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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5월 26일 08시 52분 등록

_구달칼럼#7 (2014.5.26)  

 

'길은 외줄기 남도 삼백리' 길은 끝이 없었다. 제방길이 아스라히 사라지는 저 너머에는 무엇이 있을까? 강 따라 구불거리며 이어지는 그 길만 보면 끝까지 가보고 싶었다길은 언제나 나를 유혹한다.  

 

길을 걷는 것만큼 몸이 춤추는 기분 좋은 경험이 또 있을까? 신은 내게 두 발을 주셨다. 그 발로 신나게 걸으라고. 그런데 이제 나는 걸을 기회가 좀처럼 없다. 자동차가 생기고부터는 세상의 길이란 길은 온통 이 괴물의 차지가 되어 버렸다. 바쁜 나는 걷기보다는 편리하고 빠른 이 괴물을 더 애용하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특별히 시간을 내어 걷기를 하지 않으면 걸을 일이 별로 없다. 도시문명은 우리 발이 좋아하고 몸이 살아나는 자연 속 아름다운 길들을 아스팔트나 시멘트로 몽땅 덮어 버렸다. 걷고 싶은 길이 사라져 버렸다. 길을 나서면 무법자 자동차들이 내는 무시무시한 소음과 배기가스의 악취가 숨통을 조여온다. 아예 방독면을 하고 길을 걸어야 할 지경이다.   출퇴근시 나의 동선을 가만 보면 열악하기 짝이 없다. 일산서 경의선을 타고와서 지하 서울역에서 1호선 지하철을 갈아 타고 시청역에 내려 지하보도를 따라 걸어 사무실로 출근한다. 이 지하의 노선이 싫어 한동안 서울역에서 사무실까지 걸어 가기도 해 보았지만 걷는 길의 환경도 역시 지하도 못지않은 고통이었다. 도시는 이제 제대로 걸을 길조차 찾아내기 어려운 곳이 되어 버렸다. 걷고 싶은 길에 굶주린 나는 주말에 시간을 내어 교외의 자연 속으로 길을 찾아 나섰다. 별수 없이 자동차로 목적지까지 가는데 이것이 장난이 아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숨통 틔울 공간을 찾아 몰리는 바람에 삽시간에 도로는 추자장이 되어 버린다. 꽉 막힌 길은 나의 숨쉴 길에 대한 소망을 여지없이 뭉게 놓는다. 걷고 싶어도 걸을 수 없는 불운한 두 발의 운명을 한탄하며 돌아 오다가 뜻 밖에도 저 아래 자전거 길로 체증 없이 생생 달리는 자전거 탄 무리를 보았다.    

 

때마침 정부에서 국민 건강을 위하여 전국의 하천 둑에 자전거 길을 만들었다. 자동차와는 완전 분리하여 자전거 전용도로를 만들었으니 자동차의 위협에서 해방되어 얼마든지 강 따라 펼쳐진 자연을 만끽하며 달릴 수 있게 되었다. 물론 온몸으로 자연을 체험하기에는 걷기만한 것이 없겠지만 걷기는 속도가 너무 느려 답답한 것이 흠이었다. 이에 비해 자전거는 바람을 느낄 수 있다는 게 최고의 매력이다. 무풍지대를 통과해도 달리는 속도로 인하여 일어나는 바람의 애무를 어디서든 받을 수 있다. 바람에 묻어오는 갖가지 자연의 내음을 폐부 깊숙이 호흡할 수 있다는 것은 자전거 만의 선물이다. 또 온전히 자신의 몸으로 바퀴를 굴려 전진한다. 몸의 에너지를 태워 추진동력을 얻으니 무공해 자연친화적 운동이 된다. 자전거와 몸이 하나가 되어 자연 속으로 스며드는 풍경은 상상만 해도 즐겁다. 처음엔 집 주위만 맴돌다가 점점 범위를 넓혀 이젠 전국 어디라도 마음만 먹으면 갈 수 있게 되었다. 5대강과 이에 닿는 지류들이 모세혈관처럼 얽혀있어 강을 타고 가면 어디라도 닿을 수 있다. 가령 서울에서 한강과 남한강을 따라 내려가다 새재를 넘어 낙동강을 타고 부산에 갈 수 도 있고, 새재에서 오대천을 따라가면 금강에 닿아 군산까지 갈 수도 있다. 이 정도의 끊이지 않는 긴 길을 가기에는 자전거가 최적이다. 물론 며칠씩 길 위에서 숙식을 해결해야 하지만 이것 또한 길이 주는 즐거움이 될 수 있다. 끝없이 이어지는 아스라한 강변 길을 자전거로 달리노라면 내가 진정 인생길을 가고 있구나 하는 실감이 든다. 나는 그렇게 전국의 4대강을 주파하고 마지막 영산강만을 남기고 있다. 길은 길을 부른다고 시간만 있다면 우리강토를 샅샅이 섭렵하며 대동여지도를 새로 그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자전거의 두 바퀴가 그리는 길이 책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한 것은 이 때쯤일 것이다. 바퀴의 흔적이 글로 변하길 갈망했다. 길따라 글따라 흘러 길이 책이 되기를. 길을 가는 것이나 글을 쓰는 것은 같다.  끝없는 자취를 남기고 길을 가듯 백지 위에 글을 써서 흔적을 남기는 것은 내겐 같은 행위였다.

