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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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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12월 24일 03시 32분 등록
 

궤도수정(2)


  세상에서 제일 싫은 것 중 하나를 고르라면 나는 교무실 문을 여는 것을 꼭 꼽을 것이다. 아무 죄 없는 문짝을 싫어할 이유가 그 어디에도 없다. 난 단지 그것이 교무실 문짝이기 때문에 싫다. 교무실 문짝이 말할 줄 알았다면 억울함에 울분을 토했겠지만 그래도 어쩔 수 없다. 미안하다 교무실 문짝아. 왜 그런지 너에게 설명이라도 해주마.


  그곳은 다른 세상이다. 차가운 시멘트벽에 창문으로 치장을 했을 뿐이지만 천당과 지옥의 경계선이다. 승진이가 입학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된통 당한 곳도 이곳이다. 재수 없게 가방 속에서 먹다 남은 구름과자가 숨지 못하고 발각된 덕분이었지만, 그 후로 승진이는 구름과자를 더 좋아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일은 승진이의 잔재처리 미숙으로 인한 어수룩함이 나은 결과임으로 깨끗이 승복하겠다.


  이상하게도 그 앞을 지나기도 싫었지만 어쩔 수 없이 스쳐가다 보면 가끔 아이들이 머리를 푹 숙이고 꼴통을 두들겨 맞는 모습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어떤 녀석들은 뭘 그리 잘못했는지 다리와 두 팔 모두를 바닥에 대고 뭔가를 확인한다. 물론 땀을 삐질삐질 흘리면서 말이다. 그나마 이 녀석들은 대가리로 직접 시멘트 바닥과 호흡하는 애들보단 나은 편이다.


  무슨 이유에서 인지는 모르지만 그곳을 들어갔다 나오고 나면 아이들은 더욱더 야성미가 넘쳐난다. 당구 큐데 뒤쪽만 뺀 정신봉으로 머리를 맞아 오락가락해서 그럴 수도 있고, 두 팔과 다리로 한참 동안이나 지구를 한참 떠 받쳐 체력이 몰라보게 좋아져 그 힘을 주체 못해서 일수도 있다. 어쨌든 천당과 지옥의 경계인 교무실 문에서 살아 나온 아이들은 마치 무공 훈장이라도 따낸 것처럼 의기양양했다. 더욱더 사나와졌고 선생님을 선생님으로 부르지 않았다. 이곳은 럭비공을 만들어 내는 공장인 것이다. 그 문을 나오면 어디로 튈지 아무도 모른다. 분명한 것은 선생님들의 기대를 항상 저버렸다는 사실 하나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우리 반 담임선생님인 이승룡선생님은 정말 대범하다. 묵직한 정신봉은 고사하고 베토벤이 들었음직한 얇은 지휘봉도 사용하지 않는다. 물론 아이들을 개로 만드는 일도 없다. 그렇더라도 정말 교무실 문은 만지고 싶지 않다. 그곳에서 담임선생님은 말단 교사일 뿐이다. 더군다나 우리학교는 다른 학교엔 다 있다는데 상담실도 없다. 아마 담임선생님도 벗어나고 싶을 것이다. 이놈의 취업만 아니었다면 그럴 일은 없었을 텐데.


  문을 열었다. 다행히 대가리를 박고 있거나, 개의 모습을 한 아이들은 없었다. 수업 시간이기 때문인지 교무실은 썰렁했다. 담임선생님 주위에 먼저 온 반 아이들이 선생님을 포위하고 있었을 뿐이다. 그냥 듣기에 변변찮은 회사 같아서 별로 관심이 없는 줄 알았는데 꽤 많은 애들이 줄을 섰다. 승진이와 인열이 같은 넘들은 별로 없었다.

  2분 늦었을 뿐인데 선생님 이야기는 벌써 본론으로 들어갔다. 난 고개를 드리 밀었다.


  “이경관. 좀 비켜봐.”

