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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1월 12일 12시 35분 등록

학교는 사건을 축소시켜요

11기 정승훈

 

201112월 대구의 한 중학교 2학년 학생이 유서를 남기고 아파트에서 투신자살했어요. 3월부터 계속된 동급생의 협박, 구타, 금품갈취 등의 괴롭힘을 당하면서도 보복이 두려워 주변에 알리지도 못한 거죠. 2004년 학교폭력예방법이 생기기 자살이 없었던 것은 아니예요. 하지만 유서의 내용을 본 사람이면 가족을 사랑하고 학교에서 선생님, 친구들과도 잘 지낸 학생이 몇 명의 학생 때문에 죽음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을까 마음 아파했을 거예요. 누구에게도 알리지 못한 것이 안타깝고, 주위에서 알고 있는 친구들이라도 나서주지 하는 마음이 들더군요.

 

그 일이 있고 한국사회는 발칵 뒤집어졌어요. 신문은 앞다투어 경찰 학교폭력과의 전쟁, 학교폭력은 범죄일진회 뿌리 뽑는다. 학교 경찰관을 만든다.”는 등의 기사가 나왔어요. 20124월은 총선이 있는 해였기에 더욱 학교폭력을 근절하겠다며 법령개정부터 개도 도입까지 대대적인 제도 마련을 했죠.

2012년 교육부와 한국교육개발원이 공동으로 학교폭력 실태조사를 했고, 응답자 139만 명 가운데 12.3%17만 명이 최근 1년 이내에 폭력 피해를 경험했다고 했어요. 그러고 보니 아들이 초등학교 때 설문지를 학교에서 받아왔던 기억이 나요. 초등학생이었던 그 당시는 별스럽지 않게 넘겼어요. 돈을 뺏기거나 맞거나 한 일도 없었으니까요. 내 일이 아니니 무관심했고 내 아이는 이런 일과 상관없다고 생각했어요.

 

학교폭력에 관한 조사 결과, 학교폭력을 당한 후 취한 행동으로 가장 많이 응답한 것은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음32.5%였어요. 어른이 보기엔 왜 알리지 않을까 답답하지만 아이들의 입장에선 그럴 수밖에 없어요. 어른은 성인으로 세상을 사는 법이나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알고 있어요. 하지만 아이들은 어른처럼 생각하지 못해요. 아이였을 때를 생각해보세요. ‘지나고 나니 괜찮은데 그 땐 왜 그렇게 무서워했는지 모르겠어하잖아요.

또 아이들은 어른이 개입해서 일이 해결되기보다 더 힘들게 된다고 여길 수도 있어요. 왜냐하면 부모나 선생님이 계시지 않는 시간과 공간에서 그 아이들과 마주하는 사람은 본인이기 때문이죠.

 

5학년 때 같은 반 친구 때문에 힘들어 하는 아들에게 엄마가 담임선생님 찾아가서 말씀드린다고 했더니 싫다고 하더군요. 왜 그러냐고 물으니, “엄마가 와서 선생님 만나서 이야기하면 선생님도 알게 되고 그럼 그 친구가 내가 이야기한 거 알게 되잖아. 그럼 그 얘가 더 괴롭힐 거야.” 그럼 어떡할 거냐고 물으니 내가 어떻게든 그 친구하고 친해질 거야.”라고 했어요. 그 친구와 같은 중학교에 들어왔고 이후에 잘 어울리고 있어요. 아들 말이 지금 보면 아무것도 아닌데 그땐 왜 그랬나 몰라.”하며 웃더군요.

 

학교폭력을 당하고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는 것에 대한 방안으로, 당국은 법령으로 학교폭력신고 전화도 경찰청 ‘117’로 통합하고 17개로 확대, 설치했어요. 누구든 전화로 신고할 수 있게 한 거죠. 피해를 당하면서도 보복이 무섭고 학교에 알려도 제대로 처리하지 않고 덮으려고 하거나 심지어 피해자를 전학시키기도 했으니까요. 학교는 학교폭력 사건이 많이 발생하면 학교 평가에 영향을 미치니 은폐, 축소하는 거죠. 그 당시 학부모들 사이에 어느 학교 학생이 몇 명이 자살했대. 그런데 학교에서 알리지 않고 쉬쉬하고 있어.” 이런 말들이 돌기도 했어요.

 

신고제가 생기기 이전엔 학생들끼리 싸움이 생기면 생활지도선생님이 가해자 학생의 부모님께 전화를 해서 피해자 학생의 부모님 연락처를 알려줬어요. 그러면 아이를 데리고 피해학생의 부모님을 만나죠. 부모와 아이 모두 사과를 하고 치료가 필요하면 치료비로 배상을 했어요. 물론 치료비 이상을 요구하기도 하죠. 여하튼 쌍방합의가 되고 그러면 학교에선 별다른 조치 없이 끝내곤 했어요. 학교는 웬만한 일로는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를 열지 않으려고 했었죠. 그러다 보니 잘 해결이 안 되는 경우도 있고 불만이 있기도 했어요. “학교는 사건을 축소시켜요라고 여기는 부모들이 있었던 거죠. 학교가 알고도 제대로 처리하지 않으니까요.

 

하지만 ‘117’ 신고제도가 생겨나고, 개인정보보호라는 것이 강해지면서 학교는 가해자, 피해자를 나누고 사건에 대한 처벌 조치를 하는 역할로 변했어요. 더 이상 중간에서 중재를 할 수도 없으며, 상대 부모가 원치 않으면 연락처를 알려줄 수도 없어요. 피해자 부모는 사과하지 않는다고 괘씸하게 여기고, 가해자 부모는 연락처를 알 길이 없으니 사과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어요. 신고제 이후 오히려 관계회복을 위한 노력을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어졌어요.

 

‘117’은 경찰청에 신고가 접수되는 거예요. 학교에서 하는 학교폭력자치대책위원회와는 별개로 형법소년법에 적용되는 거예요. 부산가정법원 소년범의 아버지로 불리는 최종호 판사님도 엽기적인 사건은 전체의 5%라고 해요. 5%의 엽기적인 사건에 대한 제도도 분명 필요하지만 나머지 95%에 해당하는 평범한 옆집 아이들에게 맞는 제도도 있으리라고 봐요.

 

아들 재판을 기다리는 복도에 초등학생 밖에 안돼 보이는 아이가 있었어요. 알고 보니 자전거를 훔쳤는데 117에 신고를 해서 법원까지 왔다더군요. 사건의 속사정까지는 알 수 없지만 그 방법밖에 없었을까 싶었어요.

 

다음엔 117 신고를 하고 난 다음 수순이 어떻게 되는지, 그래서 신고하기 전에 알아두어야 할 것들에 대해 이야기 해볼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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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1.15 11:51:24 *.75.253.245

좋은 생각, 샘터 같은 곳에서 매월 정기적으로 간행 되는 글 같아요 ㅎ 잘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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