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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8월 28일 13시 34분 등록

8 7둘째날, 자그레브 시내, 플리트비체 호수

 

여기가 자그레브(Zagreb)

식당에 오니 모두 말끔한 모습이다. 아침 일찍 일어나 호텔 주변을 산책하고 모닝커피를 마셨다는 팀도 있다. 자그래브 시내 관광을 위해 서둘렀다.

달리는 버스 창문 너머로 지나가는 풍경을 보며 이 나라에 대한 정보를 떠올려 보았다. 여기가 아드리아해의 아름다운 나라, 유럽사람들이 와 보고 싶어 하는 휴향의 나라, 크로아티아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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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드리해를 안고 있는 물찬 제비같은 크로아티아 지도>

 

우리나라의 1/4정도의 크기이며 95년에 독립한 신생국가라는 것을 떠올리며 지도를 보았다. 슬로베니아와 헝거리, 보스니아와 인접해 있고 한 면은 아드리아해 접한, 물찬 제비처럼 생긴 나라이다. 문화는 고대와 중세에 이르는 찬란한 문화재와 문화를 가지고 있다니 사뭇 기대 되었다. 이 나라의 수도 자그레브에 와 있는 것이다.

 

옐라스차(Jelacoc)광장

자그레브에서 처음 들른 곳은 시내 중심에 있는 옐라스차(Jelacoc)광장이었다. 1848년 오스트리아 제국의 침임때 공을 세운 옐라스차 장군의 동상이 우뚝 서 있었다. 당연히 광화문 광장에 있는 순신 장군이 떠올랐다. 이 순신 장순이 긴 칼을 옆에 차고 있다면 여기에 장군은 역동적인 말을 타고 칼을 빼어 들어 지위하고 있다. 나는 장군보다 말이 더 마음에 들었다. 광장의 앞에는 긴 전차가 느리게 다니고 있었는데 올라타고 한 바퀴 돌고 싶었지만 시간이 허락하지 않아 기념촬영만 했다.

 

자그레브(Zagreb) 나는 이 단어의 어감이 너무 좋다. 글자의 배열도 안정적이어서 정이 간다. 그래설까. 도시의 풍경이 매력적이다. 자그레브는 자그레브 주교님이 1094 년에 창립에 설립하여 도시로 자리잡게 되었다고 한다. 오래된 역사만큼이나 거리의 건물이 고풍스럽다. 자그레브에서 유명한 것은 캅톨(Kaptol)성당과 박물관도 많다.

나는 시장에 관심이 있었다. 평소 북적거리는 재래시장에 가서 이것 저것 구경하면서 조금씩 물건을 사고 먹어 보면서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했다. 시끌시끌하게 열심히 생활하는 사람들 속에 있다 보면 활력을 얻어 오고 했다. 유럽에는 재래시장이 거의 사라지고 없어져 월마트를 이용해야 한다고 하는데 동유럽인 크로아티아에는 시장 이 있기를 바랬다. 그들이 무엇을 먹는지, 어떤 옷을 입는지, 사람들의 모습은 어떤지 궁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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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음을 사로잡은 꽃 시장>

와우! 내가 찾던 노천 시장

이런 바람은 운 좋게도 바로 이루어졌다. 광장 뒤쪽에 꽃가게를 발견하였다. 옐라스차 광장 뒤편으로 길다랗게 꽃가게가 이어져 있었다. 익숙한 나리꽃과 들국화, 꽈리를 발견하곤 반가워 했다가 이내 처음 보는 이름 모르는 꽃들에게 눈길을 빼앗겨 버렸다. 부케처럼 한 묶음씩 팔았는데 부케로 써도 될 만큼 탐스럽고 아름다웠다.

 

이 꽃들이 많이 쓰이는 용도가 축하용인지, 장식용인지, 낯선 꽃의 이름은 무엇인지 물어보고 싶었지만 나의 짧은 영어로 도저히 불가능했으므로 표정으로만 예쁘다고 크게 웃었다. 크로아티아는 크로아티아어가 있다. 그렇지만 젊은 사람들은 영어를 잘하기 때문에 영어를 사용하면 별 무리가 없다고 한다. 관광 도시라서 인지 시장의 아주머니들도 대충의 영어는 알아 들었다.


