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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레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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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2월 4일 06시 25분 등록

이 환자는 지방질이 두껍네.”

 

집도의가 투덜댔다. 보비의 소리가 길게 B--- 음을 낸다. 번들거리던 개나리색 알갱이들이 타다닥 타들어간다. 노릿노릿한 냄새노원은 녹아내리는 육즙의 냄새를 맡았다. 으음. ---- 나직한 목소리에 제1 어시스턴트가 살짝 뒤돌아본다.

 

학생이라 그랬나?”

 

아뇨, 인턴입니다.”

 

무슨 과 할거야?”

 

아직 생각 중입니다.”

 

다들 똑 같은 소리들이야집도하는 교수가 operation field에서 눈을 떼지 않고 말했다. “외과 해라. 외과. 얼마나 좋냐? 이런 것도 매일 보고?”

 

자기 과를 하라는건지 말라는 건지. 노원은 수술용 마스크를 더욱 깊게 썼다. 수술방 간호사가 속눈썹 사이로 그를 힐끗 쳐다본다. 확 트인 맑은 눈매이마에서 이어지는 콧날. 저런 인물이 우리 병원에 있었던가? 그렇다면 모를 리가 없는데.

 

수술은 간단했다. 대장암 환자로, 왼쪽 대장을 반 정도 잘라냈다. 그리고 수술 시야를 가리던 omentum. 수확이 좋았다. 집도의가 방을 나가자 여자 치프가 니들을 잡고 배를 닫기 시작했다.

 

에이 씨, 왜 서브큐는 다 잘라내고 난리야. 닫을 수가 없잖아!”

 

그것이, 노원이 이 수술방을 선택한 이유다. 얻어갈 것이 많다는 것. 배를 함께 닫는 동안, 치프는 인턴에게 이것저것 캐물었으나 별로 나올 것이 없었다. 뭐 이런 과묵한 자식이 다 있어? 다만 수술 어시스트는 꽤 잘 선다. 하얀 손등손가락. 감각이 있다. 타고났거나 많이 해봤거나. 덕분에 배는 수월하게 닫았다. 치프는 일회용 수술가운을 부욱 뜯어내면서 별 감흥없이 specimen 사진을 찍는 인턴에게 말했다.

 

, 그거, 병리과에 갖다주고 와.”

 

 

 

 

 

즐거운 퇴근이었다.

노원은 턴테이블에 <노르마>의 정결한 여신을 올려놓고 부엌으로 향했다. 오랜만에 맛보는 막창 요리. 게다가 이번엔 양도 충분하다. 손님 한 명을 맞아도 될 정도다. 노원은 이미 데코레이션을 구상하며 음악을 따라 콧노래를 낮게 흥얼댔다. 꺼내든 내장에는 아직 수술방의 온기가 남아 있다. 에프알이에스-에이치!

 

병변부와 그 주변부를 쌍동 잘라내고, 남은 깨끗한 부위를 수돗물에 씻었다. 고기를 소스에 재운 후, 노원은 씻은 손을 탈탈 털곤 와인잔을 들어 한 모금 마셨다. 예열된 오븐에 정성스레 작품을 넣은 후 두어 번 소스를 끼얹었다. 풍미가 일품이다. 노원은 흰 접시에 놓인 저녁 식사를 폴라로이드 카메라로 찍었다. 굽기, 온도, 탄력. 완벽하다. 노원은 입 안에서 천천히 육즙을 굴렸다. 그리곤 옆에 놓인 두툼한 볼륨의 노트에 펜을 들어 기록하였다.

 

비린맛이 많이 향상되었음.

 

 

 

 

 

 

암에 걸린 조직을 먹으면 어떻게 될까요?”

 

?”

 

3년차는 걷어낸 유방암 조직을 테이블에서 자르다 말고 뒤돌아 보았다.

 

그런 걸 왜 물어?”

 

소나 돼지도 암에 걸리잖아요?”

 

재수없으면 걷어내고 먹어 임마.”

 

노란 유방층이 속살을 드러내며 갈라졌다. 꽉 박힌 동글한 암조직. 노원은 갈등했다. 걷어내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리는데게다가 이 조직은 multifocal하게 흩어져서 다 걷어낼 수도 없을테고

 

먹지 말까?

