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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7월 31일 09시 22분 등록

뜨거운 여름, 제주도에서 일주일을 보내다.

 

제주에서의 시간이 벌써 일주일이 흘렀다. 집이 아닌 곳에서 가족들과 이렇게 오랜 시간을 보낸 적이 있었던가. 예전 직장에 다닐 때 여름휴가는 휴일을 포함해서 길어봐야 5일 정도였다. 5일의 휴가와 한달의 휴가는 모든 것이 다르게 느껴진다. 직장에 다닐 때 휴가는 물론 휴식과 재충전의 시간이었지만 떠날 때는 늘 모든게 찝찝했다. 7~8월 나의 직장은 8월에 있을 훈련준비로 늘 바쁜 나날이었다. 일이 마무리 안되고 떠나는 휴가이다 보니 그럴 수 밖에 없었다. 그렇다 보니 휴가지에서도 여지없이 전화벨은 울렸다. “그 자료 어디있니?”부터 그 파일 어디서 찾아야 되니?”, “어떤 자료 좀 보내줄 수 있어?”, 휴가라 얘기하면 미안하네. 그렇지만 자료가 급해서 그러니 사무실에 얘기해서 자료 좀 보내주라등등 다양한 전화가 쏟아진다. 그 중에 제일 압권은 내일 중요한 회의가 있는데 니가 좀 들어와야겠다.”. 휴가였지만 항상 마음이 불안했다. 휴가다운 휴가를 보내지 못한 것이었다. 그런데 지금 일주일을 보낸 소감은 남다르다. 일단 전화가 거의 오지 않는다. 휴대폰은 사진찍는 용도가 주가 되었다. 백수가 되다보니 걸려오는 전화가 없는 건 당연한 얘기이겠지만 어찌됐든 마음이 편하다 보니 모든 것이 즐겁다. 짧은 휴가는 항상 이제 3일 남았네. 출근하기 싫다.” 등 날짜를 무의식적으로 세게 된다. 날짜가 다가올 때 마다 항상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이제는 그런 아쉬움이 없다. 다만 오늘 하루 더 재미있게 놀 수 있었는데 그러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운 생각만 든다.

 

사실 제주에서의 생활은 집보다는 모든 것이 불편하다. 70~80년대 낡은 시골 주택을 집주인이 직접 리모델링을 하다보니 처음에는 우와~ 아기자기하게 이쁘게 해놨네. 대단한 열정이다. 옛날 생각나네.” 등의 소감이 들었다면 일주일이 지난 지금은 왜 그 흔한 책상 하나 없지? 불편한 구조로 되어 있네.”로 바뀌어 있다. 그리고 워낙 자연친화적이다 보니 가끔 벌레도 집에서 마주치게 된다. 마흔이 넘었고 전직 군인이었지만 나도 싫은 것이 벌레이다. 그렇지만 내가 아니면 누가 할 사람도 없기 때문에 울며 겨자먹기로 내가 나선다. 그러나 아이들 눈에는 그게 잘 안보이나 보다. “집이 좋아, 여기가 좋아?”라고 물어보면 단 한순간의 망설임 없이 당연히 여기가 좋지.”라고 얘기한다. 여기와서도 책을 읽어야 하는 나는 책상이 없다는 것이 여간 불편할 수 없다. 책상이 아닌 낮은 테이블 바닥에 앉아서 책이나 PC를 보면 1시간을 앉아 있기 힘들다. 허리부터 안 아픈 곳이 없다. 그 옛날 우리 조상들은 어떻게 그런 자리에서 글공부를 했는지 신기할 따름이다. 아마 그 아픔과 고통을 승화시키기 위해 낭독을 했을지 모른다는 생각마저 든다. 새벽에 일어나서 불을 켜고 책을 읽는 것이 가족들에게 미안했다. 다행히 제주에는 24시간 카페가 있어 새벽시간에 하루 들렀는데 실로 오랜만에 시원한 커피숍에서 넓은 2층을 독차지 하고 책상에 앉아서 책을 읽었는데 그렇게 편할 수가 없었다. “여기까지 와서 이렇게 해야해?”라는 집사람의 말에 죄인이 되었지만 나는 오늘도 꿋꿋이 불을 켠다.

