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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2월 1일 16시 16분 등록


1963년 1월 19일 링컨 기념관 앞에서 다부진 체구의 한 흑인이 감동적인 사자후 獅子吼 를 토해냈다. 그는 시종일관 위엄을 잃지 않았다. 자신의 꿈에 대해, 흑인의 꿈에 대해 그리고 미국의 꿈에 대해 이야기했다.  몽고메리 버스사건으로 촉발된 저항의 함성은 이 흑인의 열정과 함께 전국적인 거대한 불길로 타올랐다. 그는 차별과 억압 속에서 신음하던 미국 흑인들에게 ‘희망의 복음’이 되었다. 그 희망의 횃불을 든 이가 그 유명한 ‘마틴 루터킹 목사’이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나의 꿈은 아메리칸 드림에 깊이 뿌리 내리고 있는 꿈입니다. 언젠가 이 나라가 모든 인간은 평등하게 태어났다는 것을 자명한 진실로 받아들이고, 그 진정한 의미를 신조로 살아가게 되는 날이 오리라는 꿈입니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조지아 주의 붉은 언덕에서 노예의 후손들과 노예 주인의 후손들이 형제처럼 손을 맞잡고 나란히 앉게 되는 꿈입니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이글거리는 불의와 억압이 존재하는 미시시피 주가 자유와 정의의 오아시스가 되는 꿈입니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내 아이들이 피부색을 기준으로 사람을 평가하지 않고 인격을 기준으로 사람을 평가하는 나라에서 살게 되는 꿈입니다.”

그리고 같은 장소에서 같은 피부색을 가진 한 흑인이 미국 최고의 국가통수권자가 되어 인상적인 연설을 재연했다. 그는 미국의 변화를, 미국의 통합을 그리고 미국의 희망에 대해 이야기하였다. 누구도 예상치 않았던 인물이었지만, 미국은 그를 선택했다. 그가 선거기간 내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희망’이었다. 세계화라는 유령과의 전쟁에 지친 미국인들은 결국‘희망’을 선택했다. 희망의 주인공은 축복받은 자라는 이름을 가진 ‘버락 오바마’이다.

“모닥불에 둘러앉아 자유의 노래를 부르던 노예들의 희망, 머나먼 땅을 향해 출발하던 이주민들의 희망, 메콩강 삼각주를 용감하게 정찰하던 젊은 해군 대위의 희망, 과감하게 가능성에 도전하는 공장 노동자 아들의 희망, 미국이 자신의 나라이기도 하다고 생각했던 '버락' 이라는 우스꽝스러운 이름을 가진 말라깽이 꼬마의 희망 말입니다. 어려움에 직면했을 때의 희망, 불확실성에 직면했을 때의 희망, 담대한 희망! 결국 그것이 바로 신께서 우리에게 주신 가장 큰 선물이여, 이 나라의 토대입니다.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믿음, 보다 좋은 날이 올 것이라는 믿음 말입니다.”- 2004년 7월 28일, 보스턴 연설 중에서 -

마틴 루터킹 목사와 버락 오바마의 공통점은 시종일관 ‘희망’을 사람들의 가슴 속에 깊이 새겼다는 사실이다. 뿌연 안개 속에서 항로를 잃은 배에게 어둠 속 등대와 같은 한줄기 희망이 되었다.  희망hope이라는 단어는 보이지는 않은 떨림이며, 가슴 속 흥분이다. 희망이라는 단어가 존재하지 않았다면, 세상은 어떻게 되었을까?