 

근데 너 진짜 우리 병원 인턴 맞아?”

 

.”

 

나 너 한 번도 못봤었는데?”

 

“… …”

 

너 마스크 좀 벗어봐.”

 

노원은 당황의 뜻으로 일부러 크게 몸을 뺏다. “, 카메라를 저번 수술방에 두고 왔네요.”

 

, 너 어디가?”

 

노원은 별다른 보폭의 동요 없이 우아하게 수술방을 나왔다. 이제 이 병원에서 harvesting하긴 글렀군. 좀 싱거운데? 그래도 과를 달리 하면 다른 조직을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노원은 수술방에서 3년차가 터벅대며 다음 환자를 베드로 들여놓는 것을 숨어서 지켜보았다. 이제 가운을 입을테고 수술 prep을 할 것이다. 그러면 당분간 저 수술방에서 못나올테지. 노원은 여유롭게 다른 수술방을 돌아다녔다.

 

정형외과 방이다. 수술명이 뭐지?

 

Rt below knee amputation (오른쪽 무릎 하방 절제술)

 

오늘은 족요리를 먹어볼까?

 

 

 

 

 

 

 

 

 

 

 

이걸 왜 저한테 줍니까?”

 

받아요.”

 

여자가 치킨집 쇼핑백을 내밀었다. 당돌한 여자다. 남자 의사 탈의실을 아무렇지도 않게 들어왔다. 노원은 수술복 웃옷을 벗다 말고 도로 입었다. 쇼핑백에는 그가 원하던 것이 담겨 있었다. 애초에 자기 것이었던, 그 망할 정형외과 교수가 아니었다면노란 수술용 랩지가 고기 포장재처럼 발을 둘러싸고 있다. 노원은 여자를 날카롭게 쳐다보았다. 이 여자, 같이 수술방에 있던 자인가? 급히 머리를 굴린다. 교수가 말했었다. “요즘 이상하게 specimen들이 많이 없어진다면서?” 교수는 뜻밖에도 노원을 쳐다보며 말했다. 어시스트를 서고 있던 노원은 눈을 찡그렸다. “글쎄요저는 잘.” 그 순간 마주친 눈간호사! 그래. 수술방 간호사로군. 간호사는 로테이션을 하니까아마 지난 번까지 외과에서 근무하던 간호사임이 틀림없어. 여자는 노원과 쇼핑백의 조합이 꽤 마음에 들었는지 희미하게 웃고는 등을 돌려 천천히 남자 의사 탈의실을 나갔다.

 

죽여버릴까?

 

노원은 그녀에 대해 좀 더 알아볼 필요성을 느꼈다. 흥미로운 여자다아직 미혼일테고, 범죄에 대해 유연하고, 그리고 나에게 관심이 있는 듯하다. 족발 좋아하려나?

 

며칠 뒤, 노원은 그녀를 초대해 함께 식사를 한 후, 그녀 역시 먹었다. 침대에서 여자는 힘껏 조였다. 전율하는 육체 위로 땀을 투둑 떨구면서, 노원은 여자의 오래된 갈망을 느꼈다. 동시에 부드러운 지방층가지런한 갈빗대노원은 여자의 가슴을 빨았다. 밥사발처럼 봉긋이 솟은 두 개의 무덤진짜겠지? 남자는 여자의 것을 움켜쥐곤 질감을 체크했다. 여자가 달뜬 비명을 질렀다. 목소리가 크다. 죽을 땐 더 큰 소리를 내겠지. 오늘은 일단 안되겠어. 연장이 없고, 냉장고가 다 비질 않았으니노원은 허리를 급히 움직였다. 노원의 허리를 꽉 재던 종아리가 스르르 풀렸다. 여자가 점점 더 부푸는 것을 느끼며 노원은 끝까지 자신을 찔러넣었다. 그녀가 다른 것도 즐길 줄 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 길로 노원은 지원자를 모집하기로 하였다.

IP *.49.66.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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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2.05 12:55:36 *.114.49.161

오, 레몬 무시무시한데요. 오싹~~~~

밤에 혼자 생각하니 더 오싹~~~~

공포영화의 한 장면 같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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