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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양재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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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월 12일 06시 16분 등록

회식 이야기 2

화장실을 한번 더 방문해서 이미 구면(舊面)이 된 변기와 한번 더 인생사에 대한 의견을 나눈 후에야 1차가 끝났다. 속은 많이 편해졌지만 이제는 조금씩 쓰려왔다. 제대로 먹은 것도 없이 술을 들이키고 화장실을 들락날락 거렸더니 그럴만도 하다. 미안하다, 사랑한다, 위장아. 이해해다오. 하지만 너도 좀 강해질 필요는 있지 않겠니?

“자, 자~ 팀장님~ 울 팀장님~ 2차는 조기 모퉁이 2층에 자리한 그 이름이 뭐더라~ 아~ 생각났다!! ‘변경연 노래방’!! 제가 두어번 가봤는데 끝내줍니다. 아시아에서는 비교할 곳이 없을 정도로 22세기에나 볼 수 있음직한 인테리어에, 특수 스페셜 사운드 스테레오 돌비시스템을 갖췄데나 뭐래나. 싸운드가 빠방하다 못해 쥑여줍니다!! 게다가 ‘이거’ 물도 꽤 수준에 올라 있습니다. 흐흐흐..”

강대리가 새끼 손가락을 올리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흘려댄다.

“그래, 강대리? 난 아무래도 좋지만 우리 믿음직한 강대리가 그렇게 원한다면야 팀장으로써 그 원을 풀어주는게 당연한거, 맞지? 그 정도도 못해준다면 팀장 자격이 없다고 해야 되겠지? 그렇지? 하하하~!!”

팀장이 호기로운척 웃어댄다. 두 사람을 보고 있자니 열심히 꼬리 흔들고 있는 강아지와 내년 복날이 오면 그 강아지를 잡아 먹을 생각을 하며 흐믓해 하고 있는 지지리 못된 주인이 연상된다. 정말 잘 어울려 보이는 복날 커플이다....

변경연 노래방은 많은 사람들로 북적거리고 있었다. 주변에 많은 노래방이 있었지만 유독 이곳만 더욱 장사가 잘 되고 있는 듯 했다. 이유가 뭘까? 변경연 노래방이란 특이한 이름 때문에? 노래방 사장이 직접 이 곳 저 곳 뛰어다니며 주문을 받고 있었는데, 인상이 서글서글하고 목소리가 좋은 40대 중반정도의 여사장이다. 명함을 주는데 이름도 역시나 노래방처럼 특이했다. 구.본......순? 흠... 잊기 어려운 이름이네... 그리고 여자 이름이 쫌 구리긴 하다... 본..순? 그렇지 않나? 나만 그런가?

노래방에서는 강대리와 나미인씨의 특별 공연 무대가 마련되었다. 두 사람은 최신곡에다가 최신댄스까지 그렇지 않아도 좁은 노래방 무대가 터질 정도로 몸을 흔들어 댔다.... 게다가 슬쩍슬쩍 스킨쉽까지 해가면서 노래와 춤을 쳐대는 폼을 보아하니, 최근에도 나이트 꽤나 다니는 듯 싶었다. 어디서 들었던 얘기인지는 기억이 잘 나진 않지만 특히 나미인씨 같은 경우는 학창시절 나이트 죽순이였다는 소문이 있었다. 그 말이 사실인지 아닌지 확인하긴 어렵지만 어쨌든 춤추는 실력하나는 끝내준다. 부럽다. 저렇게 맘껏 춤을 출 수 있다면 쌓인 스트레스도 확 날려 버릴 수 있을텐데 말이다.

나는 노래방을 싫어한다. 물론 다른 싫은 것도 많지만 노래방은 특히 싫다. 난 음치까지는 아니지만 박치다. 음정은 그런데로 쫓아가는데 박자를 맞추는 데는 영 소질이 없다. 그 놈의 반박자가 항상 느리다. 나름대로 잘 맞추었다고 생각해도 역시나 반박자가 느리다. 심지어는 송대관의 ‘반박자’란 노래를 불러도 역시나 ‘반박자’가 느리다. 그래서 노래를 부르면서도 창피하다. 내가 노래 부를 때 사람들은 다 웃고 있다. 특히 감정이 고조되면 고조될수록 그들의 웃음소리는 더욱 커져간다. 심지어는 떼굴떼굴 구르는 인간들도 본 적이 있다. 그냥 즐거워서 웃고 있다고 말은 하지만, 내가 바보로 보이나? 난 소심하다. 저들은 착고 작은 개구리 한 마리에게 장난 삼아 큰 돌을 던진 것이다. 그 개구리는 즉사했다. 노래방에서 마이크 잡고 ‘반박자’ 부르다가.... 그 개구리가 환생한게 나다... 그러니 내가 노래방을 좋아할 수 있겠는가....