그리스 신화에 의하면, 인간에게 불을 훔쳐 선물한 프로메테우스는 도둑질의 댓가로 바위에 묶인 채 낮에는 독수리에게 간을 쪼이는 형벌에 처해진다. 이러한 형벌에도 분이 풀리지 않은 제우스는 대장간의 신 헤파이스에게 흙으로 아름다운 여인을 만들게 한다. 이렇게 탄생한 여인이 바로 ‘모든 선물을 받은 여인’이라는 의미의 판도라다. 제우스는 프로메테우스의 동생 에피메테우스와 판도라를 만나게 한다. 두 사람은 결혼해 행복한 나날을 보낸다. 판도라는 어느 날 제우스가 선물한 상자가 생각난다. 그녀는 제우스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욕망을 참지 못하고 상자를 열어본다. 그 순간 상자 속에 있던 슬픔, 시기, 질투, 가난과 같은 모든 악惡들이 세상에 퍼져나가게 된다. 통곡을 금치 못할 일이다. 한 여신의 호기심으로 인해 세상의 모든 악들이 창궐했다니 말이다. 다만 위안이 되는 것은 판도라의 상자 속에 마지막 남은 것이 ‘희망’이었다는 사실이다. 힘겹고 지칠 때, 우리를 다시금 일어서게 그것 말이다.

세상에는 사람을 살릴 수도, 죽일 수도 있는 직업 세 가지가 있다고 한다. 바로 의사, 성직자, 점술가이다. 예를 들어 의사가 암환자에게 회복에 대해 절망적인 견해를 내리게 되면, 암의 전이는 빠른 속도를 보이며 급격하게 악화된다고 한다. 반대로 의사가 희망적인 견해와 의지를 보이면, 환자의 건강상태는 긍정적으로 변화될 수 있다고 한다. 마찬가지로 인간의 영혼을 구원하는 성직자는 신의 이름으로, 점술가는 미래에 대한 예측으로 사람의 심리적 상태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실제 30년간 임상종양학자로 일해 온 하버드 의대 제롬 그루프먼 교수는 ‘희망’이 암환자를 치료하는 데 있어 결정적 역할을 한다고 믿는다. 희망은 암 치료에 있어 2가지 역할을 한다. 하나는 심리적인 측면에서 자신이 직면한 힘겨움, 장애물을 정면으로 바라보게 한다. 암을 정면으로 받아들인 후, 그것의 극복을 통해 더 나은 미래를 바라볼 수 있도록 한다. 둘째, 신체적인 측면에서도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온다. 희망을 갖고 있는 환자의 뇌에서는 도파민dopamine이라는 화학물질이 생성된다. 도파민은 엔도르핀dendorphin과 엔케파린endephalin과 연결되어 있다. 엔도르핀과 엔케파린은 통증을 경감시키며 기분을 좋게 만든다. 이 화학물질들은 통증의 경감을 유도해, 암이라는 괴물과 다시금 싸울 수 있는 에너지를 공급해주는 것이다.

플라시보효과 placebo effect 는 익히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의사가 가짜 약을 환자에게 투여했을 때, 질병이 나을 것이라는 환자의 믿음은 실제 치료효과를 일으킨다.  플라시보 효과에 대한 조사에서 극적인 사례가 있다. 미국의 라이트씨는 말기 암판정을 받고 곧 사망할 것이라는 선고를 받게 된다. 절망적인 상황에 있던 그에게 암에 효과가 있다는 말의 장액인 크레비오젠이 발견되었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그는 의사에게 말의 장액을 받게 해달라고 사정한다. 그의 주치의인 필름 웨스트는 라이트 씨에게 크레비오젠을 주사했다. 그리고 며칠 후 놀라운 상황을 접하게 된다. 오렌지 크기의 암종양 덩어리가 눈덩이처럼 녹아 없어진 것이다. 그러나 두 달 후 라이트씨는 말의 장액은 가짜라는 의학 기사를 읽게 된다. 그러자 바로 암이 재발했다. 의사는 ‘2배나 강력한 새로운 버전’의 크레비오젠이 있다며 그것을 주사했다. 그리고 다시 암은 완치되었다. 놀라운 사실은 의사가 주사한 새로운 크레비오젠은 실제 ‘물’이었다.

