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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7월 8일 11시 53분 등록

사자와 함께 돌아오다

 

 

춤을 춘다. 아침 7시부터 커다란 공간이 떠나가라 음악을 틀어 춤을 출 수 있다니 이런 횡재가 어딨냐? 나는 새벽에 야간 독서등을 꺼내놓고 혼자만의 시간을 가졌다. 지리산에 아침이 오는 걸 목격했다. 새벽이 나무를 낳으며 나무에게 맡아두었던 초록색을 돌려주자 뻐꾸기가 울었다. 새들이 둥지의 새끼를 먹이기 위해 첫사냥에 나선 시간은 5시였다. 몸과 마음은 지금 최상이다. 음악이 들리자 거침없이 춤을 춘다. 내 춤은 단일 패턴 뻣뻣 막춤이다. 상관없다. 하고 싶은 대로 마음껏 한다. 몸이 하자는 대로 움직이는 자유로움이 있다. 여기 온 지 3일째다. 트라우마 힐링 웍샾은 만 3세 이전의 상처를 다룬다. 말로 풀어낼 수 없으므로 몸에 남은 흔적을 호흡으로 찾아 들어간다. 나는 가족세우기 웍샾을 10번쯤 한 후에 여기 왔다. 오늘이 마지막 날이다. 힘들지만 알찬 과정을 다 겪어 왔다. 내 어린 시절의 장면 몇 군데에 다시 돌아가 살아냈다. 그 장면에서 다른 반응을 선택함으로써 재각본화, 성공경험을 새기는 듯 했다. 목이 쉬고, 눈 가 혈관이 터졌다. 많은 눈물을 흘렸다.    

 

온몸에 땀이 흐를 만큼 춤을 추었다. 진행자인 그녀는 바로 내 옆에 있었다. 엄마 아버지로부터 떨어져 나와 내 삶을 살 준비가 되었냐고 전체에게 묻는다. 나는 라고 대답했다. “정말로요?” 묻더니 그녀는 나를 표집했다. 수건 두 개와 우람하고 무섭게 생긴 남자와 역시나 힘이 세게 생긴 여자를 데리고 나왔다. 그는 아버지, 그녀는 어머니를 대리한다. 내가 가운데 있고 수건의 양끝을 잡고 양 쪽에서 그녀와 그가 나를 찢을 듯이 당긴다. 나에게 넌 못해” “넌 안돼라는 말을 하라고 그들에게 주문한다. 주변에 둘러선 20명에게도 홈그라운드가 아니라 원정경기를 하는 팀에게 야유를 보내듯 넌 못해’ ‘넌 안돼라고 합창하게 했다. 그 기운으로 주눅든다. 내가 할 일은 그 야유 속에서, 그리고 나를 잡아두는 그녀와 그 사이에서 수건을 빼앗는 거다. 못했다. 빼앗기고 말았다. 내 안에는 힘이 없다.

 

진행자가 다시 한 번 기회를 주었다. 인생에서는 두 번째 기회 따위는 없다고 하면서. 이번에는 나는 슬프기도 하고 화가 나기도 해서 소리를 지른다. 그녀가 말한다. “아직 아니예요. 그런 식은 아니에요. 조금 더 안에서 힘을 모으세요. 감정적으로 힘든 걸 못 견디지요? 조금 화가 나면 그걸 금방 발산해 버리지요. 자잘하게 열 번으로 화를 내어서 변화를 가지고 올 힘을 분산시키죠. 그렇게 해서 자기 삶을 살겠어요?” 그녀의 말은 날카롭고 자극적이고 선동적이다. 약을 빠작빠작 올린다. 그리고 내 아랫배를 가리키며 결정적으로 말한다. “윤정씨 아래에 있는 사자를 표효하세요. 여기 들어있는 맹수를 풀어 놓으라구요. 언제까지 두려움에 떨면서 보낼 건가요? 입을 크게 벌리고 그 사자가 뛰쳐 나와서 표효하게 하라구요. 허리 아래와 다리를 긴장하지 말고 써요. 거기에 윤정씨의 힘이 있어요.”

