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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8월 24일 14시 12분 등록
2007년 장대비가 쏟아지는 8월의 어느 날.

나는 지금 어디쯤 와 있을까. 그래, 나는 여기쯤 와 있는 것 같아. 지도에도 없는 나만의 섬, 그 섬을 둘러싼 파도 속을 힘차게 헤엄치고 있는 내 모습이 보여. 내가 이제껏 몸을 담가봤던 파도 중에 가장 깊고 푸른 바다색의 파도 속을 말이야. 그 파도에게 이름이 무엇이냐고 물었어. 그랬더니 내게 살며시 건네는 짧은 답변이 들려와.

바로…… 스물일곱.

나는 지금 내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스물일곱이라는 파도 속을 마음껏 누비고 있는 중이야. 그리고 인어 공주 이야기에 나오는 주인공이 새로운 세상을 꿈꾸듯, 그렇게 앞으로 펼쳐질 나의 또 다른 파도, 스물여덟을 위한 준비를 잊지 않은 채로 말이야.

나는 스물일곱이라는 나이에 평생을 함께할 스승을 만났어. 그렇게 그는 내게 함께 어제보다 아름다워지자며, 진심의 바람에 작은 초대장을 날려 보내줬어. 그래서 나는 내 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스물일곱을 이렇게 변화 경영 연구원으로 지내고 있고, 딱 하루만큼씩 아름다워지는 내 모습에 나 스스로 감탄하고 있는 중이야. 누가 보면 자아도취에 빠져 허우적대는 것 아니냐고 핀잔 주겠지만, 뭐 아무렴 어때. 내 삶을 공연하기 위한 오디션의 첫 도전자는 항상 예외 없이 나 자신이니까.

자꾸 아름답다고만 하니까 너무 추상적으로 들리지? 그래서 말인데, 구체적으로 어디가 어떻게 아름다운지, 나라는 사람이 발하는 아름다움의 정체가 무엇인지, 나와 내 그림자만을 동행한 소란스럽지 않은 여행을 한 번 떠나봤어. 밖으로의 여행이 아니라, 안으로의 여행을 말이야.

어느 날인가 어머니께서 문득 그러시는 거야. 초아 선생님께서 지어주신 내 아호가 참 마음에 든다고, <고요한 바다>가 나를 참 잘 표현한 말이라고. 그래, 생각해 보면 그렇게 전세계를 돌아다니며 정신 없이 살았어도 겉으로 보여지는 부분에 비해 상대적으로 내 안에서는 그리 많은 요동침은 없었어. 이러 저러한 정신적 충격이 나를 찾아왔을 때마다 내 안의 쿠션이 그 반동을 막아주었던 게 아니었을까. 별로 호들갑 떨어본 기억이 없는 걸 보면 이 작은 몸뚱어리가 지니고 있는 고요한 에너지도 제법 쓸만한가봐.

별자리와 관련된 이야기를 믿는 것은 아니지만, 염소자리와 관련된 공통된 성격을 보면 나를 아주 잘 표현해 놓은 것 같아서 한 번 가져와 봤어.

“사소한 일이라도 즐겁고 행복하게 생각하며 성공의 만족보다 본질적인 향상을 즐거워하기 때문에 결과를 중시하기보다는 오늘의 활동을 중지하거나 내일의 불행 등이 예견될 때 참을 수 없는 불안감과 초조를 느낄 만큼 추구력이 강합니다. 절벽이라도 뛰어오를 수 있는 추진력은 일단 목적이 정해져야 하며 목적이 정해지기까지는 상당한 망설임도 있습니다. 친구들과 아무렇게나 어울리지 않아 고독하기도 하고, 스스로의 결정과 추구력만 고집하기 쉽기 때문에 주위에서 고립되어 버릴지도 모릅니다. 어떤 곤경도 견디고 참는 인내의 정신이 재산목록 제1호이며, 이 정신력으로 인해 인생의 빛을 보게 될 것입니다. 염소자리는 자기를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염소가 절벽을 기어오르듯 은근과 끈기로서 마침내 정상에 오르는 것이 특징입니다”

반면에, 남들이 보기에 나는 참 까다로운 사람이야. 근데 사실 그 까다로움의 본질은 나만이 갖고 있는 어떤 통찰력에서 비롯되는 게 아닐까 싶어. 왜냐하면, 어떤 사건을 어떤 사물을 어떤 사람을 대할 때, 표면적인 부분보다 그 이면의 무엇을 보고자 하는 나의 경향 때문에 겉으로 보여지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알게 되거든. 많이 알면 알수록 선택은 오히려 더 힘들어지는 법이잖아. 그래서 모든 것을 다 품을 수 있는 마음의 용량이 그렇게 크지는 않아. 게다가 의미 없는 넓은 인간 관계보다는 깊이 있는 만남을 선호하는 나이기에 모든 관계가 진실해야만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 아마도 외향보다는 내향이 더 강해서 그런 것일 수도 있고. 나는 다수보다는 소수에 강하다는 것, 그리고 너무 많은 사람들 틈에 있으면 내 에너지가 고갈 된다는 것.