낯선 길은 언제나 신비롭다. 낯선 길은 내가 생각지도 못했던 곳에 나와 인연이 있는  무엇이 있다' 

생의 비밀을 속삭여 준다. 그 비밀을 캐내기 위해 낯선 숙소에서 밤늦게 불을 밝히고 필을 들기도 한다. 길에서 마주친 바람이 속삭여주는 이야기를 맞이하기 위해서다.

 

노란 숲 속에 길이 두 갈래로 났었습니다.

…………………………………………………..
, 나는 다음 날을 위하여 한 길은 남겨 두었습니다
길은 길에 연하여 끝없으므로 
내가 다시 돌아올 것을 의심하면서 
훗날에 훗날에 나는 어디선가 한숨을 쉬며 이야기할 것입니다 
숲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다고 
나는 사람이 적게 간 길을 택하였다고 
그리고 그것 때문에 모든 것이 달라졌다고.
-
로버트 프로스트

 

길은 길에 연하여 끝이 없으나 결국 길은 길로 통한다. 살다 보면 마주치는 두 갈래 길에서 어느 한 길을 선택을 해야 하는 순간이 온다. 내게 처음 온 그것은 대학 진로를 선택하는 순간이었다. 해양대냐 부산공대냐부모님과 선생님은 내가 공대에 가기를 원했지만 난 사람들이 적게 가는 길, 아니 내가 가고픈 길을 택했다. 이후 그로 인하여 모든 것이 달라졌다.

 

하워드 가드너의 열정과 기질에 나오는 7인의 창조적 거장들도 그들의 인생역정에서 만난 선택의 길목에서 한결같이 그들 내면의 목소리를 따랐다그들이 타고난 재능과 기질에 맞는 길을 택하여 오직 그 일에만 열정을 쏟아 부어 창조의 꽃을 피울 수 있었다.

 

택하지 못한 길을 아쉬워하면서도 나그네는 걷든, 자전거로 달리든 온몸으로 땀 흘려 자신의 길을 갈 뿐이다. 길의 끝에 이르러 나그네는 알게 되리. 길의 의미는 길을 가는 도상에 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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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5.26 09:28:09 *.104.9.216
걷길 좋아합니다. 저도.
요즘은 운동량이 너무 적어서리 근육들이 모조리 지방화 되었습니다.

응원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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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5.26 17:24:32 *.196.54.42

요즈음은 가제에 매여 자전거를 못타니 머리도 둔해진 느낌임다^^

몸이 정신에 미치는 영향은? 뭐 이런 말 굳이 묻지않아도 몸이 우선이겠죠?

피울님도 몸을 우선 돌보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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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5.26 15:21:30 *.94.41.89

고등학교때 주말마다 하루종일 자전거타고 돌아다니던 기억이 납니다.

그 때는 생수를 따로 팔지 않아서 물먹는 것도 일이었는데 말입니다.

이제는 전국에 자전거 도로가 정비되고 많이 좋아진 것같습니다.

더 멋진 자전거 여행이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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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5.26 17:28:17 *.196.54.42

언제쯤 희동님과 잔차 함 타 볼수 있으려나?

잔차타고 주말농장 가꾸고...  모두 사람 살리는 일이지요.

모두 잘 살자고 하는 일이니 공부도 책도 좋지만 기운을 업시키는게 우선인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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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5.27 10:12:11 *.213.30.22

걸으면서 보이는 세상이 좋지요.

시간속에 매몰된 것들을 보게 해주고, 익숙한 것에서 새로운 시선을 잡아 낼 수 있어서 저도 좋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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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5.27 11:15:41 *.196.54.42

라이방끼고 길 걷기 좋을 때죠? 라이방이 잘 어울리는 왕참치님, 많이 걸으소서! 

걷는 자, 그대 축복있을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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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5.27 10:17:08 *.23.235.60

길을 가는 것이나 글을 쓰는 것이나 그렇네요. 같네요:)

걷는 건 좋은데 좋다고 다 실천이 되는 게 아니라..

새벽에 좀 걸어볼랬더니 잘 안 되더라구요.

그래서 구달님이 전해주는 길 이야기~보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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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5.27 11:19:15 *.196.54.42

길을 가야 길이바구가 나올텐데~ 참 한심하죠^^

에움길님도 길이 이름에 들어 있으니 길을 갈 팔자이구만요 ㅎㅎ 많이 걸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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