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연구원

칼럼

연구원들이

  • 백산
  • 조회 수 3112
  • 댓글 수 14
  • 추천 수 0
2009년 7월 20일 03시 56분 등록

큰 얘는 고등학교 2학년이다. 녀석은 A 형이고 등치도 좋다. 내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항상 나름대로 날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얘 엄마는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는다고 불만이지만 나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다.
내가 그에게 물어보는 말은 딱 한가지 뿐이다.
“네가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 나는 네가 원하는 삶을 살기를 원한다.” 
큰 얘를 바라보고 있으면 많은 생각을 한다. 보통의 삶을 살 수 없는 나의 직업과 생활방식들은 그에게 불만이었다. 나는 단호하게 말했다.
“ 나는 나의 인생을 살고 싶다. 가족 때문이라는 말로 변명하고 싶지 않다. 그리고 나는 내 삶에 당당하고 후회하지 않는다. 나는 내가 살아온 삶에 대해서는 누구에게도 꿇리지 않는다. 나는 자신을 위해서 살았지만 사명감을 가지고 살았으며 내 나라와 내가 소속된 협회와 가르쳤던 선수에게 부끄럽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면서 아이는 나의 태도와 행동에 대해 인정해주었다. 내가 살았던 날의 공과를나름대로 평가하고  있었다.  그러면서도 큰 얘는 나 때문에 불편하다고 말하기도 한다.

큰얘는 사회복지를 전공하고 싶어한다. 덩치는 크지만 마음이 여리다. 그는 지능장애아들을 도와 봉사하고 자폐아들을 데리고 나들이를 가는 봉사자 활동을 한다. 중학교 때부터 계속해오고 있다.
“즐겁니?” 
“힐민해요!”
“왜 하는데,,”
“그냥, 하게 됐어요…봉사활동 점수 받으려고 했다가 나중에는 그런 것에 상관없이 계속하게 되었어요” 

내 자식이지만 기특하다.

어떻게 보면 나는 나쁜 아버지다.  누군가는 코을 꿰어서라도 장래를 위해서 끌고가야 한다고 말한다. 나는 웃으면서 말한다. 
 “천만에… 사람은 원하는 것을 할 때 신이 난다. 어린 나이에 책상에 코를 쳐 박고 그렇게 오랫동안 돈과 시간을 들여서 배운 것이 사는 데 얼마나 쓸모가 있던가?  그렇게 많이 배워서 지 한 목구멍 채우느라 형편없는 인간이 되었다.  나는 그런 자식을 바라지 않는다. 위험한 발상이라면 … 그렇다고 해 두자, 그래도 난 그렇게 하고 싶다. 삶은 어차피 모험이고 곡예 같은 것이다. “

내가 아이에게 바라는 것은 하나 뿐이다.
”세상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것은 ‘성실함과 인내심’만 있으면 된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네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찾는 것이다.
그것도 연습이 필요하다. 시키는데로  부모가 옳다고 말하는 데로만 살았는데 어떻게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겠는가? “

자식의 장래가 걱정도 안되냐고 말한다.
“ 당연히 걱정이 되지, 남의 자식도 목숨 걸고 가르치는데 제 자식이야 오죽하겠는가?
나도 그렇다. 내 자식은 웃는 것도 남의 자식보다 더 이쁘고 똥을 싸도 남의 자식 것보다 더 보드라운 것 같다.  내 자식이 제일 잘 난 것 같다. 그래, 실제로 나는 지금도 그렇다. 그러나 그것이 내 생각일 뿐이라는 것도 잘 알고 있다. 나는 다만 그런 나의 사랑을 빙자하여 아이가 나의 아쉬운 과거의 소망들을 채우는 대리 인생이 되기를 원치 않을 뿐이다.“ 

지금 공부 안 하면 나중에 후회한다는 말에 그렇게 대답했다.
“요즈음 80년을 살고, 얼마 안 있어 잘하면 사람 수명이 130이 된다는 데… 몇 년은 중요한 것이 아니다. 무엇을 하느냐도 중요한 것이 아니다. 그에게 필요한 것은 자신이 진정으로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찾는 것이고, 자신의 현실적인 삶과 조건을 받아들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할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하는 것이다.”

