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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7월 20일 09시 35분 등록
대화 - 진작 말할 걸...


제가 초등학교 1학년 때의 일입니다. 오전반 수업이 있는 날이면 저는 수업이 끝나도 곧장 집으로 가지 않고 동생이 다니는 유치원 앞에서 동생을 기다렸습니다. 한살 아래 여동생을 데리러 간 것이었는데 점심도 거른 채 혹시나 늦을까 숨을 헐떡이며 뛰기 일쑤였습니다. 그런데 동생은 제가 데리러 오는 것을 알면서도, 조금만 기다리면 될 텐데도, 먼저 집으로 간 적도 있었고, 어떤 날은 저를 보고도 아는 척을 하지 않고 멀찍이 앞서서 걸어갈 때도 있었습니다. 왜 그러냐고, 유치원에서 무슨 일이 있었냐고 묻는 저에게 동생은 별 다른 말을 하지 않았고, 저는 동생이 친구랑 싸웠거나 혹시나 선생님께 혼이라도 났으면 어떡하나 걱정이 되면서도 동생의 눈치만 살피며 뒤따라 집에까지 오곤 했습니다. 그러한 상황이 몇 번 반복되었지만 왜 그러는지도 모른 채, 저는 학교를 마치면 계속 여전히 동생이 다니는 유치원으로 향했습니다.


어른이 되어 우연히 어릴 적 이야기를 하던 중 동생에게 유치원 때 왜 그랬냐고 물으니, 다른 친구들은 엄마나 할머니, 그러니까 어른이 데리러 오는데 자기는 언니가 와서 무척 창피했다는 것이었습니다. 나 참... 그런데 더 기가 막힌 것은 옆에서 우리의 대화를 듣고 계시던 엄마께서 그런 일이 있었느냐며 진작 말했으면 데리러 갔을 텐데, 너희들이 말을 하지 않아서 당신은 생각지도 못한 일이라고 말씀하시는 게 아니겠습니까. 저와 동생은 엄마를 바라보며 어떠한 말도 하지 못했고, 저는 동생에게 그런 이유였으면 진작 말하지, 오지 말라하지 그랬냐며 웃어넘기면서도 차마 그만 오라는 말을 하지 못한 동생의 어린 마음이, 착한 마음이 이해되어 가슴 한 켠이 뭉클했습니다.


제가 유치원에 다닐 때 엄마는 한 번도 저를 데리러 온 적이 없었습니다. 엄마는 늘 집안을 쓸고 닦고, 시장을 가고, 모든 간식을 직접 만들어 주셨으며, 언제나 종종 걸음으로 어린 제가 보기에도 바빠 보였습니다. 가끔 외할머니께서 오셔서 돌봐 주시기도 했지만 그것도 잠시 뿐, 어느 누구의 도움도 없이 한 살, 두 살 터울의 고만고만한 아이들 셋을 씻기고 먹이고 돌보기에 무척이나 힘들어 보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엄마에게 무엇을 해달라고 하거나 떼를 쓰지 못했습니다. 부모님이 세세하게 신경 쓰지 못해 제가 받지 못하고 부족하다고 느낀 것은 잘 기억하고 봐두었다가 비슷하게라도 동생들에게 해주고 싶었습니다. 부모님이 그렇게 하라고 시킨 기억은 없지만 책임감이 꽤 강하게 자리 잡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말은 못 했지만 제 어린 마음에 그것이 부러웠던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엄마에게 조금은, 아니면 은근히 서운한 마음이 남아 있었던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언니라고, 겨우 한두 살 어린 동생들에게 제가 바라던 것을 해주고 나면 무척이나 뿌듯해 했던 기억이 이제는 추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예상을 뒤엎은 엄마와 제 여동생의 대답이 문득 추억으로 떠올라 저는 잠시 ‘대화‘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처음부터 제가 엄마에게 용기 내어 한 마디 말이라도 해 보았더라면, 투정이라도 부렸더라면, 동생과 서로 솔직하게 대화를 했더라면, 엄마와 동생에게 알 듯 모를 듯한 서운한 감정이 남아 있지 않았을 것입니다. 저의 선심을 동생이 잘 받아들여 주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진 작에 한번 말해 보았더라면, 그랬더라면 점심을 쫄쫄 굶어가며 유치원 앞에서 동생을 기다리는 오랜 수고를 하지 않았을 것이고, 비 오는 날 우산을 챙겨 가지 않으면 비를 쫄딱 맞는 일 따위도 피할 수 있었을 것이며, 저와 동생도 다른 친구들처럼 엄마나 외할머니께서 데리러 오는 호사를 누렸을 지도 모르는 일이지요. 


