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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2월 8일 17시 05분 등록


그를 처음 만났을 때, 난 긴장했다. 운동으로 단련된 건장한 체구, 초콜렛 색깔의 검은 피부, 조폭을 연상케 하는 깍두기 헤어스타일, 정리되지 않고 내뱉는 듯한 답변들. 첫 만남은 그렇게 이루어졌다. 썩 마음에 드는 후보자는 아니었지만, 그와 함께 일할 것을 설득했다. 그는 명문대 출신의 불문학도였다. 함께 일하면서 알게 된 사실은 외모에서 풍기는 조폭스러움과는 다르게 순수함을 잃지 않고 있는 소년 같은 남자였다. 꽃미남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착한 남자였다. 그는 우리의 일을 정말 좋아했다. 교육도 성실이 받았으며, 전반적인 태도가 좋아 보였다. 우리의 일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을 만나는 것’이다. 세일즈는 확률게임이기 때문에, 많은 사람과의 상담을 통해 성과를 극대화 해야 한다. 특히나 초기 보험설계사는 많은 사람과 상담하는 패턴을 습관(habit)화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사람 만나는 것을 습관화하는 것 그 자체가 재무설계사의 생존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그러나 그는 성과를 내지 못했다. 꾸준한 활동량을 보이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나는 문제의 심각성을 파악하고 바로 동행방문(Joint Work)을 실시했다. 상담과정을 면밀히 관찰했다. 이유는 분명했다. ‘상담실력’이 부족했던 것이다. 구체적으로 상담의 ‘민감성’이 부족했다. 다른 말로 순발력이라고 할 수도 있다. 상담가는 고객의 반응을 파악하고, 그에 대한 적절한 대응을 해야 한다.  그러나 그는 고객의 반응은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의 하고 싶은 말들을 쏟아냈다. 고객의 니드는 저축을 통한 종자돈 마련에 있는데, 위험관리의 필요성만을 역설하곤 했다.당연히 상담은 매끄럽게 진행되지 못했다.

해답은 분명해 보였다. 상담의 민감성 또는 순발력을 높이는 것 밖에 없었다. 그러나 문제는 상담의 민감성과 순발력은 학습과 트레이닝을 통해 변화시키는 것이 쉽지 않다는 사실이다. 민감성, 순발력, 예민함과 같은 재능은 기질적인 측면이 강하다. 단시간의 학습과 트레이닝으로 변화시키기 보다는 ‘시간’이 필요했다. 많은 상담을 통해 한걸음 한걸음 변화의 과정을 획득해 나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난 조급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우리 일을 대해 무척 긍정적이었다. 그리고 고객과 만나 상담하는 것을 즐거워했다. 처음부터 높은 성과를 올리지는 못하지만, 훗날 시간이 흐른 후 성공적인 재무설계사가 될 것이라 기대했다. 상위 관리자는 그의 낮은 실적에 못마땅해 했지만, 나는 담당 매니저로 확신이 있었다. 그렇게 그와의 동거(同居) 생활 동안에 ‘성과’에 대해 미진함을 가지고 책망하지 않았다. 그에게 필요한 것은 기다림이라고 믿었다.

3개월이라는 시간이 지나갔다. 그는 변함없이 성실하게 상담을 진행하고 있었다. 사람을 만나는 것을 즐거워했다. 그는 우리 일을 좋아했다. 그러나 의구심을 떨쳐 버릴 수가 없었다. 시간과 경험이 축적되면서, 나아지리라는 내 희망은 빛을 바래고 있었다. 그의 성과와 소득은 향상되지 않고, 제자리를 맴돌았다. 불가사의했다. 빠져 나올 수 없는 미로 속을 걷는 기분이 들었다.

‘왜 그럴까?’

그는 충분히 많은 사람들을 만나 상담을 하고 있었다. 세일즈는 확률게임이다. 많은 사람을 만나면 만날수록 계약의 숫자는 많아지기 마련이다. 또한 경험을 통한 학습은 상담기술의 향상을 가져온다. 그런데 그의 경우에는 이러한 황금률을 벗어나는 것이 아닌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대부분 실패하는 재무설계사의 공통점은 사람을 만나는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는 사람 만나는 것을 좋아했다.

어느 날 이제는 이 수수께끼의 진실을 풀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OO아~, 너는 누구보다도 이 일을 좋아한다. 그리고 성실하지. 나는 그런 네 모습을 좋아한다. 네가 상담력이 뛰어나지 않았기에, 시간이 흐르고 경험이 축적되면 성과는 높아지리라 기대했다. 그런데 1년이 지난 시점에서 뒤돌아 보았을 때, 기대만큼의 변화는 없는 것 같다. 너는 왜 그렇다고 생각하니?”

그는 여러가지 이야기들을 하였다. 그러나 최종적인 답변은 이랬다.