큰 얘는 내 공부에 관심이 많다.  나는 그에게 ‘마흔 세살에 다시 시작하다.’라는 책을 소개한다. 나는 그 책 속에서 무엇을 배우고 그 배움을 통해 내 삶에 어떻게 적용할 것인지를 생각한다고 이야기한다.
 
“나는 네게 아버지라고 해서 가르치고 싶지는 않다. “
“그래도 때로는 이야기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왜냐면 아빠는 더 많이 살았고 더 많이 배우고 경험하셨잖아요…”
“고맙다. 인정해줘서… 그래도 나는 가능한 한 너의 삶에 대해서 간섭하고 싶지 않다. 그냥 나의 삶을 이야기하고 그것들에 대한 나의 생각과 행동을 설명하고 네게 말하고 싶을 뿐이다.”
“알아요… 아빠가 언제나 그렇다는 거…”

사실 나는 그에게 가르치기 보다는 물어보는 경우가 더 많다. mp3 를 어떻게 사용하는지 요즈음 다운을 어떻게 받는지,,,
 
나는 친구가 되고 싶었다. 아버지보다는 남자다운 친구가 되고 싶었다. 나의 어린시절 아버지의 엄숙함과 절대적인 권위에 대한 반발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얘가 말문을 열기도 전부터 친구처럼 지냈다.

학문적으로는 잘 알고 있다.  스승과 아버지는 엄숙함과 자애로움을 함께 해야한다는 거…
그러나 현실에 처하면 나는 갈등한다. 내가 옳은가?

유치원에  들어가지 않은 아이를 등에 업고 나는 말했다. 
"아들아!  남자는 스스로 일어서서 강자가 되고 자기자신과 남을 위해 무언가 할 수 있어야 한다. "
"... "
"대답해야지.."
"예~"
그런 큰얘가  다 커서, 이제는 어른의 생각과 화제들을 공유한다. 무엇이든지... 
나의 생각으로,  이미 가르칠 나이는 지났다.

내가 그에게 가르친 것은 한 가지 뿐이다.
 ‘약속은 지켜져야 한다.’  
그것을 지킬려면 성실함과 인내심이 있어야 한다. 

이젠 얄팍한 세상에 대해서 이야기하려 한다. 예전에 무서운 아버지의 엄격한 이야기가 아니고,  엉터리 스승들이 해준 그런 거짓 명분과 위선적 행동도 아니다. 나는 그냥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이야기한다.

숙제를 하다가 젖혀두고 아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예전처럼 ‘ 나는 지금 일이 있어서 바쁘다’ 라고 말하지 않고 그럼 오늘 숙제는 이걸로 하지 … 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내게 있어서 지혜다.  작은 것이지만 의미있는 발상이다.

그것이 내 하루를 변화시키는 것이고 다가오는 내일을 변화시키는 것이며 누군가에게 이야기할 때, 생각이 아닌 행동이 중요하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책을 읽고 살아서 내게 오던 말들을 기억하며 머리를 쥐어짜다가도 그것들을 내려놓고,  아이를 존중하고 성실하게 대하는 것이 내게는 ‘혁명’이다.

작지만 소중하고 살아있는 '혁명'이다.

IP *.131.127.100

프로필 이미지
2009.07.20 08:48:48 *.45.129.185
형, 이 글 참 좋다. 따뜻하고 편안하고 가슴 뭉클해^^. 참으로 따뜻한 '혁명'인걸?ㅎ
프로필 이미지
백산
2009.07.21 20:52:07 *.131.127.100
난 미안하다고 말하는 대신에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어..
프로필 이미지
2009.07.20 10:32:25 *.160.33.149

좋구나, 
프로필 이미지
백산
2009.07.21 20:53:39 *.131.127.100
스승님!  아시죠?  저 절대로 못 죽는거... 
프로필 이미지
2009.07.20 21:47:52 *.145.58.162
아.. 좋아요
프로필 이미지
백산
2009.07.21 20:56:41 *.131.127.100
쎄이야!  니가 그랬지.. 자신을 팽개치지 않겠다고...
그 말이 참 마음에 와 닿았어,
벼랑끝에 서 있던 지난날들이 머리속을 스쳐갔거던...
프로필 이미지
옹박
2009.07.20 22:09:18 *.148.95.177
형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글이네요. 한 수 배우고 갑니다.
그나저나 저도 나중에 아이가 생기면 세 살까지는 찰싹같이 붙어있다가
이후는 방목(?)하고 싶은데, 형 애가 어떻게 크는지 보고 확실히 결정하겠다는.. ㅎㅎ
글을 읽으면서 왠지 '아버지'라는 단어가 머릿속에 진하게 남네요.