사실 알고 보면 사람 간, 관계 지음의 근본은 대화일 것입니다. 그것으로 막힌 것을 트이게 하고 가려진 것이 걷히게 되어 서로 통하게 되는 것입니다. 나를 지지해 주고, 사랑해 주고, 믿어 주고, 용기를 주는 사람들의 따뜻하고, 때로는 아프지만 따끔한 충고의 말들, 그들과의 대화가 저를 외롭지 않게 해주고, 두렵지 않게 해주며, 행복하게 해주기 때문입니다. 자신을 알아주고, 좋아해 주고, 서로의 모습, 생각, 가치관 등이 다를지라도 그것을 이해하려 노력하고 존중해주는 사람들과 함께 할 때, 우리는 마음을 열고 대화할 수 있는 것입니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대화의 상실에 있을 수 있습니다. 서로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거나, 아니면 침묵을 빌미로 서로 말하지 않거나 하게 되면 그 관계는 언젠가는 깨질 것이며, 마음을 열고 대화하지 못한 것을, 진 작에 한 번쯤은 진심을 터놓고 말했어야 했는데 그렇게 하지 못한 것을 두고두고 후회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솔직한 대화를 통해 마음을 열어 보이는 것이 대화의 진정성일 겁니다. 어이없는 희생이나 진심을 가린 채 만들어 낸, 겉으로만 보기 좋은 대화는 오히려 사람과의 관계를 피곤하게 만들고 그 관계를 겉돌게만 할 뿐입니다.


이번 주 사부님의 <마흔세 살에 다시 시작하다>를 읽으면서 사부님께서도 언제나 자신과의 대화를 끊임없이 해 오신 분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늘 자신에게 관심을 가지고, 자신에게 물어보고, 자신과 솔직하게 대화한 기록의 산물임이 느껴집니다. 크로아티아 여행을 앞두고 지난 연구원 지원 시에 제출했던 20페이지의 개인사를 50페이지의 개인사로 다시 쓰는 작업을 앞두고 있습니다. 나 자신에게 끊임없이 묻고 답하는 시간, 나와 진정으로 대화하는 시간이 될 듯합니다. 나의 사람들, 그들과의 솔직한 대화도 함께 할 것입니다.


어떤 이는 ‘말할 수 있는 용기는 승리자를 만든다.’고 했습니다. 저는 대화할 수 있는 용기는 사람을 얻을 수 있다고 감히 말합니다. 나와 대화하면 진정한 나를 만날 수 있고, 진정성을 가지고 솔직히 대화하면 시간은 좀 걸려도 결국에는 사람의 마음을 얻을 수 있습니다. 사람의 마음을 얻지 못하면 아무리 돈을 넘치도록 벌어도, 크나 큰 성공을 해도 그저 삭막하고 외로운 인생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사람의 마음을 얻는다면 그 삶은 풍요로워지고 성공도 함께 할 수 있습니다. 이보다 더 좋을 수 있을까요. 이보다 더 행복할 수 있을까요.


