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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윤정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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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7월 28일 00시 44분 등록

10년 가까이 쓰고 있는 일기장이 있다. 말이 일기장이지, 오랫동안 쓰지 않을 때는 1년 만에 처음으로 새 글을 적기도 했다. ‘꾸준하다라는 의미를 어떻게 따지느냐에 따라 이 일기장은 10년이나 꾸준히 써온 대단한 일기장이 되기도 하고, 10년이나 썼는데 아직 다 쓰지 못한 나의 게으름을 보여주는 거울이 되기도 한다. 어쨌든 일기도 인터넷이라는 가상의 공간에 쓰는 것이 더욱 일상이 된 요즘 뭔가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는 종이에 글로 적은 나의 기록물로는 이 일기장이 최고(最古)이자 유일하다. 그리고 요즘도 오래 남겨두고 싶은 글이나 상념들은 굳이 이 일기장을 꺼내 적어둔다. 다른 곳에 적어둔 글들은 지금쯤 어디 있는지 모르거나 사라진 것들이 많지만, 이 일기장에 적은 글들은 항상 여기 있다. 그리고 앞으로도 10년이 지나도 남아 있을 거라는 확신이 있다.

 

개인의 인생을 한 나라의 역사에 비유할 수 있다면 나는 감히 나의 일기장을 『삼국유사』에 빗대고 싶다. 크나 큰 제국도 결국은 수 많은 개인이 모여서 탄생한 또 하나의 개체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삼국유사』를 통해 본 우리의 역사는 죽은 역사가 아니라, 아직도 우리 주변에서 쉽게 그 흔적을 찾을 수 있는 살아 숨쉬는 그것이었다. 내가 사는 이 곳 창원에도 차로 30분 거리 내에 노힐부득과 달달박박의 이야기가 살아 숨쉬는 팔월산과 사자바위가 아직도 그 자리에 있다. 지난 2주 동안 노승 일연과 고운기 교수의 안내로 신나게 삼국시대 여행을 하고 있다. 편하게 무릎 베고 누워 할아버지가 들려주는 옛날 이야기를 듣는 기분이다.

 

여든에 가까운 나이로 삼국유사를 쓰기 시작한 노승 일연을 지금 만나게 된다면 나는 그에게 무슨 이야기를 들려 줄 수 있을까? 그의 무릎을 베고 누워 삼국의 옛날 이야기를 재미있게 들은 보답을 어떻게 하면 좋을까? 아무래도 나의 옛날 이야기를 들려주면 어떨까 싶어 나의 일기장을 뒤적여 보았다.

 

 

# 일연 스님께 들려주는 나의 옛날 이야기 #

 

[2007 9 30 ()]

 

군 병원에 입원한 것이 9 5일이니까, 입원한지도 곧 있으면 한 달이 되어 간다. 이천규, 임현준, 정재수, 윤영상. 좋은 친구들 많이 만나고 겁도 없이 앞으로도 계속 연락하자는 약속을 덜컥 해버리고 말았다. 이 곳에서 지내면서 넘치는 휴식시간을 견디다 못해 책을 들었다. 지금까지 읽었던 책을 한번 곰곰이 떠올려 본다.

 

고우영 『십팔사략』,

제레미 러프킨의 『엔트로피』,

스펜서 존슨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

베르나르 베르베르 『개미』

에란 카츠 『천재가 되노 제롬』

 

여남은 권의 책을 기계적으로 읽으면서 난 무엇을 느꼈을까? 또 무엇을 얻었을까? 또 무엇을 잃었을까?

 

에란 카츠의 『천재가 된 제롬』을 읽으면서 불가능해보이는 상상을 해봤다. 주인공 제롬은 3년 안에 통장잔고 5,000만 달러와 경영학 박사 학위 취득이라는 목표를 세운다. 내가 생각한 나의 목표는 3가지다.

 

첫 번째는 영어, 중국어, 일본어에 능통해지기

두 번째는 100권의 책 정독하기

세 번째는 책 출판하기 (여행 에세이)

 

2년 이라는 제한 시간을 두고 나니, 벌써부터 걱정 반 기대 반에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한다. 2년 동안 내가 힘쓸 대상을 정해놓았는데, 이제 남은 건 실천이다. 내가 행동하는 모든 것들의 이유가, 이 세 가지 때문이었으면 좋겠다.

 

난 나를 믿는다. 지금 이순간 최선을 다하자. 파이팅 !

 

# #

 

 

내가 이야기를 마치자 일연 스님은 별 다른 말씀 없이 빙긋이 미소만 지으신다. 미소의 의미를 묻는 나의 갈급한 눈빛에 여전히 빙긋이 미소만 지으신다. 애초에 2년의 기한을 두고 작정한 일을 아직도 다 못했다는 책망의 미소인지, 그 가운데 첫 번째 목표 하나라도 얼추 잘 해왔다는 격려의 미소인지 알 방법이 없어 답답하다. 그 뿐만 아니다. 10년이 지나도 책을 읽고 또 책을 쓰고 싶은 마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대견해 하시는 건지, 아니면 10년이 지나도 못한 일을 앞으로 10년의 세월이 더 지나도 못할 거라는 말씀이신지 알 방법이 없다. 결국 답은 내 안에서 찾아야 하는 모양이다.

 

오랫동안 일연의 『삼국유사』를 연구해온 고운기 교수는 일찍이 『삼국유사에 대해 정녕 우리 역사를 지식인의 역사에서 민중의 역사로, 사대의 역사에서 자주의 역사로 바꿔 놓은 책이라고 평한 적이 있다. 이 것은 개인의 역사에 대해서도 중요한 평가이자 의미 있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어쩌면 내가 10년 전에 했던 결심이 돌고 돌아 지금의 나를 이곳에 세웠는지도 모르겠다. 우리 모두는 누군가의 삶을 대신 살아주는 존재가 아니다. 자신의 삶을 직접 살아야 한다. 나의 결심을 실천으로 옮기는 것도 자신이 되어야 한다. 매일의 기록과 노력을 모아 개인의 역사로 삼고자 한다. 나의 10년 전 다짐을 실천하게 되는 날 다시 한번 삼국유사를 꺼내어 일연 스님의 무릎을 베고 누워 대화를 꺼내 보고자 한다.

IP *.62.222.1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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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7.29 13:03:06 *.124.22.184

내가 일연스님이라면 첫 번째 것도 하기 힘든 일인데 대단하다는 의미에서 미소지었을 거에요. 게다가 10년 전 세 번째 책출판하기를 잊지 않고 변경연에 도전한 것도 더할나위 없고요.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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