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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7월 8일 22시 30분 등록

MeStory(13) : 내게 영향을 준 사람들_3

- 20대 후반 변화시기에 만난 사람들 : 적, 멘토, 경전

 


엊그제(75) 박흥용 작가를 만났다. 나는 만나기 며칠 전부터 설렜다.

 

박흥용 작가는 1996년 주유소 알바 중에 알게 되었다. (그때쯤으로 기억한다. 실제 알게 된 것은 그 후의 일이지도 모른다.) 알바를 하는 중에 같이 일하는 아이가 재미나게 계간지 ‘Review’를 보고 있었고, 나도 그런 계간지 하나쯤 보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었다. 그 계간지를 보던 아이는 주유소에서 일하는 다른 아이들과는 분위기가 좀 달랐다. 그 아이는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을 즐기고 있었고, 알바를 하는 것에 대해서, 돈이란 것에 대해서 같이 일하는 다른 아이들과는 좀 달랐다. 부정적인 감정은 없어보였다.

 

* * *

 

우리집은 문화와는 거리가 멀었다. 자신이 좋아하는 뭔가에 한다는 것을 모르는 집이었다. 신문을 보지 않았고, 월간지를 사 본적이 없다. 뭘 잘하니까, 뭘 좋아하니까 그걸 해보라하는 말도 들어본 적이 없었다. 그러니 박흥용이란 만화가가 있는지, 그런 만화가 있는지 조차 몰랐다.

 

바로 그 호였는지 아니면 그 이후에 내가 사서 본 것에서 인지는 무엇에서 접했는지는 정확히 기억할 수 없다. 하여간 Review라는 계간지에서 봤다는 사실만을 기억한다. 거기에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의 몇 장면과 함께 작가주의 만화라는 말도 봤다.

 

* * *

 

아버지께서는 당시에 내가 주유소 알바하는 것을 싫어하셨다. 내게서 기름냄새가 나는 것이 싫으셨던가 보다. 나는 어느새 휘발유 냄새에 익숙해져 있었던지 내게서 나는 냄새를 알아채지 못했다. 가끔 나는듯 하다가 나지 않기도 했었는데, 기름이 없는 곳에서는 그게 도드라졌었던가 보다. 그런데 아버지께서는 그 냄새보다 다른 게 싫으셨던 것 같다. 그런 일은 대학 안나오고도 할 수 있다고 하며 싫어하는 것을 표현하셨다.

 

아버지의 인생에 학력이나 인맥없음은 걸림돌이었다. 그래서 자식들은 많이 가르쳤으면 했고 애써서 대학 보내놨는데, 그렇게 학교를 졸업한 딸이 주유소 알바를 한다고 기분이 언짢으셨던 듯싶다. 아버지께서는 공사현장에서 포크레인기사로 일하며 나쁜 대접을 받고, 험한 소리를 들으면서 그런 생각을 하셨던 게 아닐까 한다. (그러나 솔직히 말해서 직업의 귀천 없다고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는 그걸 좀 따지지 않나? 그 차별이 싫어서 자기 자식은 많이 가르치려하고 사무실에서 펜 잡는 직업 가지길 바라는 게 아닐까. 그런데 나는 그 좋다는 공무원이 되고 10년도 못채우고 그만두었다. 공무원 첫해부터 그만둘 궁리를 했었다.)


* * *

 

하여간 그해에 알바해서 용돈 벌고 취직시험 보고 합격하여 다음해에 첫 번째 근무지에 가서 일하게 되었다. 그때부터 계간지를 사보게 되었는지, 주유소에서 그걸 본 후에 다음호부터 사서 보게 되었는지는 지금 기억나지 않는다. 그 계간지 속에서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의 비평을 쓴 기사를 만났다. 주인공이 칼을 들고 나는 모습을 보았다. 바람 속에 황정학이 시간이 멈춘 듯이 서 있는 것을 보았다. 그 그림과 내용에 반해서 이미 절판되었다는 만화책을 군산시내에 있는 큰 책방에 주문해서 구했다. 그것이 도착하는 날은 밤샘근무를 하고 퇴근하는 날이어서 무척 피곤했음에도 점심때쯤에 도착한다고 하는 그때까지 기다리면서 설레였었다.

