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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6월 17일 13시 59분 등록

맨땅에 헤딩하기(1)

막막함은 계속 생각만해서 풀려지는 것이 아닌가보다. '이제 어떻게 하면 되지.' 이걸 승진이 한테 물어봐야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랬다가는 내 명줄을 줄일지도 모른다. 이넘이 나름 한 성질 하기 때문이다. 오늘 상황으로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도무지 알 수 없는 노릇이지만 어쨌든 빽을 끌어들였으니 어떻게든 해보자 하는 수밖에 없다. 사장님이 일이 있다며 자리를 비웠다. 스무 평 남짓한 사무실엔 빽과 경리누나 그리고 내가 전부다. 빽이 기다렸다는 듯 나에게 눈치를 줬다. 난 밖으로 나오라는 빽의 신호를 애써 외면했다. 고개를 문쪽으로 살짝 튼 것이 무슨 뜻인지 알지만 좀 더 버텨 보기로 한 것이다. 그러자 빽은 눈을 부라리며 속으로 '너 죽었어.'를 왜치며 밖으로 나갔다. 경리누나는 듣지 못했겠지만 내 귀엔 분명 들렸다. 아주 크게 들렸다. '너 죽었어.'

"빽. 사무실 죽이지. 그치."

"......."

빽은 아무 말 없이 담배를 입에 물었다.

"야! 홍. 너 나 왜 불렀냐. 일부러 그런 거지."

"뭘. 왜 그래. 좋찮아. 같이 일할 수 있어서. 난 너와 함께 일하고 싶어서 그런 거야. 니가 이런 거 좋아할 것 같기도 하구....... 왜. 싫어. 싫으면 내일부터 안 나오면 돼. 사장님도 그려려니 하실꺼야. 뭐 또 나 혼자 남겠지만. 어쩔 수 없지 뭐."

"야 임마. 어쩔 수 없기는 뭐가 어쩔 수 없어. 너 여기 왔다갔다 할 차비는 있어. 그리고 집에서 월급도 못 받는 직장 다닌다고 하면 참 좋아하시겠다."

"나도 그게 걱정이긴 한데. 뭐 걸어 다니기야 하겠냐."

"또. 지랄한다. 지랄해."

빽의 걱정이 차비여서 다행이다. 하긴 아까 사장님하고 이야기하는 것으로 봐서는 이넘이 나보다 더 미친놈인것만은 확실했다.

"야. 빽. 뭐 별거 있겠냐. 함. 해보는거지. 우리가 뭐 누구한테 뭘 배워가며 했었냐. 하다보면 뭐라도 있겠지."

"야. 증말. 돌아버리겠다. 너. 여기서 시험 봐서도 꼴찌했다메. 한 놈은 맨날 꼴찌. 다른 놈은 그놈 믿고 따라온 놈. 하긴 너보다 그 다른 놈이 더 한심하긴 하다."

아니 얘가 어느새 거기까지 알고 있지. 하긴 한 두 넘이 알고 있는 것도 아니니 별로 신경쓸것은 아니지만 하여간 앞으로 꼴찌만은 면해보고 싶다.

"야. 빽. 내가 그거 몰라서 그런게 아니고 얘들 기 살려 주려고 그런거야. 나보다 못하면 얼마나 충격 받겠냐. 그래도 이 넘들이 의리는 있더라. 다 그만 뒀잖아."

"너하고 말하는 내가 미쳤지....... 알았어. 그 꼴찌얘긴 안할게. 앞으로 어떻게 할꺼냐."

"그건 내가 물어보고 싶은 건데. 앞으로 우리 어떻게 해야 하는거냐."

"이런걸 보고 맨땅에 해딩하기라고 하더라만 컴퓨터를 오늘 처음 본거나 마찬가지인데 답답하다. 근데. 이거 어떻게 켜는거냐."

순간 책상에 앉아 우릴 물그러미 쳐다보던 경리누나가 눈에 들어왔다. 누나의 표정은 '뭐 이런 종자들이 다 있어.'하는 듯 했지만 무표정 이다. 내가 봐서는 경리누나도 우리랑 별로 다를게 없어 보이긴 마찬가지다. 그동안 별로 대화를 나눠보지는 못했지만 하루 종일 하는 일은 청소하는 것과 아주 가끔 뭐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밖에 잠시 나갔다 오는 것이 전부였다. 나는 치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누나에게 물었다.