 

나는 짖어보기로 한다. 말이 아닌 소리로 짖는다. 엄청나게 큰 소리다. 첫울음이다. 그러자 엄청난 화가 나를 휘감더니 폭풍같이 쏟아진다. 온 몸에 힘이 장전된다. 수건 하나를 한 끝은 덩치큰 그와 그녀가 동시에 잡아당기고 한 끝은 내가 잡고 있었다. 나는 끌려가며 비실거리는 중이었다. 그 힘이 나오자 나는 수건을 순식간에 빼앗아 높이 들었다. 그리고 한참을 더 짐승의 소리로 표효했다. 나는 춤인지 굿인지 협박인지 구분이 안가는 모습으로 뛰고 솟고 과시한다. 몸을 부풀리고 두 팔을 들고 두 다리를 마구 휘저으며 종횡무진한다. 그건 승리자의 세레모니다. 그러자 저쪽의 그녀가 무서워하며 뒤로 돌아선다. 그도 몸을 비튼다. 그들을 이긴게 아니라 나는 나를 이긴 것 같았다.  

 

그녀가 눈을 부릅뜨고 헐떡이고 있는 내게 와서 말한다. “사자가 윤정씨 안에 있어요. 무사가 있어요. 이제 꺼냈어요. 그게 윤정씨예요. 그건 원석이예요. 아직 다이아몬드가 아니예요. 그 원석은 세공을 해야 보석이 되어요. 누가 세공사일까요? 윤정씨 자신입니다. 잘 세공하도록 하세요. 그러면 고통에서 꽃이 필 겁니다.” 나는 눈물을 흘리며 그 이야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들에게 감사의 절을 했다. 신부님들이 종신서원을 할 때 드리는 절을 했다. 그 뒤 배를 대고 바닥에 엎드려 한참 안정을 취했다.

 

한번도 그녀를 잡고 이야기를 한 적이 없는데 그녀는 알고 있었다. 내가 분노를 관리하려 얼마나 발버둥을 쳐 왔는지를. 그녀가 나를 알아봐주어 고마왔다. 그녀가 그것을 병이나 퇴치대상이 아니라 힘이라고 불러주어 고마왔다. 그 맹수의 이름을 불러주어 고마왔다. 기쁘고 고마워서 뱃 속에서부터 울었다. 나는 내 안의 분노를 두려워했다. 입을 벌리면 놈이 튀어 나와서 난장과 아수라를 만들까봐 이를 앙 다물었다. 폭풍의 언덕에서 제인 에어가 바라보던 미친 여자가 내 안에도 있는 것 같았다. 나는 사자를 꺼냈나 보다. 한 번도 꺼낸 적 없던, 내가 날마다 모닝페이지와 절을 하면서 잘 가두어두는 그것. 사자라니, 무사라니.

 

나만 단독으로 세션을 하고 다른 이들은 집단으로 수건으로 아까 내가 했던 걸 하고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모두들 춤을 추었다. 어쩐 일인지 나는 평소 내 자리였던 끄트머리나 구석이 아니라 가운데를 헤집고 들어가서 솟구치는 춤을 추었다. 그 자리가 편했다. 이상한 일이다. 가젤영양처럼 여리고 약한 턱선과 눈빛을 가진 이들이 와서 내 앞에서 웃으며 춤을 추었다. 나 역시 평소에 그런 눈빛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사나운 나를 편안히 여긴다. 이유를 모르겠다.  

 

'무사'라는 말은 나에게 두 개의 꿈을 기억나게 한다. 첫번째 꿈은 이렇다. 올 봄에 꾼 것이다. 나는 수많은 남자의 잘린 머리가 든 거대한 똥통을 지키고 있었다. 그 중 몇 개는 내가 잘라서 넣은 것이었다. 길다란 막대기로 저어보니 똥통 속에는 내가 넣지 않은 수많은 잘린 20대 남자 머리들이 싱싱한 채로 가득 들어있다. 눈이 부어 있다. 오래되었는데, 똥이 다 썪고 탱크가 가득 차서 풀 때가 되었는데도 머리들은 썩지를 않았다. 내 옆의 할머니는 똥차를 부르러 갔고, 또 다른 할머니는 10시에 뿌린 똥이 4시에 나무를 다 자라게 만들었다며 똥통 좀 보자 한다. 5월에 고혜경 선생님과 그룹투사 꿈작업을 했다. 그 꿈을 나의 남성성이 발달하기 위한 이슈로 덜 표현된 '애도'가 있는 것 같다고 읽으셨다. 또 하나의 꿈은 앞머리를 밀고 상투를 튼 일본 사무라이 머리(촘마게)를 한 남편이 벌거벗은 채 자신의 잘린 머리 하나를 더 들고 우리집이 있는 건물의 출입문으로 들어오는 꿈이었다. 그는 체구는 작았지만 완전한 성인 남자의 성기를 갖고 있었다. 우린 아직 결혼 전이고 함, 결혼예물이 들어오는 시점인데 그가 그러고 나타난 것 같다. 나는 2층에 살고 있다.(실제 우리집은 4층) 그를 창문으로 내다보고는 소리를 고래고래 악을 썼다. "당신이 그렇게 온다고 내가 당신을 싫어하거나 내칠거라고 생각했냐? 천만의 말씀이다. 어디서 되도않게 나를 시험하냐? 어디서 그런 지랄을 하고 자빠졌냐? 당신은 내 사람이다. 나는 무슨 일이 있어도 당신하고 결혼한다." 또 잘린 머리가 꿈에 나와서 나는 놀랬다.    