“저도 잘 모르겠어요……”
“ 네 성과는 세일즈의 황금률에서도 벗어나고 있어. 10명을 만나 상담을 하면, 3명을 계약해야 하는 데 말이야. 너는 1명 정도 계약을 하고 있어. 상담에 대한 계약 확률이 낮은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니?”
“아무래도 상담 과정 중에 계약 종결과정이 약한 것 같아요.”
“그렇다면 종결과정은 왜 약하다고 생각하니?”
“음…… 저는 고객에게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아요.”
“뭐? 부담을? 어떤 부담을 준다는 말이지?”
“저는 제가 강하게 권유해서 계약하는 것보다 고객이 최종적인 선택을 했으면 좋겠어요.”

아뿔싸! 이유는 명확했다. 그는 우리 일이 부담을 주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부담을 준다는 인식 때문에 최종적인 결정의 순간에 판단을 고객에게 미뤘던 것이다. 정확히 고객에게 선택권을 줬다기 보다는 자신이 결정의 순간에서 숨어버렸던 것이다.

“나는 우리가 의사와 같다고 생각해. 의사가 환자에게 진찰을 통해 병명을 판단하고 그에 대한 처방을 내리지. 만약 의사가 환자에게 ‘진단을 해보니, 당신은 지금 전립선염을 심각하게 앓고 있습니다. 수술을 받으셔야 완치할 수 있습니다. 물론 수술을 하지 않으실 수도 있습니다. 물론 좀 많이 불편하실 겁니다. 질병은 악화되겠지요. 어떻든 상관없습니다. 선택은 당신이 하는 겁니다’라고 말한다면 어떻게 생각하니?”
“……”
“나는 그 사람은 의사가 아니라고 생각해. 정말 환자를 생각하는 진정한 의사라면, ‘지금 당신은 수술을 받으셔야 됩니다’라고 말할 꺼야. 마찬가지로 우리는 고객의 재정적 상황을 대화를 통해 진찰하고, 재정적 문제를 해결하는 처방을 내리지. 너는 지금 고객이 재정적 문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최종적인 치료를 외면하는 의사라고 할 수 있어. 진정한 재무설계사는 단순히 고객의 재정적 상황만을 진단하는 것이 아니라, 문제의 해결안을 실행할 수 있게 도와주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어.”
“……제가 어떤 부분에서 문제가 있었는지 알겠네요. 그런데 마음같이 쉽지 않아요.”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머슥하게 웃었다. 그 후로도 그는 변함없이 성실하게 활동을 해나갔다. 이 일을 좋아했고, 이 일에 만족해 했다. 아쉬운 것은 놀라울 정도의 변화는 없었다. 언젠가 변화된 그의 모습을 기대해 본다.

어려움을 겪는 재무설계사들의 공통점은 내가 하고 있는 행위가 ‘부담’을 주는 것이라고 인식하는 경우이다. 물론 이해하지 못하는 것도 아니다. 재무설계사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 그들은 너무나 상처받기 쉬운 존재다. 현실 또한 그렇다. 재무설계사라는 직업이 쉬운 일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다만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누군가 해야 한다면 제대로 해야 한다는 확신만큼은 변함이 없다.

결국 이 일이 부담을 주는 일이라는 편견을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해답은 있다. 바로 재무설계사가 가지고 있는 일(Job)에 대한 본질적인 가치(價値)와 의미(意味)를 다시금 되새기는 것이다. 미국에서는 한 사람이 사망하면, 슬픔에 젖어 있는 유족에게 5명의 전문가들이 찾아온다고 한다. 장례를 책임졌던 장의사, 사망할 때까지 치료했던 의사, 사망 후 법적 문제를 책임질 변호사, 세금을 처리할 회계사 그리고 마지막으로 재무설계사이다. 그런데 장의사, 의사, 변호사, 회계사는 미망인에게 지불되지 않은 청구서를 내민다. 오직 재무설계사만이 슬픔에 빠진 미망인을 위로하며 생전에 고인(故人)이 가지고 있던 가족에 대한 생각과 사랑 그리고 보험금을 지급한다고 한다.

당신이 거절에 지치고 힘겨울 때,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을 때,
이 일이 가지고 있는 가치와 의미를 떠올려보기를 권한다.

“생명보험은 제 안에 있습니다. 저는 생명보험이 모든 사람들에게 가치를 가져다 줄 것이라는 것에 대해 흔들림 없는 확신, 아니 신념을 갖고 있습니다. 나는 내가 하고 있는 일이 바르다고 믿고 있습니다. 물론, 생명보험에 비즈니스라는 측면, 이익을 만들어 내는 부분이 있음을 부정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생명보험이 없으면 많은 가족이 고통스런 생활을 보내야만 하겠지요. 많은 사람들이 행복해지지 못하겠지요. 사람들을 돕는다는 생명보험의 마법의 힘, 그것에는 반드시 사명이 있습니다. 생명보험의 마법의 힘, 저는 이것을 믿습니다. - 故 기요 사카구치 PII 전 회장, 1996년 PIIC 연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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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2.11 02:49:35 *.180.129.160
“생명보험은 제 안에 있습니다.    멋진 은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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