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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5월 25일 21시 35분 등록

“아빠는 소원이 뭐야?”
딸아이가 처음에 느닷없이 이 질문을 할 때는 도깨비 방망이가 나오는 전래동화가 손에 들려있었다. 그 다음에는 빗자루를 타고 다니는 마술사가 표지에 그려져 있는 책이었다. 책에서 본 도깨비 방망이를 뚝딱 휘두르거나 마술사처럼 주문을 외워서 아빠의 소원을 들어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서였을 것이다. 이제 열 살이 된 딸은 지금도 가끔씩 같은 질문을 던진다. “아빠는 소원이 뭐야?” 하고.

자라나는 아이들이 쏟아내는 질문은 참 대답하기 어려운 게 많다. 수학이 아무리 어렵다고 해도 해답을 찾는 식이 있고 답이 있지만, 아이들의 질문은 해답을 찾아내는 식도 없고 답도 없는 경우가 많다. 임기응변과 기지, 가끔은 재치로 넘겨야 한다. 정확한 답이 없는 아이들의 질문에 지식으로 대응하면 꼭 더 어려운 질문이 이어져 나온다. 애초부터 지식이나 세상의 진리를 알고자 하는 질문이 아니기 때문이다.
“회사는 왜 가?”라던가 “술은 꼭 마셔야 돼?”하는 질문에 뭐라고 답해야 되겠는가. 이 어려운 질문들에 어떻게든 답을 해야 하는데 참 막연한 노릇이다. “회사는 왜 가?”라는 질문에 대답을 한다고 해보자. 평소에 아이에게 정직하게 살라고 가르치듯이 정직히 답변을 한다면 “돈 벌러 가지”라고 해야 할 텐데 그렇게 말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래서 결국 “일하러 가지”라고 하면 바로 이어서 “일은 왜 해?”라고 묻는다. 인수분해를 넘어서니 미적분이 나오는 겪이다. 마땅한 답변을 찾기 어려우니 씩 웃고 넘어가는 게 최고의 방법이다. 저녁에 술이라도 한 잔 하고 있을 때 전화를 해서는 “술은 왜 마셔?” 한다든가 야근을 하고 있는데 “야근은 왜 해? 그냥 오면 안돼?”라는 질문에는 뭐라고 대답을 해야 하는가.

다른 질문도 어렵기는 마찬가지지만 가장 답변이 어려운 질문은 “아빠는 소원이 뭐야?”라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한마디도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이걸 참 뭐라고 해야 한담. 잠시 생각을 해봐도 할 말이 없었다. 우물쭈물하고 있는 사이에 딸아이는 이미 돌아서서 다른 걸 하고 있다. 특별히 대답을 원해서 한 질문이 아니었으니 대답을 요구하지도 않는 것이다. 그런데 며칠이 지나서 아이는 또 같은 질문을 했다. 또 대답할 말이 없었다. 대충 넘어가고 말았지만 마음속에서 질문이 되돌아 나왔다. “내 소원이 뭐지?”

아이의 질문에 대한 답이 문제가 아니라 스스로의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야 했다. 소원이라고 하면 먼저 떠오르는 건 무엇보다 ‘통일’이 아니겠는가. 옛날 그 언제부터인가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었다. 그럼 나의 소원도 통일인가? 시답잖은 문답을 하면서 한참동안 소원을 찾아보았지만 종적이 묘연했다. 도대체 나의 소원은 어디에 있는 무엇인가.
사람들에게 소원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많은 답이 나올 것이다. 빈곤한 사람은 부자가 되는 것을 원할 것이고, 몸이 아픈 사람은 건강을 되찾는 게 가장 큰 소원일 것이다. 세계여행을 한다든가, 취업을 한다든가,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을 하든가, 최고의 전문가가 되는 것들도 소원중의 하나를 차지할 것이다.
나는 그 중에 무엇이 소원일까. 많은 사람들이 그렇듯 로또복권에 1등으로 당첨이 되는 게 소원일까? 매일 매일을 돈에 연연하며 사는 사람으로서 그것만큼 매력적인 것도 없을 터였다. 경제적 시간적 자유를 얻으면 원하는 대로 교외에 작은 집을 짓고 느리게 사는 삶을 살수도 있을 것이다. 여느 샐러리맨처럼 회사를 다니고 싶지 않을 때 미련 없이 그만둘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다음엔? 당첨이 되면 그 다음엔? 회사를 그만두면 그 다음엔? 또 다른 질문이 이어질게 불을 보듯 했다. 그 때가 되면 또 다른 소원이 생겨날게 뻔했다. 로또 당첨이 매력적이기는 하지만 궁극적이지는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삶의 상황이 달라질 뿐이지 내가 바뀌는 것은 아니었다. 상황이 달라진다는 것 외엔 모든 것이 그 이전과 하나도 달라지지 않는 것이다.