솔직하지 못했고, 배려라는 허울 좋은 미명으로 마음을 숨겼던, 꼭 해야만 했던 대화를 하지 못하고 침묵으로 일관했던, 아프고 어리석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이제는 ‘진작 말할 걸‘하는 후회를 남기는 망설임, 침묵 따위는 버리겠습니다. 용기 내겠습니다. 정성을 쏟아 나를 더 깊숙이 들여다보아야겠습니다. 나와의 대화를 더 많이 해야겠습니다. 마음을 열어 진정으로 만나겠습니다. 솔직한 대화로 마음을 나누겠습니다.  


 

IP *.230.92.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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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7.20 11:21:02 *.45.129.185
사랑하는 가족에게, 좋아하는 사람에게 '진작 말하지 못하는' 이유는 아마도 부담을 주기 싫어서 일꺼야. 미리 배려하는 마음, 그냥 내가 힘들고 말지 하는 그 마음 때문이겠지. 그때는 힘들어도 나중에 서로 알게 되었을 때 그 마음이 고마워서 서로의 신뢰를 배가시킬 수 있다는 측면의 장점도 분명히 있지만 그래도 그것 때문에 너무 힘들면 안 되겠지. 적절함, 단기가 아닌 장기적인 관점에서 적절한 균형점을 찾을 수 있는 지혜가 여기에서도 중요한 것 같다.

역시 삶의 최고의 덕목은 지혜가 아닌가 싶네. 솔직한 토로와 마음이 담긴 인내 사이의 선택.... 결론은 진정성이겠지. 진정성이 담긴 행동이라면 사랑하고 좋아하는 사이라면 잘 익은 와인처럼 그 향기를 서로 알 수 있지 않을까 싶다. 

혜향 홧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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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산
2009.07.21 07:39:03 *.45.129.182
맞아, 막상 선택의 상황에 맞닥뜨리게 되면 정말 어렵지. 나라도 대부분 말 안하고 인내하는 쪽을 선택할 것 같애. 일종의 관성처럼 내가 힘들고 마는 것이지. 그게 상대에게 부담을 준다는 생각보다는 내 마음이 더 편하니까.
 
그리고 그 선택 자체가 진정성이 아닌가 싶기도 하고.

그런 선택이 쌓이면, 숙성되면, 향기 좋은 와인이 되겠지. 허걱 또 마무리가.... 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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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7.21 07:21:25 *.230.92.240
희산 오라버니~

솔직한 토로와 마음이 담긴 인내 사이의 선택.. 선택도 언제나 힘든 거이 같아여..
많으면 고르기 더 좋을 것 같지만.. 그거이가 더 어렵고.. 둘 중의 하나도 어느 것 하나 고르기 쉽지 않고..
그렇다고..하나만 있다고 해서 쉬운 거이는 또 아니더라구여..
하나를 할까말까 또 고민하게 되는 거이가 사람 마음이라 잖아여..

하지만 무엇보다 진정성.. 그거이를 향기로 전하려면.. 음.. 흠..

잘 익은 와인이라..
여그서도 마무리는 역~쉬.. 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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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7.20 13:48:08 *.204.150.176
<대화할 수 있는 용기는 사람을 얻는다>...크아...
그대가 만들어낸 신종어 "열쌈" 중에 잠시 쉬러 들어와 읽는 이 글은 너무도 좋다...

공감아. 우리 말로써, 미소로써 그리고 행동으로 마음껏 대화를 나누며 살자...
그래서 말인데, 지금 내가 너한테 하는 말 잘 들리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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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7.21 07:29:55 *.230.92.240
수희향 언니~

그져.. 그쳐그쳐.. 제가 응용하고도 크아.. 무쟈게 잘했다고 생각했잖아여..ㅋㅋㅋ
우리는 역~쉬 통하는 거이가 있어여!!!