형, 보고싶습니다. 형의 부드러운 미소가 그립습니다.
프로필 이미지
백산
2009.07.21 20:58:34 *.131.127.100
감성이 넘치는 옹박,,,
가끔씩은 너의 글이 그리워! 
건강하고,   출판 기념회할 때 불러 다오!
프로필 이미지
2009.07.21 06:27:39 *.230.92.240
백산 오라버니~ ^^

작지만 소중한 하루의 변화로 살아있는 내일의 혁명을 이루어 내라는 말씀으로 받들면 되겠는지여?^^
저.. 이글 한 번?에 무찔러 들어왔어여.. 무쟈게 감동이어여..

무사의 말투에 담겨진 따듯한 카리스마.. 참.. 한결 같으신 분이세여.. 오라버니는... ^^
프로필 이미지
백산
2009.07.21 21:00:24 *.131.127.100
승질 불확아!  댓글다느라 수고했데이...
프로필 이미지
혁산
2009.07.21 19:56:12 *.216.130.188
형님 멋진 아부지 이시네요. 아부지
형님 따라 이제 2살짜리 아들한테
본보기되 되어야지.
특히 성실함과 인내심에서 본보기가 되어야지.
형님 따라서~
프로필 이미지
백산
2009.07.21 21:02:10 *.131.127.100
내가 얘 오즘 가리는 거,
가르쳐줄께... 공짜다. 100% 확실한거다... ^^ 
  
프로필 이미지
백산
2009.07.22 21:28:19 *.131.127.100
당근이지...  걸어다니기만 하면... 돼..ㅎㅎ
프로필 이미지
혁산
2009.07.21 21:08:38 *.216.130.188
형님 2살짜리도 오줌 가릴 수 있나요?^^ ㅋㅋ 도망가자~~~~~~~~~~~~~~~~~~~~~~킥킥
덧글 입력박스
유동형 덧글모듈

VR Left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1132 인생은 이대로도 굉장하다 [11] 한명석 2009.07.22 3466
1131 이상한 반 아이들 - 할 수 있을까? 2 [4] 현웅 2009.07.21 3013
1130 칼럼 15 - 최고의 나를 꺼내라 [20] 범해 좌경숙 2009.07.20 4034
1129 나의 초상 [8] 효인 2009.07.20 2995
1128 나, 연구원 하면서 이렇게 바뀌었다 [7] 예원 2009.07.20 2786
1127 있는 힘을 다해 행복해라 file [15] 숙인 2009.07.20 3907
1126 대화 - 진작 말할 걸... [12] 혜향 2009.07.20 3227
1125 [15] 두 눈에 흐르는 이 눈물의 의미는 무얼까? [9] 정야 2009.07.20 2990
» 작은 지혜, 작은 혁명 [14] 백산 2009.07.20 3112
1123 마흔 세살의 미래의 나 [18] 혁산 2009.07.20 3223
1122 [16] <넌 누구니? 2탄> [13] 수희향 2009.07.20 3108
1121 마흔을 넘어 [10] 書元 이승호 2009.07.19 3232
1120 다시 시작되는 길... [16] 희산 2009.07.19 3052
1119 7월 오프수업 과제 - 살며 사랑하며 배우며 [4] 희산 2009.07.19 3089
1118 7월 Off 과제 - 나를 만든 그 때의 경험 [4] 혜향 2009.07.19 2824
1117 칼럼 14- 마흔세살에 백두산에 오르다. (7월 오프) [2] 범해 좌경숙 2009.07.18 3052
1116 7월 오프수업 - 시장동네로부터의 나 [4] 혁산 2009.07.15 2819
1115 [42] 변화의 핵심에 대한 고찰, 두번째 [2] 최코치 2009.07.14 2894
1114 7월 과제 -세 가지 '내려놓음' [2] 예원 2009.07.14 2712
1113 <7월 과제- 아빠, 남편 그리고 아이가 없는 그녀> [6] 수희향 2009.07.14 29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