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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월 12일 20시 48분 등록
 우리는 언제 행복하다고 느끼는가? 행복이란 순간적으로 문득 다가오는 감정이다. 행복하다는 느낌과 불행하다는 생각은 언제나 우리 생활에 교차하며 반복적으로 나타난다. 한 순간 행복에 겨워 온 세상을 다 갖은 것처럼 생각되다가도 일이 잘 풀리지 않게 되면 세상 모두가 나를 향해 칼끝을 드러내고 무섭게 다가오고 있다는 느낌을 갖기도 한다. 이렇게 인간은 참 나약하고 의지박약한 동물에 틀림없다.  하지만 세상 어떤 사람도 항상 행복할 수 없고, 그렇다고 항상 불행하지도 않다. 행복한 순간을 잘 포착하고 그 순간을 아름답게 기억할 수 있다면 우리의 행복을 좀 더 키워갈 수 있지 않을까.

지난 주말 유치원 다니는 딸아이 친구들, 그 부모들과 행복 축제에 다녀왔다. 강원도 화천에서 시작된 ‘산천어 축제’를 경험하고 왔다. 형제 없이 혼자 크는 딸애를 보는 것이 항상 미안하고 애처롭던 차에 세 가족이 함께 산천어 축제로 놀러가자는 말에 흔쾌히 그러마고 했다.

이른 아침에 시외버스를 타고 오랜만에 겨울 여행을 나서니 창밖을 스치는 겨울 풍경들이 살갑다. 오늘 동반한 일행은 딸아이의 친구로 쌍둥이 남매인 채림, 채영이와 김준석. 그리고 준석이 누나와 부모들이다. 일란성 쌍둥이인 채림, 채영이는 유진이와 가장 친한 친구들로 항상 밥상머리에서 유진에게 얘기를 듣던 터라 전혀 낮 설지 않았다. 작년 가을에 ‘아빠와 함께하는 수업’ 때 함께 고구마 캐기 행사에 참가하면서 얼굴을 한번 익혔던 터다. 김준석도 항상 유진이가 얘기하는 친구다. 작년 크리스마스 전전날 우리 집에 초대해서 즐거운 한 때를 보냈던 절친한 친구들이다.

오늘 가는 강원도 화천은 내가 삼년 동안 군 생활을 보낸 곳이다. 군에서 제대 후 수십년 만에 처음 와보는 길이지만 어쩐지 길이 낯설지 않다. 옛 추억이 생각나는 듯도 하고, 군복 입은 청년들을 마주치면 군 생활했던 젊은 시절로 돌아가는 듯하기도 했다. 세월을 거슬러 젊어지는 느낌이다. 체감온도가 영하 20도 까지 내려간다는 방송을 들었는데, 옷깃을 파고드는 세찬 바람이 군에서 보초를 설 때 느꼈던 매서운 칼바람을 기억나게 한다. 모든 것이 젊은 시절의 아름다운 추억들이다.

축구장 메인스타디움에 선수들이 입장하는 지하보도처럼 만들어진 입구를 통해 산천어 축제 장소에 들어서니 “우와!” 하는 탄성이 절로 나온다. 한 눈에 들어오지 않을 정도로 넓게 펼쳐진 시야에 수 만명은 됨직한 사람들이 누에고치 판의 누에들처럼 꼼지락 대고 있는 모습이 들어온다. 그 자리에 멈춰 서서 이리저리 둘러본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복닦이는 것만도 벌써 신나는 구경거리다.

