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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7월 6일 00시 57분 등록

『그리스인 조르바』에는 많은 비유와 이야기와 상징들이 담겨있습니다. 마음의 범위를 확장하고, 생각의 저변을 넓히는 멋진 글들이 구비구비 드러납니다. 가슴이 뻥 뚫리고 머리가 맑아집니다. 일단 호탕하게 좀 웃게됩니다.


생각해보면 이 책은 스토리가 놀랍도록 뛰어나 예상치 못한 반전을 거듭하거나 스펙타클하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주요 사건은 피레우스 항구에서 우연히 만난 조르바와 가 갈탄광 산업에 뛰어들었다가 망하고 헤어지는 것이 끝이지요. 중간에 몇 페이지에 걸쳐 길게 다뤄졌던 조르바가 필요한 자원을 구하러 떠났다가 돈을 탕진하고 돌아오는 것 같은 에피소드들도 사건의 중대함을 따져보면 아주 작은 부분에 지나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 단순한, 어찌 보면 느슨한 진행은 조르바라는 캐릭터를 부각하여 잘 드러내기 위한 장치로 쓰였던 것 같습니다.


우리는 이 책을 읽을 때 조르바가 어떤 말을 했는지, 어떤 행동을 했는지에 초점을 맞추어 읽게 됩니다. 저자에 따르면 모태인 대지에서 탯줄이 떨어지지 않은 사나이, 마치 뱀처럼 온 몸을 땅에 붙이고 다니며 대지 온 사방에서 생명을 다시 얻을 수 있는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이 표현을 잘 생각해보면 제가 평소에 추천받아 온, 귀감으로 삼을 만한 위인들과는 조금 다른 특징을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위대한 업적 때문에 기억에 남는 것이냐 하면 그것도 아니고, 뭔가 종교적으로 높은 경지에 있는 것이냐 하면 그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이 자유의 영향인지, 그는 마치 인간 중의 인간처럼 보입니다. 아름다운 육체를 가진 르네상스 시대 조각들처럼, 인간이 내적 생동감을 가지고 있는 그 순간을 포착하여 만들어진 사람 같습니다. 동물적이고 육감적이면서도 카잔차키스가 말했듯 내면의 자기 영혼 보다 더 높은 힘을 가지고 있는 듯합니다.


 카잔차키스가 썼던 몇 권의 다른 책들을 읽어보았을 때에도 저는 비슷한 느낌을 느꼈습니다. 예를 들어 천주교 신자로서 프란체스코 성인이 어떤 일을 했는지 들었을 때는 아름다운 미담과 성자로서의 행적이 전부였습니다. 그러나 카잔차키스가 쓴 『성자 프란체스코』 에서는 인간의 영혼이 가진 다양한 내면과 감정, 결심, 환경들이 쏟아져 나옵니다. 이것은 저를 매우 놀라게 했고, 어떤 이야기와 관계 맺을 때 그 속에 숨어 있는 인물들의 마음을 좀 더 다각적으로 보라는 메시지를 남겼죠.


 저를 포함한 현대인들에게 조르바가 던지는 메시지는 가닿기 어려운 것입니다. 우리는 너무 쉽게 충동에 사로잡히고, 누군가를 소유하려 하고, 대부분의 시간동안 스스로의 몸과 생각의 주인으로 살지 못합니다. (주인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죠) 네이버에서 10년 넘게 운영해온 지식인의 서재에서 『그리스인 조르바』는 2위를 차지 합니다. 저는 이것이 조르바식 삶을 살지 못하는 수많은 (지식인)’들의 동경이 담겨 있기 때문이라고 해석했습니다. 자신에게 없는 것이 절절하게 담겨있는 책이기에, 많은 지식인들이 곁에 두고 찾는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진정한 자유는 환경이 아니라 나의 내면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무언가에 몰두하여 나 자신을 완전히 대상에 빠지게 하고, 집중하여, 오로지 그 순간에는 모든 것을 다 바칠 수 있는 것을 말합니다. 일을 할 때는 일에, 사랑을 할 때는 사랑에, 누굴 만날 때면 그 사람에, 밥 먹을 때는 밥에 집중합니다. 카잔차키스의 묘비명은 어렵게 생각하면 어렵지만, 간단하게 생각하면 그렇게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 삶의 골수까지 모두 빼먹어버리겠다는 자세, 그것이 자유의 속성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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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7.08 07:25:55 *.70.220.99

근원적 자유에 대한 동경. 그렇네요. 저 역시 조르바에 대해 품고 있는 마음인 것 같습니다. 완전히 조르바처럼 살지 못해도 가끔 조르바라면 이럴 때는 어떻게 했을까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이 삶을 다채롭게 만들 것 같습니다. 누가 춤 추자고 하면, 그냥 신나게 추는 거지요. 내 안에도 조르바 있다 머 그런 거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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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7.08 10:57:02 *.247.149.239

오호 불씨님! 춤을 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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