열쌈.. 이거이는 제가 아~쭈 단순하게 생각한 거인데..
이거이는 받아들이는 언니야의 마음에 무쟈게 꽂힌 거이지여..
기래서 내는 다시 또 생각???하게 되구여..ㅎㅎㅎㅎㅎ

이케 끊이지를 않으니.. 참..
기래서.. 언니가 어디에 있거나.. 어디서나.. 언니의 말이.. 마음이.. 잘 들리는 건가봐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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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7.20 22:10:36 *.145.58.162
진작 말할걸..
저 역시 살아오면 이렇게 혼자 읊조린 적이 몇번이나 있던지..
현명하게만 잘 말한다면 진작 말했음 좋았을게 지난 날에 참 많은 거있죠?
오해는 뱉어진 말보다 숨겨진 말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더 많은 것 같아요
속시원히 나랑도 툭 까놓고 대화하고, 너와도 대화하고 그럼 한결 마음이 편해지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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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7.21 07:35:01 *.230.92.240
쎄이쎄이~

오해는 뱉어진 말보다 숨겨진 말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더 많다..
맞아.. 바로 이거야.. 내가 진정으로 하고 싶었던 말..
 
침묵으로 대처하다 오해를 남기는 것보다 이제는 진정으로 표현해야 겠어..
후회가 너무 마이 남아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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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산
2009.07.21 07:44:35 *.45.129.182
그래도 너무 금방 말하면 안 될 것 같애. 어느 정도는 마음에 담고, 다시 곰곰히 생각해도 그 마음이 맞을 때, 그 마음에 나름의 확신이 생길 때 (선생님 표현으로는 쇠똥이 굳어져 떨어지기 쉬울 때 ㅋㅋㅋㅋ)...

그 때 전달해야 할 것 같애. 그래야 상대방의 수용과 상관 없이 후회없이 내 진정성을 표현할 수 있는 것 아닌가 싶은데. 그 때는 또한 더 이상 쌓아두면 후회가 나를 갉아먹을 테니까.... 미련없이 말해야 할 것 같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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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산
2009.07.21 19:48:03 *.131.127.100

혜향아!
편안한 마음으로 읽었네 ^^
한다면 한다는 그 성질이 거기서 시작되었군.
나는 네가 좋아,  한 성질해서 ...^^
나도 가만히 있다가 말썽 피우는데는 알아주는 사람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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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7.22 00:03:51 *.230.92.240
백산 오라버니~^^

'네가 좋아'  느~~무 노골적이시다  생각해서 잠시.. 부끄러웠는데..
참.. 승질을 부려서 좋다 하시니..
허참.. 뭐라 말씀을 드려야 할지..
고거이 참.. 드릴 말씀도 별로 읍고..
기래서 더욱.. ....불?나서 하고 싶은 말!  정말 읍써여! 행동으로 보여드리는 수밖에여!! 좋다 말았어여!!!

우당 탕탕탕.... (? 집어던지는 소리)
쨍그랑 쨍쨍.....(? 깨지는 소리)
끼이익...끽끽..끼끼.... (상상에???...힌트 - 도망가셔도 결국엔---ㅇㅎㅎㅎㅎ)
씩씩.. 쌕쌕쌕...(ㅅㅈ 참지 몬하는 소리!!!)
(이거이는 가만 있다가 말썽 피우는 승질남녀의 전형적인 행태!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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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산
2009.07.21 20:08:05 *.216.130.188
진작 말할걸~
왜 이제 말하는 거야~!라고 말하고 싶다.
왜왜왜 이제서야~ 이제 조금 여리다는 생각이 드는구만
조금 다시 만만해 지는구먼 ㅋㅋㅋ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도망~~~~~~~~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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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7.22 00:11:55 *.230.92.240
철아~^^

공감 누나가 백산 오라버니헌테 하는 거이 보았지???

뭐.. 처음보는 거이는 아닐테지만.. 매번 보고도 또 일을 치는? 너에게..
적어도 한번은 까까이서 보여줘야 할 것만 같아서..
알아서 잘 하기를.. 구여운 처~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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