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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7월 1일 14시 07분 등록

중독의 추억

 

 

새로 쓰겠다. 지난 주 내내 나는 오디세우스에 대한 칼럼을 썼다. 제출할 수 없었다. 과잉 자의성때문이다. 에라이로 패태기를 칠 만큼 신경이 곤두섰다. 자동차 운전면허 도로연수 이틀째, 이태원의 골목길과 남산 순환로를 돌아 시댁 앞 골목길을 IPM 2500으로 올라갔다. 자주 신호를 놓쳐서 보조석에서 브레이크를 밟았다. 도로연수 강사는 급발진 급브레이크에 목디스크가 생겼댄다. MRI를 예약한 그의 목디스크를 어제 오후 내가 조금 더 심화시켰다. 집에 돌아와서도 마음이 안 풀린다. 이럴 땐 만사 제쳐놓고 전원을 차단하는 게 수다. 잠을 잔다.

 

아침에 일어나 정신 맑을 때 나의 중독에 대해 써보기로 했다. 뭐가 있었던가? 도깨비방망이, 찹쌀떡과 북어해장국 그리고 잔치국수와 순대국, MBTI, 카페인, 몇 개의 온라인 게시판(캣우먼, 선우, 변경연, 불다방), 풍년 든 오지랖으로 남의 인생 간섭하기……어라 말투에 황산이 들었네.

 

도깨비방망이는 중1 때 몇 달 이상 매일 먹던 과자 이름이다. 닭고기 안든 닭다리스넥과 바비큐 안든 바비큐스넥의 중간 맛이다. 밀가루에 뭘 섞어 튀기면 이런 천상의 맛이 나는 걸까? 그 시즈닝의 정체는 팔 할이 정제팜유와 MSG일 테다. 슈퍼를 지날 때 나를 제어할 수 없었다. 도깨비방망이 과자의 파란색 봉투가 있던 곳에서 광채가 났다. 핥듯이 야금야금 아껴 먹으면서 긴 하교길을 걸었다. 가방에 든 돈을 꺼내서 사먹다 보니 내 돈 다 써버리고, 그런 줄도 못 느끼면서 나중에는 공금에 손을 댔다. 그때 나는 반장이었는데 학급비 거둔 걸로 도깨비방망이 40 몇 봉째를 사먹었다. 일이 커지기 전에 엄마한테 뭐라고 거짓말을 하고 얻어서 돈을 막았다. 그 중독이 끊긴 건 방학을 했기 때문이었다. 그 슈퍼가 있는 길로 한 달 안 가면서 자연스럽게 잊혀졌다. 중독은 돈을 부른다.

 

재수할 때 노량진에서 살았다. 종합반을 다니면서 혼자서 처음으로 가족과 떨어져 반지하 방 두칸 짜리에 세든 신혼부부의 방 하나를 세들어 살았다. 거기 살던 1년 동안 거의 이틀에 한 번 꼴로 노량진수산시장 가는 길에 있던 할머니에게서 찹쌀떡을 하나씩 사 먹었다. 학원을 마치면 그 할머니한테 가서 쓸데없는 걸 이야기하거나 말없이 떡 파는 걸 구경하다가 팥소가 든 떡을 1개 사먹고 큰 소리로 인사하고 돌아왔다. 수산시장까지 간 기억이 거의 없는 걸 보면 나는 그 할머니를 보러 다녔나 보다. 북어해장국은 홍제동 법당 근처에 있던 밥집의 메뉴였다. 법당 대중이었던 4시에 일어나 11시에 자는 게 고단했다. 나는 돈이 생기면 북어해장국을 먹으러 갔다. 허름한 식당이었고, 수더분하게 생긴 중년의 여자분이 해주는 북어해장국은 국물이 뽀얬다. 가족에게 차려주는듯 진하고 뜨거운 그 국을 한 사발 먹고 나면 푸근해졌다. 잔치국수는 교대 전철역 안에 있던 집에서 먹었다. 소면은 불어 있었는데 다시다 국물이 진했다. 입에 익숙한 닝닝한 국물맛. 일주일에 저녁을 여기서 거의 3,4번 해결했다. 인천에 살 때는 단골 순대국집이 있었다. 말이 없던 여주인은 일을 열심히 하고 손이 컸다. 혼자 오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에게 머릿고기를 듬뿍 담아다 주었다. 이 식당들은 아마 그 여주인 때문에 다녔을 거다.

