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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ggumdre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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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5월 1일 09시 31분 등록

마라톤

(나를 찾기 위한 방법 #2)

 

세상에는 두 부류의 사람이 있다. 마라톤을 하는 사람과 하지 않는 사람이다. 누군가에게는 상당히 불편한 말이 될 수 있지만 지극히 나의 개인적인 기준임을 밝힌다. 마라톤을 하는 사람은 인생을 즐길 줄 아는 사람이고 나쁜 사람이 아니다. 마라톤을 하는 사람은 나쁜 사람이 될 수 없다.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한 가지만 얘기하면 고통을 참아낼 수 있는 인내.

 

내가 원래 제일 싫어하는 것이 달리기였다. 아마 이유는 사관학교 다닐 때 사람이 평생 뛸 거리를 그때 다 뛰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만큼 나는 많이 달렸다. 우선 아침 일찍 일어나 최소 3km이상을 빠른 속도로 뛴다. 일반사람들이 생각하는 조깅의 수준이 아니다. 그렇게 뛰고 나면 아침 첫 수업이 온전히 될 리가 없었다. 그리고 점심시간, 저녁시간에도 달리기는 계속된다. 그건 아마 내가 사관학교 생활을 잘못했기(불량했기) 때문에 생긴 일이기도 하다. 사관생도는 평소 구두를 신고 다닌다. 지금이야 구두도 운동화 못지 않은 성능을 가지고 있지만 내가 그 당시 신은 구두는 그야말로 아저씨 구두, 뒷굽도 단단하고 높은 신사화였다. 운동화가 아니라 일반 구두를 신고 달리기 하는 것은 지금 생각해도 미친 짓이다. 내 무릎이 지금까지 멀쩡한 것이 이상할 지경이다. 어찌되었든 이런 연유에서 사관학교 졸업 후 난 달리기는 거들떠 보지도 않았다.

 

마라톤 하는 사람을 나 역시 처음에는 미친 사람으로 취급했다. 세상에 할 운동이 없어서 돈을 내면서까지 달리나 하는 것이 마라톤에 대한 내 생각이었다. 그러던 내가 이제는 마라톤을 내 인생에서 빼놓을 수 없는 한 가지가 되었다. 이유는 딱히 알 수 없다. 시작도 알 수 없다. 그래도 굳이 얘기하자면 아마 사관학교를 떠난 후 다시 사관학교에서 일할 때이다. 강제성과 통제가 사라진 사관학교는 예전의 모습이 아닌 세상 어디에도 없는 아름다운 곳으로 내게 다가왔다. 특히 벚꽃이 피는 4월에는 아름다움의 절정이다.(만약 진해 군항제를 보러 가시는 분이 있다면 사관학교는 꼭 한번 가보시길 권합니다.)

4월 초순이 지나면 벚꽃이 떨어지기 시작하는데 그때는 그야말로 눈 세상이 된다. 이 눈꽃 날리는 풍경 속에서 나는 뛰지 않을 수 없었다. 얼굴을 스치는 눈꽃 속을 달리는 기분은 뭐랄까? 여신이 내가 가는 길에 축복을 뿌려주는 듯한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신비스럽고 매혹적인 그런 기분이었다.

그때 이후로 달리기를 시작한 것 같다. 그렇게 달리기를 싫어하게 만든 그 장소에서 나는 그렇게 달리기를 다시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달리기라는 것도 꾸준히 하기 위해서는 동기부여가 중요한 것인데 그것이 마라톤이었다. 내가 살고 있는 경주는 다행히 마라톤이 일 년에 두 번 개최된다. 보통 3개월 전에 신청을 하게 되는데 신청을 하고 나면 어쩔 수 없이 뛰게 된다. 몸을 만들기 위해 일주일에 3~4번은 10km 이상을 뛰어야 한다. 나의 기준으로 10km는 보통 45분에서 1시간이 걸린다. 1시간을 뛰어본 사람은 안다. 그 시간동안 얼마나 많은 생각이 스치고 지나가는지를. 그때 나는 마라톤에 대한 첫 번째 깨달음을 얻었다. 바로 마라톤이 생각하기에 가장 좋은 운동이라는 것을 알았다. 몸에 좋은 운동이라는 것은 얘기하지 않겠다.

 

그렇게 달리면서 나는 생각이 많아졌고, 그 생각을 하는 시간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풀리지 않던 업무를 생각하면서 달릴 때는 답이 풀어지기도 했고, 지나온 나를 반성하고 새로운 다짐을 하기도 하는 일종의 나만의 의식으로 자리잡았다. 그 의식을 치루면서 마라톤에 대한 두번째 깨달음을 얻었다. 마라톤은 자기가 자기를 대면하는 가장 극적인 장치라는 것을 나는 깨달았다. 내가 느꼈던 몇 안되는 돈오(頓悟)였다. 드디어 나는 마라톤을 계속해야 하는 이유를 찾은 것이다. 달리는 것이 체력을 단련하고 몸을 건강하게 만드는 것이라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지만 마라톤을 해야 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찾지 못했고 그냥 내 인생에 버킷리스트에 올라 있으니까 한 번의 경험을 기준으로 끝내려고 했는데, 그 마라톤을 하면서 나는 드디어 마라톤을 해야 하는 이유를 찾았다.

