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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7월 24일 11시 18분 등록

죽음, 너 싫다

11기 정승훈

 

 연일 무덥고 습하다. 초복은 평일이었고 일정이 있어 부모님을 찾아뵙지 못했다. 마침 중복은 토요일이라 양가 부모님댁을 다녀왔다. 그래봐야 식사 한 끼 같이 하는 거다. 우리 같은 생각인 자식들이 많은 지 처음 간 식당엔 자리가 없다. 건너편 식당으로 갔다. 각자 먹고 싶은 걸 시키고 기다리며 어머님이 낮에 있었던 이야기를 해주셨다.

 

 시누이가 부모님댁에 와서 점심을 같이 하려했다. 얼마 전 심근경색으로 10여일 입원하시고 퇴원하신 아버님은 자주 답답하다며 밖에 나가신다. 어제도 근처에 계시겠거니 했는데 갈만한 곳을 아무리 찾아봐도 안계셨단다. 그 더운 날씨에 어머님은 온 동네를 아픈 무릎으로 뛰어 다니며 찾으셨단다. 언젠가부터 핸드폰이 있어도 가지고 다니지 않으시는 아버님이시다. 결국 어머님은 어디 가지도 못하고 시누이와 함께 집에서 시켜 드셨다. 아버님이 어디 계신지 모르니 불안하셔서 제대로 드시지도 못했단다.

 

 나중에 오신 아버님은 동네 분이 점심 같이 하자고 해서 그 분 댁에 가셨다고 말씀하셨다. 그나마 당신은 왠지 불안해서 일찍 오신 거라고 하셨다. 집 앞에 계시다 집을 지나쳐 동네 분 댁에 식사하러 가신 거다. 대문 열고 들어와 어머님께 000이네 가서 점심 먹고 올게.” 한 마디만 하면 되는 건데 그 생각조차를 못하신 거다.

 

 저녁 식사를 하며 아버님 식사 때가 됐는데 아버님 안 계시면 어머님 걱정하시니, 나가시면 핸드폰 가지고 가세요. 그래야 연락이 되죠. 아니면 옆에 계신 분 핸드폰으로 전화하셔도 되구요.” 내가 말씀드렸다. 알았다시며 고개를 끄덕이시지만 어차피 핸드폰을 들고 나가시지 않으실 걸 안다. 이제 팔순이 넘어 크고 작은 수술과 아픈 몸 때문에 힘겨워하신다. 예전만큼 명료하지 않은 정신이 젊은 사람이 보기엔 아주 상식적인 판단도 안 되신다.

 

 얼마 전부터 양가 아버님은 당신이 하고 싶은 대로 움직이시고 주변 사람의 말을 새겨듣지 않으신다. 그런 아버님을 챙기시는 어머님은 어머님대로 힘겨워하신다. 당신 몸도 편치 않은데 아버님 챙기려니 아프시고 짜증도 나시고 무엇보다 정신없어 하신다. 기억을 못하신다. 어디에 뭘 두었는지 정도가 아니라 중요해서 챙겨두었다면서 그게 무엇인지 깜빡하시고, 말씀드린 것도 기억하지 못하신다. 그러다보니 서로에게 화를 내신다. 자식인 나에게 무슨 말만하면 화내고 소리 지른다고 아버님은 아버님대로, 어머님은 어머님대로 말씀하신다. 자식인 내가 해드릴 수 있는 게 별로 없다. 그저 한 번씩 찾아뵙고 이야기 들어드리는 게 고작이다. 그 마저도 내 일 바쁘다고 성가셔하고 의무적으로 한다. 며느리라고 시어머님 이야기는 들어드리고 위로의 말도 해드린다. 막상 딸로는 의무감도 없어 넋두리하는 엄마의 말을 잘 들어주지도 않는다. 마음으론 그러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안 되는 못된 딸이다.

 

 양가 부모님을 보며 이제 정말로 어느 분이 먼저일지, 그게 언제일지 마음의 준비를 해야겠다는 걸 느낀다. 남편은 어느 분이든 한 분이 먼저 가시면 우리가 같이 산다고 한다. 나도 안다. 양가 부모님이 우리를 가장 의지하고 편하게 여기신다는 것을. 같이 사는 것이 당연하다는 걸 알면서도 그렇게 되면 내 생활은 어떻게 되지?’ 하며 이기적인 생각이 올라온다.

 

 식사하시며 주변을 연신 보시는 아버님, 원래 주변을 잘 살피시긴 했지만 이젠 그 모습이 예전 같지 않으시다. 그 순간 아버님의 의식엔 우리의 존재가 없다. 가족들은 다 먹고 기다리고 있으니, 어머님은 빨리 드시라 재촉하시고 아버님은 그런다고 또 역정을 내신다. 예전에는 나도 어머님 같은 마음이었다. 이젠 왠지 아버님도, 그런 아버님을 채근하시는 어머님도 측은하다.

 

 죽음이 바로 옆에서 기회를 엿보고만 있는 것 같다. 부모님께 살뜰하지도 않으면서 내가 할 수만 있다면 그 죽음과 어떤 협상을 해서라도 멀리 보내 버리고 싶다.

 

IP *.124.22.1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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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7.24 12:58:29 *.18.218.234

어렵죠. 저번에 콩두선배가 말씀하셨던가요. 아버지는 업고 아들은 손에 잡고 걸어가는 것.

중국어 표현 중에 위에는 노인이 있고 아래로는 아이가 있다며 푸념하는 표현이 있는데 잊었네요.

체력과 경제력이 되는 멤버가 무력한 위아래의 가족 내 멤버들을 보살펴야 하는 것,

그래서 그 힘이 주어지는 것이겠지만..암턴 어려운 주제입니다.

아버님 수술 전후로 고생하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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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7.25 09:32:41 *.71.149.234

나이든 부모님을 보면 같은 생각이 드는 건 어쩔수 없나봅니다. 저와 와이프가 존재하는 이유인데 현실은 다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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