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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월 12일 08시 13분 등록


오늘 아침을 다소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한 잔 커피와 갑 속의 두둑한 담배,
해장을 하고도 버스값이 남았다는 것.

오늘 아침을 다소 서럽다고 생각는 것은
잔돈 몇 푼에 조금도 부족이 없어도
내일 아침 일도 걱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가난은 내 직업이지만
비쳐오는 이 햇빛에 떳떳할 수가 있는 것은
이 햇빛에서도 예금통장은 없을 테니까......

나의 과거와 미래
사랑하는 내 아들딸들아,
내 무덤가 무성한 풀섶으로 때론 와서
괴로웠을 그런대로 산 인생 여기 잠들다, 라고,
씽씽 바람 불어라

- 천상병 <나의 가난은>


일본에서 태어난 시인 천상병은 마산중학교 5학년 때 이미 시를 지어 추천을 받았고 대학생때 여러 문예지에 시와 평론을 발표했다. 서울대학교 상과대학을 중퇴한 천상병은 1967년 동베를린공작사건에 연루되어 6개월간 옥고를 치른다. 그 후유증으로 평생을 시달린 천상병은 43세 때까지 독신으로 유랑생활을 했다. 1972년에 결혼을 하게 된 시인은 비로소 안정된 삶을 꾸릴 수 있었다.
천상병은 평생을 부유함이나 물질적 여유로움과는 멀리 떨어진 삶을 살았다. 유랑생활을 끝내고 결혼으로 안정된 생활을 했지만 그렇다고 풍족한 생활은 아니었다. 여전히 가난은 그에게서 떠나지 않았다. 시의 한 구절처럼 시인은 ‘가난은 내 직업’이라고 말한다.

천상병의 가난은 누구나 다 안다. 그 가난의 정도가 어느 정도였는지도 모두가 알고 있다. 시를 조금 아는 사람은 더욱 그렇고, 내가 그래도 먹물이네 하는 사람도 그렇다. 그런 사람일수록 천상병의 이야기가 나오면 시인의 신산스런 삶을 꽤나 구체적으로 이야기한다. 덧붙여 한 구절의 시도 읊조린다. 그 시는 주로 ‘귀천’이거나 ‘저승 가는 데도 여비가 든다면’ 등 대중적으로 많이 알려진 시 들이다. 사람들이 천상병의 삶을 기억하고 시를 가슴에 담고 사는 것은 그 시들이 좋기 때문이다. 그러한 까닭에 시인은 시와 함께 사람들의 가슴에 담겨있다.

천상병의 이야기가 나오면 사람들은 시인의 가난에 대하여 빼놓지 않고 이야기한다. 시인 스스로도 ‘가난이 직업’이라고 하였으니 이야기가 나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사람들은 그러한 이야기를 할 때 가난 때문에 시인을 폄훼하거나 멀리하지 않는다. 욕은 더더욱 하지 않을뿐더러 존경하기까지 한다.

물질의 소유에 대한 욕망에 온몸을 구속당하고 있는 현실의 삶을 생각해보면 이러한 인식은 뜻밖이다. 무엇이 되었든 하나라도 더 가지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가난한 삶의 방식을 칭송하고 존경한다는 것은 너무도 앞뒤가 맞지 않는다. 내가 다른 사람보다 얼마나 더 많이 가졌느냐를 만족의 잣대로 삼고 있는 사람들이 무위의 삶을 존경하는 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것인가.

그러나 이러한 당황스러움은 잠시뿐이다. 역시나 사람들은 예상의 범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사람들이 가난한 삶을 달리 보는 것은 시인과 같은 특별한 경우일 뿐이다. 자신이 서 있는 현실의 궤적 안에서 자신의 가난이나 주변사람의 가난은 사람을 폄훼하는 이유가 된다. 현대와 같은 물질문명의 시대에 사람들은 누구라도 가난하게 살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리고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입지와 크게 차이가 나는 가난한 사람은 가까이 하고 싶지 않은 대상이 된다. 가난한 삶을 원하지 않는 것은 누구에게나 인지상정이다. 어느 누가 곤궁한 생활을 즐겁다고 말하며 살겠는가. 그런데 시인의 삶을 보며 가난을 폄훼하지 않고 그 가난한 시를 가슴에 담고 사는 것은 또 무엇인가.

사람은 원하지 않는 삶의 지경에 처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래서 ‘사는 게 어디 뜻대로 되더냐’고 푸념처럼 늘어놓곤 한다. 천상병 시인의 경우도 거기서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시인은 그러한 생활에서 삶의 아름다운 시선을 일구어냈다. 사람들이 시인을 바라보는 것과 같은 눈으로, 자신을 혹은 주변을 바라볼 수는 없는 것일까. 시인을 바라보고 시를 읽으며, 곤궁함 속에서 찾아낸 한줄기 희망에 가슴을 설레듯 세상을 바라볼 수는 없는 것일까.

규모와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물질적 소유는 삶에서 필수불가결하다. 문제는 사람이 물질의 소유에 구속되어 사람과 삶을 보는 눈을 잃어버리는 것이다. 천상병 시인의 또 다른 시 ‘행복’은 가진 것이 너무 많아서 진정 행복한 사람을 말하고 있다. 무소유의 깨달음을 원하지는 않지만 욕망의 목마름은 왜 채워지지 않는 것일까.

나는 세계에서
제일 행복한 사내이다
아내가 찻집을 경영해서
생활의 걱정이 없고
대학을 다녔으니
배움의 부족도 없고
시인이니
명예욕도 충분하고
이쁜 아내니
여자 생각도 없고
아이가 없으니
뒤를 걱정할 필요도 없고
집도 있으니
얼마나 편안한가
막걸리를 좋아하는데
아내가 다 사주니
무슨 불평이 있겠는가
더구나
하나님을 굳게 믿으니
이 우주에서
가장 강력한 분이
나의 빽이시니
무슨 불행이 온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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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인
2009.01.14 02:09:33 *.250.10.53
해탈이 답일터인데 그곳까지 도달하지 못하니 번뇌가 쌓이는 듯 하이다. 시인은 가시면서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다라고 말하리라"..이렇게 말씀하셨다지요..시인의 아내가 참 많이 슬펐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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