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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8월 26일 03시 34분 등록

 

엄마. 기차를 타고 서울로 가는 길이에요. 건너편에는 훤칠한 엄마의 사위가 자기를 똑 닮은 개구쟁이 아이와 장난을 치느라 정신이 없고, 저는 이렇게 엄마에게 편지를 써요. 지난번에 우리 네 자매가 엄마의 묘소를 방문했을 때, 편지를 쓰고 싶었는데 언니들과 노느라 시간이 나질 않더군요. 세 살 때 저를 떼어놓고 가신 것만 원망했지 엄마가 잘 계신지는 한 번도 묻지 못했네요. 엄마. 엄마가 계신 그곳은 어떠세요? 저보다 오래 산 가족들의 기억으로 재구성될 수밖에 없는 나의 엄마는 사진속의 아름다운 젊은 여인일 뿐입니다.

스무살, 꽃 같은 나이에 결혼해서 단칸 셋방에서 줄줄이 다섯의 딸을 낳아 기르시다 서른일곱에 돌아가신 엄마. 겨우 집장만을 해 살만하다 싶었다던 아직도 아버지가 살고 계신 그 집을 기억 하시는지요. 지금 엄마가 계신 그곳에도 엄마가 좋아하는 새가 울고, 백합꽃이 만발한지요. 제게 예쁜 이름을 지어 주시고, 곧 헤어져야 했던 엄마. 엄마도 이 막내딸이 궁금하셨을까요.

엄마가 돌아가시고 일 년 만에 새엄마가 오셨어요. 12남매의 장남인 아버지의 대를 이을 아들이 필요해서 그렇게나 빨리 오신 거라고 했습니다. 당시 첫 결혼이었던, 새엄마는 아빠의 원대로 아들을 낳았고, 저는 시골 할머니 댁으로 보내졌어요. 그곳에서 초등학교 3학년이 될 때까지 살갑지 않지만 저를 챙겨 주셨던 할머니와 살았지요. 서울 언니들이 방학때 내려왔다 돌아갈 때면 함께 가겠다고 악을 쓰듯 울었지만 아무도 저를 데려 가지 않았어요. 하지만 해가 지면 엄마를 대신해 할머니가 찾아 주셨고, 나무와 시냇물, 아이들과 벗하며 사내아이처럼 뛰놀던 그곳은 고마운 곳이었습니다. 제 인생의 암흑기라고 부르는 그 후 칠년을 지내며 때때로 그곳이 그리웠습니다. 제가 자연을 좋아하는 것은 그때의 시간이 준 선물일 거예요.

엄마. 이럴 생각은 아니었는데 자꾸 눈물이 나네요.

다시 함께 생활하게 된 가족들과의 일과는 제게 지옥이었습니다. 어쩌다 맛난 반찬에 저절로 젓가락이 가면 식탁 밑에서 제 발을 건드리는 발짓. 산처럼 쌓여 있는 설거지며 집안일, 여섯 명의 여자아이들이 함께 기거하는 방에서 불기가 없는 윗목이 저의 잠자리였지요. 세탁기를 세워 놓고, 굳이 손빨래, 운동화를 빨게 하고, 겨울에는 눈 오는 날이 정말 싫었습니다. 밤에 눈이 내리면, 새벽부터 저를 발로 특툭쳐서 깨워 마당의 눈을 치우게 했으니까요. 손님이 오면 방안에서 그들이 갈 때까지 못 나오게 했고, 별식은 자기 아이들만 주문해 주었습니다. 행복해보였던 언니들의 서울살이가 얼마나 고통스러웠던 것인지도 알게 되었지요. 야뇨증까지 생긴 저는 눈칫밥으로 자라면서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콩쥐가 저라고 여겼습니다. 빨리 커서 새엄마의 만행을 고발하는 책을 세상에 내서 복수하고 싶다는 생각뿐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상업고등학교를 졸업한 셋째언니가 회사에 취직을 하며, 저의 그 지긋지긋했던 암흑기는 끝이 났습니다. 언니가 저를 데리고 독립을 한 것입니다. 그때 제 나이 16세였습니다. 언니들은 제게 서울우유를 배달시켜 주었고, 용돈, 보약, 신발등 필요한 것을 해주며 엄마처럼 사랑해주려 애썼습니다. 언니들도 세상살이가 쉽지 않은 나이였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무척이나 고마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중에도 셋째언니는 저에게 많은 것을 주었습니다. 결혼도 잘한 언니는 경제적 가치보다 나누는 가치를 실천 하면서 현재 부부가 박사과정 논문통과를 앞두고 있습니다. 제가 쉽지 않은 아르바이트와 장학금으로 학업을 놓지 않고, 심리학 석사까지 마칠 수 있었던 것은 언니의 끝없이 배우고자 하는 열망, 실천의 의지를 배울 수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저의 결혼도 대기업 임원이신 셋째형부의 소개로 이루어졌습니다. 그이를 처음 만났을 때 왜 그렇게 남들 앞에서 털어 놓기 어렵던 제 개인사를 쉼 없이 털어 놓았는지 모르겠습니다. 아버지에 대한 원망으로 왜곡된 남성상을 가지고 있던 저를 첫날부터 경청의 미덕으로 녹아내리게 한 남편. 그는 지금의 제 남편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시부모님과 시동생도 생겼습니다. 시부모님과 여름휴가를 끝내고 돌아가는 기차안, 저희 옆에는 시어른께서 올망졸망 챙겨주신 정성이 깃든 것들이 서울로 함께 상경하고 있습니다. 양가 조부모님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아이가 성장하는 모습도 저의 꿈 중 하나였어요. 언제든 저희를 기다려 주시고, 무엇이든 주시려 하시는 부모님. 그분들은 너른 바다 품 가까운 곳에 살고 계십니다.