나는 내 집중력을 분산시키는 것을 별로 안 좋아해. 한 가지 일, 한 명의 사람, 하나의 사물에 차례로 집중하는 것에 강해. 멀티태스킹은 내 전문 분야가 될 수 없나봐. 일을 할 때에도, 공부를 할 때에도, 관계를 맺을 때에도 한 번에 하나씩. 그래서 더 결과보다는 과정 자체를 즐기고 싶어해.

나에게 있어 결과보다 과정이 더 값진 이유는 한 인간의 생애를 놓고 볼 때, 삶이 과정이라면 죽음은 결과이기 때문이야. 물론, 나는 천국을 믿기 때문에 죽음이 두려운 건 아니지만 이 세상에서의 삶만큼은 후회 없는 삶이고 싶거든. 천국에서는 누릴 수 없는 이 세상만이 주는, 이 세상에서만이 누릴 수 있는 기쁨을 즐길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거든. 그래서 과정이 가져오는 그 예측 불허함, 나는 그것을 사랑한다. 왜냐하면, 준비 없이 다가오기 때문에 가식적이거나 피상적일 틈을 안 주거든. 그 예측 불허함에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진심을 볼 수 있거든. 가장 꾸밈없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순간.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들은 모두 단순한 것들이고, 가장 아름다운 것들은 다 자연스러운 것들이라는 것을 우리는 잊고 살아갈 때가 많아. 한평생 살면서 우린 언젠가 죽는다는 것도 알고 인생은 계획한대로 뜻대로 풀리지 않는다는 것도 알잖아. 이렇게 결과는 예측할 수 있어도 과정은 전혀 알 수 없는 게 우리네 인생이니까. 어느 것 하나 알지 못한 채, 인생을 향해 묵묵히 한 발자국씩 내딛는 연습을 다른 말로 하면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삶’이 아닐까 싶어. 내 고집대로 우기면서 살기 보다는, 내 생각보다 더 크신 하나님의 생각에 조용히 귀 기울이면서 사는 삶.

그래서일까, 난 항상 1등보다는 2등이 좋다. 유명한 스티브 잡스의 “Stay hungry. Stay foolish” 라는 말과도 일맥상통하는 2등의 마음가짐. 1등을 향해 끊임없이 노력할 수 밖에 없는 2등은 중요한 순간에 겸손할 줄 알기 때문에 일을 그르치는 경우가 드물거든. 그리고 1등은 그 자리를 유지하기 위해 자기 자신 또는 2등에게만 집중하는 경우가 많지만 2등은 적어도 3,4 등과 그 아래 군번도 생각할 수밖에 없는 ‘구조적’ 성향이 있게 마련이니까. 1등이 된 사람보다 1등이 되기 위해 달리는 사람이 더 매력 있는 이유도 아마 쉬지 않고 뛰는 열정 때문일지도 몰라.

어느 소설 책에서 읽었던 내용 중에 이런 말이 있어.
“Shoot for the moon. If you miss it, you’ll still be among the stars” (달을 향해 쏴라. 명중하지 못한다 해도 그 주변의 수많은 별들을 맞출 테니까)

1등을 향해 끊임없이 달리다 보면 어느새 1등은 아니라 하더라도 그에 못지 않은 자리까지 와 있을 거라는 인생의 진리가 담겨있는 말. 그래서 사람들이 ‘꿈을 크게 가져라’ 라는 말을 하나 봐. 그런 의미에서 나도 꿈을 크게 가져보려고. 비록 아무것도 정해져 있지 않은 인생이지만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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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석
2007.08.24 16:26:41 *.209.98.128
이제껏 몸을 담가봤던 파도 중에 가장 깊고 푸른 바다색, 딱 하루만큼씩 아름다워지는 모습, 마음의 용량.... 주옥같은 표현으로 자신을 파고들고, 쓰다듬는 윤의 모습이 정말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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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한바다
2007.08.28 01:20:48 *.6.5.193
아... 한 선생님, 그렇게 말씀해줘서 넘 감사해요 ^^
가끔씩은 착각이라는 녀석도 정신건강에 참 좋은 것 같아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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뱅곤
2007.08.28 16:09:07 *.179.222.162
항상 윤의 글에서는 '진실', '겸손', '깊이', '통찰'이 느껴진다. 네 얼굴에도 그렇게 씌여 있고...믿음이 느껴져. 그래서 매력이 철철 넘치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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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한바다
2007.08.28 19:43:54 *.6.5.154
뱅곤오라버니... 믿음이 느껴진다는 말은 최고의 칭찬인듯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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