 

만화책은 받은 그길로 읽기 시작했다. 시내에서 버스를 타고 군산터미널로 가는 내내 책을 보면서 울면서 눈물 콧물을 흘리고 닦고 정신이 없었다. 같이 탄 승객들이 이상한 사람 쳐다보듯이 나를 봤다. 나는 견자가 악다구니 쓰는 장면에서 울고, 황정학이 우는 장면에서 울고, 계속 울었다.

 

<지구에서 영업중>을 쓴 작가 이시영은 만화에서 누군가가 우는 것은 결국은 자기연민 때문에 우는 것이라고 했다. ‘구르믈을 보면서 울었던 내 상황을 남들이 알아듣는 말로 한다면 책 내용이 슬퍼서라고 하겠지만, 주인공이 운다고 따라 우는 것은, 주인공이 울지 않는데도 나는 울고 있는 것을 설명하자면 이시영의 말이 딱 맞는 것 같다. 이시영은 그 말을 했던 장면은 자신의 약혼자가 죽어버려서 신은 그 약혼자의 시신 앞에서 엉엉 우는 것이었다. 약혼자와 이별하는 순간이었으니까 그랬을 것이다. 그것을 지켜보던 다른 한 인물은 그 울음은 결국 그 약혼자 없는 세상에 영원을 살아야 하는 자신의 처지가 서러워서 우는 것이라고 말했다. 좀 독한 소리라고 들리는 데, 맞는 말인 듯하다.

 

내가 구르믈을 보면서 울었던 것은 견자의 몸부림이 아파서도 울었지만, 그 놈은 그리하는데 나는 뭔가하는 생각이 들어서 더 울었던 것 같다.

 

당시에 내 나이는 스물일곱. ‘구르믈이 연재된 월간지는 트웬티세븐이란 것이었다. 그 이름에서 딱 성인용이란 것이 느껴지는 그런 월간지이다. 나는 월간지를 본 적은  없지만, '구르믈'을 보면서  , 나도 성인이구나 했던 것 같다. 실제의 내 생각이나 생활은 성인이 아니었다해도.

 

당시에 나는 근무를 나가면 어떻게 해야할지 몰랐다. 열심히 뭔가를 하는데 대장님은 늘 못마땅해 하셨고, 근무중에 몇 차례 지적을 받았다. 퇴근하고 집에 갈 때면 우울했다. 집에서도 우울했다. 집안의 공기는 무거웠다. 동생은 가출했고 집에 들어오지 않은지 일주일, 2주일, 한 달, 그 이후로도 계속 이어졌다. 그것이 언제까지인지 알 수가 없었다. 나는 밤샘근무에 피곤했고, 집에 퇴근해서도 부족한 잠을 보충하는 낮잠을 잘 자지 못했다. 소리에 예민해서 푹 자질 못했다. 집안 공기가 무거워서 자꾸 밖으로만 나돌았다. 늘 배가 고팠고, 배가 고파 양껏 먹으면 탈이 났다. 먹고나서 돌아서면 또 금새 배가 고팠다.

 

당시에 퇴근할 때는 많은 날을 울었던 것 같다. 비참했다. 대장님께 싫은 소리를 안듣도록 노력을 했는데 그게 잘 안됐다. 어느 날부터는 그게 다 헛것처럼 느껴졌다. 대장님과 같은 날짜로 부임해온 송경희 선배가 일하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던가 보다. 어느 날 같이 일하는 신경희씨가 내게 미안하다 말했다. 그게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들었었다. 그런데 그 미안한 이유가 자신이 대장님한테 찍혔는데, 자기에게 자질구레한 일을 시키는데 그게 나 근무하는 날에 그런 일을 시킨다는 것이었다. 대장님은 오후엔 청소를 지시하시곤 하셨다. 여직원들이 이렇게나 있는데 기상대가 이렇게 지저분해서야 쓰겠냐하시면서 탕비실 말끔하게 치우라, 창고를 정리하라, 자료실을 대청소하라는 둥의 일을 지시하셨다. 그런데, 신경희씨의 말이 그게 자기한테만 지시하면 찍힌 것을 표시나게 하는 것 같아 지저분하다 현업자랑 같이 치워라하는데 그게 내가 근무하는 날에 지시를 하신다는 거였다. 그래서 다른 현업 근무자에게 일근중에 그런 일을 하냐고 물었더니 아니라고 대답했다. 탕비실, 창고, 자료실은 그때그때 지저분해지면 치우긴 하지만 한 달에 한번 대청소를 할 때 몰아서 직원들 여럿이 나누어서 청소하는 곳이었다. 그 걸 둘이서 3일에 한번씩 청소를 하는 것이었으니 며칠이 지나면 또 먼지가 있었고, 또 야단을 맞고 차례대로 청소하는 것으로 이어졌다.