엄마. 엄마에게 자랑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그것은 저의 정원입니다. 응달에 핀 기운 없는 화초였던 제가 해바라기처럼 햇살을 반기게 된 저의 정원. 이제 세 살이 된 어린나무와 우리 두 사람을 늠름한 한 그루나무로 버팀목이 되어주고 있는 남편, 이글을 쓰다가 문득 남편의 얼굴을 다시 바라봅니다. 큰 키, 오뚝한 콧날, 다정한 입매, 하얀 얼굴, 무엇보다 가족에게 따듯한 웃음을 보여 줄 준비가 언제든 되어 있는 저 얼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저의 정원을 함께 가꾸어 가는 사람입니다.

엄마. 저 사람은 제게 못다 주신 사랑이 가슴 아파서 당신이 보내 주신 사람인 거지요. 저는 그를 단박에 알아봤습니다. 첫날부터 밥상에서 제 숟가락에 생선살을 발라 올려놓더니 결혼 칠년 동안 한결같이 저를 먼저 챙기는 사람. 아이에게 얼마나 잘 해주면 아빠 곁에서 떨어지지 않으려 해 간혹은 혹시 제가 계모인가 싶을 정도로 서운한 마음이 들게도 하는 사람. 그렇듯 귀한 사람, 어떻게 그가 제 앞에 닿았을까요.

얼마 전에 아버지의 생신을 우리 자매들과 함께 했습니다. 몇 년 전까지도 딸들을 만나지도 못하게 하더니, 생신 모임을 하려면 모셔가서 하라는 새엄마의 말에 이젠 아버지를 뒷방 노인네 취급한다고 언니들은 속상해 했습니다. 아버지도 이젠 많이 늙으셨어요. 말씀은 안하시지만, 그때 조금만 저희에게 관심을 가졌으면 좋았겠다는 후회를 하고 계신 듯도 합니다. 그이와 첫 인사차 새엄마가 있는 집을 방문했을 때 그렇게 무서웠던 그 집은 더 이상 공포의 대상이 아니었습니다. 그렇게 악다구니를 쓰며 저를 괴롭히던 새엄마는 제 눈을 바로보지 못하더군요.

결혼 후 4년 만에 어렵사리 아이가 태어나고, 또 둘째를 유산하고 나니 새엄마에 대한 생각도 조금 달라집니다. 만약에 제가 초혼이었고, 전처의 자식이 다섯이나 되는 집안에 계모였다면, 저는 잘 할 수 있었을까도 생각해 보게 된 것이지요. 힘이 들었겠지요. 그러나 저라면 균형을 잃지 않으려는 노력은 해 보았을 것 같습니다. 기억하고 싶지도 않은 그 시간, 그러나 그 시간으로 인하여 저는 제가 평생 할 일을 찾았습니다. 대상관계이론 중 컨테이너 사랑, 부부가 행복해야 자녀도 행복하다는 것을 전하는 행복 가정 지킴이로 세상의 힘이 되고 싶습니다. 그래서 제가 사회에서 받았던 사랑, 특히 16년이나 다닌 종교에서 얻은 힘을 환원하고 싶습니다. 열심히 저축해서 집도 마련했습니다. 저는 부자가 되어 저의 꿈을 이루어 나누며 살 것입니다.

엄마. 시부모님과 언니가족들의 지지 속에 저의 정원를 가꾸는 엄마 딸이 예쁘지 않으신가요. 한 번만이라도 잘하고 있다는 엄마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면 저는 참 행복하겠지요. 오늘 제 편지는 여기까지입니다. 다음에 편지를 쓸 때는 오늘만큼 울지 않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서울역에 도착했습니다. 집에 도착해서 제일 먼저 할 일은 사랑하는 그이를 위해서 새 요리책을 펼치는 일입니다. 헤드헌터로 일하는 그는 업무의 특성 때문인지 자주 입맛을 잃곤 합니다. 그가 우리의 정원에서 새소리를 들으며 맛난 음식을 먹고, 입맛을 회복하게 하는 것, 그가 무엇이 필요한지를 늘 마음으로 가늠해 보고 그것을 해주려 노력하는 것, 그를 위해 매력적인 여인이 되는 것, 제가 그를 사랑하는 방법입니다.

엄마. 목소리를 들려주시지 않아도 괜찮아요. 제 마음이 자주 엄마에게 머물 때 그때가 엄마가 제게 다정히 말 건네주시는, 제 머리를 쓰다듬어 주시는 시간이라는 것, 알고 있습니다. 엄마, 나의 엄마. 사랑해요. 당신의 예쁜 막내딸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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