말려진 꽃다발을 하나 샀다. 2유로를 주었으니 우리나라 돈으로 하면 3600원이다. 우리나라와 비교하면 싸다. 한숙님은 생화 한 다발을 샀는데 우리는 하루 종일 꽃다발을 들고 즐거워했다.
처음에 보인 꽃가게는 광장을 찾는 연인들을 위해 꽃만 파는 곳인 줄 알았다. 그러나 한 계단 위는 과일가게가 쫙 펼쳐진 시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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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일, 야채 노천 시장의 모습>

혜향이와 나는 환호성을 질렀다. 이렇게 시장이 마술처럼 눈앞에 펼쳐지다니. 마음이 급해졌다. 카메라를 챙기고 크로아티아 돈 쿠나(Kuna)를 성우오빠에게 달라고 했다. 크로아티아는 유로도 사용하지만 유로 연합에 가입이 되어 있지 않아 쿠나(Kuna)라는 자기 나라 돈도 사용한다.

유로는 서울에서 환전이 가능하지만 쿠나는 여기 와서 바꿀 수 있기 때문에 나는 하나도 없었다. 이런 재래 시장에서는 쿠나를 더 선호할 것이라고 판단했다. 사실 그 판단은 얼핏 본 가격이 쿠나로 되어있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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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체험에 나선 혜향과 나, 과일 먹어보기>

카메라와 쿠나. 이것이면 되었다. , 그리고 용기. 말이 통하지 않지만 물건을 사보고 물어보려는 용기. 그때는 그냥 용기가 생겨서 억지로 챙길 필요는 없었다. 무작정 부딪쳐 보고 사 먹어 보자는 들뜬 마음뿐이었다. 나는 역시 이런 삶의 현장에 오면 에너지가 솟는다.

 

과일, 야채 시장

자그레브의 시장은 테마별로 공간을 달리 하고 있었다. 광장의 옆에 꽃시장이 있었고 한 계단 올라오니 과일과 야채과게가 가장 크게 자리 잡고 있었다.

 

먼저 생동감 넘치게 하는 것은 붉은 색의 파라솔이었다. 우리나라 해운대에나 볼 수 있는 머리를 맞댄 파라솔의 흔들리는 처마가 축제와 같은 분위기를 만들었다. 그리고 천연색의 과일과 야채들의 다양한 칼라가 즐거움을 주었다. 붉은 복숭아 옆에 자줏빛 자두, 그 옆에 빨알간 딸기, 검붉은 오디, 청록의 청포도…. 그 아름다움에 매혹되어 생전처음 꽃이 있는 벌판을 발견한 벌마냥 정신 없이 색깔들 사이를 휘 젖고 다녔다.

 

복숭아는 청도 복숭아로 약간 무르도록 잘 익어 있었는데 달고 맛있었다. 수박은 길고 컸는데 씨가 촘촘히 박혀 있었다. 청포도는 비취색이 맑고 투명했는데 씨가 별로 없고 달았다. 내가 가장 관심을 끈 과일들은 우리나라에서는 흔하지 않은 짙은 자줏빛을 띄는 녀석들이었다. 과일의 자줏빛은 오묘했다. 자두였는데 맛은 밋밋했다. 오디처럼 생긴 자주빛 열매도 보기 보다 맛은 없었다. 과일은 일단 단맛이 나야 맛이 있다 할 수 있지 않는가. 가격은 1키로에 6~7쿠나였는데, 1유로가 7.3투나이니 1,400~1,700원이니 정말 싸다. 한 여름의 여행이 좋은 것은 어딜가나 먹을 것이 가득하다는 것이다. 한 바퀴 돌면서 이것 저것 조금씩 사서는 하나씩 먹고 나머지는 시장 옆 호프집에서 베이스 캠프를 치고 있겠다는 성우오빠와 철, 정현 언니에게로 날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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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싱싱하고 색깔도 고운 야채들>

 채소는 정말 익숙한 것들이 많았다. 상추, 브르콜리, , 토마토, 양배추, 감자, 미나리, 고구마는 우리 농산물과 같았고 보리비빔밥에 잘 어울리는 어린 열무 싹을 보았을 때는 한 움큼 사고 싶었다. 우리나라에는 이렇게 한여름에는 시장에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양파는 아주 진한 보랏빛이었고 오이는 피클 담그기 좋은 크기로 아주 작았고 당근은 잎사귀까지 파는 것이 특이했다 강낭콩은 까지 않은 채 꼬투리째 팔았고 파프리카는 색색이 다양했다. 옥수수는 송이는 컸지만 알갱이는 통통해 보이지 않았다. 감자는 흰색과 붉은색이 있었고 고구마는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우리가 김치 담그기의 주 재료인 무우와 배추도 보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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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센스 있던 마늘가게 아주머니>