  난 최대한 작은 목소리로 담임선생님의 눈치를 보며 경관이 어깨 끝에 내 얼굴을 옆으로 돌려 끼워 넣었다.

  담임선생님은 경관이 어깨에 걸친 찌그러진 내 얼굴을 봤다.

  “홍스. 너도 관심있냐!”

  “네. 선생님. 저도 취업하고 싶습니다.”

  난 머리털을 극적이며 말했다.

  “취업을 하고 싶다고.”

  담임선생님은 웃으며 말했지만 난 직감적으로 그 웃음 뒤에 무슨 말이 튀어나올지 알 고 있었다. 왜 난 점쟁이 빤스를 입고 있는 것일까? 이럴 땐 차라리 벗어버리고 싶다. 내 예상은 열 번 중 아홉 번은 꼭 들어맞는다. 이번엔 아홉 번 쪽으로 기우는 것 같다.


  “홍스. 너 캐드가 뭔지는 아니.”

  내 이럴 줄 알았다니까. 역시 담임선생님은 나의 가장 큰 약점을 후비고 들어왔다. 나는 나름대로 우수한 성적으로 입학하고도 2년 반 동안의 내 성적은 시험을 보면 볼수록 우리반 아이들의 기쁨조로 손색이 없게 되었다. 나로 인해 기뻐하는 아이들이 하나 둘 느는 것으로 공부와 벽 쌓은 나를 위로했다. 맘먹고 뒤로 달리지 않으면 달성하기 힘든 그 누구도 따라 하기 어려운 경지의 실력. 확실히 오답을 피해가지 않으면, 대적할 상대는 가끔씩 미친척하고 백지를 제출하는 차재규 뿐이다. 난 앞으로도 뒤로도 1등이란 건 한 번도 해보지 못했다. 그래서 재규도 밉다. 어쨌든 담임선생님의 날카로운 선재공격을 막을 만큼의 노련함을 기르지 못한 것이 한이다.


  “잘 모르는데요.”

  한숨소리만 들리지 않았을 뿐 분명 담임선생님은 한숨을 쉬었다.

  “그러면 제도 자격증은?”

  선재공격에 이은 좌우 연타가 들어왔다. 알면서도 물어보는 것이 더 밉다. 밉지만 어쩔 도리가 없다.

  “없는데요.”

  내 목소리는 점점 더 기어들어갔다. 뻣뻣했던 고개마저 힘을 잃어가고 있다. 곧이어 결정타가 나라올 텐데 방어할 수 있는 어떤 무기도 나에겐 없다. 그나마 튼튼한 맷집으로 버티는 수밖에.

  “야! 이놈아.”

  드디어 담임선생님이 한숨을 품었다.

  “나라에서 말야. 이 돌대가리 놈들 어떻게든 자격증이라도 목에 걸어 사회로 진출시켜보자고 3학년 1학기 때는 이론 시험을 면제해 주자는 기발한 생각을 거짓말 같이 실현시켜서 기회를 줬잖아. 그리고 1년을 넘게 하루 3시간 이상을 제도판과 씨름하게 했으면 이놈아! 발가락으로 그려도 줍것다.”

  선생님은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최후의 일격을 날렸다.

  “너 그동안 뭐했냐.”

  “캐드도 모르고, 자격증도 없고, 공부는 가관이고.......”

  “아주 삼박자를 그냥~~ 고루 갖췄어”

  “그러고도 이렇게 취업하겠다고 교무실에 찾아오는 걸 보면 너도 참 ‘대범’하다. 정말 연구대상은 연구대상이야.”

    

  나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모두 사실이니 억울하단 변명도 할 수 없었다. 역시 교무실은 올 때가 못 된다. 그래도 여기까지 왔는데 맷집은 발휘하고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나마 ‘대범’하다는 말을 들으니 위안이 된다. 그 위안에 힘입어 나도 마지막 한마디를 날렸다.


  “선생님 끼워 팔기라도 어떻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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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빛처럼
2008.12.24 08:36:20 *.220.176.217
그래...그 대범..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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