우선 제일 재미있을 것 같은 썰매를 빌렸다. 애들 3 명이 함께 탈 수 있는 루돌프 사슴코가 끄는 것 같이 생긴 가족 썰매와 어릴 때 우리가 흔히 타던 2날 달린 썰매를 빌렸다. 채영이 아빠와 함께 썰매를 밀고 끌면서 잠실 운동장만큼 넓은 빙판을 달리니 초등학교 시절 썰매를 타던 기억이 새롭다. 썰매를 밀다보니 나도 모르게 노래가 나온다. “흰눈사이로, 썰매를타고, 달리는기분, 상쾌도하다....” 썰매를 타고 있는 아이들이 함께 노래를 따라 부른다. 아이들과 내가 하나다. 옆을 지나치는 수많은 사람들도 모두 한껏 떠들어대며 웃는다. 얼음 판에서 미끄러져 자빠지면서 웃고, 일어서려다 또 미끄러져 자빠지면서 또 웃는다. 썰매를 줄로 주욱 연결해서 아버지가 맨 앞에서고 아이들은 오리새끼들 마냥 뒤를 쫓아가며 썰매를 타는 가족도 보인다. 모두 신나 있다. 신나게 깔깔대며 재미있어 한다.

다음 도전은 눈썰매다. 고무튜브 한 쪽을 플라스틱 널빤지로 막은 눈썰매가 기다리고 있었다. 고무튜브에 엉덩이를 걸치고 앉아서 유진이를 가슴에 품었다. 썰매장 관리인들이 일렬로 도열한 고무튜브를 밀자 눈썰매가 쏜살같이 비탈을 내려간다. 자지러지는 웃음과 아이들의 까무러칠 듯한 비명 소리가 흥겹게 들린다. 나도 목이 터져라 비명을 외쳐댔다. 무서울 것 같은 데 유진이는 무서워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재미있단다. 그런데 실은 내가 더 재밌다.

얼음판 위에서 팽이 치는 아이들, 연 날리는 사람들을 구경하고, 디딜방아 모형에서 방아를 찧고, 모형으로 만들어 놓은 감옥에 있는 칼을 씌우고 유진이 사진을 찍었다. 곤장 맞는 형틀에 뉘어 놓고 볼기를 때리려고 하니 자기는 싫다고 도망간다. 싫다며 앙탈부리듯 빼는 폼이 여간 귀엽지 않다. 얼음으로 만든 성으로 통하는 얼음 동굴 안으로 들어가 사진을 찍었다. 점심시간에 먹은 산천어회는 서울에서 먹는 회와는 많이 달랐다. 차가운 회가 한결 싱싱하게 느껴지고 부드러운 육질이 혀끝에서 녹아들어갔다. 회에 곁들여 복분자를 한잔 하니 얼었던 속이 확 풀리면서 찬 공기에 긴장했던 얼굴이 화끈거린다.

해가 질 무렵 날씨가 무척 쌀쌀해졌다. 간식을 파는 먹거리 장터에서 파전, 떡복기, 오뎅, 두부김치를 곁들여 막걸리를 한잔 했다. 오후 간식을 끝으로 오늘 축제의 막을 내렸다. 꼬맹이들은 더 놀다 가자고 아우성이다. 준석이는 엄마 아빠가 밥을 늦게 먹어서 로봇 마차를 타지 못했다고 씩씩대며 화를 낸다. 어렵사리 애들을 달래서 차에 태웠다.

하루 종일 얼음을 지치고, 눈썰매를 타고, 그 추위 속에서 얼음 위를 뛰고 걸으면서 온 몸이 바싹 긴장을 하고 있었나보다. 돌아오는 버스에 누워서 따뜻한 온기를 느끼니 온몸이 파김치처럼 늘어진다. 얼마를 잤을까? 눈을 떠보니 유진이가 막 깨어난다. 어두운 버스 안에서 간혹 지나치는 창밖의 불빛들을 무심히 바라보고 있는데, 유진이가 나지막히 노래를 한다. “저별은 나의 별, 저별은 너의 별, 별빛에 물들은 밤같이 까만 눈동자...” 옆에 앉은 엄마가 따라한다. 모녀가 조용한 버스 안에서 부르는 노래를 가만히 들으면서 난 생각했다. 행복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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