그렇다면 궁극적인 것은 무엇일까? 그런 게 있기는 한 걸까? 아이에게 말해줄 수 있는 대답이 있을까?
저녁을 먹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던 중 아이가 다시 물었다. “아빠는 소원이 뭐야?” 내가 선택한 대답은 이것이었다. “아빠는 엄마하고 너하고 행복하게 사는 게 소원이란다.”
그것은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것들 중에서 가장 궁극적인 소원 이었다. 틈틈이 생각해보았던 ‘내 소원은 무엇일까’라는 스스로를 향한 질문에서 그 대답을 찾아내었다는 게 기뻤다. 아이가 물어보았을 때 주저하지 않고 아이에게 그 소원을 말할 수 있다는 것도 기뻤다.
사람들은 커다란 부(富)를 이루려 애쓴다. 갖은 고생을 하면서 부(富)를 추구하는 많은 사람들은 가끔 왜 자신이 그렇게 부자가 되려고 하는지 잊어버린다. 돈은 수단임에 분명한데 어느 순간 목적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목적은 삶의 주인이 되어버린다. 명예도 그렇고 권력도 다르지 않다. 그것뿐이랴. 우리들이 말하는 소원도 흔히 목적과 수단이 뒤집히고는 한다.

고뇌라면 고뇌라고 해도 좋을 생각의 되새김 속에서 찾아낸 결론은 참 만족스럽다. ‘가족과 함께 행복하게 사는 것’ 그 단순하고 소박한 소원은 마음을 흡족하게 만든다. 살아가면서 만나는 많은 것들은 수단에 지나지 않겠지만, 가족과의 행복은 진정한 목적일 것이다. 돈을 많이 번들, 대단한 명예를 얻은들 돌아와 피곤한 몸을 기댈 곳은 결국 집이고 가족이다. 세상 속에서 많은 것들을 잃고 돌아와 편안히 기댈 수 있는 곳도 역시 집이고 가족이다.
흔히들 잊고 사는 것 중의 하나가 가정의 소중함이다. 공기의 고마움을 모르듯 가정의 소중함도 쉽게 잊혀진다. 잊혀지는 정도가 아니라 때때로 가정은 목적이 아닌 수단으로 전락하기도 한다.
나이가 드니 이제야 어느 것이 목적이고 어느 것이 수단인지 조금은 보이는 듯 하다. 나이가 들고 늙어가는 것을 누가 좋아할까마는 그나마 나이가 들어서 얻는 작은 깨우침들은 나이듦의 아쉬움을 덜어주는 하나의 미덕이다.

IP *.204.2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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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정
2008.05.26 11:26:50 *.84.240.105
글 참 조오타..
나이 먹어가는 것이 오라버니처럼 현명해 지는 것과 동의어라면 좋을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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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재우
2008.05.26 13:16:28 *.122.143.151

한 꼬마의 소원이 생각나요.

"제 소원은!! 바로!! 우주정복!! 이에요!!!"

나의 소원은 말이죠...

저 꼬마의 아빠가 되는 거랍니다..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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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정
2008.05.26 13:21:35 *.84.240.105
재우 오라버니 그 꼬마 저 아니에요...
제 소원도 우주 정복이에요..
진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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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5.26 19:35:59 *.41.62.236

좋은데 뭔지 하나 빠졌어요.
타인을 돌아 볼 수 있는 힘을 갖는 것,
그래서 더불어 함께 가는 것, 쪼끔 더 나이들면 보입니당.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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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암
2008.05.26 19:36:26 *.244.220.254
작은 깨우침의 소리가 강남까지 들리네요.
그래도 밥벌이로부터의 자유는 중요하죠? ㅎㅎㅎ
여기서도 재우형님이 '주책'(!)을 부리고 있네~ 물러가라~ 유산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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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산
2008.05.27 10:02:19 *.97.37.242
창님 따님이 열살인가? 지난번에 6살이라고...(우리딸과 동갑) ?
여하튼 창님 생각에 120% 공감하네.
난 주말에 딸애 자기전에 그림 동화책을 읽어줘요.
동화를 읽는 30-40분동안 기발한 질문들이 나오지. 요즘은 한글읽기가 어느정도 돼서 나와 딸애가 동화책을 번갈아 읽거든. 그런데 그 페이지를 누가 읽을지를 결정하는 기준(딸애가 정한 기준)이 그 페이지에 나오는 그림에 남자가 많으면 내가, 여자가 많으면 딸애가 읽는거야. 그러다보니 그림 동화책에 나오는 모든 동물들의 성별을 물어보는거야. 개미가 나와도, 베짱이가 나와도, 돼지 닭 오리... 난 그림동화 동물들 성별 감별에 이골이 났지. ㅎㅎ
관찰력은 무지 좋아서, 이전 페이지 그림과 색깔이나 모양이 달라지면 대번에 알아보고 질문이 들어오지. 저기서는 더드미가 길었는데, 여기서는 왜 짧아? 누가 아남? 그림 그리는 사람 맘이지... ㅎㅎ
여하튼 애들 질문에는 답하기 어려운 게 많아. 그게 창조성인지 모르지.
좋은글 잘 읽고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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