어쨌든 그래도 어쩔 수 없이 노래방에 오면 내가 할 일은 딱 하나다. 탬버린 전담이다. 하지만 문제는 앞에서 말한 대로 내가 박치란 것이다. 그러다보니 탬버린도 뺏기기 일쑤다. 난 노래방에서 할 일이 없다. 내게 노래방은 시끄러운 호프집보다 더 시끄러운 하나의 장소에 불과할 뿐이다. 고작 유일한 할 일이란 노래가 끝났을 때 열심히 박수치는 정도. 아, 하나 더 있다. 서비스로 나오는 노래방 새우깡 또는 강냉이 먹는 일. 처음부터 한번에 큰 그릇에다가 많이 담아주면 좋으련만 조그만 그릇에 감질나게 담아주니 노래방 한번가면 몇 번씩 리필을 부탁하게 된다. 그러니 노래방 알바들이 날 블랙리스트에 올려 놓고 상당히 싫어하는 눈치다. 세상 살기 참 어렵다...

“부~~우~~~... 부~~우~~~”

갑자기 가슴 부분이 떨린다. 핸드폰 진동이다. 역시나 아내다. 분명 1차 확인 전화다. 통화 안 해도 뻔하다. 어디냐, 언제 끝나냐, 언제 들어 올거냐, 왜 빨리 안 들어오고 뭉개고 있냐, 집에 들어오기 싫으냐, 자기보다 직장 사람들이 더 좋으냐 등등... 휴~~

핸드폰을 손에 든채 노래방을 박차고 나왔다. 그리고 아예 건물 밖으로 나왔다. 아내가 통화하면서 노래방의 시끄러운 음악 소리를 듣는다면 분명 오해할 소지가 있다. 얼마전 뉴스에서 직장인 남자들이 노래방에서 도우미를 불러 진탕 노는 기사를 봤데나 뭐래나.. 가정 놔두고 저기서 뭐하는 짓들이냐며 마치 내가 그러고 놀았던 것처럼 아내가 거품을 물었었다. 지금 통화하며 노래방 소리를 듣는다면 분명 꼬치꼬치 따질 것이다... 휴~~ 내 인생은 나의 것이라는데, 왜 이리 나를 묶고 있는 줄들은 많은건지...

“여보세요..”

“쟈갸~ 어디야, 집에 오는 중이야? 버스 탔어?”

아내가 먼저 선수를 친다.

“아니야.. 이제 2차 와서, 맥주 마시고 있어. 오늘 회식은 좀 길어질 것 같아. 있다가 마무리 될 때 내가 전화하면 안될까?”

“그래? 그럼 언제쯤 끝날 것 같은데? 설마 자정을 넘겨 들어오거나 하진 않을거지, 그럴거지, 응, 응?”

쩝... 그러겠다고 하자니 지키기 어려울 수도 있고, 늦게 간다고 하면 어떻게 튈 지 모르는 아내의 불같은 성격이 두렵고... 나 보고 어떻게 하라고!!! 쩝... 30대 중반 남자는 전화를 받으면서도 외롭다....

더 길어질 것만 같은 아내의 전화를 일단 잘 막고, 다시 담배 하나를 물었다. 거리에는 수 많은 사람들이 북적대고 있었다. 남자들끼리 또는 남녀가 섞여서, 대부분은 직장 동료인듯 보이는데 이미 많은 사람들이 술에 취한 듯 목소리들이 꽤나 크고 거칠다. 다들 집에 갈 생각은 없는 듯 번쩍번쩍 대는 건물 속으로 꾸역꾸역 밀려 들어가고 있었다. 담배 한모금을 힘껏 빨아들였다. 담배 연기가 폐를 가득 채우는 느낌이 들었다. 오늘 따라 담배 맛이 무척 달다. 하지만 끝 맛이 씁쓰름 하기만 하다. 기분 탓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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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칸양
2009.01.12 06:20:25 *.178.33.220

회식이야기는 3편까지 쓰고 마무리할 예정입니다.
연초라 회사 사정이 많이 바쁘긴 하지만,
졸린 눈 비벼가며 열심히 쓰겠습니다.(다들 그러신거죠? ^^)
그러니 소심들하게 그냥 가시지 말고,
피드백 한마디씩... 부탁드립니다..
소심한 김대리는 잘 삐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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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엽
2009.01.12 15:31:58 *.165.140.205

푸하하하!

저 글을 읽고 얼마나 공감했는지.. 알고보면 저도 소심한가봐요. 이거 소심만세가 아니라, 직장인 만세로 바꾸는게 나을듯 해요~^^
오늘의 쌀쌀한 바람과, 이제 곧 트일 나뭇잎을과 함께 이 책, 소.심.만.세.를 열열히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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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찬
2009.01.14 16:12:09 *.105.212.84
인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강대리의 모습에서 살짝 내 모습이 비춰지는 것은 왜일까? 그리고 지나온 수많은 회식때마다 소심한 누군가들을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더욱 당혹스럽고 힘들게 만드는데 나도 일조한건 아닐까 하는 노파심이 고개를 쳐드는구나.. 아마도 이 글을 읽는 많은 이들이 주요 인물들 중 한사람에게 감정이입을 하며 자신을 되돌아 보게 되지 않을까. 재미있지만 마음 한구석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힘있는 글이구나.. 다음편을 기대하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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