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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월 18일 21시 34분 등록


젊은 시절의 추억을 불러일으키는 공연을 보고 온 친구는 기분이 좋지 않았다. 시작할 때는 기분이 좋았는데 공연이 막바지로 향할수록 기분이 착잡해지더란 것이었다. 처음에는 귀에 익은 곡이 나오고 기억이 새로워지면서 흥겹더니 나중에는 다른 생각이 들더란다. 그 생각이란 게 이런 거다. ‘내가 나이를 많이 먹었구나, 언제 이렇게 나이를 먹었을까, 벌써 이렇게 나이가 많아졌다니…’ 하는 생각이 들면서 흥겨움이 가라앉더란다.
그리고 뒤 따라 오는 것은 회한과 자책. 나이를 이렇게 많이 먹다니 하는 새삼스러움에 여태까지 뭘 했나 하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달라붙어 며칠을 괴롭게 하더라는 말이다. 이미 알고는 있었지만 애써 외면하고 싶었던 진실을 직접 눈으로 본 순간, 억지로 누르고 막아 놓았던 감정들이 순식간에 솟구쳐 나온 것이다. 소주 한잔을 길게 들이키면서 서글픈 웃음을 웃던 친구는 적지 않게 허탈해 보였다.

많은 사람이 그렇게 생각하고 느낀다. 매에는 장사가 없다지만 그건 별거 아니다. 정말 장사가 없는 것은 세월 앞에서다. 세상을 휘두를 수 있는 힘이나 권력으로도 그리고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돈으로도 세월을 이길 수는 없다. 세월에 장사 없다는 말은 부인할 수 없는 진리다. 그런 진리 앞에서 평범한 한 사람으로서 회한을 느끼지 않는 것은 쉽지 않다. 더구나 이제 나이가 많은 세대로 처음 진입하는 사람들은 더욱 그렇다. 그래서 회한이 생기고, 자연스럽게 내가 이 나이까지 뭘 했나 하는 후회가 온몸을 감싸오는 것이다. 그리고 당연한 것처럼 기분이 울적해 진다.

생각해보면 정말 그렇다. 도대체 무엇을 하며 살았다는 말인가. 이 나이까지 살면서 해 놓은 것이 무어란 말인가. 돈을 많이 벌은 것도, 그럴듯한 명예를 쌓은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대단한 사회적 지위를 만들지도 못했고, 권력을 가지고 있지도 못하다. 내가 도대체 무얼 하고 살았나 하는 생각이 드는 게 당연한 현실이다. 후회스럽고 기분이 울적해진다. 그 긴 시간동안 해놓은 것이 이렇게 없다니…

그렇지만 한번 생각해보자. 정말 우리가 그렇게 해놓은 게 없는 것일까. 정말 우리가 그렇게 허무하게 살아온 것일까. 꼭 그렇다고 하기에는 억울한 부분이 너무 많다.
돈이 풍족할 만큼 많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없지도 않다. 남들만큼 잘 먹지는 못했지만 가족들 굶지 않았고, 남들처럼 좋은 학원은 못 보냈지만 아이들 교육도 시킬 만큼은 벌었다. 별거 아닌 것 같지만 대단한 일이다. 몸뚱이 하나 지니고 세상에 나와 물려받은 것 하나도 없이 살아왔다. 몸뚱이 하나만으로 태풍 부는 바다보다 험하다는 세상을 헤치고 살아왔다. 그게 얼마나 대단한 일인가.
험한 격랑의 세상 속에서 돈을 벌어 가족들을 먹여 살렸다. 누구의 도움도 없이 나 혼자의 힘으로 말이다. 먹고 산다는 그 단순한 명제에 많은 시간을 바쳤지만, 사람의 삶 속에서 그 단순한 명제보다 더 가치가 있는 일은 또 얼마나 된다는 말인가. 그 가치 있는 일을 큰 허물없이 수행해 왔는데 그게 어찌 대단한 일이 아니겠는가. 우울해하지 말아라, 친구야.

흔히들 나이를 먹으면 명예를 말한다. 그렇지만 명예라는 게 삶 속에서 도대체 얼마나 필요할까. 그 명예를 얻고 누리다 가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명예의 효용가치는 무엇일까. 세상에서 훌륭하다고 인정되는 이름을 얻음은 좋은 일이기는 하지만 누구나 꼭 해야 될 일은 아니다. 그렇게 얻은 이름은 사람들은 어디에 사용할까. 묘비명에 쓸까. 아니면 후세의 사람들이 기억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일까. 그것은 무슨 의미가 있을까.
남들이 말하는 명예는 얻지 못했지만 남을 해하고 살지는 않았다. 주변에서 나쁜 평은 듣지 않았고 손가락질 받는 삶을 만들지 않았다. 이익을 챙기려고 남의 것을 빼앗지 않았다. 도박이나 풍류잡기로 허랑방탕하게 삶을 꾸미지도 않았다. 나름대로 의미 있게 살았다. 그래서 자랑스러울 것도 없지만 부끄러울 것도 없는 삶을 만들어왔다. 삶이 부끄럽지 않은 것보다 더 큰 명예는 무엇인가. 세상 사람들이 알아주지는 않지만 이미 그것으로 적지 않은 명예를 가지고 있는 것 아닌가. 그것을 큰 수확이 아니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나는 그 생각을 이해할 수 없다. 그러니 우울해하지 말아라, 친구야.