 

대장님께 야단을 맞을 초기에는 내 질문은 어떻게였다. 어떻게 하면 대장님이 지시하시는 것을 잘 할까였었다. 대장님과 같이 부임해온 경희선배에게 노하우를 배워서, 경희씨에게 배워서 그 어떻게라는 것을 했다. 그러다가 일지의 앞뒤를 살피다가 후배 은숙이가 자료로 정리해둔 것이 내가 붙여둔 것보다 더 삐뚤게 붙어 있는 것을 알고는 그 어떻게가 아님을 알았다. 그 많은 어떻게는 제대로 된 게 아니었다. 나는 다른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어떻게에서 로 바뀌었다. ‘의 답은 신경희씨가 일러주었다. 그런 후에는 다른 질문으로 또 바뀌었다. ‘뭐냐고?’ ‘나는 뭐냐고?’ 대장님께서 나무라는 것에서 멈추지 않고 함부로 말씀하시고 욕을 하셔서 내 질문은 바뀌어 있었다. ‘도대체 나는 뭐지?’‘대장님이 욕하는대로 나는 개냐? 사람이냐? 뭐냐?’ 심한 욕을 들은 후라 그에 대한 반발심에서 생긴 질문이지만, 그때의 질문 뭐냐?’는 질문해야 할 것의 끝에 다다른 질문 같다. ‘나는 무엇인가?’

 

마음 속에서는 대장님이 뭐라고 하는 그런 존재가 내가 아니라고는 생각했지만,  계속되는 험한 소리에 어떤 태도, 어떤 행동이어야 하는지는 잘 몰랐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는 그때 좀 무기력했던 것 같다. 매맞는 아내처럼 말이다. 일근을 하는 날 대장님이 화내는 일 없이 별일 없이 지나가도 조마조마한 것을 겪었다.

 

나중에 복직을 해서 같이 잠깐을 근무한 연희선배는 대장님을 집에 아버지 대하듯이 대해보라고 했다. 내 속마음에서는 우리 아버지는 안 그러시거든요?’였다. 당시에 나는 하도 속이 상해서 연희선배의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대장님은 연희 선배는 예뻐라 하시면서 경희선배를 나무랄 때, ‘연희선배처럼 해보라’, ‘김연희 주임, 똥이라 빨아 먹어라라는 말씀을 하셨다. 너무 화가 나서 하셨겠지만 좀 심한 말씀이셨다. 대장님에 의해 분리된 경희선배와 연희선배처럼, 나 또한 후배 은숙이와 내가 그렇게 분리되어 있던 터라 연희선배의 말은 무슨 말인지 알지만 불편했다. 그래서 속으로 연희선배는 아무것도 몰라요’, ‘당신은 이런 일을 안겪잖아요하면서 말이다. 내가 보기에 대장님은 자신 앞에서 자신에게 확 굽히는 사람과 나는 직원입니다. 내 할 일 하고 있습니다라는 사람을 완전히 달리 대하고 있었다. 한쪽을 웃음과 칭찬으로 한쪽은 나무람과 비난으로.

