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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양재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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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월 26일 08시 39분 등록

참위소1(세로).jpg


어린 시절 소심과 대면하다


WS가 말했다.

“너 말이야. 왜 너가 소심하다고 생각하니?”

“글세.. 왜 내가 소심할까. 솔직히 그 이유에 대해서는 그다지 깊게 생각해 본 적이 없는걸. 난 그냥 소심한 내 자신이 정말 지긋지긋하게 싫어서, 이런 나를 바꾸기 위한 여러 가지 노력에만 집중했었어. 자신감을 가지기 위한 극기훈련에도 가보고, 변화를 위한 각종 책자들도 보고 말이야.”

나는 힘없이 대답했다. 사실 그랬다. 할 수 있는건 거의 다 해봤다고 보아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로 많은 것들을 시도해 보았다. 하지만 결과는 역시나 그대로였다. 많고 다양한 노력 끝에 어느 정도 소심을 극복했다고 생각했다가도 문제는 결정적일 때 일어났다. 한 방의 결정타를 날려야 할 때, 경기를 마무리지어야 할 때, 내 손으로 해결의 종지부를 찍어야 할 때, 바로 그 때 숨어있던 소심이 나를 지배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나는 꼼짝달싹할 수가 없었다. 매사에 그랬다. 그러면 나는 온 몸에 힘이 다 빠져 나가는 것처럼 무능력하고 답답한 나만를 바라보며 한숨짓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결국 너는 지금까지 네가 왜 그러는지 원인은 제대로 파악도 못한 채 이것저것 치료방법만 찾고 있었다는 거구나. 한마디로 네 스스로 진단하고, 투약까지 했지만 치료에는 실패했다는 이야기구나.”

WS가 최대한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을 한다.

“뭐, 그렇게 본다면 그런거지. 하지만 원인을 안다고 해서 달라지는게 있을까. 결국 현재가 중요한 거 아닌가? 과거는 이미 지나간 사실일 뿐이고... 난 지금의 내 모습이 싫기 때문에 현재를 바꾸고 싶고, 그럼으로써 앞으로의 보다 나은 미래를 만들고 싶을 뿐이야.”

나는 내 대답에 힘이 없음을 느끼고 있었다. 자신감이 없었다.

“음... 현재가 중요하긴 하지. 하지만 정확한 진단을 내리기 위해서는 그 원인을 보다 정확하게 알아야 하지 않을까? 그래야 거기에 맞는 계획을 세우고 행동으로 옮길 수 있지 않을까?”

WS의 말이 거침없이 이어진다. 점점 목소리가 잦아드는 나와는 반대로 WS의 목소리는 나를 설득하기 위해 점점 커져만 간다.

“언제부터 네 안에서 소심이 자라 싹을 틔웠고, 그 소심이 너를 지배하게 되었는지 궁금하지 않니? 음... 그 소심이 왜 너를 지긋지긋하게 붙어다니는지 이유를 알고싶지 않니?”

WS가 내 눈을 진지하게 쳐다보며 말한다. 제대로 쳐다보기 어려울 정도로 진실한 눈매다. 회피하고 싶다. 어서 이 자리를 벗어나고 싶다. 하지만 발이 떨어지지 않는다. 이런...

“어.... 궁금하긴 한데... 그렇다고 그걸 어떻게... 알 수 있다는.. 거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소심의 근원을 알 수 있다는 호기심은 나의 주저함보다 더 먼저 앞으로 뛰쳐 나왔다.

“네가 원한다면, 네가 직접 확인할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어. 난 너를 데리고 너의 과거로 돌아갈거야. 너의 어린시절 소심이 처음 생겨난 그 시간대로 가서 그 사건을 네게 보여줄거야. 너는 직접 눈으로 그 장면을 볼 수 있을거고, 왜 소심이 너에게 생겨났는지도 확인할 수 있을꺼야.”

“....................................”

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궁금하기도 했지만, 사실 두렵기도 했다. 묻어두었던 과거를 끄집어 내야 한다고 생각하니, 그 시절 아픔을 다시 되새겨야 한다고 생각하니 무서웠다. 사실 그 순간을 다시 대면하기 싫었다. 하지만 이대로, 이런 식으로 삶을 사는 것은 더더욱 싫었다. 무언가 내겐 변화가 필요했다. 내 스스로 주체적인 삶을 살 수 있어야만 한다. 나는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일 수 밖에 없었다.