물론 플라시보 효과가 대부분의 질병을 치료하는 마법은 아닐 것이다. 중요한 것은 더 나아질 것이라는 미래에 대한 희망이 인간 신체 내부의 생물학적 메커니즘을 변화시킨다는 것이다. 그루프먼 교수는 막연한 희망에 대해서는 명확한 입장을 표명하고 있다. 진실을 외면하고, 막연하고 미래의 낙관주의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의사는 환자에게 거짓된 희망을 심어주는 것이 아니라, 진실을 이야기 해주어야 된다고 한다. 그리고 환자는 자신이 상황에 대해 진실을 인정하고, 그 진실을 속에서 새로운 희망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 이것이 진정한 희망이다.

잠시 영화 이야기를 해보자. 영화 <쇼생크 탈출>은 ‘희망’의 진정한 의미에 대해 되돌아 볼 수 있게 해주는 좋은 교재이다. 주인공 앤디(팀 로빈스)는 아내와 아내의 정부情夫를 죽인 누명을 쓰고 종신형으로 악명 높은 쇼생크 감옥에 수감되게 된다. 많은 사람들은 이 영화에서 인상적인 장면을 꼽으라면, 주인공 앤디가 수 십년 동안의 준비를 통해 탈옥에 성공하는 장면을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다. 오물로 가득 찬 수백 미터의 하수구를 지나 빗 속에서 자유를 만끽하는 장면 말이다.

그런데 이 영화에서 인상적인 장면은 다른 부분에 있다. 앤디는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수감생활을 하지만, 자신의 현실을 절망하거나 주변을 탓하지 않는다.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 스스로 변화시킬 수 있는 것과 변화시킬 수 없는 것에 대해 명확히 인식한다. 그리고 자신이 변화시킬 수 있는 것들을 하나하나 실천한다. 콘크리트 벽과 창살의 쇼생크에 죄수들을 위한 도서관 건립에 대한 꿈을 꾼다. 그리고 오랜 인내와 도전을 통해 불가능할 것만 같았던 그들만의 도서관을 만든다. 그리고 한 철없는 청년을 위해 검정고시 준비를 시킨다. 그는 희망의 씨앗을 심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결국 그 청년은 검정고시에 합격하게 된다.

체념과 권태의 악취만이 가득한 쇼생크에 미래에 대한 희망은 존재하지 않아 보인다. 대부분의 죄수들에게 절망은 그들의 교사였으며, 무기력은 그들의 습관이었다. 어떤 죄수도 희망이라는 단어를 믿지 않았다. 그러나 앤디는 달랐다. 다음은 앤디의 절친한 친구였던 레드(모건 프리먼)과의 대화다.

“마음 속의 그 어떤 것은 아무도 뺏지 못하고 손댈 수 없다고요. 자신만의 것이라고요.”
“무슨 얘기야?”
“희망이요.”
“한가지 얘기해 줄까. 희망은 위험한 거야. 희망은 사람을 미치게 할 수 있어.
  이 안에선 아무 쓸모도 없어. 그 사실을 받아 들이는 게 좋아.”

절친한 친구인 레드 조차 ‘희망’이라는 단어를 믿지 않았다. 레드는 희망은 위험한 것이니 빨리 포기하라고 충고한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세상을 믿지 않았던 레드에게 조차 희망은 전염된다. 출소 후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레드는 자신의 존재감을 찾지 못하고 결국 자살을 결심한다. 그 순간 앤디가 말한 희망이 속삭인다. 그리고 레드는 희망을 찾아 불법으로 국경을 넘는다. 국경을 넘는 버스 안에서 그는 간절히 소망한다. 그의 내적 독백은 특히 인상적이다.
 
“너무 흥분되서 앉아 있거나 생각하기조차 힘들다. 자유로운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기쁨이라고 생각한다. 끝이 어떻게 될지 모르는 긴 여행을 떠나는 자유로운 사람. 국경을 넘을 수 있기를 희망한다. 친구를 만나 악수하게 되기를 희망한다. 태평양이 내 꿈에서처럼 푸르기를 희망한다. 나는 희망한다.”