 

그 첫해의 경험이 내 첫 직장생활과 공무원이라는 내 첫 직업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나는 그때 막연하게나마 그만둘 생각을 했다. 같이 근무하던 여직원 한 명이 그만두었다. 각자가 나누어야 해야할 몫 은 더 많아졌고 대장님은 이제 화를 내고 그 후에 미안해하는 일도 없어졌다. 화가 나면 그냥 화를 내었다. 어느새부터인지 자신이 그렇게 역정을 낸다는 것에 대해 부끄러하거나 감정컨트롤을 한다거나 하는 것은 없어져버렸다. 신경희씨는 몇 번의 사표를 썼다가 철회하기를 반복했다. 일근 근무를 마치고 퇴근하면서 경희씨와 나는 술을 마시며 고기를 뜯으며 스트레스를 풀었고, 때로는 배가 고파서 빵집에 앉았다. 우리대에 연희선배 자리에 늦게 합류했다가 먼저 그만둔 그 선배가 부러웠다. 공무원이란 철밥통을 버리고 그만둔 그 사람을 부러워했다. 경희씨는 아버지가 자신을 쳐다보지도 않고 사표낸 것을 철회했다하니 그때서야 웃으며 쳐다봤다며 속상해 했다. 우리는 빵을 먹으며 울었다.

 

이시영의 만화 속의 말대로 자신이 불쌍해서 우는 것이라면 그 말이 맞다. 경희씨가 우는 데 나는 왜 눈물이 났을까? 아버지가 쳐다보지 않는 경희씨가 불쌍해서? 경희씨에게 공감해서? 경희씨랑 같이 그날도 대장님한테 야단을 맞아서? 그렇게 생활하는 내가 비참하게 느껴져서? 이런 생활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몰라서?

 

이시영의 말대로 자기연민이 우는 이유라면, 나는 그때 경희씨가 겪는 일이 내 일처럼 마음이 아팠다고 말하고 싶다. 그게 자기연민이라면 나는 많은 슬픈 장면에서 우는 것은 공감이고 그건 자기연민이라고 말하고 싶다.

 

경희씨는 그녀의 아버지에게 뭐였을까? 나는 계속 대장님한테 나는 뭐냐고 속으로 질문을 했었다. 경희씨는 뭘까? 결국 그 빵집 사건으로 인해 경희씨는 공무원을 그만둘 수 있었다. 그 광경을 본 경희씨 오빠가 아버지를 설득했다 한다.

 

송경희 선배는 다음해 1월에 다른 곳으로 발령이 났다. 대체로 1년 이내에 근무지가 바뀌지 않는데, 대장님이 다른 곳으로 쫒아보냈다고 한다. 대장님과 나 외에 근무지 이동이 없는 기능직을 제외하고는 모든 사람이 바뀌었다. 다른 직원들도 1년이 체 되지 않은 사람들이었는데 다른 곳을 지원해서 가버렸다. 나보고는 참으라고 하더니 자기들이 먼저 도망가 버렸다. 그렇게 직장생활 첫 해를 보냈다. 그리고 뜻하게 않은 시기인 4월에 근무지가 바뀌었다.

 

이 글을 쓰는 지금 나는 더 이상 기상청 공무원이 아니다. 가끔 거기에서 다시 일하는 꿈을 꾸곤 한다. 그 꿈의 내용은 대체로 내가 어떻게 하지 못하는 아주 난감한 상황을 겪는 것이다. 군대를 엄청 싫어하는 사람이 힘든 일을 겪을 때, 군대에 다시 간 꿈을 꾸는 것처럼, 나는 꿈속에 군산기상대에서 근무를 한다. 꿈속에서는 폭풍우와 함께 눈이 내리고, 안개가 자욱하다. 그러는 중에 나는 피로를 이기지 못하고 잠이 들어버렸다가 깨는데, 깨어났을 때는 직원들과 대장님이 출근을 한다. 그러다가 놀라서 잠을 깬다.

 

* * * *

 

아르코미술관에서 전시작가와 함께하는 시간을 마련한 자리에서 나는 박흥용작가는 만났고, 1996년부터 팬이었다고 말을 했다. 그 말을 하는 순간에 나는 좀 망설였다. 그날의 자리는 만화가, 작가지망생을 위주로 작화와 관련된 것을 강연하고 이야기하는 자리로 마련되었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팬이었지만, 어쩌면 오랫동안 팬이었다는 것이 끔찍해 보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언뜻 들었다. 그 후에 이어지는 대화에서 메일 주소를 주시면서 물어볼 것 있으면 물어보라고 하는데, 나는 지금 무엇을 물어야할지 모르겠다. 나는 팬으로 만난 것일까, 작가지망생으로 만난 것일까?