한가지 신기한 건 마늘이었다. 불리는 이름만 다를 뿐 그건 분명 마늘이었다. 서양사람들이 우리나라 사람들한테 마늘 냄새 난다고 싫어한대서 마늘은 나지도 않는 줄 알았는데 덩그러니 팔고 있었기 때문이다. 일단 그 마늘 맛이 우리 마늘과 같은 지가 궁금했다. 마늘가게에 다가가 보니 아주머니들에게 쪽 마늘을 잘라 맛을 보도록 건네주고 있었다. 관심을 보이는 나에게도 건네 주었다. 맛은 똑같이 매웠다. 모양만 같은 것이 아니라 맛도 같았다.

그제서야 생각이 짧았음을 감지했다. 마늘은 먹으나 조리법이 다르다는 것을. 아마도 그들은 생으로 먹지는 않는가 보다. 마늘가게 아주머니는 카메라를 드는 나에게 친절하게도 마늘 한 타래를 들고 포즈까지 취해 주었다.

 


   토속품 가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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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친절한 토속품 가게에서>

과일 노천 시장이 끝나는 부분 모퉁이에 노천이 아닌 형태의 크로아티아 전통 특산품 상점이 있었다. 가게 규모는 아주 작았고 진열된 것들은 손으로 짠 식탁보와 러너였다. 그것은 전혀 고급스럽지 못했고 특이해 보이지도 않았다. 털이 달린 전통 신발도 팔고 있었다.
 
그 옆 가게에는 성당이 그려진 접시, 크로아티아 국기 문양인 빨간색 격자무늬의 그림들이 그려진 열쇠고리, 술병, 보석함 등이 진열되어 있었다. 원주민들이 입었던 전통 복장의 인형도 팔았는데 사진을 찍지 못하도록 했다.

맨 마지막 가계의 착한 아가씨는 사진도 찍을 수 있도록 해주었다. 나는 찬찬히 구경하는 동안 혜향인 연신 셔터를 눌렀다. 친절한 마음이 고마워 크로아티아 국기 문양이 그려진 조그마한 다용도함을 샀다. 35쿠나 였는데 쿠나가 없어 5유로를 주었다.

 




  생선 시장

특산품을 둘러보고 나오니 옆 건물이 생선시장이었다. 혜향이와 신이나 뛰어들어 갔다. 생선 시장은 일단 깔끔했다. 비른내도 없었다. 그리고 생선이 많지 않았다. 갓 잡은 생선을 그날 팔 양만큼만 진열해서 팔고 마는 것 같았다. 그 만큼 양이 많지 않았고 싱싱했고 냉동생선이 없었다. 신선했고 큰 물고기는 토막 토막 내어 그릴에 바로 구우면 되도록 팔았으며 낙지도 다리를 잘라 팔았다. 산골에 살아서 생선요리를 잘 하지 않은 나로서는 이렇게 싱싱한 것을 깨끗하게 다듬어서 판다면 생선요리에 도전해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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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깔끔하고 신선한 생선 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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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방 요리해 먹어도 좋을 듯 한 생선들>

 

  

 

 

 

 

 

 

 

 

 



모든 생선을 천정에 매달려 있는 저울에 달아서 팔았는데 주부다 보니 가격을 안볼 수 없었다. 양의 단위는 전부 1kg이었다. 우리나라처럼 몇 마리에 얼마는 없었다. 우리는 정확한 무게 단위가 아닌 마리로 하다 보니 수학적 감각이 둔한 나로서는 그럼 양이 얼마큼 되는 건지 감이 오지 않았다. 하여간 쿠나나 적힌 가격을 환산해 보면 고등어는 1kg 7,400, 꽁치는 9,800, 오징어는 27,100, 새우는 37,050원 정도이다. 과일에 비해서 생선은 비싼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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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초와 화분 시장>

꽃 시장

생선시장은 나와 한 계단을 오르니 화분과 화초를 파는 시장이 나왔다. 옆에는 화분도구만 파는데도 있었고 또 다른 한 켠에는 실내 장식용 꽃꽂이를 파는 코너가 있었다. 이제서야 알았다. 아까 꽃을 산 광장 뒤 꽃가게는 선물용 꼭 가게였다는 것을.