결국 앤디와 레드는 푸르른 태평양이 드넓게 펼쳐지는 해안가에서 뜨거운 자유를 만나게 한다. 아쉽게도 쇼생크 탈출이라는 영화는 실화가 아니다. 원작은 그 유명한 작가 스티븐 킹의 작품이다. 현실 속에 실제 존재했던 내용은 아니지만, 이 영화는 그 자체만으로도 의미가 깊은 것 같다. 어떠한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희망’을 포기하지 않는 것. 변화시킬 수 없는  상황에 절망하지 말고, 내가 변화 시킬 수 있는 것에 대한 희망을 포기하지 말라는 일관된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사람 한 명을 소개하고 싶다.
그는 1982년 호주에서 태어났다. 그리고 8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다른 아이들과는 다른 생각을 했다. 이제 막 놀이에 빠져 행복을 꿈꿀 나이에, 반대로 그는 자살을 꿈꿨다. 삶을 끝내고 싶어했다. 그는 혼자였다. 나이가 먹어가면서 희망이 아니라 절망을 먼저 배웠다. 그리고 신(神)을 저주했다. 왜냐하면 그는 태어날 때부터 팔과 다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 주인공의 이
름은 ‘닉 부이치치’다.

만약 당신에게 지금 팔과 다리가 없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절망하지 않겠는가? 세상을 분노하지 않겠는가? 세상의 희망을 찾아 나설 용기를 가질 수 있겠는가? 쉽게 대답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닉 부이치치는 삶이라는 녀석 앞에 당당히 마주했다. 그를 다시 일으켜 세울 수 있었던 것은 무슨 이유였을까? 그것은 자신만의 ‘삶의 이유’를 찾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의 옆에는 자신을 전적으로 믿고 헌신하는 부모님과 친구들이 있었다. 닉의 부모는 닉이 다른 아이들과 전혀 다르지 않다고 가르쳤다. 아들을 동정하지도 않았다. 장애인 학교에 보내지도 않았고, 일반학교에 닉을 보냈다. 왜?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이러한 전적인 부모의 신뢰 속에서 닉은 어린 시절 절망을 극복할 수 있었다.

어느덧 청년이 된 닉은 제 2의 전환점을 맞이한다. 자신의 소명을 발견한 것이다. 그는 다른 사람들에게 희망을 선물하는 사람으로 살아가기로 결심한 것이다. 우리들은 삶이라는 여행을 통해 희망보다 절망에 익숙해지는 경우가 많다. 희망을 잃어버린 상태에서 내 앞에 놓여있는 장애물은 넘을 수 없는 벽처럼 느껴진다. 탈출구가 보이지 않는다. 더 나아질 것이 없다는 학습된 무기력이 엄습해 온다. 그러나 희망이라는 단어를 가슴 떨림으로 간직할 수 있다면, 우리들은 반드시 성장하고, 나아질 것이다. 혹시 지금 돌부리에 넘어져 일어날 힘이 없다고 생각하는가? 닉은 조용히 다가와 이렇게 이야기한다.

“가끔 살다 보면 여러분이 넘어졌을 때, 다시 일어날 수 있는 힘이 없다고 느껴질 때도 있어요. 여러분! 희망이 있다고 생각하나요? 왜냐하면 저는 이렇게 넘어져 있고 제게는 팔도 다리도 없거든요. 제가 다시 일어서는 것은 불가능하겠죠? 하지만 그렇지 않아요. 저는 백 번이라도 다시 일어나려고 시도할 거예요. 만약에 백 번 모두 실패하고 제가 일어나려는 것을 포기하게 된다면 저는 다시 일어서지 못할 거예요. 하지만 실패해도 다시 시도한다면 그리고 또 다시 시도한다면 그것은 끝이 아니예요. 어떻게 끝낼 것인가가 중요한 거죠. 다시 일어날 수 있는 용기를 얻을 수 있을 거예요.”

희망! 당신이 희망에 대한 믿음의 끈을 놓치 않는 한, 희망도 당신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희망은 전염성이 강하다. 나의 희망은 당신의 희망이 될 수 있으며, 우리의 희망이 될 수 있다.  좋은 것은 절대 사라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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