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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수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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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5월 26일 00시 51분 등록

2014. 5. 25


‘창조’라고 창에 띄워두고 하루 종일 끙끙 앓았다. 이렇게나 멋진 단어를 두고 나는 창작의 고통 가운데 있었던 것이다. 재능과 소질이 안 되는 사람이 훈련도 없이 감히 ‘창조자’의 언저리를 넘보는 것이 고통의 발단이다. 고도의 집중과 창조성이 요구되는 창의적인 글쓰기는 이 순간 넘을 수 없는 벽으로 다가온다. ‘창조성’에 관한 제법 두꺼운 책을 읽었다. 책 속에 등장하는 걸출한 창조적 인물들의 생애를 반추하면서 나란 사람 ‘창조’ 따위의 숭고한 단어와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참 다행이다.


내가 사는 세상엔 ‘창조’가 아주 흔하다. 경제까지 창조하겠다며 매체란 매체는 모두 떡칠을 하는 판이니 이쯤 되면 온 국민이 창조의 물결 속에서 창조적인 삶들을 누릴 듯 하다. 기억을 더듬어 보건데 학창시절동안 내가 만난 모든 벽에서 나는 ‘창조’라는 글자를 봤을 것이다. 우리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난 만큼 타고난 저마다의 소질을 계발하고 창조의 힘과 개척의 정신을 길러야 했으니 교실마다 벽마다 ‘창조’는 부적처럼 종교처럼 그렇게 존재했던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단 한번도 창조적인 교육을 받았다는 느낌은 없다. 


그러고 보니 나는 초등학교(그때는 국민학교) 이후 정규과정을 정규적으로 소화해낸 적이 없다. 어영부영 중학교를 다녔고 남들보다 한해를 더 다녔다. 고등학교 때는 선생님들께 맞은 것 말고는 별로 기억나는 것이 없다. 대학은 이곳저곳을 전전하며 십년을 다녔고 대학원은 석박사 과정을 합해서 12년을 다녔다. 아무리 봐도 창의적인 인생역정이라기엔 그림이 안나온다. 나는 어째서 악착같이 제도권에 편입되려 했던 것일까! 결국 끼지도 않을 거면서…….


나는 직업적 연관으로 기업들을 방문할 기회를 자주 갖는다. 대부분 최고경영자를 만나게 되는데 이들의 하소연은 언제나 하나같이 직원들의 무뇌증에 대한 것이다. 생각이 없다는 것인데 이렇게 방문했던 회사들의 벽에는 어김없이 ‘창조’ 또는 ‘창의’라는 글씨가 선명하게 게시되어 있었다. 나 역시 그들과 마찬가지로 16년 동안 무뇌증 환자로 살았던 경험이 있다. 회사 정문을 들어서는 순간 뇌 활동을 정지시키고(또는 자동으로 정지되고) 회사 정문을 나서면서 다시 정상적으로 가동하는 것이다. 회사에서의 일들(정치적인 게임을 포함해서)은 대부분 그다지 창의적인 사고를 요구하지도 않았으며 그럴만한 일도 없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창의적인 생각이 자생할 수 있는 조직의 문화적 토양 역시 존재할 턱이 없다. 깡마르고 경직된 건조한 조직문화는 무뇌증 환자를 양산할 뿐이다. 나는 대부분의 조직에서 생각하고 행동하는 직원보다 말 잘 듣는 직원이 안전하며 심지어 득세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지난 5년여 동안 일주일에 하루 이틀쯤 나는 학생들을 만났다. 그들에게 나는 제법 영향력이 있으며 인기 있는 선생이다. 학생들에게 내 강의는 꽤나 신선했던 모양이다. 나는 가끔 그들에게 뜬금없는 잡설로 그들의 주의를 모은다. 꿈은 높고 크게 가지되 스티브 잡스나 래리 페이지 같은 인물들을 동경하는 것을 멈추라고 한다. “내가 보기에 너희들 가운데 그만한 재목이 없다. 너희들이 다 잡스가 되고 페이지가 되면 누가 공장에 가서 일하며 누가 식당에서 설거지를 하고 누가 학교 정문을 지키느냐? 그들은 훌륭하고 이들은 훌륭하지 않은 것이냐? 그들은 필요한 사람이고 이들은 필요 없는 사람이냐? 그들은 이긴 것이고 이들은 진 것이냐? 잡스의 대학중퇴 이력에 관심을 쏟지 말고 너희들 성적표에 먼저 관심을 쏟아라.” 며 독설을 쏟는 것이다. 그 녀석들 대부분은 눈에 총기가 없다. 자신이 무엇을 하고 싶은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생각을 놓은지 오래되었다. 당장 토익 성적과 취업의 벽이 높이 있을 뿐이다. 녀석들에게 S사는 이데아고 듣보잡 중소기업은 패배다. 이처럼 세상은 언제부턴가 루저(loser) 양산소가 되었다. 이들에게서 ‘창조’와 ‘창의’를 뺏어 간 것은 도대체 누구인가!