구르믈을 알게 된 지 20년이 다 되어가는 이 시점까지 팬인 것은 구르믈자체가 뭔가 특별한 것이 있어서겠지만, 그것이 내게 많은 영향을 주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것을 접하던 그때 비로소 내가 성인이라는 것을 심각하게 생각했던 것 같다. ‘구르믈의 주인공이 소년(청년)에서 아버지의 그늘을 벗어나 나그네 길을 오르면서 한 남자가 되는 것을 보면서, 나도 어렴풋이 성장이란 것을 해야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나는 아무런 마음의 준비 없이, 아무것도 모른 체 변화의 시기를 맡았던 것 같다. 학생에서 직장인으로 바뀌었고, 내가 할 수 있는 노력을 기울여서 해결되지 않은 문제들을 만났다. 지금의 나이라면 나는 동생의 가출을 그때처럼 다루지 않았을 것이고, 상사의 나무람에 스트레스를 그때처럼 많이 받지 않을 것이다.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모르는 아이가 큰 변화의 시기를 맞은 것 같다. 20대 후반이면 아이라고 할 수 없는 나이지만, 철이 안 들고 경험이 없다면 아이와 별로 다를 것은 없다.

 

나는 그때 나를 힘들게 하는 상사를 만났고, 나에게 일을 가르쳐주는 선배를 만났고, 같이 울고 웃는 동료를 만났고, 구르믈이란 딴 세상도 만났다.

대장님(상사) =

경희선배 = 도움을 주는 사람, 멘토

같이 울었던 동료 = 동료

구르믈’ = 경전 혹은 이상적인 세계 그리고 도피처

 

어쩌면 그때의 인연들은 직장 1년차에 만나지 않았다면 나와 무관했거나 혹은 무난한 인연들이었을지도 모를 것들이다. 그때의 내 처지가 내가 만나는 사람들과 접하는 것들에 극렬하게 반응하게 하지 않았나 싶다. 대장님이 그 해가 자기가 기관장이 된 첫 번째 해가 아니라 조금 더 직원들을 다루는 경험이 있었을 때 만났다면 달랐을 것이란 짐작도 해본다. 나 또한 몇 달째의 동생의 가출로 마음이 상해있지 않았다면, 많은 날들이 심각한 얼굴은 아니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때에 겪었던 일들을 이야기할 때는 나는 여전히 울거나, 흥분해서 욕을 하거나, 혹은 좋아서 어쩔 줄을 모른다. 그때 나쁜 놈이라고 여겼던 사람을 나쁜 놈이라고 불렀다가 짠한 생각이 들기도 해서 지금은 불쌍한 노인네가 되었겠네라고 말하기도 한다. 나는 지금 마흔이 넘었는데도 미련스럽게 과거를 붙들고 있다. 그때 영향을 주었던 사람들 덕분에 지금의 내가 있다. 27살의 그때에 겪었던 일의 영향이 꼬리를 길게 늘여서 내 삶을 바꾼 것 같다. 그때의 인연들이 내게 가르쳐준 대로 나는 배우고, 분노하고, 또 울었던 것 같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지금도 내게 닥친 일을 어떻게 하지 못해 갈팡질팡하거나 혹은 어떤 것에는 쩔쩔 맨다. 나는 아직도 그 뭘 몰라서 어리석었던 이십대 후반, 트웬티세븐을 벗어나지 못했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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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7.09 17:44:27 *.211.65.190

잡다한 생각이 많은 울그이가 어제 술 한 잔을 하며 말했다.

"5. 15. 25. 35, 45  이렇게 생각해보고 있어. 55, 65도 생각하고."  미스토리 정리하듯 실한 생각을 한다니!

"그래??  35부터는 내가 다 아니까 그 전에꺼 얘기해 봐. 듣고 싶어." 

그의 15를 들으며 나의 15가 중첩되어 보여졌다. 그의  25를 잔뜩 기대하고 있는데 그는 비밀에 붙여버렸다.  


각자 다른 시공간에 살다가  어쩌다 그와 같은 공간에 사는 관계가 되었는지,

어쩌다 타오의 이야기가 궁금해지는 사이가 되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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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7.10 15:48:59 *.232.32.24
그러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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