WS는 살짝 미소를 머금고 나를 바라 보았다. 그리고는 내 손을 잡고는 내게 눈을 감으라고 했다. 그의 입에서 이상한 주문소리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그 주문소리는 집중하지 않으면 잘 들리지 않을 정도로 분명 작았지만, 점점 갈수록 그 울림이 커져갔다. 귀청을 울릴 정도로 커지더니 심장까지 쿵쾅쿵쾅 뛰게 만들 정도로 그 울림의 강도가 대단해졌다. 땅도 울리는 듯 하였다. 순간 내 몸이 하늘로 붕 뜨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순식간에 무언지 강한 힘에 이끌려 어딘가로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내 몸도, 내 영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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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딘가에 발을 딛고 서 있었다.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온통 사방은 칠흑같은 어둠 뿐이었다. 손을 바라보아도 보이는 것은 어둠 뿐, 나는 공포심이 스물스물 내 발끝에서부터 무릎으로 기어오르고 있음을 느끼고 있었다.

‘이 곳은 어디야? 왜 난 여기에 와 있는거지? WS는 어디로 간거지? 응?...’

순간 내가 서 있는 곳에서 어느 정도 떨어진 곳에서 남자 아이의 흐느끼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그 흐느낌은 낮고 작지만 애절하게 그리고 지속적으로 들렸다. 저 아이는 왜 우는걸까? 왜 여기서 울고 있는걸까? 무슨 일 때문에 저렇게 애절하게 우는걸까? 그 울음 소리에는 웬지 내 가슴을 아련하게 만드는 무언가가 있었다. 가슴이 시려왔다. 그 아이의 손을 잡아주고 싶었다. 절로 그 아이를 가슴에 안아주고 싶었다. 하지만 난 어둠 속에서 전혀 방향을 잡을 수 없었다. 나는 손을 휘휘 저은채 제자리에서만 발을 동동 구르고 있을 뿐이었다.

순간 ‘팟!’하고 밝은 빛이 들어왔다. 마치 어두운 연극 무대에 강한 조명빛이 들어오듯 나의 반대편쪽이 환하게 밝아졌다. 눈이 부셨다. 울고 있는 아이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그 아이가 앉아서 울고 있는 장소가 보여졌다. 아.... 그곳은 내가 10살때쯤 살던 집, 방의 모습이었다. 회색빛 누추한 방안, 낡은 3단 요와 이불, 불을 때지 못해 차디 찬 방바닥, 먹다 남은 반찬을 덮어 놓은 식탁보와 앉은뱅이 밥상.... 그 아이는 바로 나였다. 30년전의 나였다. 어린 나 혼자였다. 추운 겨울, 쓸쓸한 방 안에서 나는 혼자 울고 있었다. 훌쩍훌쩍 작고 구슬프게 혼자서 울고 있었다.

“어때, 저 때 기억나?”

바로 옆에서 WS의 목소리가 들렸다. 마치 몰래 도둑질하다가 들킨 것마냥 화들짝 놀랐다. WS에게 뭐라고 쏘아붙이려다가 입을 닫고, 심각하게 다시 나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가슴 한켠이 아려왔다. 잊고 살았던 저 때의 기억이 짙은 안개가 걷히듯 조금씩 조금씩 되살아나기 시작했다.

IP *.178.33.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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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찬
2009.01.27 22:32:29 *.138.2.81
오호.. 전혀 다른 진지한 분위기로의 전환이네.. 음악도 그렇고 글도 그렇고 그 안에서의 파격적인 변주가 쉽지는 않아도 독자를 매료시키는 법이지.. 다음편을 보고 느낌을 이야기하겠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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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암
2009.01.28 07:57:40 *.244.220.252
처음부터 꼼꼼히 읽어봐야겠네요.......전체 내용을 이해한 상태에서.......
어릴 적 상처를 보듬기 위한 무의식적 치유인가요? 재밌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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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칸양
2009.01.29 05:48:37 *.64.235.23
기찬아, 거암아..
지난번까지 글은 Chapter1에 해당하는 글이고, 이번 글은 Chapter2의 한부분이란다.
원래는 글이 이어져야 하는데, 필요에 의해 훌쩍 건너뛴거지..
프리북 페어용 샘플글을 마련하려다보니 그렇게 된거란다...
그러다보니 내용이 갑자기 '확~' 급작스럽게 변해버렸지..^^
이해하고 읽어주렴..(읽어주니 고맙고, 피드백해주니 더욱 고마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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