"누나. 캐드 할 줄 알어요."

"얌마. 경리누나가 뭔수로 캐드를 하냐. 이게 점점 더 이상해지려 하네. 경리는 그런 거 않해. 너. 경리가 뭐하는 건지도 몰라."

"뭐. 대충은 알지만. 그렇다고 물어보지 못할건 또 뭐냐."

둘이 티격태격하는 사이 경리누나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승진이를 보며 걸어오는 모습이 예사롭지 않다. '빽 너. 지대로 걸렸다.'

"음....... 승진이라고 했니. 너 날 어떻게 보고 그렇게 말하는 거야. 내가 캐드 할 줄 아는지 모르는지 니가 봤어. 봤냐고."

"아뇨. 그게 아니라......"

"아니긴. 뭐가 아냐. 나도 캐드 배울 수 있다고 해서 왔단 말야. 뭐 가르쳐 주는 것도 없고, 그렇다고 딱히 하는 일도 없고 해서 짜증나 죽겠는데. 너희들 까지 왜 이러는거야. 증말 ......."

"어라. 누나도 캐드 배우려고 왔어요."

"그렇다니까."

"그럼. 얼마나 할 줄 아세요. 해보긴 했을 꺼잖아요."

"해보긴 했지. 선 그리기, 지우기, 자르기........"

"또, 없어요. 그게 다예요."

내가 계속 물어보자 누나는 더 이상 말을 잊지 못했다. 승진인 더 이상 물어보지 말라는 눈치를 주며 이를 꽉 물었다. 이럴 땐 무식한게 장땡이다. 난 계속 물어봤다.

"야. 그래도 그게 어디예요. 그리고, 지우고, 자를 줄 알면 도면 그릴 수 있겠네. 누나 그거라도 가르쳐줘요. 우린 아무것도 몰라요. 어떻게 하면되요. 좀 보여줘요. 따라 해보게."

"야. 너 바보니 아니면 바보인척 하는거니. 어떻게 그것만 가지고 도면을 그려. 동그란 원도 그려야하고 달걀같은 타원도 필요하잖아. 그리고 치수는 어떻게 하고. 그것도 다 선으로 할래."

누나는 답답해 죽겠는지 얼굴까지 달아올랐다. 하지만 내가 알고 싶은 건. 지금 당장 선이라도 그려볼 수 있는 것이다. 어떻게 선이 그려지는지 보고 싶을 뿐이다. 그래도 다행이다. 선이라도 그려본 경리누나가 있어서.

IP *.226.15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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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6.17 15:30:33 *.204.150.153
오 좋아요! 땡겨요!

참, 홍스 선배. 저 5기 박정현임다. 꾸벅~
글고 보니까 정식으로 인사를 드렸는지 우쨌는지 격이 가물가물 ^^:::
담에 직접 만나뵈도 첨엔 낯가림이 심해서 여그 댓글로 말쌈 건네겠슴다! ㅋㅋ

일단 글이 땡겨요. 계속 올려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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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칸양들누나
2009.06.18 23:25:12 *.12.130.125
파하하하. 이거이거 <소심이+낯가림이+심한I (아이) > 모임분위기인데요~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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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칸양동생
2009.06.18 14:18:21 *.153.241.112
형. 형제가 쌍으로 드리대면 반칙이라고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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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칸양
2009.06.17 16:54:01 *.122.143.214
나까지 셋이 함 서로서로 들이대 봄 어떨까? 재밌을 듯 한데 말야..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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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스
2009.06.17 16:49:42 *.226.151.34
고마워요. 수희향님..^^
저도 한낯가림하는 지라 먼저 다가서질 못해요.
글 잘 보고 있어요. 모든 사람들에게 관심을 갖어주시는 수희향님. 존경스러워요.
제 글이 땡긴다니 힘나요.ㅎㅎ
담에 만나면 제가 먼저 들이댈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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