 

옷과 모자, 가방을 파는 시장은 한 계단 위 맨 꼭대기에 있었는데 제품의 품질이 좋지 않아 손길이 가지 않았다. 아마도 중국이나 우리나라에서 수입되는 것 같았다. 현지에서 모자를 하나 사서 쓰려고 마음먹은 터라 관심 있게 봤지만 독특한 디자인도 없을뿐더러 제품이 우리나라 것만 못했다.

 

<크로아티아 여행의 Tip >

공산품은 정말 비싸다. 게다가 품질까지 좋지 않다.

현지에서 옷을 사 입거나 모자, 선글러스, 신발을 사야지 하는 사람은 생각을 접기 바란다. 다 준비해 가라.

 


한참을 돌고 베이스캠프로 차린 카페에 오니 모두 즐거이 앉아 있었다. 아까 산 자주빛 자두를 안주로 맥주 한 모금을 들이키니 최고였다. 관광하지 않고 카페에 앉아 있다고 핀잔도 주었지만 가까운 곳에 베이스캠프를 차리고 앉아 있으니 돌아다니기를 좋아하는 나로서는 든든하고 좋기도 했다.

자그레브에서의 나의 여정은 이렇게 시장을 둘러보는 것으로 막을 내려야 했다. 유서 깊은 고딕양식의 성당과 건축물을 들러보지 못한 아쉬움이 있었지만 지나간 세월의 흔적보다 현재를 살아가는 크로아티아인들이 나에게 더 중요하다. 그래서 후회는 없다.


 

플리트비체(Plitvce) 국립공원

자그레브에서 플리트비체 공원까지 2시간을 달려왔다. 버스에서 가이드 한숙님은 송어요리에 대해서 설명해 주었다. 하여간 여기 사람들이 즐겨먹는 음식인가 보다. 공원 입구 호텔 예제로(Hotel Jezero) 식당이었다. 실내는 어두웠다. 그리고 별로 시원하지 않았다. 우리는 일단 호텔 건물뿐만 아니라 건물 안에 들어나면 시원함을 바로 느낄 수 있는데 그 호텔은 그렇지 않았다.

기본적으로 줄 것이라고 생각했던 물도 사먹어야 했다. 여행 다니면서 가장 힘들었던 것이 물이다. 여행경비의 일부는 물값으로 지불해야 했다. 버스 기사 스탕코가 저렴하게 팔아서 다행이긴 했지만 식당에서 물이 제공되지 않는 것은 여간 불편하지 않았다. 불편이 아니라 불쾌라고 해야 맞겠다.

 

메인 요리전의 수프는 송어를 넣어 끊인 것이었는데 기름이 많이 뜨고 아주 짰다. 물도 주지 않으면서 그렇게 짜게 한 것은 더욱 불쾌하게 했다. 메인 송어요리는 송어 한 마리가 구워져 있었고 곁들어진 감자는 간을 하지 않은 반면 익힌 나물은 소태처럼 짰다. 터무니 없이 짜게 한 음식이 이해되지 않았다. 몇 번의 식당을 거치면서 나중에서야 깨달았다. 간이 안된 감자와 잔 나물을 같이 먹으면 얼추 알맞은 간이 된다는 것을. 생선은 맛은 괜찮았으나 기름기 많았던 생선수프 때문인지 생선에도 기름기가 많았던 느낌이다.


<크로아티아 여행의 Tip >

물병은 꼭 챙기고 다니자. 식당에서 남은 물은 꼭 담아서 다니는 알뜰함이 필요하다.

 

 


플리트비체(Plitvce) 호수 공원

플리트비체 호수는 한마디로 웅장하고 경이롭고 아름다웠다. 크고 작은 호수가 16개나 되고 폭포가 96개라던가? 우리는 시간 관계상 중간지점에서 아래 쪽 호수를 트래킹하기로 했다. 호수의 물은 정말 깨끗했다. 석회석으로 인해 우리가 흔히 볼수 없는 청록색의 물빛이었다. 이런 빛을 에메랄드빛이라고 했다.