 

MBTI는 성격유형검사다. 아무런 관련이 없고, 특수교사이므로 써먹을 일도 없는데 홀려서 배우러다녔다. 너무너무 재미있어서 일반강사 자격을 따자마자 동네방네 떠들고 다녔다. 사람이 어떻게 다른 지에 대해 설명을 하고 있다니 신기해 죽을 지경이었다. 해석비는 무료, 검사비만 받고 100명 이상 했다. 카페에 가서 이야기를 하고, 인연있는 NGO에 가서 봉사자와 실무자를 그룹으로 검사하고 그룹 작업을 하곤 했다. 내가 야매인 걸 미리 밝혔는데도 검사자격이 있고, 재능기부 의사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쓰는 이들이 있었다. 초보자의 열정 때문이었을까? 나는 이 검사를 했던 이들의 유형을 거의 대부분 외운다. 외우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머리 속에 인식이 된다. 내 가족 검사는 당연하다. 새 사람이 들어올 때는 결혼 선물 삼아 두 사람이 어떻게 다른 지를, 어디서 부딪힐 수 있는 지를 검사해서 종알거렸다. 내가 결혼을 할 때도 물론이다. 검사결과를 우리는 이태원 이슬람사원의 감나무 아래에서 이야기를 했던가. 그는 야간퇴근을 하고 와서 내가 이야기를 할 때 꾸벅꾸벅 졸았다. 나는 그에게 당신은 내 베프들 2명과 같은 유형이고, 우리 엄마와 비슷하다고 그랬었다. 그는 잊어버리고, 나는 그걸 요즘도 종종 참고한다. 어떨 때? 그가 유명한 부페집에 가서 백 가지 이상의 음식 중에서 매일 먹던 김밥, 잡채 같은 것만 집어올 때, 상습적으로 약속시간에 늦는 나한테 목까지 얼굴이 붉어져 화를 낼 때다.   

 

카페인은 하루에 1잔이지만 커다란 대접에다 믹스커피를 3봉다리씩 넣어서 마시곤 했다. 그럼 빈속에 부어 넣는 깡소주처럼 속을 확 긁으면서 쌔하게 짜릿하다. 잠에서 깨어나는 순간 안 좋던 기분이 카페인음용후심장벌릉증을 빌어 확 좋아진다. 새벽 4시에 길냥이들이 울어대는 동네 뒷길을 걸어 오거리 편의점에 커피를 사러갈 때가 있었다. 지나가던 택시들이 나를 보고 클락션을 울리거나 옆에 선다. 몸을 못가눌 정도로 비틀거리는 취객을 파장된 시장 앞에서 만날 때가 젤 무섭다. 그럴 때 나는 화단에서 꽁초를 주워 피는 골초가 된 느낌이었다. 카페인은 물질중독 중 내가 인정하는 거다. 나는 단식이나 묵언 명상수련보다 카페인을 안 마시는 게 더 싫다. 나이가 들었으므로 나팔관 섬모운동을 방해하는 커피를 끓으라는 영양사의 조언을 스킵한다.    

 

좋아하는 게시판이 생기면 주야장창 들락거린다. 인터넷이 되는 핸펀은 문자나 전화 용도보다 그 용도로 더 많이 사용되었을 거다. 연애상담을 해주던 캣우먼 사이트, 결혼정보회사 선우는 매칭보다 게시판을 읽으러 들어갈 때가 많았고, 변경연 게시판도 그랬다. 요즘은 난임카페 불다방에 상주한다. 내 블로그나 우리 가족의 밴드, 카페보다 거기에 더 많이 간다. 읽었던 글을 또 읽고 읽는다.

 

오지랖은 재능이자 지병이라고 인정한다. 남의 인생에 감 놔라 배놔라 한다, 오지랖도 풍년이다,너나 잘 하세요 라고 욕을 먹을 땐 잠시 반성하는 모드가 된다. 그러나 정신을 차릴 만큼 회복하면 다른 사람에 대한 관심이 다시 시작된다. ‘오지랖은 내가 살아가는 공기와 같아서 구분할 수 없다. 하지만 요즘은 공전하기 전에 자전을!’ 같은 표어를 마음 벽에 상설 게시하기도 한다. 북한산 계곡 바위에다가 무식하게 제 이름을 새겨서 세세손손 욕을 먹게 만드는 인물처럼 내 속의 바위에 새겨볼까 싶다.

 

오늘 나의 중독이 싫다. 특히 오지랖이. 검색질을 시작한다. 일단 중독에 대해 찾아본다. 혹시 내가 병든 건가, 네이버의 비전문가들의 식견으로 나를 진단하기 위해서다. 정서장애와 모든 정신적인 문제는 스펙트럼이 있다는데 읽고 나면 다 내 얘기 같다. 그러나 나는 오늘 그런 게 좀 필요하다.

 

중독은 중독 대상을 기준으로 크게 물질 중독과 행위 중독으로 나눈다. 알코올, 마약, 약물은 물질 중독, 도박, , 인터넷, 쇼핑 등은 행위 중독 되시겠다.

 

벅과 아모스(Buck & Amos, 2000)에 따르면, 물질 중독을 다음과 같은 네 가지 특징을 보인다. (1) 특정 행동이나 물질에 대한 집착, (2) 특정 행동을 그만두거나 물질을 복용하지 않은 후에 나타나는 금단증상의 여부, (3) 똑같은 효과를 위해서 필요한 특정 물질이나 행동에 대한 내성의 증가, (4) 해로운 결과에도 불구하고 물질을 계속 사용하거나 특정 행동을 반복하는 것. 이러한 기준은 행위 중독의 사정에도 사용할 수 있다.