 

마라톤을 하게 되면 숨이 목까지 차오르고, 심장이 아파 정말 터져버릴 것만 같은, 발바닥이 뜨거워 한 발짝도 내딛기기 힘든 그런 시간이 오게 되어 있다. 제아무리 화려한 말과 솜씨 좋은 글이 좋다지만, 육체에 맺히는 땀으로 배운 것은 절대 당해낼 수 없다고 생각한다. 몸을 움직여 한계를 경험, 극한의 경계를 경험하는 것이야 말로 자기가 자기를 대면하는 가장 극적인 장치가 되는 것이다.

헐떡거리는 숨소리, 자기의 몸에서 뿜어나오는 땀냄새, 뜨거워 타버릴 것만 같은 발바닥, 심장을 터지게 할 것 같은 박동, 모두가 자기가 살아 있는 것을 자기에게 보여주는 극적인 증거들이 아닐까. 내 자신을 찾을 수 있는 장치이고 마라톤에 대해 느꼈던 돈오처럼 내 자신에 대한 극적인 돈오를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과연 얼마나 뛰어야 발견할 수 있을까?

 

선생님이 얘기하신 것처럼 사람들이 종종 한 길을 갈 때 필연적으로 나타나는 언덕과 가파른 계곡 앞에서 힘이 들어 포기하고 다시 돌아오는 경우가 많다. 많은 재능을 가지고 있어 그 길로 가면 참 좋은 전문가가 될 수 있겠다 여긴 사람들이 바로 그 자리에서 흥미를 잃고 다른 길로 접어드는 것을 많이 보았으며, 그들 자신도 그걸 안다. 이 고개, 이 바위를 넘으면 더 나아갈 수 있고, 더 잘하게 되리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이때부터 찾아오기 시작하는 훈련과 땀을 두려워하는 것이다. 바로 이런 상황에 맞닥뜨렸을 때 슬기롭게 극복하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하는 힘을 기르는게 중요한데 여기에 적합한 운동이 마라톤이라 생각한다. 결승점을 달리면서 무수히 찾아오는 포기하고 싶은 충동, 육체적 고통 등을 참아내면서 이루는 성취는 그저 운동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앞으로 나에게 찾아올 시련을 슬기롭게 또는 묵묵히 견뎌낼수 있도록 하는 힘이 되어 줄 것이다.

 

마라톤은 같이 하는 운동이면서 또한 철저히 자기 혼자만의 운동이다. 자기를 한계에 몰아붙이면서 자신 속에 잠재해 있는, 자기가 아직도 모르는 내 자신을 좀 더 자세히 들여다 보고 내면의 깊은 나와의 대화를 할 수 있는 방법이다. 그 시간 속에서 나는 진정한 나의 모습을 찾을 것이고 거기서 변화를 시작할 것이다.

 

내 버킷 리스트에 항상 있던 마라톤 풀코스. 이제 이뤘기 때문에 버려야 하는데 이미 나는 다음 마라톤을 준비하고 있다. 그리고 새로운 목표. 50세에 보스톤 마라톤 대회에 한번 나가고 싶다는 새로운 버킷 리스트를 적으면서 오늘도 달린다.

 

오늘도 나는 그렇게 나를 만나기 위해 운동화를 질끈 동여매고 집을 나선다.

IP *.106.204.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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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5.01 12:16:50 *.124.22.184

두 부류의 사람 중 마라톤을 하지 않는 사람 중 하나, 저요! ㅎㅎ

전 헬스하면서 러닝머신에서 3분도 못 뛰겠던데.... 배가 아파요. ㅠㅠ

근데 기상님, 수정님 보면 한 번 도전해보고 싶기도 해요. 11기 다같이 졸업미션으로 하프 마라톤 달리기 해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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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5.01 14:57:29 *.146.87.14

웨버님, 일단 블리븐의 미션으로 제안하신 부분은 어디까지나 제안인거죠?^^

전체 논의가 필요할 듯 합니다!! ㅎㅎㅎㅎㅎㅎㅎ


'50세에 보스톤 마라톤 대회에 한번 나가고 싶다'

새로운 목표가 생기셨네요. 저도 10키로는 뛰어봤지만 내가 할 운동이 아니다라는

생각 뿐이었는데...형님의 매일의 힘과 강인함을 제가 반의 반만이라도 가지고 싶은

마음입니다. 저도 다른 영역에서 더욱 분발하는 동생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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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5.03 09:40:50 *.18.218.234

어쩌다 우리 기수에 마라토너가 2명이나 남녀 고루 영입되어 보이지 않는 압박감을 느끼게 하는 것인지. ㅋ

마라톤은 엄두가 안나긴 하지만 달리기에 대해서는 자꾸 자극 받긴 하네요.

올해 내로 한번 동네 한바퀴라도 달려볼까봐요. 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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