 

제주에서 여름은 조금 힘들다. 물놀이하기에는 최적이지만 다른 것을 하기에는 최악이다. 차로 여행지를 이동하다 보면 눈에 띄는 사람들이 자전거나 오토바이를 타고 일주하는 무리들이다. 나도 20대일 때 친구들과 자전거로 제주도 일주를 한 것이 기억에 남는다. 숨막히는 이 더위에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을 보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여름에 제주도에서 할 수 있는 건 상당히 제한된다.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보러 잠시이지만 걸어다니다 보면 온 몸에 땀이 흥건하다. 1분 정도 아름다운 경관이 눈에 들어오지만 그 다음에는 휴~~ 하는 한숨이 나온다. 6살 난 딸에게는 그런 아름다운 자연경관조차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사진찍자는 아빠의 말에 또 사진 찍어?, 너무 더워 아빠. 나 너무 힘들어이런 얘기를 한다. 이런 얘기를 듣고 조금만 힘내자라고 얘기하지만 그 다음부터 자연경관은 사실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그냥 스쳐 지나친다. 그리고는 얼른 차에 올라 다음 목적지로 향한다. 아이들은 항상 물어본다. “언제 수영해?” 일주일 동안 거의 매일을 해수욕장과 수영장에 가고 있건만 아이들은 끊임없이 물놀이를 원한다. 얘들은 도대체 언제 질리려나. 사실 제주도 한달살기를 하면서 바라는게 하나 있다면 덥지만 그 유명한 올레길을 물 한병 들고 걸어보는 것이었는데 뜨거운 여름, 그것은 오르지 못할 나무인 것 같다. 더군다나 아이들과 함께 하는 것은 더욱 더 무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이 조금 더 자란 후에 봄이나 가을에 한번 도전해 봐야겠다.

 

나는 제주도의 남쪽 서귀포시에 거주하고 있다. 제주도를 전부 돌아본 건 아니지만 바다 그 중에 해수욕장을 예를 들면 제주시 쪽 바다, 즉 북쪽의 제주도 바다는 너무 아름답다. 같은 한국 땅이지만 마치 외국에서나 본 것 같은 에메랄드 같은 바다이다. 대표적인 해수욕장이 함덕, 금능, 협재가 그렇다. 가도 가도 깊이는 허리까지 오지 않는다. 그리고 오후에 썰물이 되면 해수욕장의 바다는 금새 드넓은 모래사장이 된다. 반면 남쪽의 바다는 이런 바다가 없는 것 같다. 대부분 모래가 검고 바닷물 색깔도 어둡다. 그런 해변을 보니 북쪽의 해수욕장밖에는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사람들이 북쪽으로 몰리는 이유가 다 있는 것이다. 내가 있는 곳은 남쪽 바다인 화순 금모래 해수욕장이다.삼국유사를 읽으면서 생각하게 된 건 우리나라에서 지명이라는 것은 그냥 붙여지는 건 없다는 것이었다. 정확한 유래는 찾을 수 없었지만 그 옛날 백사장에서 사금이 나와 금모래 해수욕장이라 붙여졌다고 한다. 그럴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든다. 모래 색깔이 화산섬 특유의 검은 모래인데 금모래라고 해야 하는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제주에서의 일주일의 밤이 저물어 가고 있다. 생각했던 것보다는 모든 것이 좋다. 무엇보다 검게 그을린 아이들의 즐거운 표정에서 나는 행복을 느낀다. 이른 아침 아무도 없는 바다를 바라보면서, 들려오는 파도소리를 들으면서, 또 늦은 저녁 한치잡이 배들의 환한 빛들이 쏟아지는 바다를 바라보면서 많은 생각들이 스쳐 지나간다. 그러면서 드는 생각은 아~ 나는 정말 행복한 사람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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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7.31 10:38:37 *.124.22.184

여기까지 와서 이렇게 해야해?” ㅠㅠㅠ 

연구원 생활의 비애가 느껴져요. 그래도 부럽기만 한 1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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