크게 고개를 끄덕이며 하염없이 그 호수 빛을 바라보았다. 그리곤 다가가 만져 보았다. 나는 어렸을 때 에메랄드 빛은 어떤 빛일까 매우 궁금해하며 지낸 적이 있었다. 유치환 시인의 <행복>이라는 시를 유난히 좋아했었는데 에메랄드빛 하늘이 훤히 내다 뵈는 우체국 창문 앞에서 너에게 편지를 쓴다는 싯구절을 읊으면서 한번도 보지 못한 에메랄드빛을 상상하곤 했었다. 이 빛이 그 빛이라니! , 그렇구나! 눈에 담고 손끝에 담고 가슴에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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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숙님의 호수 트래킹 코스 안내>

  호수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될 만큼 잘 보호 되어 있었다. 에메랄드 빛 초록의 호수와 한 여름의 짙푸른 숲과 폭포의 소리가 잘 어우러져 넋을 잃게 했다. 호수를 따라 걷는 길은 자연을 헤치지 않도록 산길을 내어 잘 조성하였고 호수를 가로지르는 길은 나무판을 이어 붙여 친환경적으로 만들었다. 호수는 높낮이를 달리하거나 작은 폭포를 만들어 지루하지 않도록 했다.

 

내 눈에 들어오는 것은 호수 속이 물고기보다 호수를 둘러싼 숲 속의 나무들과 호수 주변의 풀들이었다. 너무나 놀란 것은 여기의 산은, 숲은, 나무는 우리나라와 너무나 같다는 것이다. 공원의 벌판의 풀들은 질갱이, 민들레, 네잎클로버들이었고 소나무는 물론이고 느티나무, 깨금나무, 찔레나무, 아름을 모르는 수 많은 나무들도 눈에 익숙한, 야산에 가면 익숙히 볼 수 있는 것이었다. 호수에 난 수초는 어떤가. 한강에 가면 흔한 억쇠에 버드나무 거기에 줄기를 나물로 먹는 머구(표준어는 머위인가?)대를 보고는 정말 놀랐다.

 

비행기로 12시간을 날아와야 닿는 나라, 다른 대륙에 위치한 나라의 강산에 이렇게 같은 식물이 자라다니. 식물학자가 아니라선지 나는 놀랍기만 했다. 그 에메랄드 초록빛만 아니었다면 여긴 이국 땅이 아니라 한국땅 같았다. 산천초목이 같다는 것이 이다지도 반갑고 마음을 푸근하게 할 수도 있구나 싶었다. 고향 친구를 만난 듯 기뻤다. 옛말에 '까막까치도 고향 까막까치를 만나면 반가운 법'이라고 하더니 그 심정인가 보다. 크로아티아가 무작정 좋아졌다.


<크로아티아 여행의 Tip >

아이들과 여행을 한다면 야생화 백과나 식물도감을 넣어 가세요. 시간이 된다면 플리트비체 호수 트래킹을 하면서 나무와 식물을 살펴보라고 권하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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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덕에서 내려다 본 플리트비체 호수>

나는 호수의 아름다움을 외면하고 숲 속으로 고개를 돌려 걸었다. 카메라의 에너지가 사라지니 더 집중하여 살필 수 있었다. 나는 혼자서 조용히, 천천히 걸어 내려왔다. 사실 이때 신발이 불편하여 천천히 올 수 밖에 없었다. 나는 북한산도 하이힐을 신고 거뜬히 오르내릴 정도로 잘 걸어 이 정도의 트레킹은 거든했지만 문제는 나무를 이어 붙인 길이었다.

 

약간의 굽이 그 사이에 빠져 여간 걷기가 힘든 것이 아니었다. 편한 신발을 신으라고 한 한숙님의 말을 귀담아 듣지 않을 것을 후회했다. 옆에서 보기에도 얼마나 불편해 보였을까. 때와 장소에 맞는 복장, 매우 중요하다. 나의 프리트비체 호수 트래킹은 그것으로 망쳤다.

 

<크로아티아 여행의 Tip >

플리트비체 호수 트래킹시 가이드의 주의 사항을 귀담아 들으세요. 약간의 뾰족구두도 매우 불편하답니다. 나무판으로 연결된 길이 이어지기 때문에 뾰족 구두는 여간 불편하지 않답니다.   

 

 





자다르(Zadar)에서 나의 사랑을 잠재우다.