 

'사자'는 두 여신을 떠올리게 한다. 세크매트와 칼리여신. 진 시노다 볼린은 <우리 속에 있는 지혜의 여신들>에서 분노의 여신에 대해 이야기 했다. 그리스로마 신화에는 젊은이들이 많이 나오고 나이 든 이들을 위한 원형이 부족하다. 오십 넘은 여자들을 위한 지도를 신화에서 찾는 작업을 하면서 그녀는 신화를 채집하기 위해 다른 문화권의 신화를 뒤졌다. 그녀는 분노, 지혜, 웃음 이런 걸 찾아냈다. 분노의 여신은 세크매트와 칼리를 들었다. 세크매트는 이집트의 여신이다. 사자머리를 하고 있다. 세크매트는 모성과 맹수성을 동시에 가진 여신이다. 어릴 때 학대받은 경험이 있던 순례자는 세크매트 여신상 앞에서 무한 평온을 느꼈다고 했다. 칼리는 인도의 검은 여신이다. 칼리는 한 손에는 칼을, 한 손에는 피가 뚝뚝 떨어지는 잘린 머리를 들고 서 있으면서 한 손으로는 위로의 손짓을 한다. 그녀의 목걸이는 사람의 잘린 머리이고 치마는 죽은 이의 팔이다. 피를 강물처럼 흘리며 살육한다. 오로지 그녀가 딛고 선 남편인 신이 와서 그녀에게 술을 먹여서 잠들게 해서야 그 살육은 끝이 났다. 진 시노다 볼린은 더 이상은 못참아하면서 이를 악물로 일어서는 시뻘건 분노가 변화를 위해서는 꼭 필요하다고 말했다. 강함이 있을 때 여성적인 부드러움은 보호될 수 있다. 이 또한 여성적인 힘이다. 세크매트나 칼리여신 중 한 여신이 필요하고, 내 안에 없으니 흉내를 내야겠다고 생각했었다. 지금 이 순간, 내 안에 분노의 여신 씨앗이 원래 있다고 하고 있구나!

 

사자와 함께 지리산에서 돌아왔다. 갓 태어난 사자가 세크매트 여신이나 칼리여신으로 자라나는 데는 얼마나 걸릴까? 어떻게 같이 잘 살 수 있을까? 일상에서 내가 하는 바에 따라서 이건 단 한 번 사자를 본 추억으로 묻힐 수도 있으리라. 내 안의 사자는 아직 삼일도 되지 않았다. 태어남을 기뻐한다. 축하한다. 금줄을 쳐놓고 한 치레, 삼칠일 잘 보내고, 백일, 돐이 되면 잔치를 하리라. 그것답게 잘 수련하여 이후 삶에서 사자가 나와 언제나 언제나 언제까지나 함께 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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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7.08 21:45:17 *.124.78.132

사자의 귀환을 축하드립니다 ^^* 부드러운 카리스마! 라는 말이 왠지 떠오르는데요~

투라우마 힐링 웍샵이라는 것도 있군요! 저도 함 가봐야 할지도 모르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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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7.09 16:37:42 *.211.65.190

지리산 모처에서의 의례가 그대를 해방케 했느니

사자는 한 번 만난 것으로 족할 터

대면하기  힘들수록 한 번 만나고 나면 별거 아니니

모성과 맹수성을 가진 세크매트 여신이 그대에게 지혜를 줄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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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7.11 13:38:04 *.201.146.145

사자를 만나보고 싶어집니다.

글을 읽고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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