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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승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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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6월 3일 01시 01분 등록

"나는 늘 망설이는 편이다.
단호하다가도 그 엄격함이 지나치다는 생각에 물러서기도 한다.
희망의 절정에 있다가도 그 근거의 허망함에 의기소침해진다.
바람처럼 몰아치다가 이내 호수처럼 고요해지기도 한다.
오래도록 이 넘치고 모자람의 지나침에 대해 걱정했다. 그러나 이제는 알게 되었다.
그것이 자연이 존재하는 방식이며 나는 지극히 정상적인 사람이라는 것을. "
- 구본형, <오늘 눈부신 하루를 위하여> 중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로 시작하는 유행가 가사의 한 구절처럼, 매 마음 속에는 무수히 다른 모습들이 함께 존재한다. 어떤 때는 세상 모두를 품을 듯 넓고 따뜻한 가슴을 가졌다가도 어느새 바늘 하나 꽂을 때 없는 좀생이가 되기도 한다. 사람이 좋아 사람들 사이에서 볼을 부비다가도 문득 혼자임을 느끼고 외로움에 흐느낄 때도 있다. 하루에도 마음은 천당과 지옥을 몇 번씩 왔다 갔다 하고, 감정은 광란의 롤러코스터를 타기도 한다. 도대체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일까?

나는 이러한 인간의 내적 갈등 중 많은 부분이 '환경의 부조화'  때문에 일어난다고 믿는다. 우리의 DNA속 욕망은 태곳적 원시 환경에 적합하도록 설계되었지만 현재 우리는 그와는 너무 다른 환경 속에 살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우리의 두뇌는 여전히 수렵기에 머물러 있다. 아프리카 사바나 지역에서 살던 우리의 조상들 중 일부는 10만년 전부터 아프리카 밖으로 이주하기 시작하여 결국에는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그런데 10만년이라면 겨우 5000세대밖에 되지 않는다. 무슨 말이냐 하면, 진화상 커다란 변화가 일어나기에는 너무 짧은 기간이라는 것이다. 그 동안에 인간은 별로 변한 것이 없기 때문에 마음의 진화를 논할 때 이 기간은 무시한다. 약 1만년 전에 농업이 발명된 이래 오늘날까지 전개되어온 인류의 문명과 문화는 마음의 설계를 이해하는데 아무 관계가 없다.

이런 이유로 과학자들은 인간을 '핸드폰을 든 석기시대인'에 비유하곤 한다. 10만년 전에 확립된 우리의 정신으로 현대를 살아가는 것은 너무나 부조화스러운 일이기 때문이다. 예컨대 오늘날에는 지방과 당분이 더 이상 구하기 어려운 음식물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10만년 전에 형성된 지방과 당분에 대한 우리의 강한 욕구가 변하지 않은 탓에 비만을 비롯한 건강 문제가 대두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현대와는 아주 다른 환경에서 살아가도록 설계되었는데 이러한 '환경의 부조화'가 오늘날 많은 문제와 갈등의 원인이 되고 있다.

어떤 이들은 인간의 마음을 클루지(kluge)에 비유한다. 클루지란 컴퓨터 관련 속어로 ‘호환성 없는 부품으로 만들어 진 장치’ 또는 ‘고물이지만 애착이 가는 컴퓨터’를 의미한다. 왜 우리의 마음은 클루지를 닮았을까? 그것은 우리의 뇌가 변화무상한 환경에 적응하도록 진화했기 때문이다.

진화의 역사를 돌이켜 보면 인간은 대단히 혹독한 환경에 처해 있었다. 수 차례의 빙하기를 거치면서 때로는 타오르는 듯한 열사의 땅에서 또 어떤 때는 얼어 붙은 동토의 동굴 속에서 끈질기게 살아남았다. 사실 환경이라는 조물주가 우리를 그렇게 조금씩 '빚어 왔다'는 표현이 보다 어울릴 것이다. 환경이라는 고객의 수요에 맞추어 다양한 용도의 부품을 제공하는 만물상처럼 우리의 뇌는 진화해 온 것이다. 그 만물상이 오늘날 클루지를 연상하게 하는 고물상이 되어 버렸다. 당시에는 최신의 부품들이 오늘날 환경에 적응하기에는 너무 소박한 고물이 되어버리고 만 것이다.