둘째밤을 보내기 위해 자다르에 다달았다. 여행 중 첫 수업도 시작되었다. 오늘 발표는 나로 정해졌다. 나는 저녁밥(밥이 없으니 밥이라고 하면 안될 듯), 저녁식사를 하는 둥 마는 둥하고 어떻게, 어떤 단어로 말할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수업의 발표가 이렇게 불편해 보기는 처음이었다편히 말할 수도 있는 것인데 편히 말해지지 않을듯해서 머리를 절래절래 흔들었고 그 때의 감정이 올라와 눈물을 흘릴 것 같아……그럼 넘 쑥스러움을 넘어 쪽 팔리지 않는가.

 

한편으로는 그래, 진지하게 생각해면서 지나간 사랑, 별거 아니 것을. 입 밖에 내어 말하고 깨끗이 떨쳐버리는 계기로 삼자.’는 마음도 들었다. 분명 말하고 나면 그렇게 될 터인데-몇 번의 수업을 통해서 입 밖에 내어 말하는 것이 진정한 통찰에 이루는 길임을 나는 알고 있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했다. 어설픈 사랑을 알릴 용기, 그 사랑에 나의 잘못도 있다고 시인하는 용기, 감정의 끈에 휘말려 허우적댔던 나약한 나를 보여 줄 수 있는 용기, 또 다시 눈물이 흘러도 창피함을 무릎 쓰고 더 흘릴 용기, 어리석은 사랑에 대한 질타를 이겨낼 용기…. 용기가 필요했다.

 

나의 사랑은 이별이다. 사랑의 추억보다 이별의 아픔이 더 크게 남아있었다.

나는 용기 내어 노래로 시작했고 사랑을 이야기하고 시를 읊조렸다.

 

<사랑 그리고 이별 신계행>

우리는 사랑했어요 한 순간의 꿈일지라도

너무너무 사랑했던 까닭에 세상 고통도 모르고

우리는 헤어졌어요 사연과 사연 속에서

너무너무 가슴 아픈 이별에 그 흔한 눈물도 없이

추억이라고 말을 하지 말아요 우리 사랑 하도 서러워

가슴 깊이 새겨진 그대의 진실 아닌 진실의 말을

이제는 잊어야 하는 따사로운 봄날의 기억

지금 나는 가을 낙엽 위에서 세상 고통을 느껴봅니다.

 

사랑을 말하려고

성스러운 불길에 내 입술을 씻었네.

그러나 입을 여는 순간 말을 잃고 말았네.

사랑을 알기 전에는

늘 사랑의 노래를 불렀지만

사랑을 알게 된 후로는

입 속이 말들이 보잘 것 없게 되어

내 가슴 속의 곡조가 침묵 속에 깊이 잠겼네.

그 옛날

그대가 사랑의 비밀과 신비에 대하여 물었을 때

나는 자신 있게 대답했었지.

이제 사랑의 예복을 덧입은 후로는

도리어 그대에게 사랑의 모든 길과

그 모든 놀라움에 대하여 묻게 되었다네.

그대들 중 누가 대답해 줄 수 있나? – 칼리 지브란, <사원의 문 앞에서>

 

아직도 사랑은 입 밖에 내기가 힘들다. 사랑 이야기를 하자니 침묵하게 된다.

나를 성숙하게 한 아픈 사랑이기에 입에 올리기가 힘들다. 칼리 지브란이 말했듯이 사랑을 알기 전에는 사랑에 대해 말할 수 있었으나 사랑을 잃어 아픔을 겪은 후로는 모든 것이 보잘것없게 되어 아무 말 할 수가 없다. 가슴 아팠던 그 사랑 앞에서 침묵하게 된다.

나의 첫사랑의 추억과 이별은 나를 심하게 뒤흔들었다. 그 이별의 아픔을 삭이느라 아주 오랜 밤을 지새고 수 많은 날들을 백지로 만들어야 했다.

 

<사랑은 이별로 완성된다>

 

사랑은 사랑할 때는 모른다.

그게 진정한 사랑이었는지, 연민이었는지, 의무적이었는지.

사랑의 굴레 안에 있을 땐 아무것도 볼 수 없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그저 그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세상은 충분하다.

 

이별은 그 세상을 깊이 바라볼 수 있는 눈을 준다.

이별은 생각의 고정이다.

