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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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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9월 30일 06시 00분 등록

젊은이 뭐라고 그랬나? 내가 누구냐고 물었나? 그건 여기 적혀 있지 않나? 바보 같으니라구. 여기 침대 머리맡에 여기 이렇게 써 있네. 김예분, 76. 나도 잘 모르겠지만 내가 김예분 인가 보네. 나도 놀랐는데 내 나이가 벌써 일흔 일곱 살이나 된다고 하는 걸 보니 참 끔찍하군. 사실 요즘엔 별로 머리 속에 기억하는 게 별로 없네. 그러니까 그게 말이야 김예분 할머니 점심 드셨어요? 하고 물으면 고개를 끄덕 끄덕하면 되고 안 먹었음 머리를 몇 번 가로 저으면 되니까. 그런데 자네는 왜 나한테 내가 누구냐고 묻고 있나?”

 

할머님 저 알아 보시나요?”

 

네가 너를 못 알아 볼까 봐, 예끼. 자네는 여기서 일하는 사람 아닌가? 옷 갈아 입혀주고 목욕시켜주는 청년 아냐? 지난 번에 한 번 인가 네가 나도 씻겨 준 적이 있쟎아.”

 

알아 보시네요. 할머님 오늘은 상태가 매우 좋으신 데요. 추석 때 며느님들이랑 아드님들 모두 다녀 가셨나요?”

 

. 그랬어. 걔들은 그런 것은 잘 하더라구. 우리 딸들 알지? 걔네들도 이번엔 다 다녀갔네. 근데 딸들은 왜 나만 보면 우나 몰라? , . 울려면 여기들 안 왔으면 좋겠어. 바보들 같이 내가 얼마나 잘 지내는 줄 몰라서 그러는 걸 거야. 쯔쯔. 내가 보기엔 걔네들도 모두 잘 지내는 거 같아. 그래서 다행이지만 말야

 

그런데요, 할머님. 손자, 손녀들 보고 싶지 않으세요? 이렇게만 안 되셨담 같이 사셨을 텐데. 그런 생각 안 드시나요?”

 

그랬겠지. 내가 제정신이라면 반드시 그랬을 게다. 괜히 손자, 손녀들이 잘 찾아오지 않는다고 불평하고 다른 집 자식들보다 용돈 적게 준다고 우울해 했을 것이다. 다행히도 나는 요새 제정신이 아니다. 남들은 제 정신이 아닌 나를 두고 치매에 걸렸다고들 한다. 그러면서 참 가슴이 아프다는 식으로 표현을 한다. 내가 벌써 여기 들어온 지 1년이 지났는데 그 동안 내 딸들은 적어도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나를 찾아 왔었다. 이제 제정신이 아닌 내 모습에 많이들 적응을 한 듯 해 보이지만, 그러다가도 꼭 뒤 끝이 눈물로 끝나는 날이 많다. 매번 이런 식이다. 내가 딸들이 준비해 온 음식들을 먹다가 어딘가에 흘린다. 나는 금세 세 살짜리 아이들 마냥 옷에다 먹을 것을 떨어뜨린 체 웃곤 한다. 그러면 세 딸 중 하나가 갑자기 내가 예전에 깔끔했던 시절을 생각해 낸다. 그리곤 이런 비슷한 대사를 한다.

 

우리 엄마 예전엔 정말 깔끔한 분이셨는데, 어쩌나! 엄마, 미안해. 왜 이리 빨리 정신을 놓아 버

렸어요. 조금만 더 참으시지, 아직도 할 일이 많으신데.” 하면서 울기 시작하는 거다.

 

이럴 땐, 나로서는 참 어이가 없다. 여기서 제정신 아닌 노인네들이랑 함께 사는 것이 매우 신나

고 재미나는 일이라고 할 수는 없을 지라도 그리 나쁘지 만도 않다. 사실, 여기서 나는 새로

운 세상을 배우는 것 같다. 일면, 이렇게 정신을 놓아 버리고 사는 삶은 재미나는 부분이 있다.