다중지능 이론의 창시자 하워드 가드너 교수는 창조성의 발현을 위해서는 탁월한 재능과 함께 그 분야에 대한 우호적인 문화와 풍부한 사회적 지원이 있어야 한다고 갈파하였다. 이것은 그가 주장한 창조성의 원천인 ‘아이처럼 세상을 바라보는 힘’을 어른이 되어서도 잃지 않게 하는데 필수적인 요건이었을 것이다. 잃어버린 어린시절의 호기심과 꿈을 다시 찾아 끄집어 낼 수 있는 문화적, 사회적 환경을 만드는 것이 절박할 만큼 시급하다. 가드너는 창조적 삶을 산 일곱 거인들의 전기를 조명하면서 그들이 살았던 시대와 장소에 주목했다. 이들에게 잠재해 있던 창조력이 폭발할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속한 문화적, 사회적 환경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았다는 것을 간파했기 때문이다. 


정치, 사회, 문화, 교육, 경제 등 모든 분야의 개혁이 필요하다는 코끼리 부랄 만지는 듯한 주장을 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우비한 직관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대안을 말하지 못하겠다. 하나 분명한 것은 벽에다 붙이고 방송에서 떠든다고 될 문제는 아닌 것이다. 허투루 허상만 쫓으며 생색내기에만 열중하다 보면 인지부조화만 가중시킬 뿐이다.


오늘 ‘창조’란 단어는 아름답지만 무책임하고 공허하다.


IP *.45.172.1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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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5.26 01:20:33 *.65.152.14

그지깽깽이 같다니요? 완전 좋구만!!


내가 보기에 너희들 가운데 그만한 재목이 없다. 너희들이 다 잡스가 되고 페이지가 되면 누가 공장에 가서 일하며 누가 식당에서 설거지를 하고 누가 학교 정문을 지키느냐? 그들은 훌륭하고 이들은 훌륭하지 않은 것이냐? 그들은 필요한 사람이고 이들은 필요 없는 사람이냐? 그들은 이긴 것이고 이들은 진 것이냐?

특히 요런 멘트 완전 사랑합니다!!

저도 <열정과 기질>읽으면서 또 속이 불편했어요~~

창조적이고 창의적이면 문제 있는 아이인 듯 치부해버리는 교육 환경 때문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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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5.26 12:59:58 *.104.9.216
데카상스 멤버들이 비교적 같은 톤으로 접근한 책이 이 책인 듯 합니다.

진의를 제쳐두고라도 반갑네요.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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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5.26 11:50:13 *.196.54.42

"재능과 소질이 안 되는 사람이 훈련도 없이 감히 ‘창조자’의 언저리를 넘보는 것이 고통의 발단이다. 고도의 집중과 창조성이 요구되는 창의적인 글쓰기는 이 순간 넘을 수 없는 벽으로 다가온다."

이 말 완전 나를 두고 하는 말 같네~ 동병상린, 나도 종일 토욜 종일  칼럼 붙들고 낑깅거리다 내게 절망한 하루 였다오.ㅜㅜ

 

그래도 피울님은 말이 되네~ 맥락이 있고 포인트도 있어요, 좋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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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5.26 13:00:57 *.104.9.216
동병상련입니다. 형님!

주르륵...물리적으로 힘듭니다 요즘은 ...시간이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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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5.26 12:49:35 *.94.41.89

형님은 이 시대를 이 세상을 참 사랑하는가 봅니다.

늘 글에 그렇게 사랑한다고 외치고 있으니 말입니다.

이젠 그냥 사랑한다고 말해봐도 좋을 것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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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5.26 13:03:05 *.104.9.216
모르겠어요. 잘.
난 좀 삐딱하지요. 몽상가에 가까울 까요?
안되는거 알면서도 미련이 남아요.

뿔 뜯어먹는 소리하지 말라고들...많이 들었던 이야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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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5.26 18:57:33 *.94.41.89

지금의 캐릭터 멋있습니다.

 

천국에 이르는 계단은 늘 놓여 있습니다.

걸어가는 자만이 그 계단에 발을 디딜 수 있을 뿐이죠.

안되는 것도 없고 미련으로 남길 일도 없습니다.

그 계단이 앞에 있으니까요.

 

그렇게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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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5.27 09:58:04 *.23.235.60

내 창조와 창의도 누가 뺐어갔어요. 불끈!!!!

학창시절 피울님 강의를 들으면

나름 상심은 되고 피울선샹 욕 무쟈게 해댔겠지만

확실한 현실인식은 했을 것 같은데요 ㅎㅎ

그리고 커서 생각나는 선샹님도 피울선샹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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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5.29 02:18:20 *.104.9.249

우리 창조와 창의는 우리가 뺏어간거 같아요.

곧 돌려 받겠지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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