나이를 먹으면 사람들은 그럴듯한 지위에 올라가기도 한다. 신문을 보면 같은 나이에 벌써 대단한 자리를 차지하고 스포트 라이트를 받는 사람도 있다. 커다란 기업체를 움직이거나 나라를 움직이기도 한다. 그런 기사를 보고 있노라면 자신이 왠지 자신이 초라해지고 작아진다. 오바마가 미국 대통령에 당선되자, 주변 사람들은 농담처럼 말을 주고받았다. “너는 뭐했냐?” 오바마의 나이를 보면서 그들은 스스로가 부끄러웠나 보다. 물론 농담이기는 했지만 그 말이 꼭 농담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미국 대통령이 되는 것은 고사하고 한 기업의 대표자가 되거나 나라를 움직이는 자리를 차지하는 것도 아무나 하는 일은 아니다. 그러나 누군가 그런 사람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고 자신을 초라하게 생각할 이유는 없다. 아직도 기회는 있는 것이고 자신이 그만한 능력이 꼭 없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서로가 걸어온 길이 달랐고, 그 길에서 만난 선택들이 조금씩 달랐을 뿐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은 자신의 길에서 그만큼 열심히 그리고 성실히 일을 해왔다. 스스로 택한 길을 걸어오면서 많은 노력을 했다. 그 결과로 업무에서는 믿을만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리고 업계에서 인정도 받았다. 세상은 나를 모를지 모르지만 주변에서는 모르지 않는다. 세상에서 말하는 사회적 권위는 없지만 업무에서는 이미 권위를 가지고 있다. 대단한 것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자신만의 것을 가지고 있는 친구야, 우울해하지 말아라.

다시 생각해보니 우리를 우울하게 만드는 것들은 하등 그럴만한 이유가 없는 것 들이다. 그 중의 많은 것들은 이미 우리가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모자라고 부족해 보이는 것은, 그래서 우리가 우울해지는 것은 다른 이유일 것이다. 아마도 그것은 욕망의 다른 모습으로 보아야 하는 것은 아닐지. 물론 욕망은 삶을 이끌어가는 중요한 동력이다. 그러나 삶 자체를 욕망에 끌려 다니는 것도 그리 현명해 보이지는 않는다. 지나친 욕망에의 추구는 어디에선가 삶을 부족하고 황폐하게 만들어버린다.
욕망은 많은 부분에서 갈증으로 다가온다. 욕망이란 것이 어디 그렇게 쉽게 채워지던가. 바닷물을 먹는 것처럼 욕망은 항상 우리를 목마르게 했을 뿐 갈증을 단 한번도 시원하게 채워준 적이 없다. 들이키고 들이켜도 갈증은 커지기만 했을 뿐이다. 그것을 알고 있음에도 쉬지 않고 욕망에 목말라 했던 게 우리들 아니었던가. 이제 나이가 적지 않게 되었으니 쓸데없는 갈증에 자신을 매어다는 어리석음은 버리자. 그게 진정한 나이듦의 미덕 중 한 가지가 아닐까. 술 한 잔 쭉 마시고 다시 살아보자. 열심히 살았던 여태까지처럼. 허무하게 살지 않았던 여태까지처럼. 우울해하지 말아라, 친구야.

IP *.163.65.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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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암
2009.01.18 22:27:29 *.123.249.253

이 글을 읽으니, 계속 노래 가사가 맴도네요~ Bravo Your Life! ^^

"해저문 어느 오후 집으로 향한 걸음뒤에
서툴게 살아왔던 후회로 가득한 지난날 그리 좋진않지만 그리 나쁜것만도 아녔어 석양도 없는 저녁 내일 하루도 흐리겠지 힘든일도 있지 드넓은 세상 살다보면 하지만 앞으로나가 내가 가는곳이 길이다 지금껏 달려온 너의 용기를 위해 찬란한 우리의 미래를 위해 내일은 더 낫겠지 그런 작은 희망 하나로 사랑할 수 있다면 힘든 일년도 버틸거야 일어나 앞으로나가 니가 가는곳이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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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1.22 20:51:26 *.38.102.222
욕망의 바다에서 빠져 죽지 않으려면, 수영을 아주 잘해야. ㅋㅋ 설 잘쇠요. 글구 31일에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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