면 구태여 읽을 필요는 없다.’ 라는 이야기가 나와요. 그러니 다독이냐 정독이냐, 일 년에 몇 권을 읽느냐, 이런 것은 별 의미 없는 것이지요. 책을 읽는다는 것보다도 그 책을 어떻게 받아들여서 나 자신을 어떻게 개조시키느냐는 게 훨씬 더 중요한 문제죠. 책에 의해서 자기 생각이 바뀌거나 개조될 수 없다면 구태여 읽을 필요 없는 거죠.
책은, 우리가 모든 세상과 직접 관계해서 터득하고 경험의 결과를 얻기는 어렵기 때문에, 그 보조적인 수단으로 필요한 것이에요. 세상을 아는 여러 가지 수단 중 하나인 것이지요. 책 속에 길이 있다고들 그러는데, 내가 보니까 책 속에는 길이 없어요. 길은 세상에 있는 것이지. 그러니까 책을 읽더라도, 책 속에 있다는 그 길을 세상의 길과 연결을 시켜서, 책 속의 길을 세상의 길로 뻗어 나오게끔 하지 않는다면 그 독서는 무의미한 거라고 생각해요.

-소설가 김훈, 네이버 <지식인의 서재>와의 인터뷰 중에서


이번주 과제인 자크 아탈리의 최근작를 읽으며, 자크 아탈리에 대해 조사를 해 갈수록 지난주 내게 숙제처럼 떠올랐던 ‘선량한 목적을 위해 소신껏 행동하는 지식인’에 대한 생각이 더욱 깊어갔다. 오랜만에 나의 열정을 되찾은 것도 같은 느낌이었다. 책을 읽기 전과 읽은 후가 변하지 않는다면 책 읽는 것이 무슨 소용이냐는 김훈의 이야기에 공감해 위의 구절은 인용한 것이다.

자크 아탈리. 그는 역사적으로 금융업으로 돈을 번(아니, 벌 수밖에 없었다는) 유태인이다. 그의 부모 역시 보석상을 했다고 알려져 있다. (그 역시 보석을 감정하고 돈을 받는, 유태인들에게 허용된 단 두 가지 직업 –금융업, 전당포업- 가운데 하나일 테다.) 그가 철저히 비판하고 있는 미국의 금융기관들의 비윤리적인 행태는 결국 그의 동포인 유태인들에 의한 것임에 다름 아닌 것을 많은 이들이 알고 있다. 그런데 유태인인 그가 금융업의 폐해를 철저하게 파헤치고 새로운 형태의 은행업(마이크로크레디트, 취약계층을 위한 무담보 소액대출)을 실행하고 있다는 것이 역설적면서도 대단하게 느껴진 것은 나 뿐일까?

하지만 그는 2006년 노벨평화상을 받은 방글라데시의 무하마드 유누스 총재와 ‘그라민은행’에 철저히 동조해 많은 일들을 해낸 개혁파다. 동구권 몰락으로 동유럽과의 빈부격차 문제가 제기될 때에는 자신이 유럽부흥개발은행(EBRD)를 주도해 설립, 총재가 되었다. 이 밖에도 그는 1980년 기아구제기구 창립, 1989년 방글라데시 구호기구 설립을 도왔다. 유럽판 ‘그라민은행’이라고 할 수 있는 '플래닛뱅크(PlaNet Bank)'를 세워 가난한 이들에게 무담보 대출을 해 준다.

그는 프랑스의 알제리 이민 출신이다. 프랑스의 국가적 영웅인 축구선수 지네딘 지단의 경우를 통해 사람들은 그를 그 자리까지 오게 한 오기가 알제리 출신이라는 꼬리표임을 알았다. 아탈리라고 그런 시선을 피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게다가 그는 파리에 오기 전까지 알제리라는 아랍국가에서 유태인으로 살았다. 철저하게 소수자 출신이면서도 그는 프랑스 정통 엘리트 코스를 밟고 젊은 나이에 대통령을 특별 보좌하기까지 했다. 불리한 출신성분을 딛고 일어선 천재 엘리트는 하지만 그의 재능을 단순히 ‘돈을 벌거나’ ‘권력을 쥐는 데’ 할애하지 않을 만큼 똑똑했던 것 같다. 그는 젊은 인재들이 창출해내는 것이 없는 금융업으로 벌떼처럼 달려가는 것을 우려하는 시선을 보인다.

또한 인생의 상당부분을 ‘기술이 지구적 경제불평등에 어떤 해답을 줄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는 그는 수십 년간 자신의 생각대로 혁신적인 은행업을 실현하고 있다. 금융위기를 부른 ‘정보선점자’들과 그들을 가능케 한 기존 은행업에는 가차없이 날카로운 칼날을 들이댈 수 있는 것도 그가 말로만 훈계하는 것이 아니라 실천하는 지식인이기 때문일 것이다.

결국 지난주와 이번주, 경제위기를 다루는 두 권의 책을 보았을 뿐인데, 나는 윤리성이라는 문제에 또다시 봉착했다. 기자로서의 책임감과 무거운 윤리의식에 스스로 나를 힘들게 했던 그 문제. 내가 천착하는 분야. 회사를 그만두면서까지 대학원으로 오게 만들었던 그 주제. 내 의지가 굳지 못하고, 내가 기업의 윤리, 사회의 윤리를 논할 만큼 윤리적인 인간이지 못해 자격이 없다는 생각에 내팽개치다시피 한 그 주제가 다시 내 가슴 속으로 들어오고야 만 것이다.

어쩌면 나는 이 문제가 어렵기 때문에, 해나가려면 나의 모든 것을 걸고 죽어라 공부해나가야 하기에 단순히 피한 것은 아닌가? 아무도 선뜻 나서 하지 않는 공부라면, 기업들이 불편해하는 그런 문제라면 더욱 기를 쓰고 달려들었어야 할 것을. 나는 지금 나의 열정과 관심의 원천을 놓아두고 '평생을 투자할 공부가 무엇인가' 엉뚱한 곳을 뒤지는 우를 범하고 있었던 것이다. 앞으로 이 문제를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는 나에게 달린 문제다. 그리고 나는 오늘부터 오랫동안 쳐박아두어 먼지가 앉은 자료집 파일을 뒤지기 시작할 것 같다. 어떤 방향으로 자리잡을지는 나도 자못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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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산
2009.08.31 20:33:39 *.176.68.156
'선량한 목적을 위해 소신껏 행동하는 지식인'..... 좋은 화두인 것 같네, 아인.

자신의 정체성을 찾은 후에는 자신의 쓰임새를 고민해야 할 터인데 좋은 방향 제시인 것 같애. 잘 읽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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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9.01 02:41:27 *.40.227.17
아인~

잘 지내지? ^^
사부님께서도 인정한 아인의 저자 리뷰를.. 칼럼에서는 또 다르게 보는 듯해..
아인의 자료집 화일.. 궁금해지네.. 그 먼지?까지도.. ㅋㅋㅋ

책.. 세상.. 나.. 그리고 연결..  내 가슴에 무찔러 들어오는 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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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야
2009.09.01 07:41:51 *.12.20.78
독서-책속의 길을 세상의 길로 나오게 하는 것. 책을 읽고 공부하는 우리가 가져야 할 정의구나. 
잘 지내지? 담 주면 볼 수 있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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