현대 문명의 발전 속도는 점점 가속화되어 그 속도는 인간의 생각의 속도를 이미 추월하고 있다. 현대의 사회, 문화적 환경은 인간에게 참으로 다양한 능력을 요구한다. 그 변화무쌍한 환경으로부터 빚어진 우리의 마음이 변덕스러운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이다.

현대의 사람들이 가진 욕망들은 10만년 전에 완성되었지만 그 욕망들이 모두 '동물적인 본능'은 아니다. 인간만이 가지는 고유한 욕망들, 예컨대 존경의 욕구, 소속의 욕구, 자기 실현의 욕구 등이 있다. 미국의 인본주의 심리학자인 애브라함 매슬로우(Abraham H. Maslow)는 인간의 욕구가 생리적 욕구부터 안전의 욕구, 소속의 욕구, 존경의 욕구, 자기완성의 욕구 등 5단계로 구성되고 하위 단계에서 상위 단계 욕구로 발전한다고 이야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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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을 크게 두 가지로 구분하자면 개체 중심의 욕망과 집단 중심의 욕망으로 나눌 수 있다. 개체 중심의 욕망은 생리적, 생태적 욕구에 의해 발현되는 이기적 욕망을 말한다. 식욕, 수면욕, 배설욕, 휴식욕, 생식욕, 공격욕, 도피욕, 영역 확보욕, 집단 형성욕(혈연 중심) 등이 그것이다. 진화심리학자들은 뇌 과학의 성과를 빌어 개체 중심의 이기적 욕망이 1억년~5천만년 경 태고 지질시대(고/중/신생대)의 환경에서 진화한 뇌간 및 대뇌변연계에서 주관하는 본능이라 설명한다.

집단 중심의 욕망은 내 집단의 이익을 도모하여 자신의 영향력을 증대함으로 간접적으로 생존과 번식에 유리한 고지를 점하기 위한 호혜적 욕망을 말한다. 인정욕, 표현욕, 호기심(지식욕), 성취욕, 모방욕, 공정욕, 경쟁욕, 과시욕, 호혜적 이타성 등 이 여기에 포함된다. 이러한 호혜적 욕망은 5천만년~10만년 경 수 차례의 빙하기 등 극한의 자연 환경에서 개체 또는 혈연 중심의 집단보다 보다 광범위한 집단을 만드는 것이 적응에 유리하다는 전략에 따라 체득된 전술적 욕망이다. 특히 이 시기에는 뇌의 대뇌신피질이 급속하게 발달하여, 눈치보기, 마음 읽기, 소통하기 등의 인류 특유의 '관계를 맺는 능력'이 발달했다.

반면 타고난 욕망은 아니지만 현대의 환경에서 후천적으로 학습에 의해 형성된 욕망들이 있는데 재물욕이나 성취욕, 소속욕, 경쟁욕, 지배욕, 복종욕, 명예욕 등의 사회적 욕망이다. 이것은 개체 중심의 이기적 욕망(본능)과 집단 호혜 중심의 선천적 욕망(본성)이 현대의 환경에서 후천적으로 학습되어 나타난 욕망들이다.

'내 속에 너무 많은 나'들의 주인공은 이러한 욕망들이다. 이러한 여러가지 욕망들이 얽혀 제 각각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어찌 인생이 복잡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환경의 부조화 문제와 더불어 사람의 이렇게 다양한 욕망이 우리를 갈등하고 번민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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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재훈
2010.06.03 01:18:19 *.124.106.147
일하다가 잠깐 들어왔는데 글을 남기셨네요. 옹대리님^^ 
진화심리학...  나침반때 설핏 들었던것 같은데 관심을 갖으시는 주제군요.
서울에 있으면서 여러 강의를 들으러 가면 강사분들이 인간심리 패턴에 기반해서 강의를 많이
풀어가시더라구요. 교육을 담당하면서 심리학에 기반한 이론들을  과정에 녹아내야 겠구나 하는 생각이 점점 커져갑니다.  진.-심   심리학에 대해 더욱 호기심이 커졌습니다.  샘 그럼 건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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