 

심리 장애 분류의 범세계적인 표준으로 사용되고 있는 미국정신의학회의『정신장애 진단 통계 편람(DSM--TR)(APA, 2000)은 특수교사인 나에게 좀 익숙하다. 장애의 정의를 외워야 했다. 단답형 시험에 잘 나오기 때문이다. 외우는 게 귀찮았던 나에게는 매우 어려운 문제였다. 거기서는 물질 중독과 행위 중독의 개념을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포함시키고 있단다.

 

‘물질 관련 장애’ 하위 범주로는 ‘물질 사용 장애’와 ‘물질로 유발된 장애’가 있다. 물질 사용 장애의 하위 범주로는 ‘물질 의존’과 ‘물질 남용’이 있다. ‘물질로 유발된 장애의 하위 범주는 ‘물질 중독’과 ‘물질 금단이 있다. 이런 물질 분류 체계가 중독의 여러 대상 물질(: 니코틴, 알코올, 코카인, 아편류 등)에 걸쳐 공통으로 적용된다.  

 

행위 중독은 『DSM--TR(APA, 2000)에 포함되어 있는 내용이 상당히 제한적이다. ‘충동 조절 장애’의 하위 범주에 ‘병적 도박’이나 ‘병적 도벽’, ‘병적 방화’, ‘발모광(trichotillomania), ‘간헐적 폭발성 장애(intermittent)’가 포함된다. DSM-Ⅴ』에서는 행위 중독 분류가 추가되어 있고 여기에는 ‘도박 중독’은 따로 분류되었다. 도박 중독만 행위중독에 국한시키는 건 얼토당토 않다. 중독, 인터넷 중독, ‘강박적 중독’도 포함시키는 게 타당하지 않을까? 오지랖의 다른 이름일 사랑중독도 이 범주에 들라나? 궁시렁궁시렁.

 

물질 중독과 행동 중독은 닮았다. 공통된 뇌 회로가 관여한다. 비스무리한 일련의 단계를 거친다. 해당 행위를 하기 전에 신체적 및 정서적 각성이 유발되는 시기가 있다. 행위 중에는 쾌락이나 안심을 느낀다. 행위 후에는 각성이 급격하게 감소하고 후회와 죄책감이 뒤따라 나온다. 내성과 금단증상이 발생할 수 있다. 충동성(impulsivity)이 발달의 초기 단계에 중요하게 작용한다. 강박성(compulsivity)이 행동의 유지에 핵심적으로 관여한다. 

 

행위 중독의 경고 신호로는 사회적 상호작용의 감소, 증가하는 고립감, 위생 관념에 대한 소홀, 법적 문제의 증가, 섭식과 수면 습관의 변화, 짜증의 증가, 그리고 강박적 행동, 변화에 대한 경계심 등이 있는데 이는 물질 중독의 신호와 유사하다.

 

장장 한 페이지에 달하는 인용을 했다. 나의 경우는 중독이 있다면, 카페인과 도깨비방망이 말고는 다 행위 중독이로구나. 그런데 치료가 필요한 만큼의 중독은 어떤 것일까? 모르겠다. 행위 중독이 사회적인 상호작용 감소, 고립감 증가에서 오고 잘 안 씻고, 잘 안 챙겨 먹고 잘 못 자는 것과 관련이 있다니 씻으러나 가야겠다. 그리고 누군가를 만나 맛난 걸 먹어야겠다. 또 결혼을 한 덕분에 내가 사는 집에 내가 특별한 노력을 하지 않아도 찾아오는 사람이 생긴 게 나의 고립감 해소에 아주 긍정적 영향이 있는 것 같다. 그럼 그 사람에게 고맙다는 뜻으로 술이라도 한 잔 받아주어야겠다. 반려식물들도 나와 같이 살고 있는 이들이니 액상영양제라도 한 컵 섞어 물 주어야겠다. 이런 웃긴 결론으로 나의 중독의 추억 리뷰와 중독 검색질을 종료한다. 일단 기분이 좋아졌으니 더 이상의 '중독'에 대한 집중은 사양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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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7.01 19:55:26 *.39.145.123

찐하고 맛난 커피 많이 사드릴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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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7.08 21:22:08 *.175.14.49

네, 정화님^^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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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7.02 08:56:44 *.218.177.192

도깨비방망이....이런 대범함이 있을줄이야, 콩두님의 새로운 모습 잘 보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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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7.08 21:23:33 *.175.14.49

ㅋㅋㅋ 왕참치님 매번 읽어주고 댓글 주셔서 감사합니다.

빠지면 정신을 못차리겠더라구요.

참치님의 축구 칼럼 저는 재미나게 읽었답니다.

참치님 글 중에서 제일 인상 깊었어요.

열정이 묻어나는 듯 했어요.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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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7.11 13:28:31 *.201.146.145

저도 중독된 것이 많습니다.

그것들에 대해서 한번 챙겨봐야 하는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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