 

특히, 나처럼 치매가 걸린 노인들이 모여 있는 이 치매 요양원이라는 곳은 생각보다 무척이나 자

유로운 세계다. 여기는 모두 제정신이 아닌 노인네들이 산다. 모두들 그 사실을 알기 때문에 우

리 치매 노인네들은 어떤 짓을 해도 용서가 되는 편이다. 이 곳에 들어와서 내가 제일 좋았던 것

은 체면이라는 이상한 겉치레를 놓아 버린 일이다.

 

가령, 우리 딸들이 알다시피 나는 예전에 이 병에 걸리기 전에 매우 깔끔한 편에 속했다. 꽤나 명

망이 높은 가문에 태어나서 어려서부터 양반네는 어째야 한다라는 우리 어머니의 잔소리를 귀에

못이 박히도록 많이 들어서 일 것이다. 그래서인지 나는 유난히도 깔끔을 떠는 노인네 였다. 여고

를 마치자 마자 결혼을 해서 남편과 5남매를 낳고 70평생을 살 동안 내 방엔 머리카락 하나,

지 한 톨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그것이 내게는 우리가문의 체면을 지키는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방바닥에 머리카락 한 올이 떨어진 것을 볼라 치면 돌아가신 우리 어머니 생각을 떠올

리곤 했다. 내 머리 속에 살아계시던, 내 어머니는 더러워진 내 방을 보며 불처럼 화를 내셨다.

 

그런데, 참 이상하게도 치매라는 병에 걸리자마자 나는 더러워지는 것들을 용납하기 시작했다.

리고 그 순간부터 머리 속에 내 어머니는 더 이상 내 삶에 간섭을 하지 않으셨다. 나는 옷을 아

무데나 벗어 놓고 다른 장소로 이동을 했고, 음식물을 먹다가 그걸로 장난을 하는 이상한 행동을

하기 시작했다. 사실, 초기에는 잠시 제정신이 들 때마다 내가 제정신이 아닐 때 벌여 놓은 일들

을 보면서 내 스스로를 자책하기도 했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나는 3살 짜리 어린 아이처

럼 밥을 먹다가 숟가락으로 밥에다 그림을 그리거나 속옷만 걸치고 요양원 안을 뛰어다니거나 혹

은 일전에 우리 아들이 서운한 짓을 했던 생각을 떠올리며 다 큰아들 머리를 한 대 쥐어 박는 것

이 얼마나 재미있는 일인가를 차츰 알게 되었다.

 

말하자면 그런 행동들은 내가 제정신일 때는 쉽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평생을 그 체면이

라는 굴레 안에서 살아온 내게는 내가 하고 싶은 데로 해 본다라는 것은 생각조차 할 수 없었으

니까 말이다. 그런데 나는 요즘 제정신이 아니라서 평소에 해보고 싶었던 일을 해보고 있는 셈이

. 그렇게 치면 이 치매라는 병이 그리 나쁜 것도 아니란 말이다.

 

글쎄, 그래서 말인데, 나는 더 이상 우리 딸들이 나를 보며 서럽게 울지 않았으면 한다. 치매에

걸려서 내가 세상을 살기가 힘들 거라고 생각하는 것은 그들만의 착각이고, 그들식의 해석이다.

사실, 나는 제정신이 아닌 지금이 그리 나쁘지 않다. 죽기 전에 우리 어머니만이 세살박이 내게

해 주실 수 있었던 행동들 ? 밥을 먹여 준다거나, 기저귀에 싼 똥을 치워 준다거나, 어리광을 받

아 준다거나, 울음을 그치게 하려고 내가 좋아하는 단 과자를 주는 ? 을 다시 한 번 우리

아이들한테 받을 기회를 얻었으니 말이다.

 

얘들아, 치매 걸린 내가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순전히 너희들만의 착각이니라.”

 

IP *.129.197.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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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라쟁이
2008.09.30 06:03:47 *.129.197.226

이야기와 맞는 작품을 찾고 있는 중입니다 이번에는 작품말고 구라가 먼저 생각이 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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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암
2008.09.30 08:43:35 *.244.220.254
이거 '픽션'이지?
그럴수도 있겠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 바로 '광인'이라고 하니..........
그러나 치매 노인의 현실은 다르지. 하루에 간병과 치매 그리고 경제적 궁핍의 문제로 7명씩 자살하고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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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웅
2008.10.01 22:44:31 *.37.24.93
그림 구하기 힘들겠는걸..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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