그만 본다. 또 보고 다시 보고 그와의 말들을 다시 의미해보고

그때의 그의 표정의 진실은 생각하고

영원하리라 믿었던 사랑이었는데 무엇이 잘못인지 생각하고 또 생각한다.

생각하기 보다 저절로 떠오른다.

 

그것은 결코 명상이 아니다.

가슴을 도려내는 아픔이고 그리움이다.

 

이별을 했음에도

이성은 헤어짐을 받아 들이면서도

떠오르는

그와의 작은 그 무엇도 그냥 지나가지 않고

참을 수 없는 보고 싶음을 만들어 낸다.

그가 지금쯤 어디 있을까를 생각하고

내 목소리를 듣는다면…. 시나리오를 쓰고 지우고 또 다시 쓴다.

 

이렇게 해야만 아주 조금씩

사랑이, 정이, 그리움이 사그러든다.

깊은 이별의 아픔은 그 사랑의 의미를 제대로 보게 해준다.

남는 것은 미웠던 기억이 아니라 아름다움 추억이다.

나를 위해 웃어주었던 표정

애써 불러 주었던 노래

한 걸음에 달려와 준 그 순간

참 이상하게도 좋은 기억만 남는다.

 

아니다. 언제나 꺼내 그리워 할 수 있도록

더 아름답게 포장했기 때문이다.

 

사랑은 이별로 귀결된다.

사람을 가장 성숙하게 하는 것이 사랑이다. 누군가를 간절히 사랑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보다 더 성숙하게 하는 것은 이별이다.

 

사랑의 이별을 해보지 않는 사람은 사랑을 안다고 할 수 없다.

사랑을 하고 이별을 하지 않는다면 사랑을 한 것이 아니다.

 

 

나의 노래는 슬펐지만 웃겼고 이야기는 애틋한 듯했지만 진부했고 시는 처절한 듯했지만 담담했다.


어쨌거나 나는 드디어 해냈다. 무수한 용기를 냈던 덕분에 해냈다.

나는 이제 홀가분하다. 아름답게 포장하여 두었던 좋은 기억도 떠오르지 않는다.  

웃기는 건 그렇게 절절했던 사랑도 말로 하니 별거 아니었던 것이다.

여행을 다녀와서 올린 글이 딱 내 마음이다.

 

지금 생각하니 사랑은 오버(over)가 아닌가 싶네.
쉼 없이 흐르는 눈물에 애절하지만 올라가지 않은 노래를 끝까지 불러
바라보는 이들은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난감하게 했던
사랑이야기가 정말 웃기는 장면 중 하나라네.

그러나 나에게는 절절했던 그 사랑도 오버스런 포퍼먼스 속에 사라져갔네.
생각하면 아련하고 글로 쓰면 생각이 멈춰지는 사랑도
말로 하면 물거품이 된다네.

이제야 알게 되었다네.
내가 가지고 있었던 사랑의 추억도 오버였다는 것을.
그렇다고 사라진 건 아니라네.
아주 편안한 곳에 단아한 모습으로 자리잡아 있을 뿐.

사랑은 나도 모르게 다가올 때부터 오버라네.
열렬히 사랑할 때에도
쓰디 쓴 이별 속에서도
먼 시간이 지나 추억이 되어도 유치한 오버는 계속 된다네.

그러나 사랑에 오버가 없다면
꽃에 향기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라네.

나의 사랑의 정의는 '사랑은 이별로 완성된다' 였네.
사랑의 정의는 사람마다 다르지만
매 사랑마다 또 다른 것 같네.

철이가 수업 이후 사랑의 정의를
'
사랑은 동사이다'에서 '사랑은 각본이다'로 바꾼 것처럼
나도 사랑의 정의를
'
사랑은 오버(over)이다'로 바꿔야 겠네.

세상 사람들의 수 많은 사랑의 정의를 듣고 싶네.
다가오는 가을에는 사랑의 열매를 찾아 나그네가 되리.
모든 아름다운 사랑에 축복을!

 

<크로아티아 여행의 Tip >

아주 괜찮은 사람과 함께 여행 중이라면 가슴속에서 털어버리고 싶은 것 한가지만 꺼내어 발칸의 달빛 아래에서 얘기해 보세요. 그러면 마술 같이 사라진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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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8.28 13:52:07 *.249.57.210
크아~ 실력 발휘 지대로다!!
배추벌레, 아니 환상의 나비 맞네!

언능 다음 글 올려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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